의료윤리연구회(회장 이명진)는 지난 2일 대한의사협회 동아홀에서 18번째 연구 모임을 가졌다. 이날 연구회는 '죽음과 의사의 만남'을 주제로 한 마지막 시간으로 '호스피스의 실제'에 대해 다뤘다. 샘물호스피스 원주희 회장이 강의를 맡았으며, 사회는 김윤호 운영위원(김윤호내과의원장)이 진행했다. 원 회장은 강의에서 19년 동안 샘물호스피스를 운영해오며 겪은 말기환자의 임종 현장의 현황과 방향에 대해 말했다. 이날 강의와 토론 내용을 요약·정리한다. | '당하는 죽음'아닌 '맞이하는 죽음'으로 호스피스가 돈버는 수단 돼서는 안돼…일정 부분 후원형식 필요
원주희 샘물호스피스 회장 목사·약사
샘물호스피스에는 의학적으로 치료효과를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고, 잔여 수명이 6개월 이하로 예상되는 말기 환자들이 입원할 수 있다. 현재 보건복지부의 규정에는 호스피스 완화의료의 대상이 말기 암환자로 국한돼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달리 외국의 경우는 반드시 암 환자뿐 아니라 에이즈 등의 말기 환자도 호스피스완화의료의 대상이 되고 있다. 샘물호스피스는 우리나라에 호스피스완화의료가 제도화되기 이전부터 이 활동을 해오고 있기 때문에 암환자 뿐 아니라, 말기 에이즈환자 등도 받고 있다. 호스피스팀은 말기환자·가족과 의사, 간호사, 약사, 사회복지사, 영양사, 자원봉사자, 성직자 등으로 이뤄진다.
■ 샘물호스피스는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샘물호스피스는 지난 1993년 설립돼 40병상의 호스피스 병원으로 성장했으며 지금까지 5200여 명의 말기 암환자, 에이즈 환자 등을 이곳에서 돌봤고 그 중 4500여 명이 임종을 맞았다.처음에는 시설에 들어온 환자들을 외부의 의사들과 연계시켜 통증 조절을 의뢰했다. 그러다가 봉사를 자원한 의사들의 합류로 의원, 요양병원을 거쳐 지금은 병원이 됐으며,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완화의료 건강보험수가 시범사업 병원으로 1차에 이어 2차에도 선정되어 운영 중에 있다. 의사 4명, 간호사 30명, 약사 2명과 그 외에 사회복지사, 성직자 등 직원이 있다. | 샘물호스피스에서는 죽음의 준비에 대해 매우 신경을 쓴다. 준비되지 않은 죽음은 당하는 죽음이다. 상태를 정확하게 전달해주고 유언장을 쓰도록 하는 등 어떻게든지 철저히 준비를 하도록 도와서 당하는 죽음이 아닌 맞이하는 죽음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최근 들어 호스피스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찾는 환자들이 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샘물호스피스의 경우 입원을 기다리는 대기 환자가 줄을 잇고 있어서 1차적으로 2개월간을 입원 기간으로 하고 이보다 더 시간이 필요한 환자는 일단 퇴원을 시키고 상태가 악화되면 다시 입원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환자들이 퇴원을 거부하며 지속적인 통증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들이 잠시 쉬면서 입원을 기다릴 수 있는 쉼터 시설을 마련하고 있다.
호스피스 유형 호스피스 기관의 유형은 크게 독립복지형, 독립병원형, 병원부속형으로 나뉜다. 독립복지형 기관은 말기환자를 대상으로 치료나 요양 중심의 병원과는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호스피스 프로그램만을 운영하는 형태이다. 의료 서비스는 외부 의료기관과 연계해 제공한다. 독립병원형은 말기환자를 대상으로 의사가 상주하는 호스피스 의료기관이다. 병원부속형 기관은 치료 중심 의료기관에서 호스피스완화의료 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 중 독립된 별도의 병동을 갖췄는지 여부에 따라 집중형과 분산형(산재형)으로 나뉜다. 현재 호스피스완화의료 포괄수가제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독립병원형·병원부속형 기관 중 샘물호스피스 경우 운영비의 50% 정도를 건강보험과 의료급여비 지원을 받고 있으며 나머지는 후원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샘물호스피스의 경우 봉사단체로 시작했기 때문에 이곳에 근무하는 의사, 간호사 등 의료진들의 보수체계가 다른 의료기관에 비해 훨씬 낮다. 40병상이 풀가동될 경우 건보공단에서 월간 1억3천만원가량을 지원받는다. 여기에 본인부담금 5% 정도와 후원금으로 운영되는데 의사 4명, 간호사 30명과 그 외 인력 등 60명의 인건비를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의료진을 비롯한 인력들이 봉사의 개념으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응급실에서의 말기환자 처치 사망자 3명 중 1명은 암으로 사망하는 현실에서 말기환자의 임종에 의료진의 역할은 두말할 나위 없이 매우 중요하다. 가정에 있던 말기 환자가 응급상황이 됐을 경우 대부분 자신이 다니던 대형병원의 응급실을 찾는다. 그러나 이 경우 응급실에서 이 환자들에게 해줄 수 있는 처치는 통증조절이 주를 이룬다. 이때 진통제로 데메롤(Demerol)을 주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데메롤은 급성통증 완화에는 매우 유용한 약제임에도 불구하고 만성통증에 반복적으로 투여할 경우 말기환자의 통증 조절이 제대로 안 돼 임종시 환자들뿐 아니라 의료진 역시 고통을 겪는 것을 현장에서 많이 봤다. 의료진들은 물론 이러한 점을 고려해 처치하겠지만, 말기환자의 임종현장에서 이런 경우를 자주 겪다보니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만성통증으로 온 말기암환자에게는 데메롤이 아닌 모르핀을 처방해달라는 당부를 드리고 싶다. 샘물호스피스병원의 경우 모르핀 처방이 많다. 통증이 심한 경우 24시간 지속적으로 모르핀 100앰플을 투여하는 환자도 있다. 암환자의 경우 암으로 인한 통증이 전체 통증의 45% 정도이고 항암치료로 인한 통증이 25% 정도, 그 외는 기타 통증으로 고통받는다. 통증조절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온 환자들에 있어 그 원인이 의료진에 있는 경우 그 이유는 마약성 진통제 사용에 대한 규제, 불충분한 통증 평가와 중독에 대한 두려움, 부작용·내성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중환자실 환자도 호스피스 선택할 수 있어야 끝으로, 본인이 실제로 경험한 일을 얘기하고 싶다. 얼마전 지방에 사시던 누님이 그 지역의 한 종합병원에서 말기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은 후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가 돌아가셨다. 당뇨병을 앓고 있던 데다 광범위하게 전이가 된 상태에서 항암제를 투여받은 후 퇴원했다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응급실로 실려간 것이다. 소식을 듣고 달려가보니 임종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호스피스의료기관으로 옮기고 싶다고 했지만 주치의는 퇴원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누님은 결국 그날 밤 중환자실에서 급작스럽게 임종했고, 가족 누구도 그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현 의료법 체계는 중환자실에 한 번 입원한 환자는 도중에 부착했던 인공호흡기를 떼고 호스피스 의료기관으로 옮길 수 없도록 돼 있다. 만일 이송 도중 환자가 사망할 경우 모든 책임이 의료진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중환자실에서 죽음을 맞는 것은 어찌보면 환자에게는 매우 비참한 일이다.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고 중환자실에 한 번 입원한 환자라도 환자의 의사가 분명하거나 가족들이 희망할 경우 호스피스서비스를 받으며 임종할 수 있도록 사회적·의료적 합의가 필요하다.
토 론 - 말기로 판단된 환자에게 호스피스 시설을 권해주고 싶을 때가 있는데 의사이지만 말을 떼기가 쉽지 않다. 어떻게 권해야 할까? 어떻게 전할 것인가가 문제다. 부인하는 단계, 거부하는 단계, 분노하는 단계, 타협하는 단계, 우울에 빠지는 단계, 수용하는 단계 등 5가지 단계에 따라 접근방법이 달라야 한다. 샘물호스피스의 경우 입원을 위해서는 진단서가 필요하다. 이는 이미 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의사 혼자 접근하는 것보다 팀으로 접근하는 것이 유용하다.
- 말기환자가 호스피스병동을 찾기 전에 검증되지 않은 고가의 대체요법을 쓰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전문가적 입장에서 명확한 정리를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대체요법에 대해 외면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그 부작용이나 소용없음을 정확히 설명해줘야 한다.
- 호스피스 기관이 어디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권해줘도 될 만한 수준의 기관인지 의문이 있다. 국립암센터 홈페이지에서 전국의 호스피스 의료기관에 대한 안내를 하고 있다. 그러나 질 검증은 아직 어렵다고 본다.
- 호스피스의 질적 격차가 크다면 환자의 선택에 따라 죽음의 질도 달라질 수 있다. 정책적인 대책이 있어야 하지 않나? 이미 모델을 잘 세워가고 있는 곳에 대한 홍보가 필요하다. 그러나 호스피스가 돈 버는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 수가가 너무 올라도 환자유치 경쟁이 치열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돈을 버는 개념으로 장사하는 기관이 되지 않도록 어느 정도는 후원 형식이 도입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