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부터 지금까지 모든 일을 접어 두고 고국의 친척들과 전화를 하여 마치 지금 한국에 있는 것 같은 즐거운 마음이 있어 너무 기분이 좋아서 마냥 들 떠 있답니다. 우선 이 모임을 위하여 수고한 친척에게 감사를 하고 이 SITE를 만드느라 수고한 사촌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음을 전하며 30년만의 귀향을 멀리 호주에서 전합니다.
학교 졸업후 - 군대 2년 - 외국 생활 16년 - 호주 이민 12년을 하고, 아직도 모자랐는지 앞만 보고 달리는 나에게 가끔 통화를 하는 내가 제일 아끼는 동생 경순이가 어제 "가래골 사람들"이 있다고 꼭 들어가 보라고 해서 보는 순간 너무 반가운 얼굴둘과 이름들이 들어 왔으며 이제는 나도 친척을 돌아 보고 광산 김씨임을 알아야 했기에 긴 여행의 마침표를 찍고 '가래골'로 돌아 왔습니다. 지난 시절 생존 경쟁이 치열한 첫 사회의 진출시부터 그 당시 외국에 나가는데 꼭 필요한 재정 보증을 하여 줄 형편의 친척 및 주위가 없다는 현실이 나에게는 어린 나이에 너무 상처가 되었고 왜 우리 광산 김씨에서는 소위 말해서 출세를 한 사람들이(꼭 돈을 많이 벌어서도 아니고, 사회적인 지위를 가져서도 아니지만 그 당시 재정 보증 설러면 재산세가 일정액 이상 되어야 했는데 그런 분을 만나기가 너무 어려워서 해외로 직장을 못 가진다는 사실이 너무 힘들고 처량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없었는가를 나름데로 뼈저리게 느끼기를 시작 하였고 적어도 나는 나중에 이름을 높이는 사람이 되어 친척들을 돞고 싶었습니다. 남에게 지기 싫어하고 무언가 이루어야겠다는 신념으로 사회 생활만은 철저하게 하고자 동기생들중에도 항상 선두를 유지 하고 싶었고 승선 9 년만에 대한 민국에서 제일 가는 해운 회사인 한진 해운에서 초고의 기술을 자랑하는 콘테이너선의 선장을 진급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좀 살만하니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의 교육이 또 앞을 가려서 어려운 결정을 하여야 할 시기가 되어 호주로 훌쩍 이민을 왔답니다. 이민을 오기 위하여 문안을 드리러 갔을때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덕소 큰 아버님(명수형님 아버님)께서 우리 광산 김씨에서 외국을 나가서 뿌리를 내리는 영광스런 임무를 가지게 되었으니 외국에 가서도 긍지를 잊지 않고 열심히 살으라는 말씀이 너무 감동적으로 다가왔고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와서도 지금까지 좋은 일만 많이 있었습니다.
처음 생각데로 두 아들이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 하는 영재들 만이 다닌다는 중/고등학교를 (SELECTIVE SCHOOL : 이곳은 중/고등학교가 같아서 6년제임)를 나왔으며 현재 큰아들은 시드니 대학을 나와서 공부에 끝장을 보고자 의사를 하겠다는 일념으로 계속적으로 5년차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으며 작은 아들은 멕과어리 대학 경영학과 2학년입니다.
이제까지는 변명 아닌 변명으로 30년의 긴 마침표를 찍고 그동안 정수가 친척들에게 너무 소흘히 하지 않았느냐는 질타를 잘 반성하고 비록 멀리 있지만 가래골의 용사로 여러 친척들에게 열심히 봉사를 할 것을 약속합니다.
1차로 그동안 어르신분들께 그동안 연락도 못 드리고 반성의 의미로 호주 청정우 소고기 보양 SET를 현재 생존해 계시는 가정으로 배달이 되도록 조처를 하였습니다. 금번 어버이날의 선물로 드리오니 건강하시고 오래 오래 장수 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경기도 부천 (우리집) 경기도 의정부 (작은 어머님) 경북 안동 (작은 어머님) 경기도 남양주 (작은 아버님)
경북 대구 ( 작은 어머남) 경북 대구 ( 작은 아버님) 경기도 김포(작은 고모님) 7 곳
그동안 정수에게 섭섭한 마음이 있었다면 전부 용서를 빕니다. 또한 앞으로 참석은 못해도 회비는 꼬빡 꼬빡 납부를 하겠으며 언제 꼭 시간을 내어 '가래골'에서 뵙기를 바라면서 인사를 대신합니다.
호주에서 광산 김씨 김 정수 배
첫댓글 추카추카 드립니당....터트려뿌네.. 좋은소식 감사하구여자주뵈용^^
계속 터트리겠습니다. 혹시 어르신분들중에 호주의 건강 식품이 필요 하신분은 연락 주시면 바로 쏘겠습니다. 부담 갖지 마시고 바로 저에게 살짝 연락을 주시면 감사를 드리겠습니다. 호주에서 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