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우리 회원 '한 별'님의 글입니다.
천천히 올린다는 걸 제가 신고식 안하면 안된다고 막무가네 올립니다. ㅎㅎㅎ.
눈의 피로를 덜기위해 행띄우기를 하였습니다.
해맞이
한 정 순
무자년 아침이 밝았다. 해가 뜨고 지는 것은 변함이 없건만 어제와 오늘 아침의 느낌은 전혀 다르다. 새해 아침의 해맞이는 기대와 소망으로 가득해서인가 신선하고 활기찬 느낌이다.
십이월 삼십일일은 해넘이 행사가 심악산에서 있고, 일월일일 해맞이 축제는 행주산성에서 있다고 요소요소에 현수막이 크게 붙어있다. 생각 같아서는 보내고 맞이하는 두 행사 모두 참석하고 싶었지만 갑자기 추워진 영하의 매서운 날씨 때문에 접기로 했다. 그리고는 우리 집 거실에서 해맞이를 했다. 우리 집은 동향이고 앞이 탁 트여 멀리 북한산 위로 떠오르는 해를 날마다 보며 산다. 이십층 꼭대기에서 매일 보는 해이지만 오늘의 느낌은 설레기까지 한다.
7시 50분부터 동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서서히 주홍빛이 짙어지더니 흩어져있는 구름까지 찬란하게 물들이며 곧 떠오를 기세다. 하늘이 붉어질수록 가슴은 방망이질을 한다. 이윽고 기다리던 태양이 희망을 안고 떠오른다. 눈이 부시다.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며, 혼자서 힘차게 박수를 쳤다. 오늘의 해는 어제의 해가 아니었다. 유난히 아름답다. 왠지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다. 일출을 무리 없이 찍을 수 있는 카메라 하나 없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이 집으로 이사 오고부터 맛보는 기쁨중의 으뜸이 해맞이요, 달맞이다. 해맞이도 좋지만 여름밤의 달맞이는 운치가 있어 더욱 좋다. 지난해 칠월 초승에 이사를 하고 둥근달을 보기위해 보름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헌데 정작 보름날은 날씨가 흐려 열엿새 날에 달맞이를 했다. 동쪽 하늘이 환하게 밝아오더니 씻은 듯 맑고 깨끗한 얼굴이 ‘날 기다렸느냐’며 북한산 봉우리를 딛고 올라섰다. 나훈아보다 더 매력적이었다. 지금까지 매달 보고 살아왔건만 그날은 왜 그리 가슴 뛰게 하던지 한 눈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열엿새 달이건만 만월이었다. 대낮같이 발은 달빛아래, 개구리와 풀벌레들까지 합세하여 현악기로 연주하듯 울어대니 이것은 한편의 시요, 달밤의 찬미였다. 그 달빛이 어찌나 정겹게 다가오던지 불도 끄고 아예 베란다에 자리를 깔고 앉았다. 불현듯 대작할 친구가 그립다. 와인 잔에 적포도주를 찰랑찰랑하게 따라 들고 홀짝이며 달이 기울도록 시작도 끝도 없는 그리움에 젖어 달맞이를 했던 날도 있었다.
윤오영님은 자기 집 주변 풍광을 이렇게 말했다. “이 동산이 이웃에 있으므로 해서 내 집은 만금이나 비싸다”고. 허면 매일 해돋이를 보고 매달 만월을 벗 삼는 우리 집은 오 천금쯤은 되지 않을까 싶어 힘이 생긴다.
이 시간에 해맞이를 하며 새해에 소망을 담아보는 것은 좋은 수필 한 편 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소박한 꿈이 담긴 그런 수필을 희망하는 기원이다. 해처럼 달처럼 둥글고 모나지 않은 수필 한 편.
십여 년 전 일이다. 중년의 여자 셋이서 정동진으로 해맞이를 갔었다. 계란도 삶고 음료수와 과자도 챙겨들고 소녀처럼 들뜬 기분으로 청량리역에서 밤기차를 탔다. 까만 밤을 미끄러지듯 달려가는 기차, 창밖으로는 어둠만이 무겁게 스며드는데 동승한 학생들은 밤도 잊은 채 열광하고 있었다. 기타치고 노래하며 떠들어대는데도 그것이 싫지만은 않았다. 우리도 싸였던 수많은 이야기들을 수다로 풀어내며 삶은 계란에 커피까지 곁들여 밤을 축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만 해도 젊었구나 싶다. 소망이란 명제를 품고 정동진을 향해 달려가는 모두가 겉으로는 행복해 보였지만, 그것은 어쩌면 미래의 안위를 기원하는 처절한 삶의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날이 일월 삼일이었다. 춥기는 왜 그렇게 춥던지. 맹위를 떨치는 동장군의 위력 속에서도 정동진이 ‘모래시계’란 연속극의 촬영지로 유명하게 떠오르던 때라서 그랬는지 유난히 사람들이 많았다. 완전무장을 했건만 발은 떨어져 나갈 듯이 시리고 몸은 자꾸만 얼어들어왔다. 입이 얼어 말도 못할 정도로 추웠던 새벽이었다. 그래도 보기 드문 아름다운 일출을 보게 되어 다행이었지만, 그때 찍은 사진을 보면 코끝이 새빨갛게 얼어있다.
붉은 노을 속에서 장엄하게 떠오르던 해는 이글이글 타고 있는 숯불 같았다. 싸늘하던 공기가 순간 후끈하게 달아올랐다. 스피커에서 새어나오는 구령에 맞추어 절실한 만큼 목이 터져라 외치는 만세삼창은 애절한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왔다. 분명 그해의 해맞이는 희망이었고 감동이었다. 어느새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돌아보니 두 친구의 눈에서도 눈물이 반짝이고 있었다. 감동은 감성 뿐 아니라 눈물샘까지 자극하는 촉진제였나 보다. 추위도 참아내며 삼십분을 기다렸건만 그날 해맞이의 단막극은 십분 만에 끝이 났다. 밤새워 달려온 기대에 비하면 너무나 빨리 끝나버린 논픽션 드라마였지만 뿌듯한 가슴을 안고 강릉을 향해 떠났던 추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거실에 앉아서 보는 해는 정동진보다 약 십오 분 정도 늦게 뜬다. 욕심인지는 몰라도 새해 소망을 담아보는 마음은 그때 보다 더 절실하다.
2008. 1. 1. 아침 (13.7매)
첫댓글 한별님, 그대의 '해맞이' 여럿이 보면 좋을 듯해서 제가 올립니다. 20층 해맞이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 모레 아침에는 제가 그곳에서 해를 맞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내일 저녁에 있을 하현 달맞이 포도주도 준비 하시지요. ㅎㅎㅎ. 이런 좋은 일이...
대령합지요.
<매일 해돋이를 보고 매달 만월을 벗 삼는 우리 집은 오 천금쯤은 되지 않을까 싶어 힘이 생긴다> 한별님! 하늘정원을 가져서 너무 좋으시겠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사진을 보듯 도는 정동진으로 함께 여행을 한듯 같이 해맞이를 하였습니다. 무자년 한해 늘 떠오르는 태양처럼 밝고 만월처럼 풍성한 일만 있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한별님, 봄비님 덕분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작가의 이름을 보지 않더라도 자상한 성품을 지닌 감성적인 여성분이 쓴 글임을 단박에 느낄 수 있겠군요. 戊子年 새해 所願成就 하십시요. 그런데 한가지 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분께서 터프한 '나훈아' 에 매료되실 수 있는지. 죄송합니다. 저는 여자가 아니라서
ㅎㅎㅎㅎㅎ 요새 그사람 무쟈게 뜨던데요. 여자들이 나훈아를 좋아하는 사람이 참 많아요.
나훈아의 경우는 여자들 사이에 호, 불호가 50:50입니다. 그런데 좋다는 분들이 더 많아지는 경향이지요. 저와 들미소가 처음 친하게된 계기가, 나훈아가 늑대 또는 크로마농인 같아서 싫다는 것에 마음이 딱 맞아서 였는데... 동키호테도 재미없고. ㅎㅎ
지존님 감사합니다. 나훈아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솔찍히 매력은 있습니다.
보지 않아도 보이는 해맞이 달맞이 입니다. 저는 새벽 길을 나서야 북한산으로 해가 뜨고 달이 뜹니다. 소파에 앉아 창밖을 보면 해는 북악의 스카이웨이가 지나는 능선 위로 떠오릅니다. 이때는 북악의 역광때문에 팔각정이 능선위로 어두운 기운과 함게 뜹니다. 북악의 아침보단 요사이는 새벽길의 북한산이 신비롭습니다. 일출과 월출 잘 보았습니다.
산하정님도 북한산위로 뜨는 해를 자주보시는군요. 졸작을 읽어주신 선생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모두모두 건안 건필하세요.
정동진의 해돋이를 보시며 눈물을 흘리셨군요. 저는 하늘공원에서 눈물을..., 분명 다른 어느 날과는 달랐습니다. 오천 금이나 되는 집에 계신 한별님이 부럽습니다. 무엇보다 달맞이도 할 수 있다니... .그리고 수필 한 편 쓸 수 있기를 소망하신 소박한 마음에 머리가 숙여집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달맞이 하면서 선생님과 함께 울어볼까요? 봄비님은 양동이 준비하세요.
양동이? 나 돈 없어요. 그냥 작은 눈물단지로 합시다요.
해맞이를 하며 좋은 수필 쓰기를 소원하셨으니... 그 소원이 이미 이루어 졌군요. 이 한편의 수필로...욕심이 저절로 사라지는 그런 글 입니다.
아이구 부끄럽습니다. 다시보니 식상한 문구가 거슬려 퇴고를 수 없이 또 했답니다.
집 거실에서 멀리 북한산에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실 수 있음은 축복입니다. 하루의 시작도 늘 밝음일 것 같습니다. '일출을 무리없이 찍을 수 있는 카메라 하나' '좋은 수필 한 편을 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글을 읽으면서 제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답니다. 한별님의 소박한 욕심이 아름다워서요.^*^
이제 글을 보았습니다. 죄송합니다. 매일 해돋이와 달맞이를 하시면서 기도를 드리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금강소나무와 같이 소박하고 잔잔하여 단숨에 읽었습니다. 넉넉한 웃음의 선생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아이구 부끄러워 죽겠다"고하면 "내숭"이라고 하실라나? 그런데 정말 저는 부끄럽습니다. 그래도 좋은 답글로 경려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보니 오타가 몇군데 있는데 수정을 할 수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