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렁이도 찰스로'(애견가게), '드가장 여관'(숙박업소), '회밀리가 떴다'(횟집).
114 상담원들을 가장 많이 웃긴 가게 이름이란다.
'똘똘한 브랜드 네임 하나, 영업사원 100명 안 부럽다'는 광고카피를 사용하는
네이밍 브랜드 업체가 있던데 과연 그렇겠다.
"이름을 지어준다'는 순수한 우리나라 말에서는 사랑과 수수함이 묻어나고,
똑 같은 말이지만 한문투의 "작명:作名" 이란 말에서는 고리타분 답답함이 연상되는 건 나만 그럴까.
'임'씨 가문의 예쁜 손주 딸이라 하여 '신중'이라 作名하신 할아버지의 作名 솜씨는 정말 답답하다.
우리 집, 고등학교 2학년 딸 아이의 친구 별명은 '봄봄'이다.
단편소설 '봄봄'의 작가 김유정과 이름이 같아서란다. 참 예쁘다. 봄봄.
요즘은 '이름을 지어준다'는 아마츄어님들은 어디론지 다 들어가고,
'작명연구소' 소장님들도 어디로인가 사라지셨다.
그 빈자리는 '네이밍'해 준다는 '브랜드' 간판을 단 인터넷 업체들이 비집고 들어 앉았다.
'네이밍'이라는 단어를 써 주어야 괜히 세련되어 보이고 돈 들인 것 같다.
네이밍브랜드 회사에 의뢰를 하면 동네 구멍가게 이름 하나 '네이밍' 해 주는데
기본 50만원이란다. 소요기간은 보름에서 한 달.
114상담원들을 웃긴
호프집 '추적60병', '잔비어스', 중화요릿집 '오늘은 자장 내일은 짬뽕', 일반음식점 '속풀고 버섯네'
PC방 '그 레벨에 잠이 오니', 미용실 '헤어지지마', '풀래말래', '자르지오' 이런 네이밍들은 얼마짜리 일까.
네이밍의 귀재들은 뭐니뭐니 해도 중,고등학교 녀석들을 못 따라간다.
우리 딸이 다니는 고등학교에는 '봄봄' 친구도 있고, '증명사진' 선생님도 계시고, '제물포' 선생님도 계신다.
항상 단정한 양복차림의 키 작으신 선생님이 교단 탁자 앞에 무표정으로 얌전히 서 계시면 '증명사진' 찍는거지 뭐람.
사시사철 개량한복 한 벌로 버티고, 소금이 몸에 좋다고 수업 중 열변을 토하시는 노처녀 물리 선생님 별명은 '제물포란다.
밤 깊은 '야자시간'(야간자율학습) 마치고 학교를 걸어 나올 때, 컴컴한 과학실습실에서 퇴근도 하지 않고
파란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는 긴 머리의 노처녀 선생님 이야기를 딸아이에게서 들으니
"쟤 때문에 물리 포기했어"(제물포) 라고 한다면 요즘 아이들 버릇 없다 말 못하겠다.
대학다니는 큰 딸, 약학과 교수님 별명은 '더리더'.
전공서적을 풀어서 설명해 주지 못하고 전공서적을 토씨하나 빠트리지 않고 읽고만 나가신단다.
네이밍브랜드 업체에 맡겨 돈 50만원 투자하느니
아이들에게 이름 지어 달래서 통닭 한 마리 시켜 주는게 투자대비 효과가 훨씬 크겠다.
최근 강력한 네이밍브랜드를 하나 봤다. '족가네(足家네)'.
군대 후배가 개업한 돼지 족발 전문점이다.
김가네, 황서방, 놀부보쌈.. 기왕에 나와 있는 이런 네이밍브랜드들로는 싱거워,
아주 확실히 고객들의 머리 속에 각인시켜 줄 단 한방. 족가네!
하긴 '족가네'와 짝을 이룰만한 네이밍이 우리 동네에 있긴하다.
'보이지 나이클럽'.
'족가네'와 '보이지 나이트클럽'의 개업허가를 내어 주었을 시청공무원들의
고민이 살짝 보이기는 하다만 우리나라 행정과 법체계에서 근간을 이루는게 '문서증빙주의'이므로
문서의 자구(字句)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누가 이런 네이밍을 탓하랴.
개업한 후배의 가게, 족가네는 내가 살고 있는 경상도 땅이 아닌 천안에 개업했다. 멀어서 당연히 가 보지 못했다.
천안가면 군대 후배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을지 몰라도 가게 이름만은 114 상담원에게
또렷하게 기억해서 말할 수 있겠다. "족가네.. 몇 번인가요?".
'족가네' 첫 자의 종성 'ㄱ'과 두번째 자의 초성 'ㄱ'이 두 번 씩 마주치니 아주 된 발음이 난다.
굳이 저렇게 받침을 'ㄱ'으로 둘게 아니라 다른 받침으로 대입해 보아도 마땅히 좋은 말이 없다. '존나','졸라'.
편의점 알바 학생이 쓴 글을 본 적이 있다.
계산을 마친 외국인이 "조까라"며, 발음도 똑똑히 큰 소리를 치더라는 것.
컵라면 사고, "젓가락도 달라'했다는 뜻이라지만, 아무리 외국인 발음이라 접어서 생각해 줘도 어째 좀 고약하다.
족가네.
가게이름으로 선전해 주기는 그만이긴하다.
하지만 거의 여성들로 채워진 114상담원들에게 당당하고 큰 목소리 "족가네! 몇 번인가요?" 물어서 찾아가고,
족발 배달 시킬 건수가 얼마나 될까 궁금하다.
잘 지어진 네이밍인지, 어떤지 추이는 나중에 보기로 하고,
후배의 가게 개업 축하 메시지는 보냈다.
"물 바가지에 깨 달라 붙듯 손님 붙기를. 어~헐럴럴~ 쿵 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