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타교실] -32- 브라질을 타도하라 편~
테니스장은 콩쥐의 계모가 만들어놓은 밑빠진 독인지 아무리 자갈을 가져다
부어도 차오를 기미가 안보였다.
옛날 이야기 속엔 개구린지 두꺼빈지가 쨘~ 하고 나타나
밑빠진 독을 막아주었는데
우리들앞엔 두꺼비가 똥행패에게 맞아 죽을 걸 두려워하는지
나타날 기미조차 없었다.
오~ 두꺼비마저 배반을 때린 킬링필드여~
학교에 공부하러 다니는 건지 노가다를 다니는 건지 혼미하던 어느날
옆반 선생이 우리 반에게 내기 축구 시합을 제안했다.
이른바 10만원 빵이었다.
이기는 팀한테 10만원어치 빵을 사준다는 얘기가 아니라 언제부터인지
내기라면 몇만원 빵 이런식으로 빵이 붙었다.
세상엔 참으로 유래를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다.
똥행패는 흔쾌히 승락했다.
오전 작업이 끝난후(오전 수업이 끝나고가 절대 아님)
축구시합을 하기로 했다.
똥행패 선생은 절대 어떤 일이 있어도 이등은 용납치 않았다.
옆반과의 축구시합을 반드시 이겨야지 만약 진다면 이건 단순한 운동경기의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상당히 불행한 일이 될 것이다.
똥행패는 축구 시합전 우리들을 불러 모으고 작전 지시를 했다.
축구 경기가 지구상에서 펼쳐진 이래 최고의 공포스런 작전 지시였을 것이다.
"오늘 5반과 축구 시합을 하는데 말이 필요없다. 반드시 이겨라.
전쟁에 이등이란 없다. 이등은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죽음'이란 말에 유난히 악센트가 들어가고 가뜩이나 험악한 인상을
찌그러뜨렸다.
우리는 알고있었다. 오늘 경기에서 만약 진다면 그것은 곧 죽음이란 것을
"축구에 이기면 오늘 음료수 하나씩을 돌리고 일주일간 지각을 눈감아 주겠다."
"넷~"하고 우리들은 크게 대답했고 정말 간절히 이기고 싶었다.
우리는 인도의 독립을 바라던 간디와 네루의 심정을 합한 이상으로
축구 시합에서 이기고 싶었다.
단 일주일간 만이라도 구타없는 세상, 참다운 세상 에서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기기엔 상대는 너무 강했다.
5반엔 중학교때까지 축구 선수를 했던 애가 둘이나 됐고 조기축구회에 나가는
아이도 셋이나 됐다.
옆반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잔디 구장에서 개인기 연마에 힘써 왔던 90년대의
브라질 대표팀 이라면 우리 반은 오로지 헝그리정신 하나로 똘똘뭉친
60년대의 한국 대표팀이었다.
"하지만 오늘 축구를 이기지 못하고 진다면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지불받게
될 것이다."
똥행패의 표정은 전쟁을 앞둔 장수처럼 비장했다.
고액의 판돈을 걸고 이른바 '도리짓구땡' 이란걸 하다 걸려
방송에 모자이크 처리로 크게 한번 나고 전임 학교에서 쫓겨나
비리의 온상인 M고로 전출을 온 지금도 주말이면 경마 정보지 하나 들고
빨간 펜으로 체크하며 '야! 만경봉 달려라 달려'를 외치는 노름의 미치광이
5반 생물 선생 정상배가 우리의 생명을 미끼로 10만원을 노리고 있었다.
그에겐 10만원의 판돈이 적은 노름이겠지만
우리 반 50명 아이들에겐 생사가 걸려 있는 큰 도박이었다.
전후반 30분씩으로 축구 시합이 시작되었다.
알았다.
우리반 최고의 골게터 훈섭이가 두 골을 넣어 3:2까지 따라갔지만
더이상의 추격은 무리였다.
5반의 치열한 공세에 우린 계속 몰리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목숨을 건 반칙에 골은 더 먹지 않았다.
종료가 얼마 안 남은 순간 조병국이 공을 잡았다.
조병국의 선택은 하나였다.
중앙선을 넘어 드리블을 해갔다.
앞에 수비수가 두명 있었는데 발로 걷어 차버리고
골대로 달려가 골키퍼마저 손으로 확 밀어버리고
오로지 반칙하나로 동점골을 넣었다. 이는 누가봐도 확연한 반칙이었다.
정상배 선생이 이의를 제기했으나 똥행패가 인상을 쓰니
"하하하 멋진 단독 드리블이었네요"라고 하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
똥행패는 참으로 모두가 두려워하는 존재였다.
골든골 제도로 치뤄진 연장전 5반의 월등한 실력은 우리의 더티한 반칙에 걸려
힘을 못쓰고 있었다.
또다시 조병국이 우람한 체격으로 반칙을 해 나가다 태클로 공이 혼미해진 순간
오늘의 히어로 김응석이 냅다 걷어찼다.
그 공은 하늘 높이 떠서 비실비실 가더니 5반 골키퍼의 손을 살짝 넘어가는
만세골로 이어졌다.
맨땅에서 눈물젖은 빵을 먹고 달려온 한국축구가 브라질을 꺽는 순간이었다.
맞는게 유일한 취미요 특기인 부동의 꼴찌 김응석이 우리를 살렸다.
우리는 응석이와 똥행패를 헹가레 쳤다.
똥행패는 모처럼 씨익 웃으며 우리에게 말했다.
"너희들이 장하다"
'그래요 우린 장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