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해방기구(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
예루살렘에 있는 이전의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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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팔레스타인인은 1948년 이스라엘이 수립되기 이전에 총독령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살고 있던 아랍인과 그들의 후손이다.
PLO는 이전에 비밀저항운동을 전개하던 다양한 팔레스타인 조직의 지도부를 통일, 1964년 결성되었으나 그것이 외부로 부각된 것은 1967년 6월에 발발한 중동전쟁 직후였다. PLO는 '민주적이고 세속적인' 팔레스타인 국가를 건설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PLO 헌장은 이스라엘의 제거를 요구하고 있다.
1948년의 팔레스타인 전쟁과 계속된 이스라엘과의 전투에서 아랍 국가들은 선도적으로 투쟁을 이끌었으나 팔레스타인계 아랍인의 역할은 다소 소극적이었다. 1967년 6일전쟁에서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에 패배한 후 PLO는 팔레스타인인의 대변자 겸 팔레스타인 이데올로기의 주창자로서 재조직되었다.
PLO 내에서 활동하거나 관련을 맺고 있는 단체로는 파타(Fatah), 팔레스타인 해방인민전선(PFLP), 팔레스타인 해방인민민주전선(PDFLP)이 있다. 또한 PLO와 연관된 테러 조직으로는 파타의 검은 구월단(Black September)과 PFLP의 총사령부가 있다.
PLO에는 다양한 내부 의견 차이와 조직의 분화가 존재한다. PLO의 온건파는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하는 이스라엘과 협상에 응할 용의를 가지고 있지만, 과격파는 이스라엘의 파괴를 고집하면서 이슬람교도·유대교도·그리스도교도가 동등하게 참여하는 세속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PLO의 자금은 PLO에 동조하는 이웃 국가들의 후원금과 팔레스타인 근로자들의 봉급에서 징수된 세금으로 충당된다.
1969년에 팔레스타인 조직 가운데 가장 큰 집단인 파타의 지도자 야시르 아라파트가 PLO 의장으로 임명되었다. 1960년대 후반 PLO는 요르단에 본거지를 두고 이스라엘에 대항하기 위한 군사조직을 창설하고 육성했다. 그러나 1970년 후세인이 이끄는 요르단 정부와 PLO의 갈등이 심화되었고 결국 1971년 PLO는 요르단 군대에 의해 추방되어 레바논으로 본거지를 옮겼다.
1974년부터 아라파트는 PLO가 이스라엘 외부에서의 국제 테러리즘에는 더 이상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편, 국제사회가 PLO를 팔레스타인 국민의 정당한 대표체로 인정해줄 것을 요청했다.
1974년 아라파트의 요청은 아랍 국가의 지도자들에 의해 수용되었고, 1976년 PLO는 팔레스타인의 유일한 대표체로서 아랍 연맹에 정식 회원으로 가입했다. 그러나 PLO는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협상에서 배제되었는데, 이 협상 결과 1979년 평화조약이 체결되었다.
이 평화조약에서 이스라엘은 점령하고 있던 시나이 반도를 이집트에 반환하기로 합의했으나 웨스트뱅크와 가자 지구에 팔레스타인 국가를 건설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PLO가 시리아의 점령지인 레바논을 근거지로 하여 이스라엘 영토에 대한 공격을 계속하자, 이스라엘은 1982년 6월 6일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군대의 본거지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레바논을 공격했다. 수주일 간의 전투 끝에 이스라엘 군대는 지난 수년 동안 PLO의 본부가 있던 베이루트를 포위했다. 협상 결과에 따라 팔레스타인인은 8월 21일부터 9월 1일 사이에 레바논의 수도인 베이루트에서 철수하여 우호적인 인근 아랍 국가로 피난해야 했다.
베이루트에서 철수한 후 PLO 내에는 아라파트의 온건 노선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었다. 더욱이 1983년 시리아에 본부를 둔 PLO 반군은 시리아 군대의 지원을 받아 아라파트의 남은 병력을 레바논 밖으로 몰아내려고 했다. 그러나 아라파트는 온건한 아랍 지도자들의 지원에 힘입어 다시 PLO의 지도권을 장악했다.
1988년 11월 PLO는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수립을 천명했는데, 이것은 이스라엘이 여전히 웨스트뱅크와 가자 지구를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에 단지 명목상의 국가일 뿐이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PLO가 암묵적으로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했다는 점이다. 즉 PLO는 이스라엘을 제거한다는 목표를 포기하고, 대신에 독립적인 이스라엘 국가를 인정하고 웨스트뱅크와 가자 지구에 팔레스타인 국가를 건설하는 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1993년 4월 아라파트의 지도 아래 PLO는 이스라엘과의 평화정착을 위한 비밀협상에 들어갔으며, 1993년 9월 13일 마침내 협상이 타결되었다. 이 협상에서 PLO는 이스라엘로부터 팔레스타인 주민들에 대한 유일한 대표권을 인정받았으며 웨스트뱅크, 가자 지구의 통치권을 5년간에 걸쳐 이스라엘에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단계적으로 이양하는 것에 관한 개략적인 합의를 보았다(팔레스타인의 자치 확대에 관한 원칙 선언).
그러나 일부 성공에도 불구하고, 협상은 1990년대 내내 산발적으로 위기를 맞다가 2000년 후반기에 발생한 폭력사태로 완전히 결렬되었다. 이 폭력사태는 2000년 9월 이스라엘 우익 정당인 리쿠드당의 당수 샤론이 예루살렘에 있는 이슬람 성지 알-아크사 사원을 방문하자 팔레스타인인들이 여기에 항의하면서 비롯되었는데, 이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의 대규모 충돌로 3,000여 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2001년 현재 이 충돌을 이끈 이슬람 무장단체들은 팔레스타인 사회에서 폭넓은 지지를 얻으며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지배력을 위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