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꿈터학교 설립
1-1 학교 설립 동기
2000년 국가적 경제위기로 인해 가정이 해체되어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그 당시 학교밖청소년이라고 부르기보다는 문제아로 바라보던 시절이었다. 사회적 지원이 전무한 상태였기에 다부분의 학교밖청소년들은 다양한 문제에 노출되어 생활할 수 밖에 없었다. 가정의 해체로 인한 기능의 약화는 아이들간의 격차를 만들었고 이런 상황은 학교가 가고 싶고 머물고 싶은 공간이기 보다는 심리적 위축으로 가기 싫은 곳이 되었다. 잦은 결석과 기초학습의 부족, 학교에서의 유예처리가 되며 아이들은 학교밖으로 밀려났고 공백기간동안 비슷한 처지의 또래집단과 어울려 무기력하게 생활하고 있었다. 처음 만나 아이들의 스토리이다. 이러한 청소년들에게 지역사회 속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대안을 찾던 중 배움만이 이 아이들을 살릴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하고 아이들을 교육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눈에 띄지도 않고 몇일씩 자취를 감췄다가 나타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교육한다는 것은 큰 어려움이었다. 교사들의 아침일과가 아이들을 찾아서 등교하는 것이 비일비재했고 하교 후 일어나는 일로 인해 경찰서를 들락거리기 일쑤였다.
통학이 안되는 아이들에게 통학을 하는 대안학교로는 도저히 아이들의 변화를 기대하기란 어렵다는 판단이 되었다. 그래서 생활과 교육을 함께하는 학교를 만들게 되었다. 처음 구상은 가정집과 같은 공간을 확보하고 안정적인 환경에서 엉클어진 삶을 회복시키고, 회복된 아이들이 지역사회에 되돌아가 긍정적인 바이러스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자는 생각을 가졌다. 그리고 10명 정도의 아이들을 모집하여 기숙학교로 전환하기로 결심했다.
2. 꿈터학교 설립 후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처음 꿈터학교를 설립하여 아이들에게 보다 나은 환경에서 교육을 하고 싶었지만 주변의 시선과 부정적인 인식으로 인해 상가주택을 전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2013년 주변의 도움으로 학교가 이전할 최상의 공간을 찾게 되었다. 기쁨도 잠시 학교에 대해 알지 못하는 마을 주민들이 학교의 이전을 반대했다. 예상치 않았던 문제라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고민이 되었다. 무엇이 문제인가? 대안학교와 아이들을 모른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우리 학교를 알지 못하고, 아이들을 알지 못함에서 오는 두려움. 그리고 대안학교가 새로운 교육의 방법으로 떠오르고 있는 시점에서 아직까지도 공교육 외에는 다른 형태의 교육을 인정하지 않는 인식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잘 못된 인식을 개선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 공무원의 중재로 마을대표 한분과 학교에 방문을 했고 밝은 미소로 인사하는 아이들을 보며 이내 그 두려움은 사라지셨는지 마을에서 보자며 따뜻한 미소로 답을 주셨다.
2-1 꿈터학교 설립 후 기억에 남는 학생과 사례
집안은 복잡한 사정으로 인해 힘들어졌고, 학교생활은 점점 답답해졌다. 그러한 상황에서 탈출구를 찾던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학교를 빠지기 시작했다. PC방에 가기도 했고, 빈집에 누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놀기도 했다. 노는 것이 좋기도 했지만 마음 한구석은 늘 무겁고 불안했다. 그러던 중학교 2학년 때의 어느 날, 그 날도 학교에 가지 않고 PC방을 돌아다니던 나는, 그만 어디선가 책가방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아빠께 혼나는 것이 두려워 바깥을 배회하며 떨다가, 새벽 늦게야 겨우 집에 들어갔고, 다음날부터는 잃어버린 가방을 핑계 삼아 아예 학교를 가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 어이없는 이유 때문에 학교를 아예 그만둬버린 것이다. 학교에 다니지 않게 되면서 나는 집에서 게임을 하거나 소설만 보았다. 처음엔 즐거웠지만 점점 게임과 소설이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복지관 선생님께서 찾아오셨다. 평범하면서도 착해 보이는 인상의 선생님은, 나를 다시 세상 밖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끄는 빛이 되어주신 이 정민 선생님이시다. 이정민선생님의 소개로 구청의 김 민아 선생님, 청소년 수련관의 임 은수 선생님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임은수 선생님을 통해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꿈터를 알게 되었다. 처음 꿈터를 알게 되었을 땐, ‘학교’라는 생각에 거부감부터 들었고, 어차피 또 포기할 것 같다는 생각에 입학하는 것을 주저했지만, 소개해주신 선생님께서 그 학교는 예비 과정이 있으니 1주일동안 경험해보고 선택하라고 하셨다. 그렇게 해서 꿈터를 다니게 되었다.
꿈터는 내가 아는 학교와는 달랐다. 규모도 작고 아이들도 많지 않은 집 같은 학교였다. 꿈터에 첫 발을 들여 놓았을 때, 학교를 오랫동안 다니지 않아서 그런지 어색했다. 특히 컴퓨터나 핸드폰 같은 것을 가지고 노는 게 아니라, 여럿이 모여 공기나 보드게임을 하는 것이 신기했다. 4년 동안 혼자 집에서만 지냈기 때문에, 남들과 함께 무엇을 한다는 것이 나에겐 큰 부담이었다. 꿈터의 생활이나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익숙하지 않아서 여러 번 학교를 빠졌다. 한 번 빠지고, 두 번 빠지고, 가출하고, 또 가출하고... 학교를 빠지며 마음이 불안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예전 습관이 몸에 남아 있어 나도 몰래 저절로 빠지게 됐다. 특별한 이유가 없이 하는 행동이었기에, 나도 내 자신이 이해되지 않았다. 한자노트를 사러간다고 하고 학교를 빠져나간 적도 있었다. 후에 선생님들이 웃음 밖에 안 나왔었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내가 가출할 때마다 배 선생님과 홍 선생님께서 집으로 찾아오셨다. 설마 집까지 찾아오실까 생각했는데, 가출할 때마다 늘 찾아오셨다. 혼날 것 같기도 하고 죄송한 마음도 들어 집에 들어가지 않고 서울숲을 배회한 적도 있었다. 날씨가 좋을 때는 그냥 거기서 잠을 자기도 했다. 그렇게 4개월 정도 지난 어느 날이었다. 난 그 때도 3일 동안 학교에도, 집에도 가지 않고, 서울숲에서 오카리나를 불다가 낮잠을 자려고 했다. 멍하니 땅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누군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뭐하냐?” 정말 깜짝 놀랐다. 그 순간 불안한 마음과 이런저런 생각들로 가득했던 머릿속은 하얗게 백지가 되는 것 같았다. 홍 선생님께서 아이들과 함께 나를 찾으러 오셨던 것이다. ‘이제 죽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나에게 음료수를 주시면서 부드럽게 말씀하셨다. “ 내가 너 끝까지 찾아낸다고 했지? 나 너 포기 안 해!” 그 날 이후 나는 가출을 하지 않았다. 날 생각해주는 사람들이 정말 많구나. 라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정말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과 함께 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생각도 조금씩 긍정적으로 변해갔다. 예전에는 무엇을 하더라도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이제는 아무리 힘들어 보이는 것이어도, ‘우선 한번 해보고 생각하자!’로 바뀌었다.
3. 꿈터학교에 들어왔으면 하는 학생 혹은 꿈터학교에 들어오면 발전할 것으로 보이는
학생(바라는 학생상)
이 질문을 받고 ‘우리 학교에 들어오면 발전할 아이는 누구일까’라는 생각보다 ‘우리가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할 아이들은 누구일까?’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꿈터학교를 운영하면서 아이들을 단정 짓고 접근해 본적은 없다. 맞지도 않는 눈금을 가지고 아이들을 잰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아이들 저마다 타고난 끼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싹이 작아서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따라서 발전가능성을 보고 아이들을 품을 것이다. (단 정신적 문제는 어려움이 있다.)
3-1. 꿈터학교 입학과정
신입생 선발은 2주 동안 함께 생활하면서 예비 신입생이 학교에 대한 이해와 적응을 적극 돕게 된다. 2주의 과정이 지나면 입학을 결정하게 되는데 교사들의 의견과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게 된다. 특히 생활전반에 함께 해야하는 것은 학생들이기에 학생들의 과반수가 찬성해야만 꿈터학교에 입학을 할 수 있다.
신입생 선발과정에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것은 돌봄과 배움의 주체인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책임의식 및 공동체의식을 강화하기 위한 방식으로 아이들이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 긍정적인 상호작용보다 부정적인 상호작용이 많이 일어나게 되어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게 되어 적응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행동이 변화가 되어야 한다는 공동체적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4. 꿈터학교 생활의 특징
우리라는 공동체적 삶을 실천하고자 함께 생활하면서 우리가 변해야 나도 변할 수 있다는 공동체 믿음을 바탕으로 헝클어진 일상을 다잡아 주고,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파악하여 부족한 부분은 채워주고, 개성은 살려주는 가정학교를 지향하고 있다. 가족공동체를 지향하며 서로 친밀한 결합과 소통을 통해 자신들의 마음가짐과 태도, 가치, 행동들을 변화시키고, 가정과 같은 따뜻한 돌봄과 배움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능력발달에 중점을 두고 있다.
또한 지역봉사활동을 통해 남을 돌보는 일이 자신을 돌보는 일임을 깨닫게 하고 자치활동을 통한 공동체 내의 갈등을 조정하고 민주적인 시민으로 커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4-1. 꿈터학교를 기숙학교로 설립한 이유
“선생님 도와주세요” 라며 학생이 도움을 청했다. 임대주택으로 입주를 하려는데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알코올에 의존하는 아버지를 대신해 서류를 준비해주고 임대보증금을 내려는데 그럴만한 돈이 없다고 했다. 계약금을 이곳저곳에 빌리러 다니다 결국 10만원도 빌리지 못하고 애꿎은 담배만 태우고 계신 아버지를 향해 아이는 원망 섞인 말을 했다. “아빠 그럼 통장에 30만원도 없었던 거예요? 그럼 50년 동안 모은 돈이 하나도 없다는 말예요?” 아버지는 할 말을 잃고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이셨다. |
이 아이들의 가정을 지켜보다보면 아이들의 깊은 절망감도 함께 느끼게 된다. 2004년 꿈터학교를 개교하게 된 것은 이 아이들 때문이었다. 기숙학교로 설립할 당시 학교밖청소년들에 대한 정책적, 사회적 지원이 부족한 상황이라 이러한 아이들은 여러 가지 문제에 노출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이런 아이들은 데리고 사는 것만이 대안이라고 생각 했었고, 어려워도 그들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교사들과의 교감을 통해 아이들 마음속에 있는 높은 벽을 허물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삶의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아이들을 위해서는 멘토 역할을 할 수 있는 학교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생활과 교육을 함께하면서 아이들에게 든든한 기반이 되어 적극적인 관계형성을 통해 부족했던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돌봄의 작은 기숙형 대안학교가 지역사회 안에 많이 세워질 때 우리 아이들의 불확실한 미래가 조금 더 변화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5. 꿈터학교를 운영하면서 가장 힘든 점
24시간 운영하는 기숙형 대안학교로 운영하기에는 안정적 공간의 확보와 운영에 필요한 재정이 요구된다. 운영비의 대부분을 자체적으로 조달해야하는 하는 어려움을 안고 있으며, 대개는 대안교육의 취지에 공감하는 후원자와 학부모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나 지자체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나 공교육정상화라는 목표 아래 학교밖청소년들을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6.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지혜로운 부모들은 학교에 와도 자기 자식만을 찾지 않고, 오히려 내 자식보다 먼저 다른 아이들에게 따뜻한 손길과 눈길을 주어야 한다. 내 자식이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남의 자식도 건강해야하기 때문이다.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남의 자식을 먼저 돌봐야 한다. 학교밖청소년들에 대한 관심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아니라 콩 나물 시루에 물 붓기라는 것을 꼭! 알려주고 싶다.
꿈터학교는 돌봄과 배움의 공동체학교이다. 따라서 학부모, 교사, 학생간의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교육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그렇기에 학교가 유지․관리 될 수 있도록 학부모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권한다. 또한 학교행사들(도보여행, 가족사랑캠프. 학부모모임, 학습발표회, 학부모역할교육 등)에 적극 참여 하셔야 한다.
부모 면접을 보는 이유는? 부모 면접이 학교의 맞는 학생들을 선발하려는 것 아니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꿈터학교는 다년간 운영을 통해 부모만이 희망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따라서 부모면접은 자녀의 양육과정과 부모의 삶의 가치도 함께 나누면서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하는 자리이다.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부모를 선발하자는 것은 아니다. 우리학교의 설립 취지에 부합하는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서 큰 귀를 가지고 학부모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상호간의 면접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