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곱던 단풍이 낙엽 돼 사라지고, 아직 무성하던 푸른 잎들도 된서리에 맥을 못 추기는 매한가지. 헤어지기 아쉬운 듯 온기 없는 이파리는 가지를 부여잡고 있지만 삭풍 한 자락이면 금세라도 떨어질 듯 힘겨워 보인다. 이렇듯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접어드는 풍경은 나무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인데 단풍잎 떨군 채 긴 열매 자루에 자잘한 열매를 수백, 수천 개씩 달고 있는 팥배나무의 붉은 열매가 창공을 화폭 삼아 선명하다. 지금 우리가 관리하는 아파트단지의 그림이다.
팥배나무는 팥과 배, 두 개의 열매를 합쳐놓은 이름으로 열매는 붉은팥을 닮았고 꽃은 배나무 꽃과 거의 똑같을 만큼 비슷하다.
팥배나무 단풍
그렇게 이름 붙여진 팥배나무는 얼핏 보기에는 배나무와 깊은 관련이 있어 보이지만 배나무와는 속(屬)이 달라 먼 사이다. 장미과에 딸린 팥배나무(Korean Mauntain Ash, 감당(甘棠))는 갈잎-넓은잎나무로 골짜기나 산등성이 가릴 것 없이 전국 산지에서 흔하게 볼 수 있으며 키가 15여m까지 자라는 큰키나무다.
팥배나무 꽃
늦은 봄 가지 끝에 수북하게 피는 팥배나무의 하얀 꽃은 짙은 향기 날리며 흥취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매혹적이다. 꽃말 ‘매혹(魅惑)’이 딱 어울리는 대목이다. 다섯 장의 꽃잎이 이중, 삼중으로 맞물린 꽃차례에 피고 지기를 이어가면 갓 자란 초록 잎이 바탕이 돼 금방 눈에 띄게 되는데 달빛에 비친 모습이 마치 눈이 내린 듯 아름답다. 또한 꿀샘이 많다 보니 밀원식물로도 손색없어 꿀벌들이 즐겨 찾는 소풍 장소다.
팥배나무 열매
가을에 빨갛게 익는 팥알보다 약간 큰 열매는 새들에겐 좋은 먹잇감이요 사람들에겐 은하수 같은 볼거리다. 열매는 가을을 지나 겨우내 새들을 불러 모으는데, 주렁주렁 매달린 붉은 열매가 방앗간 노릇을 톡톡히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추운 겨울 삭풍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싱싱함을 자랑하는 열매에 눈이 내려앉기라도 할 때면 한 폭의 수묵화가 따로 없다.
팥배나무 열매
이렇듯 팥배나무는 매혹적인 순백의 꽃과 진노랑 단풍, 그리고 나무 전체를 덮고 있는 팥알 모양의 열매가 있어 관상 가치가 높다. 아파트단지나 공원 등에 조경수로 널리 심고 있는 이유이다. 목재는 가구재나 공예재로 쓰이고 열매는 새들의 좋은 먹이가 된다.
팥배나무 꽃
올해도 벌써 다 가고 마지막 잎새처럼 달력 한 장 덩그러니 남았다. 청와대 관저에서 오운정(五雲亭)에 이르는 오솔길에 커다란 팥배나무는 고독한 대통령의 길동무가 돼줬을 테고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된 서울 봉산의 팥배나무 군락지는 지금쯤 팥배나무 열매로 온통 붉은 산이 되었을 터.
누구보다도 숨 가쁘게 달려왔을 그대이기에 잠시 무거운 짐 내려놓고 한적하게 홀로 찾는 것은 어떨까!
※ 관리 포인트
- 햇빛이 많이 드는 곳을 좋아하나, 자람터 선택이 까다롭지 않기에 양지든 그늘이든 가리지 않고 잘 자란다.
- 건조한 땅에서 잘 자라며 추위에도 잘 견딘다. 하지만 공해와 병충해에는 약한 편이다.
- 자라는 속도가 빠른 편으로 봄, 가을에 심거나 옮겨심는 것이 좋으며 심은 후에는 물을 충분히 준다.
-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편이라 공원수나 정원수, 가로수, 도심지 조경수로 인기가 있다.
- 번식은 가을에 채취한 씨앗을 직파하거나 노천 매장했다가 이듬해 봄에 파종한다.
출처 : 조길익 소장의 조경더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