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성입니다.
짧은 설화 한편을 올립니다.
법우님들
오늘도 노적사 카폐를 찿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법우님들 께서도 많은 글을 올려주세요...
전연실 법우님은
화폭에
노적사를 담으셨는지......
모두들 감기 조심 하세요.....노적사 진성.
보개산 심원사
철원군 동송읍 민통선 안에 위치하고 있는 보개산 심원사(深源寺)는
생지장보살(生地藏菩薩)이 상주한다는 도량으로 신라 제28대 진덕여왕 원년(서기 647)에 영원(靈源)조사가 창건하였다.
창건 당시의 산 이름은 영주산(靈住山)이고
사찰 이름은 흥림사(興林寺)라 하였으나
조선 태조 때 무학대사(無學大師)가 이 절의 주지로 있으면서 산 이름을 보개산으로 고치고 절 이름은 심원사로 고쳐 불렀다.
심원사에는 창건 당시부터 지장보살의 여러 가지 영험담이 전해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 신라 성덕왕(聖德王) 17년(서기 718)에 있었던 사냥꾼의 출가 이야기를 소개하면.............
{보개산 아랫마을에 이모라는 사냥꾼 형제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산너머 담터라는 곳을 지나고 있을 때 누런 금란가사를 두른 듯한 멧돼지를 발견하고 화살을 쏘았으나 왼쪽 앞다리를 맞은 멧돼지는 보개산 정상으로 달아났다.
사냥꾼 형제는 핏자국을 따라서 산 정상으로 올라갔더니 멧돼지는 보이지 않고 왼쪽 어깨에 화살이 꽂혀 있는 지장보살상이 샘 가운데에 상반신만 내어놓고 서 있었다. 형제는 화살을 뽑으려고 무진 애를 섰으나 화살이 빠지지 않음은 물론 지장보살상도 꿈쩍하지 않았다. 형제는 깨달은 바가 있어 지장보살상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면서 다음과 같이 맹세하였다.
'성인이시여 저희들을 깊은 죄에서 구해주시기 위해서 이 같은 신변(神變)을 보이신 것으로 알겠나이다. 저희들이 다시 찾아올 때 돌 위로 올라가 계시는 신변을 다시 보여주신다면 저희들은 바로 출가하여 수행자가 되겠습니다.'하고 집으로 갔다가 다음날 다시 찾아갔더니 지장보살상이 돌 위로 올라가 있었다. 형제는 300여명의 추종자와 함께 출가하여 샘 옆 숲 속에 석대(石臺)를 쌓고 평생동안 수행하였다.]고 한다.
다음은 고려 초에 있었던 지장보살의 영험을 나타낸 또 다른 이야기이다.
{심원사 아래 마을에는 어릴 때부터 열병을 얻어 장님과 앉은뱅이가 된 두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심원사 대종(大鐘) 불사를 위해서 마을로 내려온 화주스님으로부터 '대종불사에 시주를 하면 모든 재앙이 소멸되고 현생에서 복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두 사람은 서로 눈과 다리가 되어 열심히 시주하였다.
불사가 완성되어 첫 종소리가 울리는 순간
장님의 등에 업혀있던 앉은뱅이가 지장보살이 오색구름을 타고 내려와서 심원사 쪽으로 가는 모습을 보고 '저기 지장보살이 보인다.'고 소리치면서 등뒤에서 뛰어내리자 두 다리가 쭉 펴졌고 장님이 따라서 '어디 보자'하고 눈을 비비니까 앞이 보이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지장보살을 보았다는 고개를 견불령(見佛嶺)이라 하고 그들이 살던 마을을 대광리(大光里)라고 한다.}는 것이다.
심원사는 이후로 더 많은 설화와 영험이 생기면서 사세가 확장되어 남북이 분단되기 전까지는 금강산 유점사의 말사로서 석대암, 지장암 등 여러 암자를 거느리는 큰절이었으나 6, 25의 참화로 천불전(千佛殿)만 남고 모두 소실되는 피해를 입어 전쟁이 끝난 뒤에 현재의 위치로 옮기면서 천불전을 다시 세우고 석대암에 지장보살상도 새로 봉안하였다.
첫댓글 좋은 말씀을 많이 올려놓으셔네요...진성님...이해되는 글도 있고 몇번씩 읽어도 이해 안되는 부분도 있어요 ㅎ~그리고 노적사산사 풍경은 유화로 그렸기에 아직 미완성 단계지요...ㅎ몇번 붓질 더 해야 거든요 ㅎㅎ~~오전에 잠깐 접속 했을때 접속 하셔던데 ㅎ저 여기있어요,,,하고 아는척 할려다 올려놓은글만 읽고 후다닥 나갔지요 ㅋ~~오늘은 마음이 편치 못한 하루였어요..잘려다가 잠시 홈에 들려 아름다운 글을 읽고 마음을 정리하고 갑니다....감사합니다~~~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