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 선생의 설 특강3>
제사는 왜 자정에 지내나?
차례는 명절제로 아침에 지낸다. 밝으니 제사상에 촉대(燭臺)를 두지 않는다. 돌아가신 날 지내는 기제사(忌祭祀)는 자정에 지내니 촛불을 켠다. 이 또한 현실적인 의례임을 알 수 있다.
사실 제사는 첫닭이 울기 전에 지내면 되므로 자정 정각에 지내지 않아도 된다. 다만 공경정성(恭敬精誠)의 태도 때문에 자정 정각(현대 시각으로 24:00)이 되면 지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정성의 극치에서 나온 것이다. 만약 저녁에 지낸다면 어떨까? 출근해서 돌아오면 피곤하다. 하루 종일 보기 좋지 않은 것도 볼 수 있다. 또 거슬리는 얘기도 듣겠고 말하기도 할 것이며, 자신이 요기할 것은 다 할 것이다. 그런 후에 조상을 대접한다는 것은 정성스럽지 못하다. 따라서 가장 정갈한 몸과 마음으로 조상님부터 맞이하려고 하다보니 돌아가신 첫시각에 봉행하게 된 것이다. 어찌 공경과 정성의 극치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농경 생활과는 달리 현대 직장 생활에서는 자정에 지내는 것이 불편하기도 하다. 보통 시간을 앞 당겨 늦은 저녁 정도에 지내고 내일을 위함도 현실적으로 타당성이 있다. 생활에 불편함을 주는 전통은 현실화된 변화가 예견된다. 그러나 한번쯤 정신적 가치가 충분한 것은 의도적으로 준수하여 그 문화를 유지시킬 필요도 있다.
만약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인하여 저녁에 제사를 모신다면 유념해야할 것은 자칫 기일 전날(입제일, 入祭日)에 지내는 것은 아닌 지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기제사는 돌아가신 날 즉 기일(파제일, 罷祭日)에 지내야하므로, 당겨서 지낸다는 것이 그만 돌아가시기 전날 곧 살아 계신 날을 제삿날로 행한 것이니 불경이라 하겠다. 요즘 흔히 대하는 오류이기도 하므로 기일을 잘 따져 알아보고 봉행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편리함을 추구하여 자정 제사를 기피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정성의 옛 뜻도 새기고 가족이 모여 오순도순 부족한 대화도 나누고, 가문의 업적이나 뿌리를 알아보는 2세 교육과 더불어 화목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데는 그만한 가족 행사도 없을 것이다.
여자는 제사에 참석 못한다?
결론적으로 옛 문헌이나 가르침에 여자가 제사에 불참한다는 사실은 없다. 전통이 왜곡된 대표적인 사례이다. 기제사의 경우 장자의 첫잔 드리기(초헌) 후, 둘째잔 드리기인 아헌(亞獻)은 맏며느리가 드리는 잔이므로 오히려 위상을 인정하고 있다. 부부공제(夫婦共祭)가 예로부터 올바른 전통이었다.
그렇다면 왜 잘못 알려졌을까? 원형적 의미는 사라지고 현상만 남아 잘못 전승되고 해석되어졌기 때문이다. 퇴계 이황 선생의 말씀에 의거하여 그 과정을 유추해 볼 수 있다. 퇴계 선생은 경(敬)을 매우 중요시한 성리학자이니만큼 예를 소중하게 여겼는데 형식적인 예를 배격하기도 한 분이다. 그는 “제수를 마련하는데 분주하여 부엌에 있다하더라도 제사에 참여한 것과 마찬가지이니 편한 대로 하라” 한 바 있는데 이는 번거로움을 감안하고 정성에 초점을 둔 가르침이었다. 그런데 언젠가 이러한 의미는 잊혀지고 점차 여자가 참여하지 않은 현상만 남아 “여자는 제사에 참석하지 않더라”라고만 해석하여 전승되어진 것이라 하겠다.
여자는 왜 4번 절할까?
제례에서 남자는 2번 절하지만 여자는 4번 절한다. 간혹 이를 두고 남녀불평등 차원으로 이해하는 젊은이들이 있다. 절의 수는 성리학의 음양(陰陽) 원리에 따른 것일 뿐이다. 남녀로 볼 때 남자는 양(홀수)이며, 여자는 음(짝수)이다. 그리고 조상은 이승에 있지 아니하니 음(짝수)이다. 그러하니 남자는 양(1)이 음(2)에에 배례하니 2가 되는 것이고 여자는 음(2)이 음(2)에게 배례하는 것이니 4가 되는 것이다.
과거에는 음양의 원리가 생활 전반에 영향을 준 사상이니 일리 있는 일이었다. 현대에는 사라진 것으로 보여져 굳이 지키지 아니하여도 무방하다. 그러나 그러한 전통의 의미를 바로 새겨 알아보지 않고 스스로 가치를 평가 절하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의미를 부여하기 좋아한 조상의 지혜
제사상에 올리는 것은 대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 선조들이 사물 하나에도 생명 또는 의미를 부여하기를 좋아한 모양이다. 고대로부터 우리 민족이 지녀온 만물상생(萬物相生)의 태도는 비생명체까지도 애정이나 의인(擬人) 의식이 있었는데 이러한 의식이 더욱 상징성을 찾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제사상에 울리는 과일에도 다 뜻을 두었는데 사실에 근거하여 그렇게 쓰이기 시작한 과일인지는 확실치는 않지만 우리나라에서 흔한 천산물에 그 의미를 역으로 붙인 것이 아닌가도 한다. 아무튼 과일의 의미를 아이들에게 일러주면서 상차림(진설)해 보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이겠다.
․ 대추(조,棗) : 자손의 번창함을 뜻한다고 한다. 암수 한 몸의 나무이고 꽃이 핀 곳에 반드시 주렁주렁 열매가 맺혀 풍성하니 다산(多産)을 상징할 만하다. 또 일설에는 씨가 하나인 통씨라서 절개를 뜻하거나 한 혈통을 의미한다 하기도 한다. 민속적으로는 사악함도 제거하는 기능이 있다.
․ 밤(율, 栗) : 밤나무는 다 자라고 난 뒤에도 뿌리에는 그 씨를 매달고 있다 한다. 처음 싹을 틔웠던 밤톨이 그대로 남아있으니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고 근본에 대한 은혜를 간직하라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 배(이, 梨) : 오행에서 황색은 우주의 중심을 나타내고 있고 배의 속살이 밝고 희므로 배달, 백의 민족을 뜻하는 것이라는 설이 있다.
․ 감(시, 柿) : 감나무는 감이 열린 나무는 나무 중심에 검은 신이 있고, 열매가 한번도 열리지 않은 나무를 꺾어 보면 속에 검은 신이 없으므로, 자식 양육의 고통을 상징한다 한다. 속이 다 탄다는 말이 있듯 부모의 고생이 이러하니 ‘은혜를 잊지 말라’라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가문에 따라 달리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어느 가문은 씨의 수로 보아 의미를 찾기도 한다. 대추는 씨가 하나이자 열매에 비해 그 씨가 크므로 왕을 상징하고, 밤은 한 송이에 씨알이 세 톨이니 삼정승을, 배는 씨가 6개로 육판서를, 감은 씨가 8개이니 여덟 방백(方伯, 관찰사)을 의미한다고 풀이한다.
또 빠지지 않는 제수로 포가 있는데 명태(북어포)는 동해안 북쪽(북망산천)에 있는 어물이고 알도 많아 자손이 흥성하여 쓴다 하기도 하며, 조기는 서해안에서 나는 대표적인 어물이고 예전부터 비린내 없는 생선의 으뜸으로 생각하여 왔기 때문에 제상에 귀하게 올리는 제수 품목으로 여겨져 왔다.
근거가 어떻듯 사물 하나라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의의를 두었던 선조의 지혜를 보는 듯하다.
덧붙여 알아둘 것은 모사(茅沙) 그릇도 산소의 형상을 본뜬 상징적으로 제구라는 점이다. 우리는 흔히 향을 혼령을 모셔오는 수단으로 여기지만 절이나 성당과 마찬가지로 경건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정갈한 환경을 조성하려한 것뿐이다. 제사 처음에 행하는 신령내림 즉 강신(降神)이라는 절차(홀기, 笏記)가 있다. 집사가 잔에 술을 따르면, 제주는 술을 세 번 나누어 모사(茅沙 : 깨끗한 흙이나 모래 위에 풀을 묶어 꽂은 그릇)위에 잔을 비우고 제주는 두 번 절하고 물러서는데 이것이 혼령을 모시는 것이지 향을 피움으로써 모시는 것은 아니다. 모사는 산소를 의미하는데 흙이 있고 풀이 있는 이유가 이를 상징한 것이다. 술을 붓는 것은 제를 올리니 산소에서 나오셔서 지방(또는 신주나 영정)이 있는 자리로 오십시오라는 뜻인 셈이다.
* http://mslee22.kll.co.kr/ 에서 따옴.
<다음 연재>
생활과 같은 원리의 상차리기와 제례 순서
‘고맙습니다’라는 소름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