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의 성경책 』
(이상구 안드레아 코르시니:부평 1동 본당,인천교구 주보,사순제1주일)
아버지께서는 일흔이 다 되어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처음엔 성당 나가시는 줄도 몰랐지요. 어느 날 불쑥, 세례받으니 함께 성당에 가자는 말씀에 깜짝 놀라며 따라나선 기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런 아버지께선 5년 전 영면에 드셨습니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낡은 성경책 한 권과 다 헤진 크로스백 한 개를 남겨주셨습니다. 당신은 그 가방 안에 성경 책을 고이 넣어 어깨에 메고 매주 성당에 가시곤 했습니다. 아버지께서 떠나신 뒤 성경 책과 가방은 그 모습 그대로 벽에 고이 걸려만 있었습니다. 제가 뒤늦게 그리스도인이 되겠노라 결심한데는 그 이유도 한몫했습니다. 성경을 그냥 저렇게 묵혀 두면 안 된다, 성경이니 당연히 성전에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생각한 거죠. 그때부터 저는 매주 아버지의 성경책을 들고 미사에 참석했습니다. 말하자면 그건 아버지를 기리는 저만의 의식인 거죠. 성경 책갈피를 함께 넘기고 거기에 새겨진 주옥같은 말씀을 가슴으로 함께 읽으며 저는 아버지를 추억합니다. 일주일에 하루, 아버지와 저는 그렇게 주님의 말씀과 함께합니다. 그런데 그게 낯설어 보이는 분들도 있나 봅니다. 어느 주일 미사에서였지요. 제 옆의 신자 한 분이 대놓고 저를 흘끗흘끗 쳐다보시는 거였습니다. 혹시 아는 분인가, 저도 옆 눈으로 눈치껏 살펴보았는데 생전 처음 보는 나이 지긋한 남성분이었습니다. 이윽고 미사가 끝나자 그분은 제게 대뜸 물으셨습니다.
“댁은 뭐요? 요즘 세상에 누가 성경책 들고 성당 온답디까. 아까 보니 성호도 제대로 못 긋고 말이야.”아, 아까 신부님이 복음 말씀 전에 성경책을 들고 작은 성호를 대충 그었던 게 생각났습니다. 성경책도 그런데 하는 짓마저 이상했으니 미심쩍게 보신 겁니다. 저는 일순 당황했습니다. 워낙 예기치 못한 상황이었으니까요. 마땅히 대꾸할 거리도 찾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니 그분은 의심을 확신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이대로라면 저는 수상한 이교도로 몰려 성전에서 쫓겨날 판이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다른 남성 신자 분이 그분을 달래어 모시고 나가셨습니다. 저는 도망치듯 성전을 빠져나왔습니다. 길을 걸으며 좀 전의 상황을 되새겨보았습니다. 일면 억울한 심정도 들었습니다.
‘그게 그리 혼나야 할 일인가, 내 속도 몰라주고.’ 그러면서 ‘진짜 그런가?’ 하고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일부러 다음 미사 시간에 맞춰 성당 앞에 나가보았습니다. 오, 그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성경책을 들고 오시는 분이 정말 한 분도 없었습니다. 제 모습이 이상하게 보인 건 당연했습니다. 순간 저는 참 난감해졌습니다. 평범하게 보이려면 빈손으로 가야 하는데, 그것은 또 아버지와의 약속을 저버리는 것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습니다. 그게 큰 잘못도 아니고 성경을 갖고 오지 말라는 법도 없으니 그냥 내 방식대로 하자고 결론을 낸 거죠. 행여 또 다른 분이 왜 그러냐고 물으시면 소상하게 그 경위를 말씀드릴 준비를 단단히 하고 말이죠. 저는 이번 주에도 그 성경책과 함께 미사에 임할 예정입니다. 미사에 다녀와 아버지 영정 앞에 오늘의 말씀 구절을 펼쳐 놓으면 아버지께서 슬며시 미소를 지으시는 것 같습니다. 그게 너무 좋아 저는 성경책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요한 1,1)
그림 출처: 아버지의 성경(홍경희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