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중은 교수이자 조각가로, 시인 박두진의 태생지인 문예도시 안성에서 1928년에 태어났다. 1946년에는 백문기, 유한원 등과 함께 서울대 조각과에 입학했다. 혼란스러운 시기를 넘기고 졸업한 후, 6.25전쟁 피난지인 부산 송도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장발 학장의 도움으로 서울대 교수직을 맡으며 주로 천주교 관련 조각 작업을 시작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아 제2한강교 위 유엔탑, 광화문 충무공 이순신 동상 등을 제작했다. 광화문 작업은 논란이 많았지만, 김세중 교수를 더욱 알려지게 했다. 대표작으로는 인체의 몸통만을 보여주는 '토르소, 브론즈 1989'가 있다. 행정력을 발휘해 1981년부터 1986년까지 세 차례 학장을 역임했으나,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유치 과정에서 과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86년 올림픽 전 개관을 보지 못하고 같은 해 6월 24일에 사망했다. 시인이자 아내인 김남조의 노력으로 용산구 효창동 자택에 '김세중 미술관'을 설립했다. 특징적으로, 미술관 건축에는 부지에 있던 나무 한 그루를 보존하며 지었다. 조각상 제작을 통해 후배들에게 영감을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구 국립농림축산과학원 본관 3층 외벽 부조는 김문기의 작품으로 서울대 건축과 이광노 교수의 건축 작품집에 기록되어 있으나, 건설 당시 담당 자서전에는 김세중의 이름으로 되어 있다. 김문기가 김 교수의 스케치를 바탕으로 제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건축은 이광노 교수가 대표작으로 여기는 작품이다. 조각가가 대수롭지 않게 한 스케치가 대표작이 되었으며,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는 성경 구절처럼,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키는 격이 되었다.
#김세중 #김세중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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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Kyung Kook Woo, 정병은 및 외 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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