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여다보기 2. 프리지어 한 다발
우리 집 책장 위에 놓인 프리지어 한 다발. 향을 잃은 지 오래다. 가까이 가서 향을 맡아본다. 아무 향도 나지 않는다. 단지 풀냄새 같은 것이 코를 자극한다. 프리지어 한 다발이 우리 집에 온건 한 달 보름전이다. 축하와 영광의 자리에 함께한 꽃다발. 그날의 함성과 박수가 귓가에 맴돈다. ‘젊은 시조 문학회’ 김은희 회원의 <샘터> 시상식 자리에 함께 갔었다. 시조부문 장원을 한 언니를 축하하기 위해 동행했다. 현장에서 직접 시상식을 보니 다짐도 되고, 자극도 되는 자리였다. 그 영광의 자리에 함께한 프리지어 꽃다발. 언니 품에 안겨 맘껏 뽐내고 특유의 향으로 시상식장을 더욱 빛내 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언니가 고맙다며 프리지어 한 다발을 내 품에 안겨 주었다. 극구 사양했지만 고운 언니의 마음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날부터 우리 집 거실은 프리지어 향으로 가득했다.
책장 위에서 향수처럼 매혹적인 향내를 풍기며 우리 가족을 어루만진다. 부엌에서도 향기를 느낄 만큼 진했는데 이젠 가까이 가도 묵묵부답이다. 기쁨의 그날처럼 싱싱했던 프리지어 한 다발. 보름쯤 전부터 축 늘어지고 있다. 꽃잎도 다 쪼그라들고 옆에 들러리로 있던 잎들도 수분을 잃고 퇴색하기 시작했다. 꽃다발을 두 손으로 들어본다. 무거워서 두 손으로 품에 안아야만 했던 다발이 한손으로 들어도 거뜬하다. 수분은 다 날아가고 몸속에 품었던 에너지는 모두 소진한 상태다. 초라하고 볼품없는 프리지어를 보니 축 쳐진 내가 보인다. 처음 품었던 내 다짐이 저 프리지어처럼 저물고 있다. 그래도 저 프리지어는 활짝 피어보지 않았던가? 나는 언제 저 꽃처럼 환하게 핀 적이 있었던가? 작심삼일 아니, 작심매일, 작심매시만이 나를 꽃피게 할 것이다. 떠나면서까지 나를 돌아보게 한 저 녀석이 고맙다.
사십 오일동안 나에게 기쁨과 자극을 동시에 준 프리지어 꽃다발. 이제는 너를 놓으련다. 텃밭에 꽃다발을 풀어헤쳐 놓는다. 제 빛깔과 향기를 잃고 토양으로 몸을 숨긴다. 한 달 보름 전, 우리 집에 와 환하게 웃어주던 너를 이제는 쉬게 하고 싶다. 그날의 영광과 기쁨을 떠올리게 하고 나에게 힘을 주던 너. 충분히 제역할 다해낸 프리지어 한 다발. 이제는 너를 보낸다.
첫댓글 프레지어를 보내며 '들여다보기'를 시작하는 건가요?? 기대 만땅입니다.
아주 작은, 아주 평범한, 혹은 아주 보잘 것 없는, 것들에게 마저도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님이 부럽습니다. 그런 시선, 아무나, 아무때나 나오는 건 아니겠지요. 나의 정신 수양이 필요합니다. 고맙습니다.
특별한 의미가 지닌 꽃다발을 45일간 간직했군요..이제 가슴에 간직하게 되었네요...함께 축하주고 기억을 같이한 문우님들이 특별한 향기가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