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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여정의 끝
그날 저녁 동수는 잠을 자는 둥 마는 둥하고 집을 나섰다. 동수는 그녀가 법적으로 남의 아내가 아니기를 바랐다. 오전시간이 다가도록 사장은 출근을 하지 않았다. 동수는 불안한 마음을 감추려고 안간힘을 썼다. 왠지 직원들이 자신만을 쳐다보는 것 같았다.
관리부장에게라도 이야기를 해 볼까? 그러나 사장과 관련된 이야기라서 함부로 말을 꺼낼 수가 없다.
오후 2시경.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사무실로 웬 남자 두 명이 찾아왔다. 동수를 찾았다.
“김동수 씨죠?”
“예! 그런데...“
“서부 경찰서에서 왔습니다. 사무실엔 급한 일이 있어 어딜 좀 간다하고 밖으로 나갑시다.”
“뭔 데요?“
“나가서 이야기 합시다.”
동수는 눈앞이 캄캄했다. 어제 그 사진과 관계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밖으로 나오자 길가에 있는 차로 갈 것을 요구했다.
“강미선 씨 아시죠? 여기 사장님“
“예! 그런데...제가”
“강미선 씨와 간통죄로 남편이 고소를 했습니다. 경찰서로 가서 이야기 합시다.”
“예 에! 간통이요? 남편이 있어요?”
“그럼 그것도 모르고 같이 잤어요? 이 양반 봐라.“
“전 남편이 없는 줄로 알고 있어요. 정말입니다.”
“같이 잔건 인정하지요. 그 건 부인 못하지 증거가 있으니.“
“전 정말 사장님이 혼자 사는 줄로만...”
“젊은 사람이 남의 여자 좋다고 탐내면 신세조저 이 사람아.“
경찰서로 온 동수는 담당 경찰관 앞에서 조사를 받았다. 언제부터 사귀었으며, 그 동안 몇 번이나 잠자리를 같이 하였는지? 그리고 누가 먼저 제의를 했는지 등 여러 가지에 대하여 질문이 이어졌다. 어제 자신들이 별장을 나오는 사진을 확보하고 있어서 그런 장소에 가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동수로서는 주장할 용기가 없었다. 다만, 그녀가 남편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였다고 자꾸만 설명했고 잠을 잤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
조사가 이어지고 동수가 자기주장을 계속하자 경찰관의 태도가 험악해졌다.
“이 친구 남의 여편네와 같이 간통한 주제에 무슨 헛소릴 해.”
“젊은 친구! 빨리 인정하는 게 좋아 어차피 조금 살 거 괘씸죄에 걸리지 말고.”
“절대 아닙니다.”
“남의 마누라하고 재미 볼 때 좋았지. 그냥 시인하고 말아 피곤한데.”
“아! 정말....“
“세상 다 그런 거야. 그런 여자보고 잠 안자고 싶은 놈이 비정상이지.”
“여자 잘 생기고 글래머던데. 자네 재주도 좋다.“
“아〜제발요.”
“일단 이거 읽어보고 지장 찍어. 남편이 있고 없고는 나중에 따지고 일단 그 여자하고 호텔을 드나들었다는 건 시인하니까.”
동수는 그들의 말대로 지장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그들은 동수를 유치장으로 들여보냈다.
동수가 경찰에 연행되어 가자 직장에선 한바탕 소동이 났다. 무슨 일로 갑자기 동수를 경찰에 데려 갔느냐들 이야기들 이었다. 그러나 퇴근시간 무렵에서야 사장과 동수간의 부적절한 관계로 인하여 동수가 경찰에 잡혀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자 모두들 일손을 놓고 회사의 앞날에 대한 걱정을 하였다.
회사를 차려 준 건 남편인지 몰라도 회사의 명의는 사장의 이름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사장이 구속이라도 된다면 회사경영에 대한 문제가 심각해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동수에 대한 동정도 많은 편이었다. 동수가 평소에 직원들에게 잘해주고 또한 궂은일은 도맡아 해왔고 누가 생각해봐도 동수가 사장에게 먼저 접근했으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관리부장도 직원들과 모여앉아서 회사에 대한 걱정과 동수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부장님! 사장님 구속되면 앞으로 회사는 어떻게 되요?“
“글쎄다. 그래도 회사 재산과 모든 게 사장 앞으로 되어 있는데 큰일이다.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중에 사장님을 만나 봐야지.”
“동수 그 사람은 어쩌다가 사장과 엮였나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네라도 사장이 만나자고 하면 안 가겠나? 누구든 얼씨구나 하고 따라 갈걸. 동수만 불쌍하게 되었지?”
“사장님 남편하고 혼인신고가 되어 있을까요?“
“있겠지. 그러니까 간통이 되지.”
“동수를 우리가 도와 줄 방법이 없나요?“
“글 세다. 생각들 해보자. 방법을 찾아보면 있을지도...”
“동수 집에 알려줘야 하겠지요.“
“그래 임 기사 네가 전화를 해줘라. 아직 모르니 간통이니 뭐니 그런 소리는 하지 말고 회사 일 땜에 그런다고 하고.”
“예! 골치 아프게 됐네.“
퇴근시간 무렵에 박씨 아줌마가 임 기사를 찾아왔다.
“임 기사! 동수 문제 어떻게 된대? 무슨 이야기 없어?”
“응! 아줌마 안 그래도 우리끼리 이야기를 했었는데 사장이 혼인신고가 되어 있나봐. 일단 집에는 내가 전화를 해 주었고 우리가 도울 방법이 없을까 생각들 해보기로 했어요.”
“우리 동수 어째. 그리 착한 사람이 어쩌다가...“
“사장 꼬임에 빠졌겠지요. 동수 씨가 그럴 사람 아닌 거 다 알잖아요.”
“경찰서 가면 면회는 시켜주나?“
“면회야 되겠지요. 안 그래도 우린 내일 가보기로 했어요.”
‘알았어. 임 기사 고마워.“
동수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유치장 안에는 동수와 데모를 하다 잡혀온 대학생 두 명, 도둑질하다 잡혀온 40대 남자 한명이 함께 갇혀 있다. 6시가 넘자 경찰관들이 저녁을 시켜 주었다. 유치장 안에서 밥을 먹으려고 하고 도저히 밥이 목구멍에 넘어가지 않는다.
자칫 잘못되면 징역형을 선고 받아 일이 년을 구치소 생활을 해야 한다고들 평소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그렇게 되면 직장은 어차피 다닐 수 없고, 가족들을 어떻게 대하며 앞으로의 인생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사장은 어떻게 되었을까? 형사들이 동수에게 들리지 않는 줄 알고 소곤거리는 소리를 귀담아 들으니 사장이 동수와 잠자리를 하지 않았다고 부인을 하였다는 데 동수 자신에게만 진술을 받으면 대질심문을 할 것이란다.‘
그래도 사장이 버티기가 힘들 거란다. 이미 그 이전에도 동수와 호텔에 들어가는 것을 목격한 증인이 있고 관련 장부도 확보해 두었단다. 오히려 버티면 더 힘들기만 하다고 이야기를 한다.
동수가 저녁밥에 숟갈도 대지 않자 담당형사가 동수를 보며 말했다.
“어이! 김동수 씨 뭐든 많이 먹어 두어야 해. 안 먹는다고 일이 해결되나? 당신이 그 여자에게 꼬였는지 몰라도 법은 법이니 할 수 없지.”
“사장님은 어떻게 되었어요?“
“그 여자 걱정하면 뭐해? 따로 조사 중이야.”
8시가 되자 연희와 장모가 면화를 왔다. 동수는 고개를 돌렸다.
“성원이 아빠! 이게 무슨 소리야? 어떻게 된 거야?“
“김 서방 도대체 이런 일이 왜 일어나?”
“........“
“이야기 해봐! 어서! 아니지? 자기 안 그랬지? 응?”
“할 말이 없다. 미안하다.“
“뭐라고? 다시 말해봐! 사실이란 말이야?”
“김 서방! 설마 자네가...아이 구야. 어쩌다 이런 일이...“
“앞으로 이일을 어떡해 아이 구. 자기가 이런 줄은 꿈에도...”
“미안 합니다 장모님! 할말이...“
“어쩌다. 우리 집안이...아이 구 창피해서 어찌 사노.”
“자기가 사장한테 끌려 다닌 줄은 이해하겠는 데. 이게 무슨...“
“........”
“뭐라고 말 좀 해봐라. 앞으로 어찌해야 될 런지...“
“그냥 어머니 모시고 가라. 벌 받을 짓 했으니 벌 받아야지.”
“벌 받는 게 대수야? 앞으로 애는 어떡하고?“
“못난 놈 자식이라고 손가락질 받겠지.”
“그게 할 소리야.“
드디어 연희는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그러한 광경을 옆에서 보던 장모도 눈물을 글썽거리고 멋모르는 성원이도 엄마의 모습을 보고 울음을 터뜨린다.
유치장 안은 순식간에 울음바다가 되었다. 담당경찰관이 달려와 만류 하였다. 동수는 경찰관에게 가족들을 집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 후에도 한동안 철창을 잡고 흐느끼던 연희는 내일 다시 오겠노라며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연희는 관리부장에게 전화를 하여 회사근처 다방에서 만났다.
‘부장님! 얼굴을 들지도 못하겠는데도 바쁘신데 시간까지 뺏어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갑자기 우리 김 대리가 그렇게 되어서.”
“저는 애기 아빠가 회사에서 일을 잘하고 집에 늦게 올 때도 회사일로 그런가 했더니...”
“김 대리가 회사일 태만하고 그런 적은 없어요. 그런데 우리도 몰랐었는데 어떻게 사장에게 엮어가지고는...”
“둘이 사귄지 오래 되었답니까?“
“아니오. 잘 모르긴 해도 그리 오래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어쩌다 저렇게 된 건지...“
“사장이 남편이 있어도 세컨드인줄 알았는데...이 전에도 다른 남자와 사귀는 것 같았는데. 설마 김 대리에게 손을 뻗칠 줄.”
“남편은 어디 사나요. 제가 만나 보아도 될 런지요?“
“아마 안 만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어디 사는지도 모르지만.”
“앞으로 집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무래도 저쪽 남자가 안 풀어주면 검찰을 거쳐 법원까지 가야하는 데 형을 낮추려면 변호사를 사야 할 겁니다.“
“형을 살면 얼마나?“
“잘 모르긴 해도 보통 1〜2년은 산다고 하데요?”
“일이년씩이나요?“
“그래서 변호사를 사서 형량을 낮추어야 한다는 겁니다.”
“변호사 비용은 얼마나?“
“그건 잘 모르겠는데 크게 많이 들지는 않을 겁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자료도 필요하고.”
“저희는 이런 일이 처음이라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나중에 생각해 보시고 변호사가 아는 데 없으면 제가 한번 알아 봐 드릴게요.”
“고맙습니다.
“참 그리고 나중에 우리직원들도 탄원서라도 한번 내어보자고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부장님! 감사합니다.“
“김 대리 그 사람 사장한테 어쩌지 못해서 그런 거니까 이해를 잘 해 주세요. 사장이 가자는 데 안 갈수 있나요.”
“예! 알겠습니다.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요. 마음 단단히 가지고 기다리세요.”
동수에 대한 조사는 다음 날에도 계속되었지만 동수가 사장과 별장과 호텔을 드나들었다는 사실은 이미 인정한 상태여서 크게 조사를 할 것은 없는 눈치였다. 다만 동수가 사장의 남편이 없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 조사를 더 해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
오후가 되자 연희가 면회를 왔다. 속옷가지와 먹을 것을 싸 가지고 왔다.
“자기야 미안하다. 이런 꼴을 보여서...“
“업어진 물 지금 와서 그런 소리 하면 뭐 해.”
“회사 사람들이 뭐라고 하던데?“
“그 사람들이 무슨 필요 있어. 부장님만 만나고 왔지.”
“부장님이 뭐래?“
“변호사 사야한다고 하데 뭐. 그 사장여자는 어디 있는 데?”
‘모르겠다. 모른 체 해라.“
“모른 체 하기는 실컷 욕이라도 해주고 싶다. 사람을 이 모양으로 만들어 놓고...얼마나 반반하게 생겼는지...”
“이제 와서 그러면 뭐 하니. 싸울 것이 아니라 말이나 서로 잘해주어야지. 그래야 형량이라도 줄지.”
“이래가지고 나중에 어쩔 건데?“
“지금 내가 나중 일 생각하게 되었나.”
“다들 미쳤지 미쳤어.“
“미안하지만 변호사나 알아 봐주고 이런데 자주 오지마라.”
“누군 오고 싶어 오나? 몸조리나 잘 해라.“
“그래 미안 하다. 자주 오지마라. 나도 네 보기 미안해서 그런다.”
“알았다. 그래도 일이 잇을 땐 와야지.“
“그래. 성원이나 잘 키워라.”
연희는 울먹이며 돌아갔다. 동수는 지금껏 자신이 세상을 헛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보 같이 남들이 시키는 짓거리만 하고 살아 왔는데 이건 또 무슨 꼴이란 말인가? 그러나 이제 와서 후회해 본들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동수는 별다른 조사도 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박씨 아줌마가 면회를 왔다. 눈물을 글썽이며 동수의 손을 잡는다. 옆에 있던 경찰관이 슬며시 자리를 피해 주었다.
“동수야! 네가 어쩌다가 그 사장인가 뭔가 하는 여자에게 꼬여서...“
“면목 없다. 이런 꼴 보여서...”
“네가 뭐 잘못한 거 있나. 사장이 부르면 가야지.“
“어째든 내 잘못인데 뭘...”
‘밥은 잘 먹고 있나?“
“응! 걱정하지 마! 고마워.”
“차라리 나하고 그랬으면 이런 일은 안 생기지.“
“내가 안 그래도 사장 때문에 미안해서 누님하고 같이 잠자리를 안 했다. 정말 미안하다.”
“괜찮다. 그 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이 많았을까. 억지로 따라 다닌다고,”
“다 내 잘못이다. 내가 거부를 못해서 그런걸 뭐.”
“사장한테 거부를 할 수 있나. 사장이 나쁜 년이지.“
“내 한 이년쯤 있다가 나가면 누님도 몰라보겠네.”
“이 상황에 그런 소리가 나오나? 어째든 빨리 나와야지. 그리고 내가 왜 너를 몰라 봐. 나는 너 못 잊는다.”
“너무 그러지 마. 안 그래도 미안한 데.“
“진짜다. 난 항상 기다리고 있을게.”
“고마워 누님!“
“나중에 회사 사람들 올 건가 보더라.”
“아니 창피스럽게 어딜 와!“
“그래도 얼굴은 봐야지. 담담하게 생각해라.”
“알았어. 이젠 가봐.“
“다음에 또 올게.”
“그래 고마워.“
박씨 아줌마가 다녀가자 얼마지 않아 회사 직원들이 왔다. 관리부장, 생산부장과 임 기사 그리고 서 씨가 왔다. 다른 사람들도 오려고 하였지만 너무 많이 오면 곤란해서 관리부장이 통제를 하였단다.
담당경찰관은 면회를 자주 오면 안 된다고 하면서 내일 오전․오후 한차례씩만 허용한다고 짜증을 내면서도 허락을 해주었다. 동수는 고개를 숙이고 외면을 한다.
“동수야! 미안해 할 것 없다. 사장이 가자는 데 안 갈수 있나?”
“그래요! 어째든 빨리 나오도록 노력 하이소 형님!“
“면목이 없습니다. 부장님!”
“괜찮대도. 할 소린 아니지만 사장이 그래도 네가 좋았던가 보다.“
“몰라요. 어쩌다 여자한테...”
“일단 시간이 걸릴 거니까 몸 관리 잘하고 그리고 우리가 뭐 도와줄 거 없나?”
“부장님! 여기 안에 있는 대학생들 이야기 들으니까 자기들도 법대생이라면서 제가 사장님 남편이 있는 것을 몰랐다고 하니까 그걸 이야기 하면 재판에서 유리할 거라고 하던데요.”
“그래? 그렇겠지. 알고 하는 것하고, 모르고 하는 건 차이가 있으니까.”
“그렇겠지요.“
“부장님! 동수형님이나 우리도 사장의 남편이 법적으로 부부인지 몰랐잖아요. 그리고 같이 살지도 않고.”
“그렇지. 우리도 사장이 세컨드인줄 알고 있었으니까 그 이야기를 증언해 주면 되겠네.”
“싶지는 않을 거래요. 물적 증거가 없으니까.“
“너는 사장한테서 그런 소릴 안 들었나?”
“저도 듣긴 했는데 인정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일단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해 봐야지.”
“고맙습니다. 부장님! 그리고 여러분들.“
“하여간 이런 일은 어차피 재판까지 가야 하니까 참고 기다리면서 최선을 다해야 된다.”
“회사일은 어떻게 됩니까?“
“안 그래도 회사일이 큰일이다. 이게 빨리 안 끝나면. 온 김에 사장도 좀 만나고 가야겠다.”
‘만나려고 하겠어요.“
“안 그렇다. 저런 여자들은 우리들보다 훨씬 통도 크고 뻔뻔스럽기도 한기다.”
“부장님이 고생이 많으시네요.“
“동수야!”
“예!”
부장은 경찰관이 눈치를 못 채게 동수더러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하면서 귓속말로 속삭인다.
“그리고 너 사장하고 어디 드나든 건 알면 할 수 없고 성관계를 했다는 소리는 절대하면 안 된다. 알았나?”
“안 그래도 그걸 집중적으로 묻는데 버티기도 힘들어요.”
“그래도 그게 마지막 보루다. 명심해라.“
“예! 부장님!”
“거기 무슨 말을 주고받아요. 크게 말해요.“
담당 경찰관이 동수와 부장이 귓속말을 주고받는 광경을 보고 제지하고 나섰다.
“아닙니다. 별 것도.”
부장과 직원들이 돌아갔다. 또 한 차례의 심문이 있었다. 사장과 통정을 하였다고 자백을 하라는 것이었다. 동수는 사장과 나이차이도 많이 나고 평소 회사에서도 사장 심부름을 많이 다니고 해서 사장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아무데서나 자신을 스스럼없이 대한다고 하였다.
다음 날 연희에도 연희는 다녀갔었고, 또 하루가 흘러갔다.
나흘째 되는 사장이 서둘러 변호사를 선임했는지 나흘째 되는 날에 연희와 경찰서로 접견을 왔다. 연희는 자기 측에서 변호사를 선임 한 것은 아니고 사장 측에서 아는 변호사를 선임 자신에게 연락이 왔더라는 것 이었다. 그리고 재판에 드는 비용은 사장이 모두 부담하겠으니 변호사가 하자는 대론만 해 달라는 것이었다.
변호사는 사장과 호텔과 별장을 드나든 사실은 인정을 하였으니 하는 수 없고 통정을 하였다는 사실에 대하여 경찰이나 검찰에서 진술을 강요하면 어정쩡하게 답변을 하고 다음에 법원에 가서는 자기가 시키는 대로 진술을 하면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동수가 자신은 사장에게 남편이 몰랐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증인을 세우려고 한다고 이야기하자 그러면 결국은 통정을 하였다는 것을 인정하는 결과가 되므로 그 것은 오히려 불리하다고 하면서 그 말은 절대로 하여서는 아니 되고 회사의 관리부장을 자기가 만나 보아야 하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동수는 경찰관의 끈질긴 요구에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게 조서를 꾸미라고 이야기를 하고 지장을 찍어주고 말았다.
사장 측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니 사장은 끝까지 통정사실을 부인하고 있어 동수와 대질심문을 하려고 하였으나 그녀가 완강하게 거부하여 대질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김동수 씨 내일이면 검찰에 송치되는데 그기에 가서 다른 말 하면 안 되요. 그러면 자꾸 시간만 더 걸리니까. 알았어요.”
“예 에...“
“우리도 감정이 있어 그런 게 아니고 밥 먹고 살려니까 하는 수 없다는 걸 이해해주고.”
“......“
저녁때쯤 박씨 아줌마가 또 면회를 왔다. 동수는 웃는 낯으로 그녀를 맞이했다.
“바쁜데 뭐 하려 또 와.”
“그래도 와 봐야지.“
“회사는? 조퇴했어?”
“응! 괜찮아. 잠은 잘 자?“
“응! 마음이 편해져. 내일은 아마 검찰로 넘어갈 거야.”
“그런 게 또 있어?“
“절차가 그래. 검찰에 갔다가 구치소로 가서 법원에서 재판을 받거든.‘
“뭐가 복잡하네.“
“내 나가면 누님하고 술 실컷 한번 먹어야지.”
“제발 그러자. 기다리고 있을게.“
그녀는 자꾸만 아쉬운 마음이 드는지 동수의 손을 붙잡고 놓지 않는다. 동수는 이런 마음이 따뜻한 여인이 자신 가까이 있다는 것을 행복하게 여겨졌다.
다음 날 아침 동수는 검찰청으로 넘겨졌다. 수갑을 찬 자신의 모습이 매우 처량하게 느껴졌다.
검찰에서의 분위기는 경찰서보다는 썰렁했다. 아무래도 범죄의 정도가 중하고 경찰서를 거쳐 온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 그런지도 몰랐다. 이곳으로 이송되어 오자 연희가 면회를 왔다. 회사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기로 하였다는 소식도 있었고, 사장 측에서 동수에게 미안하다는 이야기와 함께 재판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용기를 잃지 말자는 이야기도 전해 왔었단다.
여기에서도 경찰에서 진술한 내용에 대한 확인절차가 이어졌다. 동수에게 왜 사장과 통정을 하였다는 확실한 답변을 하지 않았느냐며 다그친다. 그래서 동수는 앵무새처럼 경찰에서 이야기 한 대로 그렇게 진술을 하였다. 그랬더니 검찰직원은 동수를 얼렀다가 달랬다가 하며 명확한 답변을 요구했다.
이튿날 오후 동수는 담당검사실로 불려갔다. 그 곳에는 사장이 와 있는 것이 아닌가. 동수는 목례를 하고 검사 앞에 앉았다. 그녀의 얼굴은 다소 창백했으나 눈동자는 빛나고 있었다. 따로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규칙에 따라 검사의 질문에만 답하라는 것이었다.
“김동수 씨 여기 이 여자분. 회사 사장과 동침한 사실이 있지요?“
“......”
“김동수 씨 대답하세요.”
“사장님과는 회사 안에서나 밖에서도 그냥 업무적으로만 만났습니다.”
“시내 서면과 남포동의 호텔에서 그리고 이달 초엔 김해에 있는 사장의 별장에서 같이 잠자리를 하지 않았어요? 뒤따라가 확인하고 사진을 찍은 것이 있는데.”
“호텔에서 같이 술을 같이 먹고, 김해의 별장에 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장님께서 업무에 대한 지시를 하시거나 술이 취하셔서 댁에 바라다 드리기 위해서 간 것뿐 그 이상의 행동은 있을 수 없습니다.”
“묵비권도 좋긴 한데 그러나 거짓말 하면 중벌을 받는 건 알고 있습니까? 다시 묻겠습니다. 잠자리 같이 한적 있습니까? 말씀하세요.”
“호텔과 별장엔 같이 가도 그 이상은 아무런 일도 없었습니다.“
“그럼 강미선 씨에게 남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까?”
“회사는 사장님이 직접 경영 하셨고, 저는 사장님께 남편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내용은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김동수 씨! 여긴 검찰청입니다. 알아요?“
“........”
“ 말을 안 하겠다? 다시 묻습니다. 통정을 했지요?”
“그런 일 없습니다.“
“이 양반이...좀 더 조사를 해야 알겠어요?”
“.......“
“나 원 참! 요즘 세상이 좋아져서...그럼 강미선 씨가 먼저 호텔로 오라고 그랬습니까?”
“예!“
“확인 된 기록에 의하면 두 사람이 호텔 방안에서 한 시간 가량정도, 별장에서는 세 시간 이상 같이 있었다고 되어 있는데 그 시간에 무엇을 했어요?”
“주로 사장님이 술을 취해서 같이 마시도록 권해서 마시거나 많이 취했으니 댁으로 가시자고 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그래서 술만 마시고 아무 짓도 안했다. 그게 남녀 간에 말이 된다고 하세요?”
“사장님과 절대로 저 사이엔 이루어 질 수 없는 일입니다.“
“공부 많이 했네요. 누가 그렇게 시켰어요?”
“시킨 것 아닙니다.“
“도저히 안 되겠네. 좀 더 조사를 받아야지.”
담당 검사는 험악한 눈초리로 분한 듯 노려보며 사장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강미선 씨! 강미선 씨는 남편과 한집에서 안 살지요?“
“예!”
“강미선 씨는 예전에도 다른 남자를 사귀었지요?“
“근거가 있어요? 근거 없는 말 하지 말아 주세요.”
“그 남자가 헤어지자고 해서 화풀이로 김동수 씨를 만났나요?“
“말씀 삼가 주세요.”
“아니 남편께서 전번에도 다른 남자를 사귀다가 들키고, 이번에도 김동수 씨랑 호텔을 드나드는 걸 확인하고 고소를 하였는데도 계속해서 부인만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까?”
“아니 건 아닙니다.“
“두 사람이 말을 맞추었어요?”
“아닙니다. 그런 일 없습니다.“
“검사님! 자백을 강요하지 마세요.”
“뭐요? 강미선 씨! 뭐라고요?“
“증거를 내 놓으셔야지...무조건 우리가 호텔에, 별장에 같이 있었다는 사실만 가지고 정을 통했다고 말씀하시잖아요.”
“아니 모든 정황이 그러니까. 묻는 것이지 않습니까? 일은 저지르기는 했는데 물증을 가져와라. 참 고단수시네...“’
“그래도 여기 이사람 세상물정 잘 몰라요. 그리고 저도 연약한 여자입니다. 증거를 가지고 이야기 하십시오. 어차피 법원에서 또 이야기를 할 텐데 무조건 진술만 가지고 인정이 안 되잖아요.”
옆에서 듣고 있는 동수는 사장이 여자이긴 하지만 관리부장의 말처럼 여간내기가 아니고 똑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자기가 통정사실을 진술을 안 한 것이 정말 큰 다행이라고 여겨졌다.
“그럼 두 사람 다 경찰서에서 진술한 내용에 변함이 없다는 말입니까?”
“예!“
“강미선 씨는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어느 한사람 억지 자백을 한다고 안 한걸 했다고 인정 할 수는 없으니까 대질 심문이나 보충자백을 강요하는 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강미선 씨! 많이 배워서 그런지 똑 부러지네요. 그런데 이번 사건은 마음먹은 대로 잘 안 될 걸요. 그리고 이래봐야 시간만 더 걸리고 그러다 보면 고통만 더 해 질 겁니다. 명심하세요.”
동수는 사장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였다. 서로가 최선을 다하여 좋은 결과를 얻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회사의 직원들과 박씨 아줌마가 한 차례 면회를 다녀갔다.
동수는 이젠 마음이 홀 가분 하였다. 주변에서 모두가 도움을 주려하고 있고 자신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면 그 결과에 승복하고 죄 값를 치루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사장의 검사와의 대질심문에서 보여준 태도 때문인지 그 이후로는 별다른 조사를 받지 않았다. 연희는 매일 면회를 왔고, 박씨 아줌마가 두 차례 더 면회를 다녀갔다.
동수가 검찰청으로 온지 일주일 만에 부산교도소로 넘겨졌다. 그 곳에서 기다리다 재판을 받게 되는 것이었다.
동수의 교도소 생활은 시작되었다. 이곳은 면회도 자유롭지 못하였고 생활자체도 엄격하게 통제된 사회였다. 일반적으로 면회는 형을 받기 전에는 매일 한번, 형이 확정되면 월 네 번의 면회기간이 주어지나 교도소에 따라 미결수에 대한 면회를 대폭 제한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동수는 연희에게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면회를 다녀가라고 이야기 하였다. 동수는 그러한 교도소 생활 속에서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나름대로는 열심히 살아가려고 노력하였지만 뚜fut한 삶의 목표도 없이 살아온 것 같았다.
그저 남의 예속 하에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다르게 살아 온 것이다. 물론 가진 것이 없는 그로서는 달리 선택의 폭도 없는 편이지만 그래도 왠지 살아가면서 무엇인가를 생각은 하여야 할 것 같았다.
한 달이 넘는 교도소 생활이 계속되자 동수는 갑자기 살아 온 인생에 대한 회의를 가지기 시작했다. 일 년 내내 힘들게 노력을 해서 얻는 것이란 겨우 겨우 살아갈 수 있는 정도의 경제적 여유뿐인 것이었다.
동수는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미결수들을 볼 때 하나같이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세상을 방황하다 구렁텅이에 빠져 들어 왔거나, 억울한 누명을 쓰고 들어 온 사람들 이었다. 동수는 자기 방에서는 나이도 적은 편에 속하고 또한 죄명이 간통으로 알려지면서 다른 재소자들에게 놀림감이 되고 있었다.
“자식 대단하네 사장에게 붙어먹다니.“
“야! 너희 사장 예쁘냐? 어떻게 꼬기었니?”
“그런 거 아닙니다.“
“아니 긴 임 마! 재미보다 남편에게 들통 나고선.”
“사장이 너보다 나이가 훨씬 많을 거 아냐.“
“그 여자가 싱싱한 애한 테 반했나. 그러냐?”
동수는 심심하면 자신을 놀려대는 방안 사람들의 이야기에 이젠 대꾸를 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말을 하지 않으면 않는다고 괴롭히기 시작했다.
빨리 재판이라도 받아서 어떤 결과든 감당하고 싶었지만 보통의 경우 재판이 시작 되려면 삼사 개월이 걸린다고 하며 어떤 경우에는 그 보다 더 긴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었다.
교도소 미결수 생활이란 것은 기결수에 비하여 정말 하루하루가 피를 말리는 시간이었다. 사람에 따라서 견해가 다르다고 할 수는 있지만 막상 기결수는 이미 재판을 받아 자신의 형량을 알고 있어 하루하루를 보내며 출소 일을 기다리고 있지만 미결수는 아직 재판이 끝나지 않은 상태라 과연 자신이 재판에 어떻게 임하며, 또한 재판결과는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으로 잠을 제대로 못 이루면서 가슴 설레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미결수 중에서도 전과자가 있는 경우에는 자신이 이미 재판과정과 교도소 생활을 해 보았기 때문에 동수와 같은 초범자들에겐 선생님으로 통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경찰이나 검찰에서 조사를 받고 진술한 내용 중 자신에게 불리한 부분은 재판과정에서 진술을 달리하거나 불리한 경우에는 묵비권을 행사해서 재판을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방법에 대하여도 자랑스럽게 이야기들을 해댄다.
그들은 동수에게는 추잡한 범죄인이라고 놀려댔다. 자신들처럼 돈이 없거나 원한이 사무쳐 하는 수 없이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고 여자와 놀아나서 잡혀 온 동수 같은 사람들은 소위 배부른 범죄자로서 자신들과 같이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쾌하단다.
그러면서도 동수에게는 사장과 사귀게 된 동기며, 호텔에 드나들며 여자를 대하던 때의 정황을 자세하게 묻기도 하는 등 호기심을 기우리고 한편으로 동수가 그래도 자기회사의 사장과 놀아나는 재주는 좋은 놈이라고 치켜 올리기도 한다.
교도소에 입소한지 두 달이 지났다.
사장 측 변호사도 동수에게 면회를 신청하여 사건에 대한 논의를 하였다. 사장도 동수에 대한 배려를 하고 있으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모든 것을 정리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겠다고 다짐을 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동수 측에서도 당당하게 재판에 임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사장 측에서 집안이 좋고 법조계에 아는 사람이 많아 배경을 동원해서인지 재판이 많이 앞당겨진단다. 동수는 재판예정일 일주일 전에 변호사로부터 재판에서 행하여질 순서와 진술에 대한 접견을 받았다.
변호사는 자신이 사장 측의 변호사와 힘을 합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그녀의 남편의 입김이 세어서 검사와 판사들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동수는 어떠한 경우든 결과에 승복할 것이라고 하였다.
변호사는 회사직원들이 동수는 물론 직원들이 사장의 남편이 있는 것을 몰랐다는 내용이 포함된 탄원서를 작성하여 변호사에게 주었으며, 재판에는 한 두 명 정도가 증인으로 참석하고 그리고 동수가 메모를 해두었던 비망록은 미리 재판부에 제출하여 필적감정을 받아 두었다고 한다.
재판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동수는 요즘 밤잠을 제대로 못 이루고 있다. 실형을 확정 받아 징역을 살게 될 것인지? 무죄가 되거나 집행유예를 받아 나갈 수 잇을 것인지도 머리에 맴돌지만 더욱더 자신을 괴롭히는 것은 출소 후에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어떻게 감당 할 수 있을 것인가 이었다.
재판을 하루 앞두고 연희가 면회를 왔다. 동수의 변하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더한다.
“면회 자주 오지 말라고 했잖아?“
“왜 그래 정말?”
“나 어차피 죄 지은 게 많은 사람이야. 죄 지은 대로 벌 받아야지.“
“남들도 다 사장 때문에 하는 수 없이 그랬다고들 그러는 데 왜 혼자만 자책하는 거야?”
“마음이 안 편해. 그냥 죄 값 치르고 싶어.“
“제발 그러지 마! 다른 사람들도 도우려고 힘쓰는 데 정작 본인이 이러는 걸 알면 얼마나 실망 하겠어.”
“도움도 다 싫어 이젠.“
“자기야! 제발 이러지 마! 우리 성원일 봐서라도.”
“애는 네가 알아서 잘 키워. 미안하다.“
“아〜정말 이럴 어떡해?”
“이젠 가봐. 내 걱정 조금도 하지 말고.“
“갈게. 다른 생각 절대 하지 말고 변호사님 시키는 대로 해.”
“알아 할 테니 가 봐.“
연희는 가슴속이 답답하게 꽉 막히는 느낌을 안고 면회소를 나왔다. 정작 피해자는 자신이건만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집에 가는 길에 변호사 사무실에다 들러 이야기라도 듣고 싶었다.
연희를 보낸 동수는 잠이 제대로 오질 않았다. 말이야 그렇게 했지만 하루라도 빨리 이곳을 빠져 나갔으면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 매우 안타까웠다.
드디어 재판 날이 되었다. 동수는 아침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재판장에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무죄이거나 범죄의 정도가 가볍다는 것을 입증하는 모든 행위들이 어쩌면 가증스럽고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장과 자신이 통정한 사실자체를 부인해야 하거나 통정 사실이 입증되더라도 그녀의 남편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였다는 주장을 해야 하는 것이다.
열시가 넘어 교도관을 따라 재판정에 들어섰다.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홀 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검사와 변호사, 그리고 방청석을 보니 동수의 가족과 관리부장을 비롯한 직장동료 서너면, 사장의 친정 측 가족과 남편 측 몇몇 사람들. 그리고 이반 방청객 수명 정도. 전체적으로 이십 여명 정도의 사람들 앉아있다.
잠시 후 법원 경위가 전체 기립을 하게하고 판사가 들어 왔다. 재판정은 동수가 생각했던 것처럼 엄숙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순서에 따라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먼저 재판관에 의한 국민의례 그리고 사장과 동수에 대한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직업 사항들을 묻는 인정신문이 끝났다.
다음으로 검사의 주 심문으로 회사의 사장인 강미선과 직원인 강동수가 각각 법적인 혼인관계를 유지 배우자가 있으면서 회사 일을 처리한다는 명분으로 지난 수개월에 걸쳐 서면과 남포동의 호텔은 물론 사장소유의 김해에 소재하고 있는 별장에서 부적절한 통정을 하여왔으므로 부부관계를 통한 화목한 가정을 유지하기위하여 법을 위반하였다는 것이다.
검사는 사장과 동수에 대한 심문을 시작하였다. 먼저 사장에게 법적으로 남편과의 호적 내 부부관계임을 이야기 한 뒤 상대방인 직원 김동수를 알게 된 동기와 같이 동침을 한 시기와 장소에 대하여 관련 숙박부와 목격자를 제시하며 인정하라고 다그쳤고, 동수에게도 사장과의 동침을 한 사실에 대하여 인정을 하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하여 사장은 원론적인 답변으로 동수를 가까이 하는 것은 회사 내엔 남지직원이 적어 동수가 처리해야 할 업무가 많고, 특히 노사관계 등에 있어서 동수에게 업무를 맡겨야 하기 때문에 특별히 동수에게 지시할 내용이 많으며, 동수와는 나이 차이도 열 여듭이나 나기 때문에 남녀 관계라는 인식이 들지 않아 호텔에서 술도 마시게 되었고, 별장에서도 이야기를 나누고 술을 마시는 정도로 생활해 온 것이라고 하였다.
동수에 대한 질문에서도 동수는 미리 변호사와 의논한 내용대로 사장의 답변 논리에 가깝게 답변을 하였고, 경찰이나 검찰에서 통정사실을 직접 시인한 것은 아니었지만 적절하게 처리하라고 진술하였던 부분에 대해서는 그 조사과정이 힘들고 자신으로서는 진실을 주장해도 신뢰를 하지 않아 답변하였던 것이라고 하였다.
두 사람의 진술에 대하여 검사는 두 사람이 호텔과 별장을 드나드는 사진, 호텔의 숙박부 및 계산서 및 미행을 한 목격자의 진술 등을 제시하며 사실을 시인하라고 압박했다.
이에 대하여 변호사는 사장과 동수의 진술을 인용하면서 검찰에서 두 사람이 함께 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백을 강요하고 재판장에서 사실을 인정하라고 하는 것은 검찰이 증거를 제시하지 아니하고 심리적 압박을 통해서 사건을 해결하려는 것이라고 반박하며 회사직원들이 평소 회사에서도 동수가 맡은 업무를 사장이 직접 챙기고 지시를 하였으며 동수는 모범직원으로서 회사의 갖은 힘든 일을 도맡아 해 왔을 뿐만 아니라 다른 직원들이 회식자리에서 술이 취하거나 어려움을 격을 때에서 끝까지 뒤처리를 해주어 오고 있어 사장과의 사이에서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루어 진 일이라고 판단할 수 있으니 검찰의 주장은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변론을 했다.
재판관은 서로의 주장이 상반되고 충분한 증거가 없으니 판정을 다음 달로 순연하니 다음 재판에서는 검찰 측의 통정사실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와 증인출석과 피의자 측에서도 혐의사실을 부인 할 수 있는 증거와 증인을 채택할 것을 요구하고 심리를 마치었다.
동수는 재판이 진행되면서도 가끔은 고개를 뒤로 돌려 연희와 장모님, 그리고 직원들을 보기도 했고, 옆에 앉은 사장에게도 목례를 하기도 하였다. 사장이나 동수가 잠자리를 같이 하였다는 자백만 하지 않으면 극단적인 면에서는 재판부에서 간통사실을 전면적으로 판정하지는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모든 정황으로 미루어 간통을 하지 않았겠느냐는 결론에 이르게 되면 명백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 했더라도 재판부에서 간통으로 판정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었다.
심리가 끝나자 동수와 사장은 교도관을 따라 호송을 위해 기다리고 있는 차량으로 이동하였고, 이를 지켜보는 가족들과 지인들의 가슴은 아팠다.
법원을 다녀 온 다음 날 오전 담당검찰관이 동수에 대한 보강조사를 한다고 호출 했다. 어차피 사장과의 통정사실은 유죄가 확정될 것이 명확한 일이니 자신들이 볼 때는 동수가 사장의 꼬임에 빠져들어 사건이 발생된 것으로 여겨지니 사장과의 통정사실을 시인하고 그 대신 사장에게 남편이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하면 동수로서는 죄가 가벼워 질 것이라고 자백을 종용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사장의 남편이 간통죄로 두 사람을 고소한 것은 자기 부인인 사장의 평소 행위가 미워서 한 것이기 때문에 동수는 사장에게 희생된 일이라고 하면 사장의 남편이나 재판부에서도 그렇게 인정을 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동수는 대답을 회피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는 처음에 자신이 생각해 보았던 것이지만 어째든 통정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죄를 인정하는 것이고, 사장 남편에 관한 사실을 논하게 되면 만약 재판부에서 그에 상응하는 증거를 요구하면 또 다른 문제를 가져오는 일일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럴 경우 사장은 꼼짝 없이 형을 받아야 하고 그럴 경우 동수에게도 유리한 부분이 없을 것 같았다.
그날 오후 변호사가 동수를 찾아 왔다. 일단은 법원에서 진술한대로 계속해서 주장을 하는 것이 서로에게 유리하다고 하면서 동수가 검찰에서 말한 것을 이야기하자 그렇게 하면 매우 사건이 동수에게도 불리해지니 그들의 꼬임에 절대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연희가 면회를 왔다. 동수가 면회를 자주 오지 못하게 하니 눈치를 보면서도 그래도 하루빨리 석방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동수는 그러한 연희에게 미안 했지만 앞으로 전개될 상황을 생각해서 일부러 퉁명하게 그녀를 대했다.
“변호사님이 다녀갔다 면서 뭐래?”
“별일 아니니 신경 쓰지 마라.“
“왜 신경을 안 써? 내가 남이야?”
“가만있으면 알아서 처리되니까 하는 말이야.“
“자기 정말 갈수록 이상해져.”
“이상하긴 뭐가?“
“자꾸 짜증을 내니까 그렇지.”
“그냥 조용히 있고 싶어 그래. 내가 죄인인데 뭐랄 수 있나.“
“자학하지 마!”
“모든 게 귀찮아져. 사는 것도...“
“큰일이다. 이래 가지고.‘
“미안하다. 내가...“
연희는 동수에게 제대로 대화도 나누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남편이 고개를 쳐든다면 화라도 내주고 싶지만 스스로를 자학하면서 대화를 기피하는 그를 볼 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갑갑하여 집에 가는 길에 변호사 사무실에 들렀다. 변호사는 없었고 사무장에게 동수의 상태를 걱정했더니 아마도 교도소 생활에 적응을 잘 못해서 심리적인 변화가 오는 것 같으나 크게 걱정을 하지 말고 재판결과를 기다리라고 말한다.
동수의 생활은 거의 매일 같은 사건의 연속이다. 일어나서 밥 먹고 벽쳐다보고...동료들과 대화 하고, 그리고 밥 먹고...자고.
교도소 안은 매우 무덥다. 바야흐로 계절은 한 여름에서 초가을로 넘어가고 있다. 담장 밖의 나무에선 매미소리가 남의 심정도 모르고 시원스럽게만 들려온다.
지금쯤 밖에 있으면 더위를 피해 근교의 물가에서 피서를 하기도 하고 밤이면 돌아가는 선풍기 앞에서 수박을 먹고 있을 것이다. 다가오는 공판기일이 왜 그리도 지겹게 느껴지는 지...
아침 일찍 법원에 갈 준비를 하고 교도관의 인솔로 버스에 올랐다. 사장도 동수와 같은 버스를 탔다. 동수는 사장에게 목례를 했다. 그녀도 웃으면서 동수에게 목례를 하였다.
법정에 들어섰다. 오늘로서 심리를 끝마쳐야 할 텐데 아니면 자꾸만 심리만 계속되면 큰일이었다.
검사는 사장의 남편이 고용한 사람을 증인으로 내세워 사장과 동수의 행적에 대한 사항을 진술하였다. 그러나 사장과 동수는 그러한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부인했다. 변호인 측에서는 그동안 동수가 직원들의 뒷바라지를 했던 것을 들어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변호했다.
기일을 더 늦추어 보아야 쌍방 간 더 이상의 충분한 증거나 증인 확보가 어렵다는 것은 판단한 재판부는 검사의 구형과 변론 종결을 요구했다.
검사는 두 사람이 각각 혼인 관계의 배우자가 있는 사람들로서 회사의 사장과 직원으로서의 집무수행을 이유로 관련 자료인 사진 및 숙박부, 목격자의 증언내용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시내의 호텔과 김해에 소재하고 있는 사장 소유 별장에서 장시간 체류함으로서 통정을 한 정황이 충분하니 형법 제241조 제1항에 의거 배우자 있는 자가 간통을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한 사실의 법률규정에 따라 피의자 강미선과 김동수에게 각각 징역 2년씩을 구형 한다고 하였다.
이어서 피고인 최 후 변론에서 사장과 동수는 두 사람이 호텔과 별장을 드나든 것은 인정하는 사실이지만 그 것은 단순한 직무상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의 사회적 지위나 나이차이 등을 고려할 때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남녀가 한 곳에 머무른다는 단순한 사실을 들어 통정을 하였을 것이라고 하는 판단은 그 또한 사람의 인격을 무시하는 일로서 검찰 측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처사이니 선처를 바란다고 재판부에
이야기를 하였다.
재판장은 양측의 주장이 팽팽하고 통정에 대한 결정적인 물증은 없으나 사회통념 등을 고려하여 판단할 것이니 다음 최종 공판 일을 정하고는 재판을 종료했다.
동수는 가족들과 참서한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목례를 하고 교도관을 따라 버스에 올랐다. 옆을 스쳐가는 사장을 보니 입술을 깨물고 생각에 잠긴 듯 했다.
무의미한 인고의 세월. 그래도 시간은 흘러갔다. 검찰에서는 두어 차례 더 동수에게 보강조사를 하였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편에서도 변호사가 있기 때문에 그들로서도 마음대로 할 수는 없었다.
연희를 제외하면 박씨 아줌마가 면회를 제일 자주 온다. 그녀는 진정으로 동수를 위하고 있었다. 같이 잠자리를 한 적도 없건만 동수에게는 지극정성을 다하는 듯하였다.
“누님! 바쁜데 뭐하려 와?”
“안 보면 내가 더 갑갑한 데 걱정하지 마라.“
“요즘 회사는 잘 되어가나?”
“잘 되어 갈 리가 있나? 아무리 관리부장이 신경을 쓴다지만 그래도 결정권이 없는 데 뭐.”
“회사도 큰일이네. 사장이 빨리 나가야 할 텐데.“
“사장이 나와도 자기가 직접 회사운영을 하겠나? 남들이 부끄러워서.”
“글 세. 그것도 걱정이구나.“
“동수 넌 어쩔래?”
“나야 뭐 회사는 못 다니고 포장마차나 할까봐.“
“나랑 같이 할까?”
“그러든지.“
“사장이 나오면 너하고 무슨 이야기가 없을까?”
“나 하고 무슨? 나하고 살림이라도 차리게?“
“아니 뭔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아서.”
“아니야! 친정에서 가만 안 둘 것 같아. 친정이 쟁쟁하더라고.“
“그래? 그럼 회사는 친정에서 경영 하겠다. 그지?”
“글 세.“
“그러나 저러나 애기 엄마가 고생이 많겠다.”
“그렇긴 하지만. 남편 잘 못 만난 탓이지.“
“나 나가면 누님이랑 살아버릴까?”
“마누라는 어떡하고...나야 좋지만...“
“여기 있으니 별별 생각이 다 들어 나가면 나 모른 체 하면 안 돼.”
“내가 널 어떻게 그러니 말도 안 된다.“
“고마워.”
“고맙긴.“
최종 선고 일을 앞두고 변호사가 찾아왔다. 아마도 두 사람 모두 실형은 면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면서 사장의 친정 가족들의 이야기인데 동수가 출소하면 사장과의 관계를 완전히 청상하였으면 좋겠다고 전해달라고 하더란다. 물론 사장의 의중은 알 수 없지만 친정 쪽에서는 무언가 특별한 조치를 취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 특별한 조치라는 것 중 회사를 정리하고 외국으로 보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동수는 자신이 무죄를 받았으면 좋겠지만 그녀와 통정을 하였음에도 그 사실을 숨겨 실형을 면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동수로소는 공직에 나갈 처지도 안 되니 사는 데는 크게 불편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사장의 거취에 대해서는 동수 자신도 출소하면 사장과의 관계를 지속할 이유도 없었다. 남들은 돈 많고 얼굴 예쁜 사장과 사귀는 것이 한편으론 부럽다고 하였으나 동수는 사랑이란 것은 서로가 대등한 조건에서 이루어져야지 불균형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는 사랑은 결코 행복할 수가 없다는 것을 동수는 체험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장이 자신의 의지대로 살지 못하고 친정 가족들의 구속을 받는 것에 대해서는 마음이 편지 않았으나 그래도 장래를 보면 그 것이 그녀를 위하는 길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였다.
동수가 이 교도소에 온지도 어느 듯 석 달이 넘어 넉 달로 접어들었다. 처음엔 갑갑하고 막막해 하던 그도 이젠 동료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교도소 안의 실정은 물론 사회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로 간접 경험이 많아졌다.
교도소 감방엔 사회의 밑바닥에서 별의 별 짓거리를 다하다 들어 온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그 사회 나름의 살아가는 방법이 속속들이 이야기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동수더러는 이번에 나가면 사장을 잘 이용해서 사업자금이라도 충분하게 얻어내라는 것이었다. 동수는 대꾸하기가 피곤하여 그렇게 하겠노라고 대답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