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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경전연구회 임제록 강좌 제8강 -4(2009.12.07)
17 나를 도와주시오 師見普化(사견보화)하고 乃云(내운), 我在南方(아재남방)하야 馳書到潙山時(치서도위산시)에 知儞先在此住(지이선재차주)하야 待我來(대아래)하니라 乃我來(내아래)하야 得汝佐贊(득여좌찬)이라, 我今(아금)에 欲建立黃檗宗旨(욕건립황벽종지)하노니 汝切須爲我成褫(여절수위아성치)하라 普化珍重下去(보화진중하거)하다 克符後至(극부후지)어늘 師亦如是道(사역여시도)하니, 符亦珍重下去(부역진중하거) 三日後(삼일후)에 普化却上問訊云(보화각상문신운) 和尙前日(화상전일)에 道甚麽(도심마)오 師拈棒便打下(사염방변타하)하다 又三日(우삼일)에 克符亦上(극부역상)하야 問訊乃問(문신내문)호되 和尙(화상)이 前日打普化(전일타보화)하니 作什麽(작십마)오 師亦拈棒打下(사역염방타하)하니라 그 다음에 이제 나를 도와주시오. 師見普化(사견보화)하고, 보화스님이 미친 척 하면서도 임제스님이 교화하는데 아주 큰 도움을 준 도인이 바로 보화스님이죠. 師가, 임제스님이 普化를 보고는 乃云(내운), 我在南方(아재남방)하야, 내가 남방에 가서, 馳書到潙山時(치서도위산시)에, 황벽스님의 편지를 전하려고, 馳書(치서), 편지를 전할려고 위산에 이르렀을 때에 知儞先在此住(지이선재차주)라, 그대가 먼저 여기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서, 待我來(대아래)라,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는 것을 알았다, 그랬어요. 먼저 당신이 여기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라고 하는 것을 알았어. 그래 보화스님이 먼저 가 있었어요. 그래서 乃我來(내아래), 그래서 내가 와 가지고서, 得汝佐贊(득여좌찬)이라, 그대의 佐贊(좌찬), 이거 도움입니다, 그대의 큰 도움을 내가 얻게 되었다. 我今(아금)에, 지금, 欲建立黃檗宗旨(욕건립황벽종지)하노니, 황벽스님의 종지를 건립하고자 하노니. 汝切須爲我成褫(여절수위아성치), 그대는 간절히 모름지기 나를 위해서 成褫(성치)하라, 그랬어. 褫(치). 이것도 옷을 벗고 힘써서 좀 도와주십시오 그런 말입니다. 옷을 벗어 제치고 힘써 일해 달라고 하는 그런 뜻이 褫(치) 자에요. 성치. 도와주십시오, 그랬어요. 普化珍重下去(보화진중하거)라, 보화가 그렇게 여기고 내려갔다. 克符後至(극부후지), 克符(극부)라고 하는 스님이 또 뒤에 이르렀거늘, 師亦如是道(사역여시도)라, 극부스님에게 또 그렇게 했어요. 처음에 예를 들어서 절을 지어 가지고 거기서 교화를 피려고 할 때 도와주는 도반이 많아야 되거든요. 뭐 신도고 스님이고 할 거 없이. 극부스님이 또 왔는데 극부스님한테 내가 황벽스님 종지를 펴려고 하니까 스님 좀 도와주십시오, 그렇게 이제 말했어. 符亦珍重下去(부역진중하거), 그러니까 극부스님도 또한 그렇게 여기고 내려갔다. 三日後(삼일후)에 普化却上問訊云(보화각상문신운), 보화스님이 도리어 올라와 가지고 묻기를, 和尙前日(화상전일)에 道甚麽(도심마)오. '화상, 엊그저께 나한테 뭐라고 말했습니까?' 그랬어요. 師拈棒便打下(사염방변타하)하다. 그때는 '아, 내가 도와주라고 했지 않았냐, 잊어버렸느냐', 우리 같으면 이렇게 말을 했을텐데 이 임제스님은 몽둥이를 잡고는 후려쳐서 내려보낸 거죠. 又三日(우삼일)에 克符亦上(극부역상)하야, 또 삼일에 극부가 또 올라왔어, 극부스님이 올라왔어. 問訊乃問(문신내문)호되, 和尙(화상)이 前日(전일)에 打普化(타보화)하니, 보화를 후려쳤다 했으니 作什麽(작십마)오, 무엇때문에 사람을 그렇게 때렸냐? 師亦拈棒打下(사역염방타하)하니라. 또 이제 임제스님이 또한 방망이를 잡고 역시 그 사람에게도 극부스님에게도 또한 두드려 패버렸다, 이렇게 돼 있습니다. 이게 이제 ‘임제할 덕산방’ 그렇게 하지마는 임제도 방을 그렇게 잘 쓰고 물론 할도 잘 하지만. 이게 가장 극적인 표현이면서 가장 간단명료하면서 가장 극적인 표현이에요. 전체작용하는 데 있어서 ‘할!’ 얼마나 간단합니까. 또 평소에 짚고 있는 주장자나 무슨 몽둥이나 그걸 가지고 바로 이렇게 후려친다고 하는 것은 제일 간단한 동작이에요. 뭐 길게 설명할 게 아니라 가장 간단한 동작이면서도 자기 전체를 작용해 보이는 그런 수단으로서는 아주 제일 간편하다고 할 수 있죠. 아뭏든 간편하든 번잡하든 전체작용인 것만은 사실입니다. 전체작용은 또 간편해야 되고 간단명료해야지 그게 뭐 어수선하고 길고 그러면은 그게 재미가 없죠. 18-1 너무 과격하다 師(사) 一日(일일)에 同普化(동보화)하야 赴施主家齋次(부시주가재차)에 師問(사문), 毛呑巨海(모탄거해)하고 芥納須彌(개납수미)하니 爲是神通妙用(위시신통묘용)가 本體如然(본체여연)가 普化踏倒飯床(보화답도반상)한대 師云(사운), 太麁生(태추생)이로다 普化云(보화운), 這裏是什麼所在(자리시십마소재)관대 説麁説細(설추설세)오 또 너무 과격하다 그랬는데요, 師(사) 一日(일일)에, 同普化(동보화)하야, 보화와 같이. 赴施主家齋次(부시주가재차)라, 시주집에 가서 재를 지냈어요. 옛날에 재는 다 집에 가서 지냈습니다, 절에서 지내지 않았고. 집에 가서 재를 지낸다 하면 시주집에 가서 경을 읽어주고 대중들이 거기서 공양을 먹고 혹 보시돈도 얻어오고 또 옷도 얻어올려면 옷을 만들 천도 얻어오고 그랬었던 것 같애요, 한때, 당나라 무렵에. 師問(사문), 師가 물었어요. 毛呑巨海(모탄거해)하고, 터럭이 큰 바다를 삼키고, 가장 작은 것이 가장 큰 것을 삼키고. 事事無碍(사사무애)죠. 芥納須彌(개납수미)라, 개자씨 속에 수미산을 집어넣는다. 그랬으니 爲是神通妙用(위시신통묘용)가, 이것은 신통묘용인가? 아니면 本體如然(본체여연)인가? 그랬어요. 이게 법문을 했겠죠. 이것은 신통묘용이냐? 사사무애하고 그야말로 一微塵中含十方(일미진중함시방)하는 도리인데 이게 그럼 본래 그러한 것이냐? 본체가 본래 그러한 것이냐? 본래 그렇게 크고 작은 것이 아무 걸림없이 오고 가고 하는 것이냐? 그러니까 普化(보화)가 踏倒飯床(답도반상)이라, 아주 시주집에서 밥을 거하게 차려놨는데 그 밥상을 그냥 냅다 발로 차버렸어. 참 대단하죠, 시주집에 가 가지고. 이거 미친 사람이거나 아니면 아주 격 밖의 도인이거나. 임제스님은 이렇게 못하죠. 황벽스님도 못하고. 그런데 보화스님 같은 그런 격 밖의 도인, 파격적인 도인이야말로 이런 것으로서 전체작용을 보일 수 있습니다. 이 또한 전체작용이에요. 그러니까 師云(사운), 임제스님이 말하기를, 太麁生(태추생)이로다, 야 이거 너무 거칠다 그랬어요. 그러니까 보화스님이 그 말을 듣고는 普化云(보화운), 這裏(자리)가 是什麼所在(시십마소재)관대, 여기가 어디라고, 이 ‘這裏(자리)’ 하는 것은 뭐야, 궁극적 차원, 궁극적 차원, 불법의 진수, 진리의 경지. 여기가 어디라고 説麁説細(설추설세)오, 거칠다 무슨 얌전타, 그런 소리를 어디다 대고 하느냐. 궁극적 차원에 무슨 거칠고 얌전하고 그런 게 어디있다고 그런 걸 논하느냐, 그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아 보화스님 아주 대단한… 이분이 이제 돌아가실 때도 또 근사하게 돌아가셔요. 그 다음에 또 이어집니다. 18-2 혀를 내두르다 師來日(사래일)에 又同普化赴齋(우동보화부재)하야 問(문), 今日供養(금일공양)이 何似昨日(하사작일)고 普化依前踏倒飯床(보화의전답도반상)한대 師云(사운) 得即得(득즉득)이나 太麁生(태추생)이로다 普化云(보화운) 瞎漢(할한)아 佛法説什麼麁細(불법설십마추세)오 師乃吐舌(사내토설)하니라 師(사), 그 다음날, 來日(내일) 했는데 그 다음날이에요. 又同普化赴齋(우동보화부재). 그 다음날 또 보화스님하고 같이 그 집 재에 갔어요. 몇일 지내니까. 일주일도 지내고 뭐 많은 경우는 한달도 지내기도 하고 그래요. 그래 한달을 지내면 한달 동안 스님들 모셔다가 경 읽고 음식 대접하고 그리고 돌려보내고. 그리고 또 절에다가 곡식을 그냥 수십 가마, 수백 가마 실어 올린다든지 부호집에서는, 큰 부잣집에서는 그렇게 하거든요. 한번씩 그렇게 하면은 그거 가지고 일년 사는 거요, 대중들은 몇백 명도. 지금도 스님들 밥 먹고 사는 데는 재가 제일이야. 천도가 됐는지 안됐는지 그거 우리가 알 바도 없고 아무도 알지도 못하고 그저 뭐 정성들여서 재 지내주면 되니까. 그러면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고요. 재가 많이 들어와야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어. 그것도 순리로만 하면 참 그게 좋은 거야, 아름답고. 또 어떤 효도정신을 앙양하는데도 필요한 일이고. 그런데 그거 너무 지나치게 하면 참 모양이 그래요. 너무 많이 또 그렇게 선전을 해 가지고, 그렇게 하면 그만 이 재 지낸다는 의미가 아주 퇴색해버려. 별 의미가 없어져 버린다고, 하도 많이 싸구려로 지내니까. 뭐 만원만 해도 그거 뭐 위패 하나 접수 받으니까. 그러면 뭐 재 지내는 거에요, 그게? 아무 의미가 없어져 버려. 참 그래서 의미가 그런 데는 또 퇴색이 돼 버리는데 사실은 정성을 들여가지고 사십 구재를 지낸다든지 아니면 기제사를 지낸다든지 그거는 정말 좋은 일이여 그거는. 그거는 부모에 대한 효성도 우리가 키울 수가 있는 것이고 또 신심도 그것을 통해서 불교에 대한 신심도 키울 수 있는 거고. 아뭏든 보화가 그 다음날 또 재에 갔어요. 問(문), 今日供養(금일공양)이 何似昨日(하사작일)고, 오늘 공양이 왜 어제하고 똑같애 이게? 뭐 반찬이 그렇게도 없나? 이런 식으로. 금일공양이 어째저째 어제하고 똑같애. 오늘은 어제보다 다르게 좀 거하게 차리든지 안하고. 普化(보화)가 依前踏倒飯床(의전답도반상)이라, 이제 우정 이렇게 표현해 본 거에요. 今日供養(금일공양)이 何似昨日(하사작일)고 하는 말은. 이거 일종의 법문이죠. 그러니까 보화가 있다가 어제 한대로 냅다 이제… 이게 아마 당신들이 자실 밥상을 차려놓은 그 밥상을 찬 게 아니고 제상을 찬 거에요, 제상을. 제사 지내려고 차려놓은 제상을 냅다 차서 엎어버린 거지. 師云(사운) 得即得(득즉득)이나 太麁生(대추생)이로다, 되기는 됐어, 그거 옳기는 옳지마는, 득즉득이나 대추생이다, 너무 거칠다. 普化云(보화운) 瞎漢(할한)아 그러니까 보화가 있다가 야 이 눈먼 놈아, 佛法(불법)에 説什麼麁細(설십마추세)오, 무슨 추하다 거칠다 얌전하다 하는 것을 이야기하는가. 아까 그랬죠, 궁극적 차원, 불법 도리, 거기에 무슨 거칠고 얌전한 것을 이야기하느냐, 하니까 師乃吐舌(사내토설)이다, 임제스님이 있다가 그만 혀를 내둘렀다. 야, 저거 못말릴 사람이다, 저. 분명히 안목은 확철대오한 사람의 안목이 맞는데 그 표현이 아무리 전체작용을 보인다 하더라도 너무 거칠다. 어떻게 할 길이 없다, 그렇다고. 임제스님도 어떻게 할 수 없었던 사람입니다. 19 凡夫(범부)인가 聖人(성인)인가 師一日(사일일)에 與河陽(여하양)과 木塔長老(목탑장노)로 同在僧堂地爐内坐(동재승당지노내좌)하야 因説普化毎日(인설보화매일)에 在街市(재가시)하야 掣風掣顛(철풍철전)하니 知他是凡是聖(지타지범시성)가 言猶未了(언유미료)에 普化入來(보화입래)어늘 師便問(사변문), 汝是凡是聖(여시범시성)가 普化云(보화운), 汝且道(여차도)하라 我是凡是聖(아시범시성)가 師便喝(사변할)하니 普化以手指云(보화이수지운), 河陽新婦子(하양신부자)요 木塔老婆禪(목탑노파선)이요 臨濟小厮兒(임제소시아)라 却具一隻眼(각구일척안)이로다 師云(사운), 這賊(자적)아 普化云(보화운), 賊賊(적적)하고 便出去(변출거)하다 凡夫(범부)인가 聖人(성인)인가 師一日(사일일)에 與河陽(여하양)과 木塔長老(목탑장노)로, 하양스님, 목탑스님, 이렇게 세 사람이 떠억, 同在僧堂(동재승당) 地爐内坐(지로내좌)라, 지로내좌, 중국은 예를 들어서 거실이든지 법당이든지 모두 땅바닥이잖아요. 그래 화로를 큰 방에 중앙에다 이렇게 땅을 파 가지고, 관리하기 참 좋죠. 그러니까 거기다가 불을 때서 하기도 하고 숯을 갖다가 거기서 불을 붙히기도 하고 이 법당 같으면 이 안에다 땅을 파 가지고 화로를 만든 것입니다. 그렇게 추울 땐 그렇게 공기를 덮혔죠. 그래 화로에 둘러 앉아가지고 옹기종기, 이런 소리 저런 소리 하고 있다가 因説普化(인설보화)라, 보화 이야기를 하는 거라, 보화스님. 보화스님 毎日(매일) 在街市(재가시)하야, 매일 저 시내에 가 가지고, 掣風掣顛(철풍철전)이라 그랬어요, 미친 척하고 돌아다닌다, 이 뜻입니다. 知他是凡是聖(지타지범시성)가, 그런데 그 사람이 성인이냐, 범부냐 성인이냐. 그걸 누가 아느냐. 범부인지 성인인지 아는 사람이 있느냐. 이런 이야기를 막 하고 있었는데 言猶未了(언유미료)에, 말이 오히려 마치기도 전에 말이 끝나기도 전에, 普化入來(보화입래), 보화가 바로 문을 열고 들어오는 거죠. 師便問(사변문), 그러니까 곧바로 임제스님이 물었어요. 汝是凡是聖(여시범시성)가, 그대가 범부냐 성인이냐. 普化云(보화운), 그러니까 보화가 있다가, 汝且道(여차도), 너가 한번 일러봐라. 我是凡是聖(아시범시성), 내가 범부냐 성인이냐. 師便喝(사변할), 그러니까 임제스님이 곧 할을 했어. 普化以手指云(보화이수지운), 보화는 손으로서 가리키면서, 하양스님, 목탑스님, 임제스님 셋이 있었으니까. 이게 아주 멋진 표현이라고 만고에 칭찬이 자자합니다. 河陽(하양)스님은 新婦子(신부자), 새며느리와 같고, 木塔(목탑) 장로는 老婆禪(노파선)이다, 친절한 아주 노파선이고, 臨濟(임제)는 小厮兒(소시아)다, 임제는 어린 마부다, 이렇게 보화스님이 평했다는데 아주 선가에서는 상당히 재미있는 표현이라고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却具一隻眼(각구일척안)이라, 모두가 하나의 제삼의 눈, 법의 안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말했어요. 그러니까 師云(사운), 這賊(자적)아, 야 이 도적놈아 그랬어요. 내 법을 훔쳐 본 사람. 내 어떤 경지, 나의 정신세계를 다 훔쳐보는 놈이니까 야 이 도적놈아, 그랬어요. 普化云(보화운), 그러니까 보화가 있다가, 賊賊(적적), 도적놈을 도적질하는, 도적의 물건을 도적질하는 놈아, 이런 뜻입니다. 적적 하는 말은. 그리고 便出去(변출거)하다. 그러니까 나는 당신 것을 도적질 했지마는 당신은 당신 것을 도적질한 내 것까지 도적질한 놈, 이런 뜻이 돼 버렸죠. 아 참 표현이 그럴 듯 하잖아요. 선문이라는 게 이게 알듯 말듯 하면서도 또 그 맛을 들이면은 참 아주 의미심장하고 재미있고 그렇습니다. 이게 격외 선도리의 전형이죠 이런 게. 여기 감변 내용이 격외선의 아주 전형입니다. 20 당나귀 한 마리 一日(일일)은 普化在僧堂前(보화재승당전)하야 喫生菜(긱생채)어늘 師見云(사견운), 大似一頭驢(대사일두여)로다 普化便作驢鳴(보화변작여명)한대 師云(사운), 這賊(자적)아 普化云(보화운) 賊賊(적적)하고 便出去(변출거)하니라 당나귀 한 마리, 그랬습니다. 一日(일일), 하루 날, 普化在僧堂前(보화재승당전) 喫生菜(긱생채), 보화가 승당전에서 생채를 먹고 있었어. 師見云(사견운), 그러니까 임제스님이 보고 말하기를, 大似一頭驢(대사일두여)로다, 꼭 한마리의 염소같구나 그랬어요. 普化(보화)가 便作驢鳴(보화변작여명)이라, 염소소리, 울음소리를 냈어. 한마리 꼭 염소같고 똑 염소같다, 저 풀 뜯어먹고 있는게 염소 같네. 그러니까 보화가 있다가 그 소리에 맞춰서 염소소리를 냈어. 그러니까 師云(사운), 這賊(자적)아, 야 이 도적놈아, 그러니까 普化云(보화운), 보화가 賊賊(적적)하고 便出去(변출거)하다. 앞엣 것 하고 똑같은 겁니다. 21 나는 처음부터 그를 疑心(의심)하였다 因普化(인보화)가 常於街市搖鈴云(상어가시요령운), 明頭來明頭打(명두래명두타)하고 暗頭來暗頭打(암두래암두타)하며 四方八面來旋風打(사방팔면래선풍타)하고 虚空來連架打(허공래연가타)하노라 師令侍者去(사령시자거)하야 纔見如是道(자견여시도)하고 便把住云(변파주운), 總不與麼來時如何(총불여마래시여하)오 普化托開云(보화탁개운), 來日(내일)에 大悲院裏有齋(대비원리유재)니라 侍者回擧似師(시자회거사사)한대 師云(사운), 我從來(아종래)로 疑著這漢(의착자한)이로다 그 다음에 나는 처음부터 그를 疑心(의심)하였다. 이것도 아주 좋은 표현이에요. 그 놈은 그 사람은 참 대단한 사람인 줄 그전부터 내가 짐작했었지, 이런 뜻입니다. 因普化(인보화)가, 보화스님이 항상(常), 街市搖鈴云(가시요령운), 시내에서 요령을 흔들면서, 明頭來明頭打(명두래명두타)하고, 밝은 것이 오면은 밝은 것으로 치고 暗頭來暗頭打(암두래암두타)하며, 어두운 것이 오면은 어두운 것으로 치고, 四方八面來(사방팔면래), 사방팔면에서 오면은, 旋風打(선풍타), 회오리바람으로 치고. 虚空來(허공래)하고 連架打(연가타)라. 허공에서 오면은 도리깨, 연가라고 하는 것은 도리깨. 저 옛날 시골에서 콩 털고 깨 같은 거 털 때 도리깨라고 하는 게 있어요. 연가타라, 연가로서… 하늘에서 한바퀴 도니까 허공에서 한바퀴 돌고 확 때리잖아요, 그러니까 연가타 하노라, 그랬습니다. 師令侍者去(사령시자거)하야, 師가 시자 시켜서 가 가지고서 纔見如是道(자견여시도)하고,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을 보고는. 便把住云(변파주운), 곧 이제 把住(파주)라고 하는 건 멱살을 잡고 말하기를, 總不與麼來時如何(총불여마래시여하)오, 모두 네가 표현한 것 하고는 전혀 다르게 올 때는 어떻게 하겠는가. 托開云(타개운) 普化(보화)가 밀쳐버리고, 來日(내일)에 大悲院裏有齋(대비원리유재)니라, 내일 대비원에서 재가 있다 하더라. 侍者回擧似師(시자회거사사)한대, 시자가 돌아가 가지고서 그런 이야기를 들어서 다 이야기를 했어, 임제스님께. 師云(사운), 그러니까 임제스님이 말하기를, 我從來(아종래)로, 내가 그전부터 疑著這漢(의착자한), 이놈을 의심했더니라. 이게 아주 좋은 표현이죠. 그 대답을 시자를 시켜서 한번 시험해보라 라고 했는데 ‘내일에 대비원에 재가 있다 하더라’, 이렇게 대답을 하니까 시자가 그대로 가서 이야기했어요. 그래 임제스님이 그 말을 듣고는 ‘아, 그러면 그렇지, 역시 보화다’. 이런 표현 뜻입니다, 속뜻이요. 22-1 한 노스님을 점검하다 有一老宿(유일노숙)이 參師(참사)할새 未曾人事(미증인사)하고 便問(변문), 禮拜即是(예배즉시)아 不禮拜即是(불예배즉시)아 師便喝(사변할)한대 老宿便禮拜(노숙변예배)라 師云(사운), 好箇草賊(호개초적)이로다 老宿云(노숙운), 賊賊(적적)하고 便出去(변출거)하니 師云(사운), 莫道無事好(막도무사호)니라 한 노스님을 점검하다. 有一老宿(유일노숙)이 參師(참사), 임제스님에 참례했어요. 未曾人事(미증인사)하고, 인사 안하고는 便問(변문), 곧 묻기를, 禮拜即是(예배즉시)아 不禮拜即是(불예배즉시)아 내가 스님에게 예배를 해야 됩니까? 예배하지 않아야 옳습니까? 師便喝(사변할), 그러니까 임제스님이 할을 한대 老宿便禮拜(노숙변예배)라, 노숙이 곧 예배를 했다. 師云(사운), 好箇草賊(호개초적)이로다, 야, 이 좋은 도적놈이다. ‘초적’은 이제 말하자면 ‘야적’이라고 하는 말과 같이 풀숲 속에 숨어서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 터는 그런 도적, 그런 뜻을 초적이라고 합니다. 아주 좋은 도적놈이다. 老宿云(노숙운), 노숙이 말하기를, 賊賊(적적), 도적놈의 속을 들여다보는 이 도적놈아, 便出去(변출거), 그리곤 곧 출거했다, 나가버렸다. 師云(사운), 莫道無事好(막도무사호)니라, 무사한 것이 좋다고 말하지 마라, 그 뜻입니다. 이런 노숙을 만난 것은 행운이다, 그런 뜻이에요. 그래 가만히 아무 일 없이 하루종일 있는 것 보다는 이렇게 눈 밝은 사람하고 이런 법담 한마디 하는 거가 아 근사하다, 막도무사호니라. 무사한 거, 일 없는 것이 좋다고 말하지 마라. 하, 멋지죠. 이런 눈 밝은 노숙, 노승을 만난 것은 이건 아주 멋진 일이다. 그렇죠, 뭐 하루 종일 한가하게 작은 절에서 있는 것도 좋지만 좋은 도반이 와 가지고서 너 요즘 어렵지? 하면서 한보따리 턱 던져주고 가면은 근사하잖아요? 그날, 허허허… 22-2 首座 (수좌)를 點檢 (점검)하다 首座侍立次(수좌시립차)에 師云(사운), 還有過也無(황유과야무)아 首座云(수좌운), 有(유)니라 師云(사운), 賓家有過(빈가유과)아 主家有過(주가유과)아 首座云(수좌운), 二倶有過(이구유과)니라 師云(사운), 過在什麼處(과재십마처)오 首座便出去(수좌변출거)하니 師云(사운), 莫道無事好(막도무사호)니라 後有僧擧似南泉(후유승거사남전)한대 南泉云(남전운), 官馬相踏(관마상답)이로다 首座 (수좌)를 點檢 (점검)하다 그랬습니다. 首座侍立次(수좌시립차)에 師云(사운), 還有過也無(황유과야무)아, 또한 허물이 있는가 없는가. 首座(수좌)가 말하기를 有(유)니라, 있다. 師云(사운), 賓家有過(빈가유과)아, 그래 객이 허물이 있는가. 아니면 主家有過(주가유과)아, 주인이 허물이 있는가. 首座(수좌)가 말하기를, 二倶有過(이구유과)니다, 둘 다 허물이 있습니다. 師云(사운), 過在什麼處(과재삼마처)오, 허물이 어디 있는가. 首座便出去(수좌변출거)하니, 수좌가 곧 나가버리니. 師云(사운), 莫道無事好(막도무사호)니라, 무사한 것이 좋다고 말하지 마라. 이런 법거량은 재밌다 좋다 아주 신난다, 그런 뜻이죠. 가만히 있는 거보다는 훨씬 생기나고 사는 맛이 난다 이말이죠. 後有僧擧似南泉(후유승거사남전)한대, 뒤에 남전스님한테 이것을 들어서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니까 南泉(남전)이 云(운), 官馬相踏(관마상답)이로다, 관마가 서로 마주 달린다. 좋은 말, 관마라고 하는 것은 좋은 말을 말하는 거요. 그래 관청에서 쓰는 말이니까 전부 가려가지고 아주 제일 빨리 달리는 말만 쓰니까 아주 뛰어난 말들이 서로 달리는 거와 같다. 이렇게 두 노숙을, 말하자면 두분의 선문답이 아주 근사하다 하는 뜻입니다, 아주 근사하다. 23 한낱 나무토막이로다 師(사) 因入軍營赴齋(인입군영부재)할새 門首(문수)에 見員僚(견원요)하고 師指露柱問(사지노주문)호대 是凡是聖(시범시성)가 員僚無語(원요무어)어늘 師打露柱云(사타노주운), 直饒道得(직요도득)이라도 也秖是箇木橛(야지시개목궐)이라하고 便入去(변입거)하니라 여기 장난꾼 같은 임제스님의 면모를 볼 수 있는 대목인데, 한낱 나무토막이로다, 제목을 그렇게 달았어요. 師因 (사인) 入軍營赴齋(입군영부재)라, 군영, 막사, 군부대에 들어가 가지고 재를 지냈게 됐어. 그 당시 하도 전쟁도 많이 일어나고 뭐 또 반란군이 어느 지역을 점령해 가지고 저가 세력 넓혀가지고 어느 지역을 경영하고 왕노릇을 할려고 하고 하는 그런게 뭐 그 넓은 중국 천지에는 무수히 일어났습니다. 그래갖고 정말 아주 세력이 강한 그런 어떤 지도력이 있고 뛰어난 장수가 있으면은 그 사람이 중국 천하를 다 휘어잡기도 하고 그러잖아요. 그 삼국지라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정통 한나라가 없어지고 말하자면 세상이 아주 어지러울 때 뚜렷한 세 사람, 오나라, 촉나라, 위나라, 그렇게 세 나라, 삼국이 병립을 해 가지고 한동안 그런 시간을 보낸 것도 마치 그와 같은 거다. 그 외에 수많은 작은, 자기 스스로 왕이라고 한다든지 어느 지역의 군주라고 한다든지 하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었죠. 그럼 큰 사람이 하나씩 하나씩 통합을 해가는 거죠. 저쪽에서 통합해오고 이쪽에서도 통합해오고 그래서 마지막에 세 나라가 섰고 나중에는 사마천이 통일을 했죠. 사마 누구야, 그게, 조조 이후에. 그 사람이 삼국을 통일하게 되는 그런 이야기죠. 그 래서 그런 사례가 많던 시절입니다. 그래서 언어가, 여기서 표현하는 것이 거의 어떤 정신은, 군인 정신에 입각한 표현, 그런 것을 많이 볼 수가 있어요. 그야말로 군인이 쓰는 그런 용어 같은 거. 그리고 또 군에 대한 이야기도 많고. 그래서 사람들도 많이 죽고 하다 보니까 재를 늘 지내게 되지요. 재를 지내려면 군부대 가서 지내게 되니까, 그래 군부대에 재를 지내러 가는 거야. 그러니까 門首(문수)에, 그 입구에서 見員僚(견원요), 보초병을 보게 됐어. 원요를 보게 됐는데, 원요는 보초병, 보초병을 보게 되었는데, 그 보초병에게 하는 거야. 그 무식한 보초병이 뭘 알겠어요? 그런데 임제스님(師)이 참 그런 사람에게다가 指露柱(지노주), 막사를 세울려면 이렇게 기둥이, 드러나는 기둥이 있을 것 아닙니까? 법당에서도 밖으로 드러나는 것을 노주라 그러잖아요. 그 노주를, 드러난 기둥을 이렇게 가리키면서 是凡是聖(시범시성) 이게 범부냐 이게 성인이냐 하고 그렇게 물었네(問). 그 員僚(원요), 보초병이 있다가 無語(무어), 아무 말이 없지. 뭐 무슨 노장이 와서 뭔 소리를 도대체 하는 거냐, 아 저걸 기둥을 보고 이게 범부냐 성인이냐 라고 물으니까 전혀 상식 밖의 소리죠. 그러니까 師打露柱(사타노주), 그 노주를 괜히 막대기로 치면서 直饒道得(직요도득)이라도, 설사 한마디 일렀다 하더라도 也秖是箇木橛(야지시개목궐)이로다, 이것은 다만 그저 나무 막대기에 불과하다 하고 便入去(변입거), 곧 들어가버렸다. 그 ‘나무 막대기에 불과하다’ 라고 한 것은 보초보고 하는 소리인지 아니면은 그 노주보고 하는 소린지. 아뭏든 이건 재미있는 이야기이긴 하지마는 임제스님도 도를 아무데서나 그렇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좀 그렇기도 해요. 그러면서도 보초에게 한번 법거량을 해 봤다고 하는 이러한 것을 빠뜨리기가 아까워서 아마 제자들이 기록을 한 것 같습니다. 24 院主 (원주)와 別座(별좌)를 點檢(점검)하다 師(사) 問院主(문원주) 什麼處來(삼마처래)오 主云(주운), 州中糶黄米去來(주중조황미거래)니다 師云(사운), 糶得盡麼(조득진마)아 主云(주운), 糶得盡(조득진)이니다 師以杖(사이장)으로 面前(면전)에 畫一畫云(획일획운), 還糶得這箇麼(환조득자개마)아 主便喝(주변할)한대 師便打(사변타)하다 典座至(전좌지)어늘 師擧前話(사거전화)한대 典座云(전좌운) 院主不會和尚意(원주불회화상의)니다 師云(사운), 儞作麼生(이자마생)고 典座便禮拜(전좌변예배)한대 師亦打(사역타)라 그 다음에 院主(원주)와 別座(별좌)를 點檢(점검)하다, 그랬어요. 師(사) 問院主(문원주) 什麼處來(삼마처래)오, 원주에게 묻기를 어디갔다 오느냐. 主云(주운), 원주가 말하기를, 州中(주중)에 저 시내에 糶黄米去來(조황미거래), 황미를 사가지고 옵니다. 황미는 벼라고도 하고 또 찹쌀이라고도 하고 그런 이야기가 있어요. 뭐 황미이니까 아직 벗긴 쌀이 아니니까 황미라고도 할 수가 있겠죠. 황미를 사가지고 오는 길입니다. 師云(사운), 糶得盡麼(조득진마)아, 다 사왔느냐, 그러니까, 主云(주운), 원주가 말하기를, 糶得盡(조득진), 예, 다 사왔습니다. 師(사)가 以杖(이장)으로, 주장자로서 面前(면전)에 畫一畫(획일획), 눈 앞에다가 얼굴 앞에다가 일획을 삭 이렇게 주장자로 그었어요. 땅에다 대고 그으니까. 還糶得這箇麼(환조득자개마), 그러면 네가 가서 황미를 그렇게 사왔다니까 그럼 이것도 살 수 있느냐. 그러니까 땅에 이렇게 금을 그어 놓고 이거를 네가 살 수 있겠느냐? 그렇게 물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원주(主)가 있다가 곧 할을 했다(便喝(변할)). 그리고 임제스님(師)은 便打(변타), 후려쳤다. 典座至(전좌지), 그리고 전좌, 별좌가 왔어요. 그러니까 師擧前話(사거전화), 師하고 前話(전화), 앞의 이야기를 했어. 내가 원주에게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典座云(전좌운), 그러니까 전좌가 말하기를. 院主不會和尚意(원주불회화상의), 원주가 뭐 아무 것도 스님 뜻을 몰라서 하는 짓입니다. 그러니까 임제스님이 있다가, 師云(사운), 儞作麼生(이자마생), 그러면 그대는 자마생고,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러니까 典座(전좌)가 便禮拜(변예배)라, 별좌는 예배를 떠억 했어요. 할을 했고 원주는. 그러니까 師亦打(사역타)야, 임제스님이 또 후려쳤다. 예배는 뭐고 할은 무엇인가. 그리고 때린 것은 또 무엇인가. 이 또한 그 나름대로 각자의 전체작용이다. 그 전체작용에 대해서는 우리가 뭐라고 손톱이 안 들어가죠, 사실은. 이런 전체 작용에는 우리가 손톱이 안 들어갑니다. 저 앞에서 예를 들어서 시중에서 이러고 저러고 좀 임제스님이 풀어서 이야기하고 간절하게 이야기했을 때는 이해가 가고 짐작이 가고 감동도 있는데 정작 이렇게 전체작용에 대해서는 그만 아무 무슨 느낌이 없는 거죠. 오늘 임제록 공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이거 두번 해야 되겠다, 아마도. 그러니까 1월, 2월 하고 3월부터 화엄경에 들어가야 되겠네요 보니까.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조금 진도가 안 나갑니다. 오늘 여기까지 공부하겠습니다.
첫댓글 당신은부처님 당신은부처님 당신은부처님 사바하
당신은부처님 당신은부처님 당신은부처님 사바하
당신은부처님 당신은부처님 당신은부처님 사바하 _()()()_
毛呑巨海(모탄거해)하고 芥納須彌(개납수미)하니 爲是神通妙用(위시신통묘용)가? 本體如然(본체여연)가? 고맙습니다. _()()()_
莫道無事好니라..무사한 것이 좋다고 말하지 마라..禪慧珠 님! 수고하셨습니다.._()()()_
고맙습니다._()()()_
毛呑巨海하고 芥納須彌하니...고맙습니다. _()()()_
喝! 棒! 全體作用
臨濟禪無多子
莫道無事好니라..._()()()_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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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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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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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다 이해 되는건 아니지만 참고 삼아 공부 합니다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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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작용 ...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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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_()__()_
감사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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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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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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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_()()()_
南無無位眞人 南無無位眞人 南無無位眞人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