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역한 경찰 대위인 찰름 유밤룽(Chalerm Yubamrung, เฉลิม อยู่บำรุง) 박사는 태국의 정치인으로, 1947년 6월 10일 방콕에서 출생했다. 그는 '프어타이 당'(Pheu Thai Party) 소속 국회의원이며, 현재 잉락 친나왓(Yingluck Shinawatra) 총리의 '연립정권 제1기 내각'에서 부총리를 맡고 있다.
(사진출처: Chaopraya News)
이전에는 '프어타이 당' 원내대표를 맡은 적도 있고, 솜차이 웡사왓(Somchai Wongsawat) 총리 정부(2008.9.18~2008.12.2)에서 보건부장관을 맡았고, 그 이전의 사막 순타라웻(Samak Sundaravej) 총리 정부(2008.1.29~2008.9.9)에서는 내무부장관을, 반한 실빠아차(Banharn Silpa-archa) 총리 정부(1995.7.13~1996.11.24)에서는 법무부장관을 역임했다. 2009년부터 2011년 사이에는 야당 최고위원을 맡았다.
1. 가족관계
찰름은 방콕의 방본(Bang Bon)에서 태어났다. 그는 '태국 소년법원' 판사인 람나오 유밤룽(Lamnao Ubumrung, ลำเนา อยู่บำรุง)과 결혼하여 슬하에 아들 3형제인 아짠 유밤룽(Artharn, อาจหาญ อยู่บำรุง), 완찰름 유밤룽(Wanchalerm, วันเฉลิม อยู่บำรุง), 두웡찰름 유밤룽(Duangchalerm, ดวงเฉลิม อยู่บำรุง)을 두었다. 찰름의 남동생인 나와랏 유밤룽(Nawarat Ubumrung, นวรัตน์ อยู่บำรุง) 역시 정치인으로, 방콕광역시 의회 의원으로서 몇차례나 재선됐다.
2. 학력
찰름은 '람캄행 대학'(Ramkhamhaeng University) 법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3. 정치경력
찰름은 '민주당' 공천 국회의원으로서 정계에 입문했다. 1986년에는 자신의 독자적인 정당인 '대중당'(Mass Party, พรรคมวลชน, 팍 무완촌)을 창당했다. '대중당'은 방콕의 서부지역을 정치적 기반으로 했는데, 특히 파시짜른(Phasi Charoen) 구와 방본(Bang Bon) 구에서 더더욱 그러했다. 그는 1992년의 제1차 선거만 제외하고는 몇차례 연속으로 당선됐다.
찰름은 찻차이 춘하완(Chatichai Choonhavan) 총리 정부(1988.8.4~1991.2.23)에서 총리실 장관을 역임했다. 1991년 쿠테타 주모자들이 그를 쿠테타를 일으키게 만든 원인 중 하나라고 말하면서, 그는 군부와 갈등을 지속했고, 언론에 개입한다는 비난도 받았다. 쿠테타가 발발한 후, 찰름은 "부정축재자"로 고발된 정치인들 중 한명이 됐고, 3,200만 바트에 이르는 자산을 동결당했다.(주1) 그는 정치적 상황이 변할 때까지 태국을 달아나서 스웨덴과 덴마크에서 거주했다.
태국에 귀국한 후에는 자신의 '대중당'과 '태국민족 당'(Thai Nation Party, พรรคชาติไทย, 팍 찻타이)의 동맹을 결성하여, 추완 릭파이(Chuan Leekpai) 총리 정부(1997.11.9~2001.2.9)에 대한 야권을 형성했다.
찰럼은 1995년 당시 농업부장관이었던 수텝 트억수반(Suthep Thaugsuban)에 대한 탄핵 움직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당시의 문제는 '서뻐꺼 4-01'(Sor Por Kor 4-01, สปก.4-01) 토지개혁 스캔달이었다. 이 논란으로 인해 결국 추완 릭파이 총리는 불신임투표를 피하고자 의회해산(새로운 총선)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반한 실빠아차 총리가 이끄는 '태국민족 당' 정부(1995.7.13~1996.11.24) 가 탄생했다. 이 정부에서 찰름은 법무부장관을 역임했다.
1997년, 찰름은 차왈릿용짜이윳(Chavalit Yongchaiyudh) 총리가 이끄는 '신(新)열망 당'(New Aspiration Party, พรรคความหวังใหม่, 팍 쾀후웡 마이)과 합당하기 위해 자신의 '대중당'을 해체했다.
'2006년 쿠테타' 이후에, 태국 '헌법재판소'는 2007년에 연립 여당들인 [친-탁신계] '타이 락 타이 당'(TRT) 및 '중도 민주당'(Neutral Democratic Party, พรรคมัชฌิมาธิปไตย, 팍 맛치마 티빠따이)과 더불어 '태국민족 당'을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여 당 해산 명령을 내렸다.
찰름은 2007년 총선에서 TRT의 후신인 '국민의 힘 당'(PPP)에 입당하여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이후 2008년 2월 6일에는 사막 순타라웻 총리 내각에서 내무부장관을 맡았고,(주2) '헌법재판소'가 9월에 사막 총리에 대한 총리직 부적격 판결을 내려 그가 퇴임할 때까지 그 직을 유지했다. 찰름은 사막 총리의 뒤를 이은 솜차이 웡사왓 총리의 단명 내각에서도 보건부장관을 맡았고,(주3) 짧은 시간이었지만 '프어타이 당' 원내총무를 맡기도 했다.
2011년 7월 3일 총선에서 '프어타이 당'이 승리한 후, 잉락 친나왓 총리의 8월 9일 조각에서 찰름은 부총리를 맡았다.
(동영상) 찰름은 태국 정치인 중에서도 달변가에 속하는 입담으로 유명하다. 2011년 2월 24일 국회에서 질의하는 모습. '프어타이 당'은 당시 야당이었다가, 2011년 7월부터 집권당이 된다.
4. 살인 스캔달
찰름의 세 아들들은 마사지샵이나 술집 등에서 반복적으로 다툼을 벌이면서 폭력사태와 문제들을 일으켜, 대중적인 악명이 높다. 아버지의 정치적 영향력을 사고치는 데 사용하는 것을 비아냥거리듯, "내가 누구 아들인지 알아?"란 말이 이들 삼형제를 상징하는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사진) 찰름의 막내아들인 두웡찰름 유밤룽. 힘있는 아버지를 둔 덕분에, 살인사건 스캔달에 연루됐음에도 현역 장교로 복귀한 후, 내무부 특수부에 소속되어 유흥가 단속에 나서기도 했다.
가장 악명높은 사건은 2001년에 '라차다피섹 거리'(Ratchadaphisek Road)에 있는 한 술집에서 수위차이 롯윔우티(Suwichai Rodwimuti) 경찰 특무상사를 살해한 사건이다. 찰름의 막내아들인 두웡찰름 유밤룽은 사건현장에서 달아났다가 6개월 이상 흐른 후에 당국에 자수했다. 찰름은 이 사건을 보도한 언론들을 위협하면서까지 자신의 아들을 적극 보호했고, 언론은 찰름에 대한 취재거부를 하기도 했다. 이 사건 후에 찰름과 아들들은 단명한 한 잡지를 만들어 언론들이 불공정하다며 공격해대기도 했다.
'태국 형사법원'은 이 살인사건을 최종적으로 긱각했는데, 그 이유는 목격자들이 두웡찰름이 살인자였는지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란 것이었다. 찰름은 이 사건의 수사 기간 중에 경찰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하여, 진범은 자신의 아들과 절친한 친구인 찰름촌 부리사마이(Chalermchon Burisamai)이며, 그의 별명이 '아이쁫'(Ai-Pued)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경찰은 더 이상 이 사건의 진범을 추적하지 않았다.
첫댓글 참, 착잡한 인물이구만요...
뭐랄까..
대단히 태국적인 정치인이라고나 할까요.,..
지역에 기반을 둔 토호면서...
대충 여기저기 여권으로만 붙어서 가는 기회주의면서...
적당히 자기의 정치적 지분은 유지하고...
의원내각제 하의 일종의 권력 브로커라고 할 수 있을듯 하네요..
프어타이 당에도 이런 인물들이 종종 포함되어 있는데..
뭐랄까..
태국 정치의 한계랄까..
탁신도 어쩔 수 없이
이런 인물들의 힘까지 빌려야 하는데...
그래서 어저면 탁신이 대단히 현실적인 정치인인지도 모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