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子順, 호는 白湖. 성격이 강직하고 고집이 세어 벼슬은 선조 때에 禮曹正郞에 그쳤으나, 재주가 뛰어나고 문장이 시원스러웠으며, 특히 시를 잘 지었다. 한문 소설인 '수성지'와 '원생몽유록'을 지었다. 벼슬에는 뜻이 없어 전국을 노닐며 시와 술로 울분을 풀었다. 시국을 慷慨하는 志士적 인물이었다. 백호집에 700여수의 漢詩가 전한다.
사화들이 난무(1498년 무오사화, 1504년 갑자사화, 1519년 을묘사화, 1545년 을사사화)하는 시대적 상황에서 벼슬길이 고난의 연속이었을 것이고 시대상황에 대한 절망이 여성에 대한 탐닉과 추구로 나타났을 수 있다. 3 1운동의 실패에 따라 그 시대 시인들이 허무주의와 관능에 빠졌던 시의 역사 (주요한- 불놀이, 이상화- 나의 침실로)로 볼 때. 시대에 대한 자포자기의 마음이 그가 여성에 몰입할 수밖에 없도록 한 것은 아닌가하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는 세상만사 너저분하지만 다만 시가와 미녀는 사랑할 만하다라고 말했다..
청초 우거진 골에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엇난다.
홍안(紅顔)은 어디 두고 백골만 무텻는다.
잔(盞) 잡아 권할리 업스니 그를 슬허하노라.
작자는 당대의 대문장가로서 명산(名山)을 두루 찾는 풍류인 이었다. 그가 평안도 평사(評事)로 부임해 가는 길에, 이미 세상을 떠난 황진이의 무덤을 찾아가서 읊은 노래이다. 황진이가 살아 있을 때 서로 교분이 있던 작자가 풀섶에 덮힌 황진이의 무덤을 보고 그녀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지은 시조로, 후에 이 사실이 말썽이 되어 양반으로서의 체통을 지키지 못하였다고 해서 파면되었다고 한다.
'청초'와 '홍안', '백골' 등은 색채적인 대조를 이루어 시어 배열의 묘를 살렸고, '자난다 누어난다'와 '무쳣난이'는 이미 죽은 황진이의 무덤을 향해 허탈하게 묻는 말로 작자의 애절한 심정을 잘 나타내고 있다. 평소에 함께 시주(詩酒)를 나누며 연분을 나누었던 명기 황진이의 죽음을 슬퍼하는 마음이 솔직하게 드러나 있다.
성격 : 평시조, 애도가, 연정가
표현 : 대조적(색채) 심상
주제 : 떠난 임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 인생무상
북창이 맑다커늘
북창(北窓)이 맑다거늘 우장 없이 길을 난이
산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로다.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얼어잘가 하노라.
작자가 평양의 명기(名妓)였던 한우(寒雨)에 대한 구애의 표현으로 이 시조를 지었다고 한다.
이 시조의 중장에서의 '찬비'는 중의적인 표현으로 기생 '한우'를 비유한 말이다. 어느 날 작자가 한우를 찾아가 대작을 나누다가 취기에 흥이 돋자 '찬 비를 맞았으니 얼어서 자야겠다.'고 하는 작자의 말에 한우가 그 뜻을 알아차리고 애정에 대한 화답가를 지어 보냈다고 한다. '한우'를 '찬비'에 배유한 재치가 돋보이고, 종장의 '얼어잘까'에는 해학적인 면모가 나타나는 작품이다.
성격 : 평시조, 연정가(戀情歌)
표현 : 대구법, 중의법
주제 : 구애의 은근한 호소
참고 : 이 시조에 대한 한우의 화답시
어이 얼어 잘이 므스 일 얼어 잘이
원앙침 비취금(翡翠禽) 어듸 두고 얼어 자리
오늘은 찬 비 맛자신이 녹아 잘까 하노라.
조선 선조때, 임제가 평양 기생인 한우에게 읊어 보낸 <한우가 : 북창이 맑다커늘∼>에
대하여, 한우가 화답한 노래이다.
한우와 함께 술잔을 나누던 임제가 '찬 비 맛잣시니 얼어 잘까 하노라'하는 노래를 읊었다. 그러자 한우는 그 마음을 모르는 척 '어이해서 무슨 일로 얼어 주무시려고 합니까?'하며 노래를 보낸 임제의 마음을 슬쩍 떠보았다. 그리고 찬비를 맞은 임제를 따뜻하게 녹여 자겠다는 한우의 표현에서 서로에 대한 은근한 애정이 오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직접적인 표현이라기보다는 은유적이고 간접적인 표현의 비유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찬비는 한우의 이름을 빗댄 표현이다. 한우의 시조는 이처럼 자신의 이름을 우의적으로 이용함으로써 시조의 서정적 분위기가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유희적이면서도 순발력있는 기지를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