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冬
) |
|
마른 풀 섶 사이로 알밤이 축축 떨어지는 소리를 내며
가을이 종말을 고하고 |
청록의 소나무 잡목 사이로 바싹 마른 들풀이 가벼운
바람에도 사그락 소리를 |
내면 이내 겨울이다. |
|
내 고향의 겨울은 여느 산촌과 달리 좀 더 일찍
찾아왔다. 늦가을부터 남한강 |
은 낮과 밤의 급격한 기온 차로 아침과 저녁은
낮에 데워진 강물이 물안개가 |
되어 해무처럼 피어 오르는 날이 많아진 때문이다. |
|
이때부터는 여름 내 맑은 물소리를 내며 유유히 흘러가던
강물 소리도 멈추고 |
오직 숨죽이며 강 물 속의 밝은 빛깔의 자갈 돌을
어루만지는 데만 온 정신을 |
쏟는다. 하지만 소리없이 흐르는 강물이 어디
있으랴? 다만 사람들은 겨울이 |
오면 이를 귀 귀 울이여 들어보지 않으려 할
뿐이다. |
|
산과 강이 경계를 이루는 곳에서 조금 산 위 쪽에는
마을로 들어 오고 나가는 |
비포장 길이 있었다. 초등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늘 같은 이 길을 이용해야 |
했다. 가끔 강물이 범람하면 일부 잠기기도 하지만
도로가 유실된 적은 한 번 |
도 없었으므로 장마 때문에 학교를 쉴 이유는 좀처럼
기대하기가 어려웠다. |
|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이 필요하 듯 겨울에는 삭풍을
견뎌낼 수 있는 것이라곤 |
산에 기대는 것 밖에 없다. 다행히 산들은 다들 북서쪽으로 비스듬히 자리를 |
잡아 겨울에 해를 등지고 있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럼에도 나의 고향 |
은 겨울은 몹시 추웠다.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지 않아도
강물은 얼어붙은 날 |
이 그렇지 않은 날보다도 더 많았다. 동장군이 기승을 부릴 때면 강 전체가 |
얼어 붙어 강 건너를 건너 일이 생길 때면 얼음 상태를
살펴 조심스레 강을 |
건너지 않으면 안될 일이다. |
|
봄이 오는 것을 제일 먼저 알아차리는 것 역시
강물이다. 봄이 오면 강물이 |
풀리면서 얼음이 깨지는 파열음이 조용한 산촌을 시끄럽게
한다. 긴 겨울을 |
지루하게 보내다 어느 날 듣게 되는 이 소리는 어쩜 반가운 소리에
해당된다. |
|
나의 고향에서의 한 겨울은 유유자적한 계절이기도
하다. 전통적인 농업은 |
봄부터 가을까지 고단하게 보낸 농부들에게 적어도 겨울
한 철은 쉬도록 하는 |
지혜를 베푼다. |
|
그러나 온 겨울 그냥 놀고 쉬는 겨울은 분명
아니다. 가난한 농부의 자식들은 |
이미 이 때부터 게으르면 안된다는 훈련을 집중적으로
받는다. 바로 나무하기, |
새끼 꼬기, 가마 짜는데 필요한 농군으로의 수업을
일찌감치 받는다. 그것도 |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서부터! |
|
강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산들을 따로 이름을
부를 때는
북쪽의 |
산은 '웃삐리', 남쪽의 산은 '아래삐리'라
불렀다. 바위가 많은 산들인데다 |
나무들을 워낙 샅샅이 하여 숲은 무성하지 않았지만
소나무들은 간간히 자라 |
눈이라도 오는 날은 눈을 청솔에 가득 이고 겨울 바람에
저항하는 모습을 볼 |
수 있어 좋았다. |
|
초목은 한 겨울에 살아 있음을 느끼려면 초록의 빛을
띠어야 한다. 마른 들풀 |
이 갈색을 띠듯이 이미 생명이 끝난 것들은 검거나
회색에 가깝다. 고향 마을 |
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산의 이름은
삼성산이다. 하지만 고향사람들은 |
어떤 이유에선지 누구도 삼성산이라 부르지
않았다. 절골을 지나 좀 더 깊은 |
산 속으로 올라가면 '큰골'과 '작은골'로 경계가
나눠진다. 겨울에 좋은 땔감 |
을 얻기 위해서는 '큰골'이 제격이다. '작은골'은 여름이 풍성해서 겨울에 |
땔감으로 요긴하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주로 아궁이에
넣었다 하면 순식간에 |
다 타버리는 건초를 베어 오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
|
방흥리와 단돈리와의 삼성산의 경계는 '큰골'의
음지면에서부터 절골의 산등 |
성이로 이어져 '솔봉'까지 였으므로 나의 고향사람들이
겨울 땔감을 구하기 |
위해 단돈리 사람들보다 엄청난 노력을 많이 했음을 알
수 있다. |
|
수 백번은 올랐을 ''동산재'와 '비탄음달'은 소나무
숲이 무성하였으나 '비탄 |
음달'은 삼판을 한 후 낙엽송을 심었으나 숲은 이룬
것은 끝내 보지 못하였다. |
|
겨울은 밤이 길어서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줄곧 마실을
다녔다. 마실을 재미 |
있게 하는 것은 장기를 두거나 화투를 치는 재미가
쏠쏠했기 때문이다. 주로 |
둘이서는 장기를, 화투는 친구들의 숫자에 맞춰 민화토,
육백, 뽕 그리고 둘이 |
짓고 땡 등 다양한 실험을 했다. |
|
화투에는 언제나 내기가 동반됐다. 초등학교 때는 성냥
따먹기 그 이후부터는 |
돈내기나 술사기가 내기의 일종이다. 동네 가구수가 적은데다 가게는 한 곳 |
뿐이어서 술마시기도 용이하지 않았고 마셨다 해도 조용히
집에 들어가 잠을 |
청하는 것이 대체적인 추세여서 나의 친구들은 늘 조용한
겨울을 보내기 일쑤 |
였다. |
|
동네 앞에는 수천평 정도의 논들이 있어 겨울에는 이
곳에 사람들이 모여 운동 |
을 즐겼다. 여기서 운동이라 함은 축구와 야구를 말하는데 주로 축구 경기가 |
펼쳐졌는데 어쩌다 경기에 나가면 나는 늘 문전에서
가까운 수비를 맡았다. |
|
언제나 그랬듯이 축구경기는 골을 넣은 사람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
골을 넣으면 골 세레모니는 골 넣은 사람만이 할 수
있고 나머지 사람은 그저 |
같이 기뻐하고 골 넣은 사람에게는 축하의 말을 잊지
말아야 한다. |
|
'겨울을 보내는 동심은 어떠했을까?' 지금에 와서야
다시 반추해 본다. 회고 |
라고 하기에는 아직 젊기에 그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동심으로 다시 |
돌아갈 수 없어 이제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반추하여 볼
수 밖에 없지 않은가? |
|
먼저 내 고향은 눈이 많이 내렸다. 어떤 때는 발목이 푹푹 빠지도록 며칠이고 |
눈이 왔다. 눈은 언제나 소리를 내며 내렸다. 숲에 내리는 눈들은 나무에 |
부딪히거나 마른 가랑잎에 쌓이느라 사각사각 소리를
낸다. 하지만 강물에 |
떨어지는 눈들은 소리도 그리고 흔적도 없다. 푸른 하늘에 수 없이 구름이 |
머무르고 또 지나갔지만 푸른 하늘은 구름의 그 어떤
흔적도 남겨두지 않은 |
것처럼! |
|
나의 고향은 눈 내리는 날은 꼭 세가지 아름다운 색깔을
띠었다. 초록 소나무 |
에 아무리 눈이 내려도 소나무를 압도할 수 없어 초록은
청청했고, 넓은 들판 |
과 강변은 힌눈으로 뒤 덮혀 설국인데도 강물은 혼탁이
없는 청색으로 남았다. |
그런데도 힌눈은 언제 끝날지도 모른 채 줄 곧 내리고
있었다. |
|
어떤 눈 오는 날은 뒷 산에서 노루가 눈 속에 갖혀
홀로 눈과 사투를 벌이는 |
진풍경도 볼 수 있었다. |
|
그럼에도 눈 오는 날은 마냥 즐겁기만 했다. 한밤 중에
눈이 내리는 것을 보며 |
잠들었다가 아침에 깨어 온 세상이 힌 눈으로 뒤 덮혀
있을 때 그 어떤 시어 |
로도 감상의 반도 채우지 못할 때 참 많이도 행복
했었다. |
첫댓글 장문입니다.
동작게 동자개, 힌눈 흰눈, 말(표준어를 모름) 말풀, 청머루감 청머루가?, 둘이?짓고 땡 돌이?짓고 땡, 튀우면, 틔우면, 2학년면 2학년만, 어욱? 더욱, 꽃히는 꽂히는, 아리러니컬 아이러니컬, 부딛히며 부딪히며, 갖혀, 갇혀
문장력, 표현력, 너무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