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More!
본문 : 이사야 53 :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Q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해서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셨는가?
목사님 : 오늘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한 구절의 의미를 묵상하고, 십자가의 관점으로 이 말씀을 통해 깨닫게 하신 내용들을 자유롭게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묵상
이숙현 : 어렵네요. 저는 요즘 요한일서를 읽고 있는데 사랑의 사도라고 알려진 요한답게 무지무지 사랑을 강조하더라구요. 처음에 그 말이 식상하게 다가오다가 요즘은 느낌이 달라졌어요. 진리 차원에서 사랑을 바라보게 되더라구요. 예수그리스도를 사랑이란 단어로 쉽게 풀어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오늘 말씀도 늘상 들어온 말씀이라 피상적으로 알고, 또 그렇게 느끼고, 살아왔지만 저에게 피상적인 사랑이 진리로 다가왔듯이 허물, 죄악, 평화 같은 단어들이 예전보다 내 삶 속에 쉴새없이 부딪히고, 경험하는 현실적인 낱말들로 와닿는 것을 느껴요.
백봉주 :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이란 찬송가 가사가 떠오릅니다. 구원을 경험하고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해결해 줄 대상이 생겼기 때문에 두렵거나 숨기고 싶거나 답답하는 마음이 사라졌다는 거죠. 예수를 몰랐고, 복음을 모를 때는 핑계를 대고, 덮어씌우고, 어떻게든 내 스스로 내 고민이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모습이 많았는데 구원받은 후의 내 모습은 그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 내가 남에게 덮어씌우지 않고, 잘못했다 시인해버리는 단순함이 생긴 것이죠. 이것도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이라고 봐요.
이미향 : 레위기에 나오는 제사를 보면서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지만 왜 그런 방법으로 했어야 했나?라고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은혜를 느끼면서 깨달은 점은 ‘편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구나’라는 거였죠. 예전에 들은 예화 중에 어떤 사람에게 배표를 공짜로 주었는데 그 표를 받은 사람은 배 안에서도 짐을 힘들게 계속 들고 있고, 모든 게 다 공짜인데도 즐기지를 못하면서 배를 타고 가더라는 이야기였어요. 배표를 준 사람은 누리지 못하는 사람을 보고 얼마나 안타까울까? 자기 아들까지 내어주면서 모든 값을 다 치뤘는데 힘겹게 신앙생활 한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안타까워 하실까?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하셨는데 살다보면 ‘난 이게 더 편해. 예전부터 이렇게 살아왔는 걸’하면서 내 삶이 전혀 바뀌지 않고 전과 그대로 살고 있지나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양지훈 : 이 장은 구약에 쓰여진 건데 아직 존재하지 않은 분에 대한 예언이거든요. 어릴 때 이런 의심이 강했어요. 3천년이 지난 지금 그 일이 나를 위해 일어날 거라고 예언하는 걸 상식적으로 이해 못했죠. 그리고 2천년 전에 일어난 십자가 사건이 100년도 채 못 사는 사람이 받아들인다는 건 힘든 일이었어요. 나 때문에 2천년 전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거에요. 도저히 믿기지 않죠. 그런데 시간을 창조하신 하나님 앞에선 시간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됐죠. 하나님을 이해하는 데에 키포인트가 바로 이사야 53입니다. 2천년 전의 일이 나와 무슨 상관인지 이해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양집사님은 공과대 출신)
이미향/백봉주 : 여자들은 단순해서 잘 믿어요.^^
김길순 : 난 설교로 믿어졌어요. 그 때 정말 행복했어요. 예수 안에서 자유롭다는 생각이 들면서 정말 오랫동안 묶여있던 뭔가에서 해방된 느낌이었어요.
목사님 :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내 아내나 우리 어머니를 위해 지셨다면 아무 감정이 생기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여러분 각자와 나를 위해 지셨습니다. 우리의 과거를 땅에 묻고 예수 안에서 능력 있고, 담대하게 멋진 삶을 새롭게 시작하도록 하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십자가 사역의 가장 큰 목적은 과거를 못 박으려고 지신 게 아닙니다. 새로운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 지신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오늘 본문을 다시 읽어보시면 의미가 새로울 것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예수전도단 선교 여행을 떠났을 때의 일입니다. 밤에 밖에 나와 이어폰을 귀에 꽂고 길을 걸으면서 묵상을 하고 있을 때 가끔씩 돌아가면서 고함을 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소리는 “NO More"이었습니다. 나를 사로잡는 삶을 이젠 그만 끊고 싶다는 선포였습니다. 새로 시작하려는 다짐의 소리입니다. 여러분도 실패할 때마다 이렇게 외치십시오. ”그토록 어렵게, 그토록 원하는 자유함을 주셨는데 언제까지 속박당할거야.“라고 말이죠. 여러분의 삶을 일으켜 세우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주시는 권면의 말씀으로 오늘 말씀을 마음속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내 인생의 모델링
발표자 : 박인래
내 삶과 신앙의 모델들
정식으로 기록하며 생각해보진 않았고, 오며가며 출퇴근 길에 틈틈이 내 인생에 영향을 준 모델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해보았습니다. 한 가지 특이할만한 사항은 모델 중에 내 주위 가까이 있는 분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겁니다. 본이 되는 사람을 대부분 멀리서 찾는 게 그리 바람직한 현상은 아닌 것 같습니다.
1. 어머니
내 아버지는 한마디로 밖으로 도신 분이었어요. 아버지가 나에게 끼친 삶의 영향력은 거의 없습니다. 반면에 어머니는 삶에 대해 무척 철저하셨고, 엄격하셨습니다. 3남매를 당신 혼자서 돌보시면서 삶의 책임감을 무언으로 가르치신 분입니다. ‘너는 이렇게 살아라’라든지 ‘뭐가 돼라’ 이런 말씀은 전혀 없으셨고, 오로지 삶 자체로 교육을 하신 분이죠.
2. 하용조 목사님
이 분은 한마디로 나에게 ‘성경을 보는 눈’을 길러주신 분입니다. 1500년 동안 각기 다른 시대, 다른 저자들이 기록한 성경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고, 인과관계로 타이트하게 이어지지 않고 곳곳에 점프가 많아 읽는 것조차 어려움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더구나 그런 성경을 목회자들이 입맛대로 뽑아 예수 믿으면 뭐가 잘 된다는 식의 주관적이고 편향적인 설교가 많기도 했구요. 하목사님의 강해설교를 접하면서 ‘성경 보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 덕분에 지금도 QT나 말씀을 읽을 때 상당한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3. 김동호 목사님
높은 뜻 숭의교회의 담임목사님이십니다. 영국에 있을 때 몸이 너무 아파 주일날 교회를 하루 빠진 적이 있습니다. 꿩대신 닭으로 방치(?)해 두었던카세트 테잎을 꺼내 들었는데 주제 하나 가지고 소위 퉁치시는 설교에 귀가 번쩍 뜨이더군요. 특히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고자 하는 마음과 초심을 읽지 않는 모습이 너무 멋지고 존경스러웠습니다. 그 후로 한국에 와서 명동에 있는 직장에 다녔는데 우연치 않은 인연으로 그 분과 첫 대면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지금도 교회개혁의 최전방에 있는 분입니다. 섬기던 대교회를 두고 다시 개척을 하시는가 하면 지금 교회가 부흥되어 4개로 나누는 개혁을 단행하셨습니다. 현실과 타협하는 한국의 목회자와 믿는 사람들이 맛을 잃어가는 현실을 일관된 모습으로 개혁하고자 하시는 그분을 전 지금도 존경하고 그 분의 철학을 따르고자 나름 노력하고 있습니다.
4. 프란시스 쉐퍼 박사
청년 때 기독교관을 정립시켜준 고마운 지식인 중 한 분이십니다. 지난번에 임집사님이 언급하셨기 때문에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5. 필립 얀시 (작가)
이 분은 저에게 하나님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갖게 해주신 분입니다. 제목을 보더라도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예수’ '하나님, 내 마음이 상할때 어디 계셨습니까?' ‘아 내안에 하나님은 없다’ 등 범상치 않은 책이란 걸 알 수 있는데 제목만 보고 판단하면 반기독교적인 도서로 오해할 수 있지만 사실은 정반대입니다. 주일학교에서 다윗 얘기만 나와도 ‘난 다 알아’ 하고 짜증을 내죠. 뻔하니까요. 그런데 이 분은 사실 위주의 서술을 넘어서 통찰력을 가지고 서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남이 생각지 못한 부분을 창조적으로 접근하여 해결합니다. 예를 들면 ‘내 안에 하나님은 없다’는 책을 읽으면 반대로 정말 깊이 있는 하나님을 만나도록 해줍니다.
내 인생의 모델링을 그려보면서 한 가지 느낀 점은 ‘좋은 스승이 없었구나’란 점이었어요. 요즘도 늘 하는 기도 중에 하나는 “하진이가 좋은 스승을 만나게 해주세요.”입니다. 좋은 스승을 만나지 못한 것은 인생의 뻥 뚫린 구멍과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목사님 : 이렇게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도 그 사람이 좋은지를 모를 때가 많다는 것이죠. 놓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저랑 김동환 작가님의 만남을 예로 들자면 귀한 만남을 하나님께서 제공해 주셨는데 단지 제가 미술에 문외한이고, 관심도 없고, 그 분야의 비전도 없다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이를 그냥 흘려보냈다면 지금 난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을 거란 생각을 자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다행히도 그 기회를 잡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사람을 잡았고, 그 뒤에 펼쳐질 비전을 기대하고, 이러한 사역들을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도 아심 가족들과 같은 축복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아심도 우리를 통하여 축복의 문이 더 활짝 열리리라 믿고요. 앞으로 하나님께서 개인 각자에게 보내주시는 하나님의 사람과 기회들을 적극적으로 잡는 쪽으로 생각을 전환해 봅시다. 지금도 하나님은 당신에게 누군가 또는 무언가를 계속 제공해주고 계시다는 걸 잊지 맙시다.
발표자 : 김길순
내 삶과 신앙의 모델들 - 나의 엄마, 아빠, 그리고 김성길목사님
저는 어렸을 때 교회에 대한 상처가 있었어요. 평소 다정한 장로 집사님들이 어느 날부턴가 목사님을 내쫓기 위해 온갖 모략과 협박을 하게 되었고, 목사님은 급기야 우리집으로 피신을 오게 되었어요. 저희 부모님이 목사님을 보호하는 한편 분쟁을 막으려고 노력하신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해요. 특히 엄마는 주일 강대상에 손수 꽃꽂이를 하실 정도로 교회일에 헌신적이셨죠. 주일 아침엔 TV에서 재밌는 만화를 많이 하잖아요. 교회 가기가 무척 싫었는데 부모님 앞에선 절대 안 통했어요.
커서 남문교회(현 시은소교회) 를 다니게 되면서 김성길 목사님 설교를 듣고 ‘예수 믿는 게 이런 거구나’하고 새롭게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의 재미를 느꼈던 거죠. ‘남문교회로 옮기지 않았으면 내가 아직도 예전의 그런 모습으로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웃지도 않고 찬바람 쌩쌩 날리면서 말이죠.
엄만 지금도 교회 일에 헌신적이시고 매사에 성실하세요. 목사님을 모시는 일에도 변함없으시고요. 부모님의 그런 좋은 모습들이 지금 제 삶과 신앙에도 아주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