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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도덕과 윤리에 대한 정의 1. Gustafson Gustafson의 윤리의 특색은 인식의 과학적인 방법을 그의 윤리에 도입하고 있다. 이것은 지금까지 이루어 왔던 인간 중심의 오류를 극복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해석하자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 근거는 인간이 아니라 신과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주어져야 한다. 우주의 목적은 결코 편협한 인간의 구원이 아니다. 그것은 신의 영광의 찬양이며 모든 피조물의 공생이다. 그는 분명한 자기 주장보다는 오늘날 적당한 신학적 윤리를 형성하는데 바람직한 방법들을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 실존에 직면하여 신학적 윤리적 성찰을 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신학적 확신이 도덕적 실존의 문제들을 언급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이고 불가결한 역할을 할 수 있고 또 하여야 한다고 본다. 그는 신학적 윤리에서 분석의 역할을 대단히 강조한다. 그의 윤리는 탈 인간화를 강조하여 인간의 관심과 시각을 확장시키고 있다. 즉 신이 인간보다 더 중요하다는, 자연과 인간과의 조화를 강조해야 한다는 공존과 조화의 관심이 있다. Gustafson은 인간의 현실적인 행동으로부터 제기된 몇몇 단계들에 대한 주의 깊은 반성의 과제를 언급하는데 종종 사용되어진다. 그것은 이론적인 과제로서 도덕적 행동이 일어나는 방법들 곧 도덕적 삶의 가정과 전제에 대한 반성이다. 도덕에 대해서 그는 인간이 도덕적 행위에 있어서 인간이 주체로 돌아가는 것을 주장한다. 그래서 인간 주체의 본성을 이해하는데 주의를 집중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성서는 도덕적 판단을 위한 정보의 원천이 된다고 본다. 세상을 신심 적으로 해석할 때 실제적인 도덕적 질문은 "신이 우리를 무엇이 되도록 하고 있으며 또 무엇이 될 것을 요구하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에게 무엇을 하도록 하고 있으며 또 무엇을 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가? 이다. 이것에 대한 대답은 인간은 인간 지식과, 다른 모든 것과, 신과 그들의 관계에 적당한 방법으로 관계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즉, 도덕은 인간의 현실적인 행동들에 대한 언급을 위해 종종 사용되어진다. 그것은 실천적인 과제로서, 한사람의 행동을 그 사람이 믿는 옳음과 선함의 빛에 따라 방향을 정해 주는 역할을 한다. 2.머클렌던 머클렌던은 윤리란, 도덕에 대한 이차적이며 이론적인 반성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의 도덕과 윤리의 차이를 살펴보면, 윤리와 도덕은 이론과 실천으로서 연결되며, 윤리는 도덕에 대한 연구이며 도덕은 옳음과 그름, 선과 악, 덕과 사악에 대한 관심에서 조망된 인간의 현실적 행위와 관련되어 있다. 항상 그렇게 적용되지 않지만, 그의 윤리는 도덕, 곧 행동과 삶의 방식에 대한 이론을 나타내는데 사용된다. 즉 윤리는 도덕에 대한 이론적 표현(반성)으로 본다. 이렇게 볼 때 머클렌던에게 있어서 도덕이란 인간의 삶의 행동을 다룬 것이라 할 수 있다. Ⅱ. 기독교 윤리란 무엇인가? Gustafson은 생활의 기본 원칙을 명백하게 밝히고 도덕적 행위를 해야 하는 것을 해석하는데서 신학이 반드시 수반되며 윤리는 신학적 윤리가 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세 가지 중심점을 두고 신학과 윤리의 관계를 설명한다. 그의 {의료 윤리에 대한 신학적 공헌}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윤리는 신학과 같이 인간의 경험에 대한 반성이다. 그것은 도덕적인 차원에 있는 인간의 경험에 대한 반성이다. 도덕적 차원이 발생하는 인간의 경험의 특징적인 양태는 행동이다. 윤리는 신학과 같은 하나의 지성적인 행위이다. 윤리의 중심 되는 주제는 인간의 행동이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인간의 행동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도덕적인 가치와 도덕적인 원리에 의해서 설명되고 통제되며 판단될 수 있는 그러한 인간의 행동만을 말한다. 도덕 철학자들의 과제는 이중적이다. 그 하나는 도덕적 행위(도덕적 판단과 선택과 행동을 포함하는)를 위해 필요한 조건들을 분석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어떤 도덕적 원리와 가치들이 인간의 행동을 통제하는 지를 규범적으로 밝히는 것이다."
즉, Gustafson의 윤리의 출발점은 신학의 출발점과 같으며, 그것은 곧"인간의 경험"이다. ① 선의 위치와 본성 - 그는 선의 위치를 하나님 안에 설정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은 선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은 여기서부터 윤리를 출발한다. 하나님은 선하시기 때문에 기독교인은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모든 것을 창조하셨으며 그것들이 선하다고 보셨다는 것이다. 기독교 윤리학은 하나님의 존재와 선하심을 해석하고 상기하도록 방향이 정의되어 있다. 이때 인간은 하나님 자신의 선하신 행위에 일치하게 그리고 하나님이 선하시다고 알고 있는 인간의 지식에 일치하게 선을 추구하고 행위하며 세계를 관리해야 한다. ② 인간의 본성 - 그는 윤리가 항상 인간관계를 설명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인간을 하나님과 관계하여 이해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인은 인간의 도덕적 실존을 해석할 때 대체로 하나님과의 관계에 집중한다. 여기서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므로 그가 하는 어떠한 것에도 최후적 권위를 주장할 수 없다. 인간은 행동한다고 하기보다는 행동되어진다 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 여기서 인간은 역사의 활동에 창조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여기서 기독교 윤리는 인간이 하나님께 대한 의무 아래 있으며 하나님께 대하여 복종적 봉사의 생활을 하도록 부름을 받았다는 것이다.
③ 도덕적 행위의 표준 - 그에 의하면 행위의 표준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할 수 있게 하시고 하도록 요구하시는 것에 관계한다. 즉 인간들이 도덕적 책임을 해석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계시하는 틀 안에서, 그리고 인간이 사랑의 복종을 하도록 부름을 받은 존재로 이해하는 틀 안에 설정되어 있다고 한다. 여기에서는 하나님 앞에서의 책임이 강조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인간의 도덕적 행위는 그 궁극적 표준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두고 있으며, 그에게 충성하는 것으로 하며, 그것에 따라 다른 여러 가지 표준들은 상대화시키는 것이 된다. 요약해 보면, 신학은 종교적인 차원의 인간의 경험에 대한 반성이고, 윤리는 도덕적인 차원의 인간의 경험에 대한 반성이다. 이러한 그의 신학적인 윤리는 종교적인 도덕적 경험에 대한 반성이다. 종교적인 도덕적 경험이란 인간의 도덕적인 경험이 하나님의 실재에 대한 경험의 맥락에서 취급 될 때 도덕적 경험은 종교적인 도덕적 경험이 된다. 이 세계에는 다양한 종교들이 존재하고 있는데 그러한 다양한 종교의 경험들은 다양한 신학과 신학적인 윤리들을 만들어 낸다. 다양한 신학적 윤리를 기독교 윤리로 만드는 것이 그리스도와의 관계인 것이다. Ⅲ. 기독교 윤리와 일반 윤리와의 관계 윤리란 인간 행위의 도덕적 체계를 다루는 것으로서 주체적 삶의 현장에서 우리 행위의 의미를 물으며 그것이 의미되게 하는 규범으로서의 선을 문제 삼는다. 기독교 윤리 역시 인간 행위에 대한 도덕적 체계를 문제 삼지만 일반 윤리와는 차이가 있는데 기독교 윤리는 기독교라고 하는 종교를 삶의 중심에 두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윤리이기 때문이다. Gustafson은 기독교 윤리는 완전히 비합리적인 것도 아니며 또한 전체로서 합리적인 것도 아니라고 했다. 따라서 윤리가 기독교적일 수 없으며, 기독교적이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에 반대할 뿐만 아니라, 윤리가 기독교적일 수 있으며, 기독교적이어야 한다는 견해에도 반대했다. Gustafson의 기독교 윤리와 일반 윤리의 연속성과 차이점을 살펴보면, 첫째, 모든 사물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되었고 또 그 분은 모든 만물의 주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의미에서 윤리는 기독교적이어야 하며 기독교적인 것이다. 둘째, 기독교인의 윤리는 그 공동체가 주님이신 예수에 절대적으로 순종키 위해서 불려졌기 때문에 배타적으로 기독교적이며 기독교적이어야 한다. 연속성에 있어서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란 관점에서 일반 윤리와 기독교 윤리가 연속성이 있다. 이 관점에서는 특정한 기독교적 윤리라는 것은 없다. 그러나 기독교적 윤리의 전 내용이 다 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예수에게서 계시된 자기 희생적인 봉사로서의 의무는 특정한 종교적인 의무로 누구에게나 합리적으로 보편 타당하게 인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특정한 의무를 윤리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종교적인 것으로 볼 때 기독교 윤리와 일반 윤리는 상호 교환적인 것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차이점은 기독교인은 예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는 서로 차이 가 있다. 이 말은 윤리가 기독교적일 수 있으며, 기독교적이 어냐 한다는 것이다. 곧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기독교적인 삶의 일부로서의 일반적인 도덕적 의무뿐 아니라 특정한 것을 따라야 하는 의무가 지워져 있음을 의미한다. 기독교인에게는 특정한 윤리가 부과되어 있다는 것이다. 엄격히 말하며 그것은 전혀 윤리가 아니며, 일종의 종교적인 의무를 가지는 종교적인 삶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 윤리라는 말은 "기독교"와 "윤리"의 합성어로서 서로 대치되는 부분이 있다. 즉 윤리란 합리성에 의해 지배를 받지만, 기독교는 합리성에 지배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윤리는 합리적인 보편성과 기독교라는 특수성을 종합하는 말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기독교 윤리와 일반 윤리의 차이점은 인간이 하나님께서 가능케 하며 요구하는 것의 있음과 없음에서 구별된다. 즉 기독교 윤리는 하나님의 존재 앞과 기독교 공동체 속에서 인간의 도덕적인 삶을 규정하는 것을 말하며, 일반 윤리는 이론적인 추론에만 의지하고 있다. Ⅳ. 기독교 윤리와 신학과의 관계 1. 기독교 윤리의 형태 1) 기독교 윤리의 신학적 연관성 칼바르트는 기독교 윤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떻게 바로 듣고 그 명령에 복종하느냐 그 과제가 된다고 말하고 있다. 본회퍼는 기독교 윤리는 인간 자체의 문제가 똑같이 중요하고 어떻게 죄인으로서의 인간이 새 로운 인간이 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느냐의 문제는 기독론과 관련성을 갖게 된다. 티리케는 그의 책 {신학적 윤리}에서 성령론적 윤리를 대두시키고 있다. 요한 웨슬레는 그의 성결의 개념이나 그리스도인의 완전 같은 이론은 성령론적 윤리에 가깝다고 하겠다. 2) 신 중심적 윤리와 규범 신 중심적 윤리적 규범은, 첫째, 사회적 요청이 형식화되고 제도화된 것이며, 둘째, 절대적인 윤리적 당위성이 될 수 없으며, 셋째, 때문에 종교적 뒷받침이 요구되는 "하나님이 명하시는 규범"이다. 기독교적 규범 역시 "하나님이 명하셨기 때문에"라는 기본적 명제가 규범의 기초가 된다. 이것을 칸트(Kant)는 선험적 규범이라고 말했고, 부루너(Brunner)는 신적인 명령, 니이버(H.R. Niebuhr)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표현했다. 이러한 신 중심적 규범과 윤리의 문제점은, 분명한 행동의 방향, 원칙을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것을 행동에 옮길 자리에 대해서는 그리고 그 행동의 주제에 대해서는 관심도가 낮거나 외면한다고 할 수 있다. 기독론적 윤리와 강조 점은 기독론적인 윤리가 도덕적 자연의 문제와 상황의 문제를 들고 새로운 도덕의 가능성을 강조하고 있다. 3) 그리스도 중심적 윤리와 도덕적 주체로서의 인간 인간 자신의 도덕적 자아 형성의 신학적 문제는 개신교가 타율적인 규범의 문제에만 치중하여 행동의 주체로서의 도덕적 자아 형성의 문제를 등한시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행동의 자리로서 상황 문제는, 신관적 윤리는 율법주의에 빠질 위험성이 있으며, 기독론적 윤리는 상대주의와 윤리적 아노미에 빠질 위험성이 있으나, 신율적 윤리는 타율도 자율도 극복 할 수 있다는 점이다. 4) 새로운 방향 추구 기독교 윤리가 새로운 방향을 추구하는 것으로 성령론적 윤리를 들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신관적 윤리와 기독론적 윤리의 폐단을 극복할 수 있다. 2. 성령론과 윤리 1) 성령론과 윤리 성령론적 윤리의 출발점은 타율과 자율의 양극화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또는 명령과 표현이 어떻게 종합될 수 있느냐가 성령론적 윤리의 출발점이다. 헐뭍 티리케(Hulmut Thielicte)는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성령과의 관계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성령론적 윤리란 우리 안에서 육이 우리를 좌우하지 않고 성령이 우리를 다스리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문제점은 오늘날 기독교 윤리가 타율적인 명령과 자율적인 서술 사이에 끼어서 헤어날 길이 없다는 점이다. 2) 성령론적 윤리의 특색 성령론적 윤리의 특징은, 인간에 대한 주님의 구원의 능력에 대한 새로운 각성, 영적인 갱신, 깊은 사랑의 교제에서 결과하는 공동체 개념과 자연성, 자유성, 성실성이며, 거룩과 경건을 목표로 삼고 전진하는 것이며 최종적 목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같이 완전해지는" 데 있다. 즉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다는 일치성으로 성령의 확증을 말한다. 3) 현대 윤리의 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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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智本知神 원문보기 글쓴이: Heal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