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목사의 짧은 이야기 35 (나를 바꾸는 언어)
우리나라는 물을 표현하는 말이 하나 밖에 없습니다. 물은 그냥 물입니다. 다만 상태나 느낌에 따라 형용사만 바뀔 뿐입니다. ‘시원한 물’, ‘미지근한 물’, ‘뜨거운 물’,...
그러나 일본에는 물을 표현하는 단어가 세 가지나 됩니다. 일본어에서 그냥 자연 상태의 물은 “미즈”, 시원한 물은 “히야”, 그리고 뜨거운 물은 “유”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일본에서 물을 주문할 때 앞에 “오~”를 붙어 “오미즈”, “오히야”, “오유”라고 정확하게 말해야 알아듣습니다.
비슷한 경우가 또 있습니다. 우리에게 내리는 눈은 그냥 눈입니다. 그러나 에스키모인들에게는 눈을 표현하는 단어가 수십 가지나 됩니다.
왜 이런 걸까요? 일단 환경의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섬나라 일본은 물의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물에 대한 표현이 세분화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에스키모인들은 평생 눈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들에게는 눈은 그냥 단순한 눈이 아니라 삶의 중심입니다. 그러니 눈도 수십 가지의 눈으로 분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
관심이 있으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의 능력은 관심에서 출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아이들을 키우는데 있어서, 주입식 교육이 별로 효과가 없는 것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능력은 아이의 관심에서 생겨나는 것인데, 이것을 밖에서 밀어 넣으려고 하니 안 되는 것입니다. 바른 교육은 아이들의 관심에 대한 배려와 안내입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관심이 있는 곳에 노력과 물질이 집중되게 되어있습니다. 저는 책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그래서 제 방에는 책이 가득합니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책은 사게 됩니다. 그리고 행복해합니다.
인생의 행복도 결국 관심 있는 곳에 투자하는 삶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현대인들은 어른이고 아이들이고 관심을 두는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살아갑니다. 그러니 현대인들이 80세를 살아간다고 할 때 평균 20여일 밖에 웃지 않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언어심리학적인 이유입니다. 언어가 다르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각 나라의 언어가 다르기에 생각도 다르고 그에 대한 삶도 달라진 것입니다. 사면이 물인 일본은 물에 대한 언어가 다양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물에 대한 생각도 우리와는 다르고, 물을 이용하는 삶도 우리와는 다릅니다. 언어가 삶을 결정한 것입니다.
우리를 바꾸는 것은 그래서 우리 생각이 아니라, 우리 언어입니다. 오늘 하는 이야기가 바로 우리의 생각이 되고, 우리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설교자로서 무척이나 이러한 언어심리학적인 경험을 많이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과 세상을 향한 뜻들을 매일 선포합니다. 그런데 선포하는 중에 내 생각과 삶이 변화되어지는 경험을 무척이나 많이 하게 됩니다.
물론 준비한 원고이지만 설교하다보면, 내 생각이 달라질 때가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더 옳고 정확한 것일 때가 너무 많고, 그래서 설교하면서 은혜를 받습니다. 그리고 설교한 대로 살려고 노력합니다.
관심이 삶과 능력을 만들어내고, 언어가 새로운 생각들과 삶을 조각해갑니다. 내 영혼이 진심으로 원하는 새로운 관심을 찾아내십시오. 그리고 이제부터 말하는 것을 매우 정성스럽게 해보십시오. 그러면 새로운 삶이 펼쳐질 것입니다.
첫댓글 관심이 삶과 능력을 만들어내고, 언어가 새로운 생각들과 삶을 조각해 갑니다. 내 영혼이 진심으로 원하는 새로운 관심을 찾아내십시오. 그리고 이제부터 말하는 것을 매우 정성스럽게 해보십시오. 그러면 새로운 삶이 펼쳐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