즈바리 수도원에서는 경치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곳이다.
기독교 교인이어서 그곳에서 수도원의 의미를 추가하면 더욱 좋을 것이고...
바로 앞에 보이는 무츠헤타는 내일 코카서스산맥에서 내려오면서 들러보기로 하여 통과한다.
지도를 보면 우리가 북쪽으로 타고 올라가는 E117 고속도로는 코카서스 3국 중에서 유일하게 육지에서 러시아로 통하는 유일한
길처럼 보인다. 코카서스 산맥에 가로막혀 있어서 이곳만 길이 나 있는 듯하다.
이 길을 따라 올라가는 길에 진발리 호숫가에 있는 아나누리 요새 콤플렉스를 들러서 성도 둘러보고 그 안에 있는 교회도 둘러본
다고 한다.
오늘 가고 보고 해야 할 곳들이다.
진발리 호수들 들어가기 전에 길가에 장창을 든 군인들의 조각상이(Monument of 300 Aragvians)이 보이는데 이란의 카자르 왕조
의 아가 무함마드 칸(Agha Muhammad Khan)이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를 침공해 왔을 때 1795년 9월 11일에 이곳에서 군대를
맞아 죽음을 각오하고 전투를 하다가 전원이 사망한 곳이라고 한다.
이란의 군대에게 둘러쌓인 300인의 아라그비안 군인들....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했다고
그 결과 조지아의 왕이 피신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 주었다고 하며, 이곳이 전쟁을 하였던 곳이라는 것을 발굴하여 1959년에 기념
탑을 세우고 2008년도에 조지아의 정교회에서 순교자로 시성을 하였다고 한다.
이들은 조지아의 300인의 용사인 셈이다.
300인의 용사의 추모비...지도를 보고 알았다.
300인이 장창을 들고 있는 모습
내부의 모습...구글
진발리 호수의 둑이 보이고...
호숫가에 사진을 찍는 곳이 보인다.
진발리 호수는 진발리 댐으로 만들어진 저수지이다.
진발리 호숫가의 아나누리 요새에서 잠깐 쉬면서 진발리 호수와 아나누리 요새를 구경하게 되는데 진발리 호수는 1986년 구소련
시절 수력발전을 위한 댐 건설로 Zhinvali 저수지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라고 한다.
진발리 호수를 지나
진발리 댐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아나누리 요새가 나오는데 아나누리 (Ananuri)는 13세기부터 이 지역을 통치한 봉건왕조인 아라
그비 (Aragvi)의 에리스타비 (eristavis, 공작)의 성이라고 한다. 이성에서는 수많은 전투가 치루어졌으며 1739년 크사니의 샨셰가
이끄는 라이벌 공국의 군대의 공격을 받고 불에 탔다고 하며 아라그비 씨족은 학살당했다고 한다. 그러나 4년 후, 지역 농민들은
샨셰의 통치에 반기를 들어 찬탈자들을 죽이고 테이무라즈 2세를 초청하여 그들을 직접 통치하게 했으나, 1746년 테이무라즈 왕
은 카헤티의 왕 에레클레 2세의 도움으로 또 다른 농민 봉기를 진압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요새는 19세기 초까지 요새로 사용되
었다고 한다.
이 성이 아나누리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은 성이 포위 공격을 받았을 때 비밀 터널로 성으로 피신한 사람들에게 음식과 물을 제
공받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적군은 누리 출신의 아나라는 여성을 붙잡아 고문하여 터널의 위치를 밝히게 하였으나 그녀는 비밀을 누설하는 대신 죽음을 택했
다고 하며 그래서 이 성이 아나누리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아나누리 요새에 도착을 한다.
아나누리 성채 안에 두 개의 교회가 있다.
성채쪽으로 내려가서
성채안으로 들어가서
교회쪽으로 간다.....성채 안에는 교회 두개가 있기 때문에 교회밖에는 볼 것이 없다.
성내에는 두 개의 교회가 있는데 높은 사각형 탑에 접해 있는 오래된 성모 교회(The older Church of the Virgin)는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세워졌으며 아라그비 공작의 무덤이 있으며, 더 큰 하나님의 어머니 교회 (Ghvtismshobeli)는 1689 년 Bardzim 공작
의 아들을 위해 지었다고 하며 조각 된 북쪽 입구와 남쪽 파사드에 새겨진 포도 나무 십자가를 포함하여 풍부하게 장식된 파사드
가있는 중앙 돔 스타일의 구조로 지어졌다고 한다.
1739이 전쟁으로 인한 화재로 대부분의 프레스코화의 유적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성채는 어느 성채나 마찬가지로 피의 역사가 어려있기 마련이고 그 지역이 여러세력이 교차하는 지역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백성들도 비참할 것이고 지배자들 백성들만큼 비참한 삶을 사는 것이 그 때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운명이었을 것이다.
이곳에 살고 있는 국민이 아닌 이상 우리가 이곳이 누구에게 어떻게 지배를 당했고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을 상세하게 알 필요는 없
다.
그러나 여행기를 기록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조금이라고 알아야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생각하여 역사적 사실도 찾아보고 한다.
일행들은 성채도 둘러보고 교회도 둘러보면서 사진을 대충 찍고는 다시 버스를 타고 점심 식사를 하기로 한 곳으로 출발을 한다.
사후 심판에 대한 프레스코 벽화라고
이 벽화도 화재의 영향을 받았다.
내부의 그림들...보수를 한 듯
시간이 없기도 하고 그림의 내용을 안다고 해도 오래 기억할 것 같지가 않아서 사진만 찍고 돌아선다.
내부를 둘러보는 관광객들
성채에서 바라보는 진발리 호수...이 성채가 지어질 때는 호수가 없었다.
성벽을 올라가서 거니는 사람도 있다.
오늘쪽은 성루로 올라가는 문
이곳의 역사를 배우는 어린이들....이곳에서 태어났으면 피어린 이곳의 역사를 알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전쟁을 하던 당시의 갑옷과 검
성 밖으로 나온다.
도로 쪽에서 본 아나누리 성
교회 정면 벽면에도 화려하고 장엄한 장식...포도나무 십자가와 그 양옆의 나무 아래의 천사, 그리고 십자가 아래의 마주 보고 있는
용 두 마리...이 건축물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성을 구경하는 주변의 가게들과 주차장
나무마다 새집을 달아놓았다.
아나누리 요새와 진발리 호수
니노의 포도나무 십자가
환기통과 총이나 화살을 쏘는 구멍도
현대인들에게는 역사의 아픔의 현장도 삶의 현장이 된다.
잠깐 동안의 구경을 하고 코카서스 산맥안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