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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랑길 무안 25코스 제1부
매당마을-매안마을-황토펜션-명양마을-지도읍 자동리
20221109
1.섬 같은 육지의 무한한 아름다움
서해랑길 24코스를 마치고 해제면 창매리 매당마을 매화정에서 아침을 먹었다 오랜 연륜의 팽나무가 초겨울에도 푸른 잎을 펄럭이고 있다. 바람에 떨어진 가지에 팽나무 열매들이 함께 생을 마쳤다. 열매들이 누렇게 말라 있다. 그들이 후손을 번식할 수 있을까? 팽나무 뿌리에 구기자가 뿌리를 내리고 붉은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다. 그 모습은 생명체의 끈질긴 생명력에 감동하게 한다. 초겨울 해풍은 멎는 듯 끊임없이 불어와 펭나무 잎들을 몰아세우고 만상을 흔들어 놓는다. 생명체는 그렇게 부대끼며 생명체 종족을 계승한다. 초겨울의 한 풍경이 탄도만 해안에 펼쳐지고 있다.
매당마을 앞 바다에 개구리섬이 있다. 매안마을 쪽에서 바다로 길게 돌출한 곶(串)이 있는데, 바로 이 개구리섬을 취하려는 형상이라고 하여 이 곶을 뱀혓바닥 또는 뱀머리(蛇頭)라고 한다고 한다. 개구리섬 뒤에 탄도만 지명을 유래한 탄도(灘島, 여울섬)가 있다. 여울섬 앞에 야광주도(夜光珠島)라는 작은 섬이 가늠된다. 주변을 왕래하는 배의 항로를 밝혀주기 위해 밤에 불을 밝혀서 이 섬은 야광주도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마을 주민들은 여의주라고 부른다고 한다. 매화정에서 초겨울 오전의 탄도만 해안과 바다 풍경을 일별하고 서해랑길 25코스를 출발하였다.
마을 밭에서 촌노의 말씀을 들었다. 24코스에서부터 위치 확인의 기준이 되어 준 중매산, 지도에 그렇게 나와 있어서 중매산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매령산이라고 바로잡아 알려 주신다. 매당마을의 신령스러운 산, 매령산, 그 이름을 결코 잊을 수 없으며, 진실은 언제나 구체적 현장에 있음을 다시금 깨달았다. 맞은편 탄도만 오류리와 홀통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촌노는 매당마을이 명당지임을 강조하며 마을의 자부심이 대단하셨다. 할아버지의 자랑스러움을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데 매당마을 해안가 의젓한 집은 폐가가 되어 방치되어 있다. 남쪽을 향하여 오전의 햇볕을 받아 화사하기 그지없는 의젓한 집이 폐가인 것에 마음이 아프다. 시절의 대세는 어쩔 수 없는 것, 자본의 흐름을 따라 인구는 이동하는 것이다. 매당마을의 자부심이 사라지지 않기를 마음 속으로 빌며 매당마을에서 매안마을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서해랑길 25코스는 무안군 해제반도에서 바다에 떠있는 지도(智島) 섬으로 들어간다. 섬에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지만 무안군 해제반도와 지도는 연륙교로 이어져 있어서 지도는 섬 아닌 육지가 되었다. 이 연륙공사는 1974년에 시작하여 1987년에야 완공된 어려운 공사였으며 이 공사 덕분에 현재의 태원농장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 연륙교를 걸어서 지도읍 자동리 진변마을로 들어간다. 연륙교까지 어떻게 이어지는가?
매당마을에서 매안마을까지는 해안길이 아닌 들길로 이어진다. 비가 오면 물을 쑥 빨아들였다고 하여 허천들이라는 지명이 붙은 들녘을 따라 매안마을로 들어가서, 매안마을회관 앞을 거쳐 탄도만 해안 쪽에 위치한 실구렁마을로 나가 탄도만 매당제방을 걸어나가는 길이 서해랑길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매당마을 해안에서 개구리섬과 탄도를 살피면서 해안길을 걸어, 개구리섬을 잡아먹는 뱀혓바닥으로 나가 그 끝을 돌아 실구렁마을로 나와 매당마을 제방을 걸어나갔으면 더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든다.
서해랑길은 매당제방길을 걸어 탄도만 간척지에 조성된 큰부수막들, 노갱이들, 황토펜션단지, 태양광발전단지를 거쳐간다. 창매리에서 양월리로 이어지는 탄도만 해안은 해안길이 나있지 않아서 잠시 국도24호선으로 올라가 황토골휴게소매점을 거쳐 해뜰목황토펜션 입구에서 대월산 자락 탄도만 해안으로 진입한다. 황토펜션, 황토골휴게소, 해뜰목황토펜션, 상호에 황토라는 용어가 많다. 왜 그럴까? 시간이 좀 흘렀지만, 건강과 관련하여 황토의 효용성이 과학적으로 밝혀져 황토가 인기 있는 흙이 되었다. 그런데 예로부터 해제와 현경, 망운의 황토는 입자가 고와서 명품 황토로 널리 알려졌다. 그러한 까닭에 이 지역에서는 무안 황토의 훌륭함을 상호를 통하여 널리 알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5코스 탄도만 해안의 끝은 무안 해제반도 명양마을 해안이다. 명양마을은 물살이 바위에 부딪치는 소리가 울돌목처럼 세차고 커서 ‘울두’ 또는 ‘울띠’라고 불리다가 한자로 명양(鳴洋)이라 했다고 한다. 명양마을 언덕에서 걸어온 탄도만 해안을 짚어 본다. 운남면 내리반도, 조금나루, 탄도, 선도, 낙지공원, 송정 등 그 위치가 분명히 확인되는데 미세먼지 탓에 풍경은 흐리다. 무안은 육지이다. 그런데 이번 서해랑길을 탐방하면서 무안은 해안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지역이라는 것을 알았다. 톱머리해안, 동암해안, 도원해안, 다경진해안, 연리해안, 조금나루해안, 홀통해안, 물암해안 등등 일일이 모두 언급할 수 없지만 무안의 수많은 해안길이 그려진다. 그리고 24코스와 25코스 위치 확인의 기준이 되어 준 매령산과 대월산이 탄도만을 감싸고 반짝반짝 빛난다.
무안은 섬 같은 육지이다. 탄도만과 함해만에 에워싸인 반도 무안, 그 섬 같은 육지의 아름다움에 길손은 흠뻑 빠졌다. 그침이 없는 해안길에서 아름다운 풍경들이 무한히 펼쳐졌다. 어둠 속 탐방길, 달빛 탐방길, 무안 해안은 어둠 속에서도 빛났으며 달빛에서는 그윽한 향기를 풍겼다. 탄도만의 중심을 이루는 여울섬인 탄도(灘島), 여울섬을 중심에 두고 무안군 운남면, 현경면, 망운면, 해제면이 오목볼록 해안으로 이어진다. 그 해안에서 바라본, 아기자기한 작은 섬들, 신안군의 섬들, 갯벌과 바다, 방조제와 간척지, 그 풍경은 순간순간 길손의 가슴을 후끈후끈 덥혔다. 섬 같은 육지 무안에서 육지 같은 섬 지도로 들어간다. 그대 다시는 무안에 가지 못하리. 가슴에 하얀 눈처럼 쌓인 무안의 아름다움이 녹아 버릴까, 울두 해협을 건넜다.
2.탐방 과정
전체 탐방거리 : 17.34km 중 7.62km
전체 소요 시간 : 4시간 34분 중 1시간 56분
해제면 창매2리 매당노인회관 앞에 세워져 있다.
거리 16.7km, 소요시간 5시간 30분, 황토골휴게소매점-지도체육공원-신안젓갈타운으로 이어진다.
왼쪽 창매로를 따라 나가면 서해랑길 25코스 시작지점이 있다.
마을 입구 삼거리에 서해랑길 25코스 이정목이 세워져 있고, 왼쪽 전봇대에 서해랑길 25코스 시자점 표지가 붙어 있다.
서해랑길은 왼쪽으로 이어지는데,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올라가 매화정 쉼터정자에서 아침을 먹고 출발한다.
수령 290년 되는 팽나무가 마을 입구 언덕에 서 있고, 그 아래 매화정이 세워져 있으며, 그 옆에 선돌이 서 있다.
"마을에 당산나무가 세 그루 있었는데, 그 중 마을 앞에 있는 나무가 몇 해 전에 고사되어 지금은 두 그루만 남았다. 고사된 나무는 버드나무였다. 세 아름이 훨씬 넘는 크기였는데 태풍에 넘어지면서 고사된 것이다. 그 나무 옆에는 수호신처럼 서 있던 선돌이 있었다. 주민들은 그 선돌을 마을 입구에 있는 당산나무 옆에 세워놓았다. 마을 옆에 있는 나무는 둘레가 4미터10이 넘을 정도로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는 나무다." - 무안문화원
매화정 안에 팽나무 가지들이 떨어져 있고 열매들이 가지에 붙어 있다.
팽나무 뿌리에 구기자가 뿌리를 내리고 자라 붉은 열매를 맺었다.
20여 분 동안 아침을 먹고 25코스 시작지점으로 돌아왔다. 앞에 매당노인회관이 보인다.
"매당마을은 창매 2리에 속하는 마을로 진등, 산넘어(통계), 매당 등 세 개 마을로 이루어졌다. 매당이라는 마을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 주민들은 자세히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마을유래지에는 ‘마을이 이루어질 당시 좋은 터를 나타내는 명당이 와전되어 孟堂으로 이후 맨댕이로 불러왔다가 행정구역 개편 당시 梅堂이라 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매당마을은 梅靈山과 中梅山을 배경으로 하고 마을 앞에는 서해 바다를 접하고 있다. 梅靈山은 신령스러운 산이라 해서 부르는 이름이고 中梅山은 매당과 매안의 가운데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이 산 중턱의 경사진 곳에 터를 잡았기 때문에 주변 경치는 좋지만 농지가 적고 물이 귀해 생활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해제에서 잘 사는 마을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마을 앞 바다 우아래갓이란 곳에서 무안에서 가장 질이 좋은 매당석화와 매당낙지 그리고 매당감태 등 다양한 수산물을 수확하여 높은 수익을 올리기 때문이다." - 무안문화원
매당마을 앞 해안으로 내려갔다가 올라온다.
바다 건너 왼편은 현경면 오류리 홀통, 오른쪽은 오류리 검무산과 오류마을이 가늠된다.
바다 건너 왼쪽에 현경면 오류리 홀통, 그리고 오른쪽에 오류리 검무산과 오류마을이 가늠된다. 매당마을 해안을 돌아나가면 동아실이 있는 것 같다.
"동아실은 마을 왼쪽에 있는 지역으로 예전에는 이곳이 지도 사람들이 망운 장을 보러 갈 때 배로 지나는 주요한 길목이었다. 이곳에는 주막이 세 군데나 있을 정도로 교통의 요충지였으나 현재는 그러한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동아실 앞에는 살쾡이 바위라 부르는 바위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 무안문화원
바다에 개구리섬(蛙島, 머우섬)이 있고, 그 뒤 오른쪽에 탄도(灘島, 여울섬)이 보인다.
"마을 앞에 머우섬이라 부르는 蛙島가 있다. 개구리섬이라고도 하는데 마을 앞에서 바다를 따라 쭉 뻗어있는 지형이 이 개구리를 잡으려는 뱀과 같다 하여 배암 혓바닥이라는 지명도 있다. 예전에는 이곳에 동백나무가 무성하여 주민들의 자랑이었으나 지금은 평범한 섬이 되었다. 원래 이 섬은 마을 공동 소유였다. 하지만 주민들의 관리 소홀로 언제부터인지 개인 소유로 변해 있었다. 머우섬 주변에 정챙이개가 있다. 정챙이에는 깊은 강이 있어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변을 당하기도 했다." - 무안문화원
오른쪽 뒤 매령산 아래 매당마을이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다. 왼쪽 뒤에 팽나무와 매화정, 오른쪽 앞 집은 폐가가 되었다.
왼쪽 뒤의 산은 매당마을과 매암마을 중간에 있다 하여 중매산이라 불린다.
양파 모종내기가 한창이다. 언덕에 광산 김씨 삼강려와 광산 김씨 비석들이 세워져 있다.
"매당마을은 광산 김씨 동족마을로 전에는 이씨들이 살았다. 해제면에는 광산 김씨가 양매리 매곡마을에 처음 입향한 이후 양월리 명양, 덕산리 사야, 덕림리, 산길리 강산, 만풍리 신풍, 창매리 창산과 매당 등으로 동족 마을이 이어졌다. 매당마을 입구에 있는 ‘광산김씨삼강려’ 제각에는 1명의 충신과 2명의 효자 그리고 1명의 열부 명정을 모시고 있다. 삼강문은 정면 2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으로 내부에는 충신, 효자, 열부의 명정 등 9개의 편액이 걸려 있다. 이 제각 옆으로는 호은처사광산김공경모비(1982년), 회산처사김공강학비(1976년), 효자김공치선실적비(1998), 창와김선생유적비 등이 있다." - 무안문화원
매당마을 해안에서 올라와 서해랑길을 따라 매안마을로 간다. 길에는 억새풀꽃이 머리를 풀고 바람에 날린다. 억새풀꽃 왼쪽 뒤로 보이는 들이 허천들이고 바다로 돌출한 곳이 뱀머리(蛇斗) 또는 뱀혓바닥이라 불리는 곳이다.
"매안마을은 창매3리에 속하는 마을로 매안과 매실(실구렁)로 이뤄졌으며 30여 년 전에 매당마을에서 분리되었다. 작은 중매산을 주산으로 하고 있으며 앞에는 탄도만의 넓은 바다가 자리하고 있다. 마을에는 새 언안과 대창 그리고 등관이 언장 등 세 군데의 간척지를 안고 있으며 비교적 넓은 농토를 갖고 있다. 매안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중매산의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마을의 주산인 中梅山은 매당과 매안의 가운데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큰 중매산과 작은 중매산이 있다. 그런데 원래의 이름은 仲始山이었다. 지형상 해제를 받치고 있는 형국이라 한다." - 무안문화원
매안2길을 따라 매안마을회관 앞을 거쳐 매안마을 입구로 이어간다.
왼쪽 뒤에 매화정과 팽나무가 보인다. 전봇대 뒤쪽에 보이는 들이 허천들이라 이르는 것 같다.
"매안에서 매당으로 넘어가는 중간에 허천들이란 지명이 있다. 물이 귀했기 때문에 비가 오면 물을 쑥 빨아들였다는 들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 무안문화원
왼쪽 앞에 머구리섬이 있고 그 오른쪽에 바다로 돌출한, 뱀머리(蛇斗) 또는 뱀혓바닥이라 불리는 곳이 보인다.
"마을 앞에 머우섬 또는 머구리섬이라 부르는 蛙島가 있다. 예전에는 이곳에 동백나무가 무성하여 주민들의 자랑이었으나 지금은 평범한 섬이 되었다. 원래 이 섬은 마을 공동 소유였다. 하지만 주민들의 관리 소홀로 언제부터인지 개인 소유로 변해 있었다. 머우섬 주변에 정챙이 개가 있다. 정챙이뻘이라고도 하는데 이곳에서 수확한 감태가 특히 맛있다고 한다. 이 섬을 향해 길게 뻗은 사두라고 부르는 형국의 부리가 개구리를 잡으려고 하는 지세를 갖고 있다. 뱀혓바닥이라고도 부르는 이 지형에 예전에는 사람이 거주하지 않았지만 현재는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집을 지어 거주하고 있다." - 무안문화원
매안마을 입구에서 탄도만 건너편 해제면 양월리 대월산을 조망하였다. 왼쪽 뒤에 흐릿하게 신안군 지도 섬이 가늠된다.
매안3리가 아니라 창매3리 매안마을이라고 해야 옳지 않을까? "마을은 원래 매당(梅堂)에 속했다고 하며 매당의 '梅' 字와 마을 앞 바다가 언덕처럼 생겼다고 하여 언덕 '岸' 字를 써서 '梅岸'이라 하였다. 이 마을 입향에 대해 전하는 말은 먼저 월성 昔氏가 3대 정도 살다 孫이 없었으며, 다음으로 함평 엄다(嚴多)에서 거주한 광주 정씨가 1770년경 마을이 조용하고 앞바다에 각종 해조류가 많아 정착했다고 한다.(제보, 鄭落均) 한편 무안세적지에 의하면 입향은 경주 정씨 정태눌(鄭台訥)(호는 訥軒)로 그는 조선 정조조에 천성이 순후하고 성질이 안존하여 조용한 땅을 찾아 세거지 광주 하방동을 떠나 이곳에 정착했다고 기록되어 있다.(참고, <무안세적지>, 정태균條)
매안마을 입구에 서해랑길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서해랑길은 왼쪽 매안1길로 이어진다.
왼쪽은 매당마을 가는 창매로, 오른쪽은 매안마을 가는 매안2길이며, 마을 입구 바로 뒤에 매안마을회관이 자리하고 있다.
창매리 863-8 지역으로 25코스 시점에서 1.3km, 황토골휴게소매점 3.1km 지점이다. 매안1길을 따라 해안으로 나간다. 이곳은 창매3리 실구렁마을인 것 같다.
수산업체인 영어조합법인 무안사랑 앞의 매안1길을 따라 탄도만 해안으로 나간다.
해안으로 나가는 길에 외딴집 한 채가 있다. 서해랑길은 탄도만을 오른쪽으로 돌아 건너편 양월리의 대월산 자락을 돌아간다.
맞은편에 신안군 지도읍의 산줄기가 보인다. 저 산줄기를 넘어서 지도읍 읍내리 신안젓갈센터 앞으로 가야 한다.
왼쪽 중앙에 신안군 지도읍 자명리와 무안군 해제면 양월리를 잇는 연육교가 가늠된다. 중앙의 대월산과 그 왼쪽의 나즈막한 정금산 사이에 양월리 명양마을이 있으며, 대월산 오른쪽 뒤에 양월리 신촌마을이 있다.
매당제방을 따라 오른쪽 탄도만 해안에 자리한 참새골황토펜션으로 이어간다.
탄도만을 따라 제방이 동그랗게 돌아간다. 왼쪽에 양월리 신촌마을, 중앙에 참새골 황토펜션이 있다.
창매3리 실구렁마을이 언덕에 있고, 그 뒤쪽에 매안마을이 있다.
오른쪽 뒤에 신안군 지도읍 봉황산 산줄기가 보인다. 왼쪽 뒤에 흐릿하게 보이는 섬은 선도라고 가늠한다.
이 들판을 창매리 큰부수막들이라 이르는 것 같다. 왼쪽 뒤에 매령산, 중앙에 중매산이 있다.
독산이 오른쪽에 있고, 왼쪽에 무안리조트촌이 있다. 앞에 보이는 들을 노갱이들이라 이르는 것 같다.
중앙 왼쪽에 참새골황토펜션 및 무안리조트, 한국농장이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
이곳에 여러 숙박시설이 함께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 시설물은 참새골황토펜션단지 숙박객들만 이용할 수 있는지 아니면 모든 여행객들이 이용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오른쪽 중앙에 매령산, 그 오른쪽에 중매산이 확인된다.
양월리의 대월산과 그 오른쪽 뒤에 정금산이 가늠되며, 대월산은 탐방길의 징표가 되어 준다. 탄도만 해안에서 해제지도로로 올라가서 황토골휴게소매점을 거쳐 왼쪽 건너편 해안 해뜰목펜션으로 이어간다. 해제면 창매리에서 양월리로 넘어간다.
탄도만의 무안 갯벌바다가 드넓게 펼쳐져 있다. 바다로 돌출한 곶(串) 오른쪽 뒤에 탄도(灘島, 여울섬)가 흐릿하게 보인다.
왼쪽 뒤에 매령산과 중매산(오른쪽), 중앙 오른쪽에 매안마을, 황토골펜션단지와 태양광발전단지를 거쳐왔다.
국도24호선 해제지도로로 올라왔다. 해제면 양월리 100지역으로 종점까지 12.5km가 남았다. 오른쪽에 대월산이 있다.
"양월리(洋月里)는 해제면 소재지에서 서남쪽으로 8㎞ 떨어진 곳에 있으며 신안군 지도읍 자동리와 서해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현경면에서 해제면 소재지를 거치지 않고 지도로 가는 새로운 외곽도로인 24번 국도가 마을 사이로 지나고 있다. 또한 마을 바로 옆에는 신안군 지도읍과 연결하는 연륙교가 있다. 뻘이 좋아 감태와 낙지, 숭어 등 수산물이 유명했으나 연륙이 되면서 옛 명성은 사라지고 추억만 남아있다. 이곳은 대월산을 주산으로 명양, 신월, 신촌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졌다. 본래 영광군 진하산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월리, 명양리, 신촌을 합하여 양월리라 하였다. 후에 무안군 해제면에 편입하였으며 양월리란 행정명은 명양과 신월의 이름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 무안문화원
국도24호선 해제지도로가 달리고, 중앙에 독산, 맨 오른쪽에 매령산, 탄도만 해안의 황토펜션단지가 확인된다.
해제지도로 황토골휴게소매점을 지나서 바로 왼쪽으로 꺾어 탄도만 해안으로 나간다.
해제지도로 왼쪽 대월산 자락에 양월리 신촌마을이 자리한 듯. 서해랑길은 왼쪽 해뜰목펜션으로 이어진다. 오른쪽은 정금산.
서해랑길은 대월산 자락길을 따라 양월리 명양마을로 이어진다.
해제면 양월리 대월산 자락에서 맞은편 창매리 지역을 바라보았다. 왼쪽에 독산과 그 아래 황토펜션단지, 중앙 뒤에 매령산과 그 오른쪽에 중매산, 그 오른쪽에 매안마을을 가늠한다. 탄도만 해안의 매당제방이 길게 이어져 있다.
해제지도로 황토골휴게소매점을 지나서 왼쪽으로 꺾어 바로 아래 해뜰목황토펜션으로 왔다. 그런데 이곳에 황토라는 단어를 왜 이리 많이 쓸까? 궁금하다.
"예로부터 해제와 현경, 망운의 황토는 널리 알려졌다. 입자가 고와서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하였는데 그중에서도 도자기를 만드는 연료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른바 붉은 도자기[紅陶]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황토로 만든 도자기가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 마을의 황토는 널리 알려져 있어 도자기의 원료로 사용될 뿐 아니라 황토 벽돌을 만들기도 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일제강점기 마을에 작은 부뚜막 큰 부뚜막이란 지명이 있는데 이곳에는 목포 사람이 운영했던 벽돌 공장과 몽탄 사람이 운영했던 기와 공장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흔적만 남아있다." - 무안문화원
왼쪽 뒤에 천마산, 중앙에 독산, 그 아래 황토펜션단지, 그 왼쪽에 태양광발전단지가 조성되어 있고 확장공사가 진행 중이다.
매령산과 중매산(오른쪽), 그 오른쪽에 매안마을이 확인된다. 맨 오른쪽으로 돌출한 곡(串)을 뱀머리(蛇頭) 또는 뱀혓바닥이라고 이른다. 그 왼쪽 뒤에 살짝 보이는 섬이 개구리섬이다.
탄도만 지명을 유래시킨 탄도가 중앙 왼쪽 뒤에 흐릿하게 보인다. 그 오른쪽 뒤는 운남면 내리반도인 것 같다.
해뜰목황토펜션에서 대월산 자락길을 따라 해안을 따라왔다. 탄도만 맞은편 창매리 해안 오른쪽에 매령산, 왼쪽에 독산과 황토펜션단지, 그 사이에 창매리 매당제방이 길게 이어져 있다.
대월산 자락길에서 건너편 지도읍 산줄기를 조망한다. 바다에 떠 있는 무안군 해제면 양월리 밤섬(栗島) 뒤의 산이 봉황산, 그 오른쪽이 선봉산일 것이라 가늠한다. 봉황산 오른쪽 지역은 지도읍 태천리, 그 오른쪽은 지도읍 자동리 지역이다.
대월산 언덕에 밭이 조성되어 있다. 초겨울 햇볕을 받으며 한 여인이 양파밭에 양파 모종을 내고 있다. 대월산은 정상에서 바라보는 천장리와 창매리의 모습이 달을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고 일제강점기에는 금광개발을 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해안에 갈대가 무성하다. 미세먼지 탓에 풍경이 부옇다. 맨 왼쪽은 해제면 창매리 뱀혓바닥, 그 오른쪽에 탄도가 분명히 확인된다. 그 오른쪽 뒤는 운남면 내리반도, 맨 오른쪽 지도읍 태천리 뒤의 흐릿한 섬은 지도읍 선도라고 가늠한다.
무안군 해제면 양월리(洋月里) 명양(鳴洋)마을을 바라보았다. 명양마을은 대월산과 그 줄기 정금산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양월리 밤섬 뒤쪽 해안 뒤에 지도읍 산줄기가 벋어 있다. 중앙에 봉황산, 그 오른쪽에 선봉산이 가늠된다. 봉황산을 중심으로 하여 그 왼쪽은 지도읍 태천리, 그 오른쪽은 지도읍 자동리로 구분되는 것 같다.
중앙 왼쪽에 봉황산, 그 오른쪽에 선봉산이며, 서해랑길은 봉황산과 선봉산 사이로 이어지는 것 같다.
왼쪽 뒤에 신안군 지도읍 자동리, 바로 앞에 무안군 해제면 양월리 명양마을이 가늠된다. 중앙 왼쪽 바다에 연륙교가 놓여 있다. 오른쪽 명양해안길을 따라 명양마을로 향한다.
왼쪽은 정용들, 오른쪽은 명양앞들이라 이르는 것 같다. 오른쪽에 명양마을회관이 가늠된다.
양월리 638-2 지역으로, 25코스 시점 6.1km, 지도체육공원 1.2km, 종점 10.6km 지점이다.
명양마을의 농가가 정갈하다. 명양길을 따라 해제지도로로 올라간다.
명양해안길을 따라 명양마을로 올라왔다. 언덕의 밭은 명양앞들, 오른쪽은 정용들이라 이르는 것 같다. 중앙 뒤에 창매리의 뱀혓바닥이 바다로 돌출한 것이 보인다.
앞에 대월산이 편안하다. 해제면 양월리 명양마을은 정금산과 대월산 아래에 자리하여 탄도만을 바라보고 있다.
"마을이 이루어질 당시부터 마을 옆을 흐르는 좁은 해협은 진도의 울돌목에 이어 제2의 울돌목이라 불릴 정도로 물살이 거셌다. 특히 연륙이 되기 전에는 이 해협의 가운데에 바위가 있어 물살이 바위에 부딪치는 소리가 고요한 날이면 해제면소재지에서 들을 정도로 커 ‘울두’ 또는 ‘울띠’라고도 했으며 행정구역 개편 시 한자로 명양(鳴洋)이라 했다. 지도읍의 자동리와 해제면의 양월리를 연결하는 연륙공사는 1974년에 시작하여 1987년에야 완공되는 난공사였으며 이로 인하여 현재의 태원농장이 형성되었다. 마을은 명양과 신촌으로 이루어졌다. 명양은 웃터골을 사이로 작은 마을과 큰 마을로 이루어졌으며 大月山을 주산으로 하고 정금산을 사이로 하면서 앞에는 거대한 뻘밭을 마주하고 있다. 또한 마을 앞에는 물이 들면 마치 밤송이처럼 보인다 해서 부르는 밤섬(栗島)이 뻘 가운데 놓여 있다. 풍수적으로 자물쇠의 형국을 하고 있다. 대월산은 정상에서 바라보는 천장리와 창매리의 모습이 달을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고 일제강점기에는 금광개발을 하기도 하였다." - 무안문화원
맨 뒤 오른쪽부터 운남면, 망운면, 현경면으로 이어지는 탄도만 해안이 흐릿하게 보인다. 중앙에 창매리의 바다로 돌출한 뱀혓바닥이 분명히 확인되고, 매당마을과 매안마을도 가늠된다. 망양해안길, 망양앞들(왼쪽), 정용들(오른쪽)을 확인한다.
대월산 아래 자리한 망양마을을 거쳐 왼쪽 언덕으로 올라왔다. 왼쪽의 산이 정금산으로 대월산 맥이라고 이르는 것 같다.
흐릿하지만 탄도만 해안이 보이며 그 위치가 가늠된다. 앞에 율도, 그 뒤에 탄도, 오른쪽에 선도가 확인된다.
해제지도로를 따라 연륙교 방향으로 내려간다. 왼쪽 앞에 율도, 그 뒤에 탄도, 그 오른쪽에 선도가 모두 확인된다.
건너편은 지도읍 자동리 진변마을이며 서해랑길은 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이어진다.
"좁은 해협은 제2의 울돌목이라 불릴 정도로 물살이 거셌다. 특히 연륙이 되기 전에는 이 해협의 가운데에 바위가 있어 물살이 바위에 부딪치는 소리가 고요한 날이면 해제면소재지에서 들을 정도로 커서 이곳을 ‘울두’ 또는 ‘울띠’라고도 했다." - 무안문화원
해제지도로 지선을 따라 연륙교로 향한다. 건너편에 지도읍 자동리 지도체육공원과 전봇대 뒤에 한봉산이 보인다.
이곳을 울두 해협이라 이르는 것 같다. 건너편은 신안군 태천리 해안으로 오른쪽에 봉황산과 선봉산이 우뚝하다.
台川里는 본래 지도군 군내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태천, 태이, 연화, 회산, 유동, 안마 등을 합하여 태천리라 하여 무안군 지도면에 편입, 1969년 무안군에서 신안군의 분군으로 신안군에 편입. 한양 조씨가 조선 연산군 때 이곳으로 이주해 와 마을이 형성. 마을의 동서쪽에 내가 흐르고 지형이 타래처럼 생겼다 하여 타래라 부르다가 태천으로 개칭하였다." - 신안군청
무안 지역의 황토가 고와서 무안의 명품이 되는 듯, 황토가 붙은 상호가 많다.
무안군 해제면 양월리와 신안군 지도읍 자동리를 이어주는 연륙교를 건너 신안군 지도읍 자동리로 넘어간다. 맞은편 마을은 진변마을미며, 오른쪽 해안에 지도 체육공원이 있다.
"자동리는 본래 지도군 군내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자동, 오룡, 효지, 자서, 중산마을을 합하여 무안군 지도면에 편입, 1969년 1월 1일 무안군에서 신안군의 분군으로 신안군에 편입. 전주 이씨 이영준이 영광군에서 거주하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을 피하여 이곳에 이주해 와 마을이 형성되었다. 전주 이씨 배도공파의 10세손인 이철의 호가 자신당(自新堂)이어서 최초의 마을 이름을 자신당골이라 부르다가 이후 자동(自東)마을로 개칭하였다." - 신안군청
북쪽으로 지도해제로 간선 연륙교가 있다. 오른쪽 뒤에 흐릿한 양월리 왕산, 그 뒤 왼쪽에 흐릿한 산길리 강산이 가늠된다. 왕산 아래는 양월리 신촌마을이 있으며, 산길리 강산은 서해랑길 30코스 탐방로에서 만난다. 왼쪽 산은 한봉산이다.
"양월리 신월마을은 양월2리에 속하는 마을로 정갱이, 안정갱이 마을로 이루어졌다. 정갱이란 長江에서 비롯된 말로 자주 발음하다 보니 와전되어 나타난 형태의 지명이다. 장강이란 마을 주변에 형성되어 있는 거대한 강을 말한다. 마을은 반도형으로 칠산바다에서 들어온 바닷물이 마을을 휘감아 돌고 있다. 장강은 그런 모습에서 비롯된 지명이다. 신월이란 지명의 유래는 새롭게 떠오른 달이 마을을 비추는 형상이어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양월리의 주산이 大月山이어서 달과 관련된 다른 의미가 있어 보인다. 이 마을은 양월리의 주산인 대월산의 맥이 24번 국도를 넘어 정금산으로 이어지면서 여러 봉우리를 만들고 마지막으로 왕산에서 절정을 이루고 있는 산들을 배경으로 하여 형성되었다. 마을은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으며 앞으로는 간척으로 이루어진 태원농장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정금산은 정금이 많이 열린 산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왕산은 마을 뒤 여러 봉우리 중 가장 큰 봉우리를 말한다.
일제강점기 때 이 마을을 포함한 양월리 마을은 섬이 될 뻔한 일이 있었다. 양월리 지형이 반도형이어서 신촌 마을에 있는 점등이라 부르는 지역을 파버리면 섬이 되는 것이다. 일본인들이 이 지역을 내륙과 단절시켜 섬을 만들어서 나병환자들을 수용하고자 계획한 것이다. 하지만 여러 가지로 여건이 맞지 않아 포기하고 현재의 소록도로 옮긴 것이다. 점등은 현재 신촌이라 부르지만 해방 전까지는 이 마을에 속한 마을이다." -무안문화원
무안군 해제면에서 신안군 지도읍으로 넘어왔다. 오른쪽 뒤에 율도, 앞의 언덕 뒤에 양월리 명양마을이 자리한다.
중앙 뒤에 탄도, 왼쪽에 율도, 그 왼쪽 뒤에 뱀혓바닥, 맨 오른쪽에 신안군 지도읍 태천리가 가늠된다.
서해 바다가 무안군 해제반도와 신안군 지도 사이를 가르고 있다. 왼쪽의 산은 지도읍 자동리의 한봉산, 오른쪽 뒤는 해제반도 양월리 왕산, 그 왼쪽 뒤는 해제반도 산길리 강산이다. 한봉산 자락에 지도읍 자동리 원자동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앞은 신안군 지도읍 자동리 진변마을인 듯. 진변삼거리에서 동천길 왼쪽으로 따라간다.
신안군 지도읍 자동리 진변삼거리에서 동천길을 따라 자동리 효지마을 방향으로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