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 문장론 / 권대근(수필가. 문학평론가. 문학박사)
작품창작에 있어서 문장수련만큼 중요한 일도 없다. 어느 문학의 장르를 막론하고 문장은 그 문학의 요체가 되는 것이다. 특히 수필은 문장이 그 문학성을 결정짓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예창작에 있어서 아무리 해도 넘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문장의 연마일 것이다. 그러면 작가는 어떻게 문장을 연마할 수 있을까?
첫째, 훌륭한 문장을 쓰겠다는 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작품을 읽을 때 줄거리만 읽지 말고 쓰인 문장표현에다 마음을 집중시켜 읽는 버릇이 들어져야 한다. 문장에 관심 없이 수필을 읽는 사람은 일반 독자와 같을 것이다. 문장에 대한 그 관심이 곧바로 그를 작가로 만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둘째, 수필작가가 되려면 우선 훌륭한 문장을 식별할 수 있어야 하고, 어떻게 쓴 문장이 문학작품이 되는가를 점차로 깨달아야 하고, 문장의 안목이 틔어야 한다. 문장의 뛰어난 실력이 없이는 뛰어난 작가가 될 수도, 빼어난 수필도 쓸 수 없다.
셋째, 글을 많이 써야 한다. 읽기만 하고 자기 스스로 쓰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작가정신이란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이 바로 그런 정신이다. 뭐니 뭐니 해도 작품을 많이 써야 문장력이 생긴다. 그리고 자기의 개성적 문체를 이룰 수 있다.
그러면 어떤 문장이 수필 문장으로 좋은 것인가? 우선 문장을 쉽게 쓰고, 어렵게 쓰지 않아야겠다. 글은 만들면 시들고 참된 데서 살아난다는 말이 있다. 즉 문장은 솔직한 데서 그 생명이 살아나고 문장을 꾸미면 그 생명이 다한다는 뜻이다. 의식적으로 미문으로 꾸미려다 보면 진실성을 의심받을 수가 있다. 문학이 사상과 감정을 노출하는 글이기 때문에 문장에 진실성을 담는 것은 그 만큼 우러나오는 감동에 가까워지는 길임을 우리는 확실히 알아야겠다.
1. 문장론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문장론 하게 되면 문체론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러나 문장론과 문체론은 엄격한 의미에 있어서 다르다. 일반적으로 문장론 하게 되면 문장의 표현기교면을 다루고, 문장의 수사법을 다루게 된다.
문장의 정의에는 형식상의 정의 또는 내용상의 정의들이 있다. 문장의 형식상 정의는 단어, 구, 절, 단락, 장절 등의 문장 구성 요소가 모여 통일된 의미를 나타내는 조직체다. 문장의 내용적 정의는 글이란 의사소통 수단인 말, 즉 내용의 기록이다. 곧 글은 문자로 표현되는 말이다. 문학의 문장표현에 있어서 수필작품을 비롯해서 모든 문학작품에 쓰이는 문학문장은 일반문장과는 달라야 한다. 인간생활의 체험이 사상세계에서 제2의 체험과정을 거쳐(예술화하여) 문자나 언어로 표현될 때, 일반적으로 문학이 된다고 한다.
좋은 문장의 조건
첫째, 문장은 되도록 짧게 쓴다.
둘째, 한 문장에 한 가지 생각만 한다.
셋째, 명확한 어휘를 쓴다.
넷째, 문장에 리듬을 갖도록 한다.
다섯째, 문형 선택을 잘해야 한다.
여섯째, 적절한 생략과 대칭구조로 표현 효과를 높인다.
일곱째, 관형사형 어미를 줄인다.
여덟째, 의미가 겹치지 않도록 한다.
아홉째, 명사형 어미와 절을 줄이자.
열째, 문장은 가능한 능동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수필문장도 위와 같은 문장의 기본원리에 벗어나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적어도 문예창작적 문장을 표현하는 데는 몇 가지 유의사항이 필요하다.
첫째, 수필문장은 감동 있게 문장이 표현되어야 한다. 문학작품은 독자에게 뭔가 감동을 주는 글이어야 한다. 남에게 감동을 줄려면 먼저 작가 자신이 감동하고, 공명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문장을 감동 있게 써야 한다.
둘째, 적재적소에 적절한 어휘로 표현한다. 정확한 어휘 사용이 되어야 한다. '사상을 표현하는 데 가장 적당한 말은 단 하나의 어휘뿐이다'란 말이 있다. 문장에 있어 어휘의 정확성은 매우 중요하다. '아기가 방실방실 웃는다'. '늙은이가 히죽히죽 웃는다'라는 표현에서 웃음의 표현이 바뀌어서는 안 될 것이다.
셋째, 발화의 뉘앙스를 정확히 구분하고, 속어, 비어, 외래어를 사용해야 할 때도 그 뉘앙스를 바르게 알아 훨씬 효과 있게 표현해야 한다.
넷째, 작가의 성격에 알맞은 문장으로 표현해야 한다. 글이란 작가의 개성과 인격을 나타내는 표현임으로 표현이 지나치게 난삽하여 독자가 이해하기 힘들다면 그 글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릴 것이다.
다섯째, 문자로 쓴 문구는 될 수 있는 한 언해함이 좋을 것이고, 혼자만 알고 있는 부분은 반드시 주석을 붙여야 한다.
2. 수필의 문장
수필만큼 작가의 개성이 진하게 노출되는 장르도 없다. 작품 속에 작가의 성격과 개성이 있는 그대로 노출되는 까닭에 자기가 쓴 문장에도 은연중에 자기의 개성이 노출된다. 따라서 자기 개인적인 문체가 생긴다. 글과 문장이 고스란히 그 사람을 닮아간다. 이 점에서 수필 속에 사람, 문장, 문체는 그 사람의 개성에 의해서 일관성을 갖는다. 고로 그 사람이 갖는 문체는 엄격하게 따지자면 그 사람 외에는 아무도 흉내를 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작가와 문장, 그 사이에서 태어난 개인 문체, 즉 그 사람이 문학 속에 들어 있는 문장들은 그 사람의 취향을 닮고, 아울러 그 사람의 문장들은 그 사람의 고유한 스타일을 낳게 되는 것이다.
어떤 수필가가 쓴 작품들이 무슨 체가 되었든 혹은 무슨 체를 사용했던 그것은 작가 자신이 알아서 할 일이다. 자기 홀로 효과적으로 쓰는 새로운 체를 개발했다 해서 욕될 것은 없는 것이다. 다만 수필은 수필의 형식을 취하고 소설은 소설의 형식을 취하듯 그 장르의 속성이나 본질을 떠난 터무니없는 문체의 남발은 삼가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면 소설문장과 수필문장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소설과 수필 문장의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은 양 장르가 갖는 본질이 어떻게 다른가에 그 기준이 잡혀져야 하리라고 본다. 소설이 허구의 진실을 추구하고, 수필이 사실적 진실을 추구한다면, 우선 소설의 문장은, 상상이 가능한, 과장의 속성이 허용되지만, 그러나 수필의 문장은 지나친 과장이 허락되지 않을 것이다. 수필이 진솔한 ego세계를 문학으로 구축함으로, 소설보다는 훨씬 진솔하고, 함축적이고, 암시적인 문장들이 제격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수필 본래의 장르적 본질을 망각한 문장은 일단 눈에 벗어난다. 수필이 진솔한 글이라면 문장이 지나치게 허영적이거나, 몽환적이거나, 분식을 하게 되면 그 글의 격은 낮아질 수도 있다는 것을 재삼 명심하여야 한다. 미문을 쓴답시고 시종일관 말의 기교만 부려서 그 내용의 알맹이가 전혀 없거나 혹은 그 내용이 무엇인지 파악키 어렵게 했다면, 그 글은 진실부재, 내용부실 또는 주재의식이 없다는 냉엄한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서 치졸한 문장으로 낙인이 찍힐 수도 있다. 체로 받치고 걸러서 나온 국물은 찌꺼기가 없듯이 수필문장은 거르고 걸러서 분명한 문장이 되어야 한다.
강건체이든 우유체이든, 간결체이든 만연체이든, 건조체이든 화려체이든, 소박체이든 교문체이든 그 글의 종류에 따라 또 그의 개성에 따라 정할 일이지만, 감흥을 유발시키는 데는 때로 만연체보다는 간결체가, 우유체보다는 강건체가, 화려체보다는 건조체가, 교문체보다는 소박체가 나을 경우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비단 옷이나 값비싼 옷을 입은 사람을 보고 감흥을 받듯이 무명옷이나 삼베옷을 산뜻하게 차려 입은 사람을 보고 같은 감흥을 받는 경우와도 같다고 하겠다.
*************************************************************************************
수필의 문장 / 권대근(수필가. 문학평론가. 문학박사)
문장은 문(sentence)을 전제로 한다. 작가의 문장 정립에 따른 사상과 감정의 표현은 곧 문장으로써 총결산되어진다. 아무리 훌륭한 사상이나 감정(정서)이나 상상을 가졌다 할지라도 문장 표현이 서투르면 생각했던 바의 충분한 성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자기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함에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보다 정밀하고 바르게, 즉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느냐하는 것이다. 문장의 생명은 바로 여기에 달려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문장의 정확이란 표현된 문장의 의미가 정밀함을 말하거니와 독자로 하여금 문장의 뜻을 애매모호하게 받아들이지 않도록, 즉 바르게 받아들이게 하자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만일 작자가 의도한 바를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다면 또 표현되어 있지 않다면 그것은 전혀 각도가 다른 방향으로 해석되어질 수 있는 우려가 생겨날 뿐만 아니라 A를 전달하려던 것이 결국 엉뚱하게 B를 전달하고 마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그렇게 되는 경우 그것은 글을 쓰지 않는 것만도 못하다. 그러므로 문장 표현의 목적은 자기의 마음을 독자에게 올바르게 전달하는 데 있다.
그 때문에 무엇보다도 오독될 여지를 주지 않도록 정확하게 표현하는 일이요, 그러기 위해서는 가급적 쉬운 문장을 쓰는 것이 그 좋은 방법의 하나가 되기도 한다. 즉 난해한 표현을 피하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이 된다. 문장의 난해는 올바른 이해 전달을 불가능케 하는 큰 요인이 됨은 새삼 말할 나위도 없다. 문장의 의미를 정확하게 표현함에 유의해야 할 점 몇 가지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① 작가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가 쓰고자 하는 말(낱말)의 뜻을 명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언어의 의미 내용에 대한 올바른 파악이 없다면 그것은 한낱 문자의 나열에 불과하다.
② 작가 자신이 명확하게 알지도 못한 사실을 멋대로 추측, '아마 그럴 것이다.'라고 막연한 생각을 내세워서는 안 된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사실의 진실성을 표현해야 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보지도 않는 설악산을 마치 본 것처럼 독자에게 거짓말을 하는 문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③ 낱말과 낱말, 문장과 문장과의 연결(연락)관계는 분명해야 한다. 낱말과 낱말 그리고 문장과 문장의 호응관계가 바르지 못하면 문맥이 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비문법적 문장이 되어 전달력이 떨어진다. 특히 주어와 서술어의 관계에 주의하여 비문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겠다.
④ 띄어쓰기와 구두점을 명확히 하여야 한다. 띄어쓰기는 문필가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소양이다. 적당히 써내면 편집자 측에서 알아서 해주겠지 하면서 띄어쓰기를 소홀히 하는 문인들이 많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좋은 글을 쓰기 이전에 띄어쓰기 규칙부터 알아야 할 것이다.
⑤ 문장의 중심부를 명확히 하여야 한다. 이 말은 자기의 사상이나 감정을 남김없이 표현하였다 하더라도 문장의 핵심부(중심부)가 틀려지면 본래의 의도와는 판이하게 달라지고 만다는 뜻이다.
이상에서 살핀 바를 다시 정리하면, 좋은 문장, 즉 깊이 있고 유익한 수필을 쓰기 위해서는, 그리고 의미 내용을 올바르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남이 쓴 수필을 많이 읽는 일이 첩경이 된다. 여기에 수필문장 쓰기 요령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평이한 문장
수필은 논설문과는 다르다. 구태여 어렵게 쓸 필요는 없다고 본다. 보고 듣고 느낀 점을 알기 쉽게 그리고 부드럽게 써 가면 된다. 당황하지 말고 조용한 마음으로 굳이 말한다면 한 잔의 차를 아무 부담 없이 마시는 듯한 그런 마음가짐으로, 마치 자기 자신에게 속삭이듯이 차근차근 알기 쉽고 어법에 맞는 글을 써 가면 된다. 즉 담담한 심정 바로 그 경지에서 써 갈 일이다.
아무리 좋은 내용을 담고 있어도 쓴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글이라면 다른 사람에게는 무의미한 것이다. 글은 대화와 같은 것이라고도 했다. 여러 사람이 대화하는데 서로 알지 못하는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면, 상대방에게는 의미 없는 소음으로 들릴 것이다. 글을 알기 쉬운 문장으로 쓰라는 말은 자신이 이해하는 내용과 용어를 써야 한다는 뜻도 된다. 자신이 충분히 숙지하고 있는 내용을 쓰게 되면 다른 사람이 이해하기 쉽게 쓸 수 있다. 또한 빈약한 글을 겉치레로 포장하기 위해서 현학적인 용어를 쓰게 되면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속담을 가리키는 경우가 되어 멸시를 받기 쉽다. 글을 평이하게 써야 한다는 말은 글을 읽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2) 적절한 문장
수필은 미사여구를 나열하는 문장이 아님은 말할 필요도 없다. 사실 그대로를 표현하면 된다. 미사여구만을 노리다 보면 사실과 상치되는 경우가 없지 않다. 즉 현실감이 상실 내지는 감소되고 만다. 어느 의미에서 수필은 머리로 써 가는 글이라기보다는 마음으로 써 가는 글이다. 그러므로 수필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되는 글임에 사실성에 충실하고, 그 사실을 바르게 전달하는 문장이 되어야 한다.
3) 개성적 문장
사람에게는 각각의 개성이라는 게 있다.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사람, 말이 많은 사람, 유난히 코가 큰 사람, 깔끔한 걸 좋아하는 사람……, 용모, 성격, 습관, 의식 등등의 모든 면에서 똑같은 사람이 단 하나도 이 세상에 없으니 이게 바로 개성이다. 글에도 분명히 개성이 있다. 있어도 아주 많고 다양하다. 문체의 개성, 어휘의 개성, 표현의 개성, 주제의 개성, 구성의 개성, 형식의 개성……, 글에 있어서도 개성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수필은 자신의 개성적인 인격의 반영이요 사상의 표현이기 때문에 남의 문장을 모방해서는 안 된다. 개성이 있는(자기 나름대로 특색이 있는)문장을 만들어 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작업의 하나이다.
4) 고품격 문장
수필은 품위가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품위란 인간이 가지는 절대적 가치로서 스스로 존경을 요구하는 특질을 뜻한다. 외면 보살 내면 야차라는 말이 있듯이 표리부동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품위를 저락시키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수필은 자기의 박식을 선전하는 글도 아니요, 허황된 과장이 있거나 지나치게 아는 체 하면서 자기를 선전하는 일 따위는 더더구나 아니다.
5) 수필어 문장
글이라는 것은 단적으로 말해 자신의 전하고자 하는 바를 남에게 읽혀 공감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글은 글쓴이의 구체적이고 특수한 경험이나 인식이 논리적으로 쓰여 설득력을 지녀야 하는 것이다. 구체성이 결여된 글은 얼핏 읽어서는 많은 것을 포괄적으로 광범위하게 전달하는 것 같지만 읽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 막연하고 모호한 글은 독자의 공감을 받을 수 없다. 수필은 어디까지나 문장을 통해 사상이 구체적으로 형상화되어져야 한다.
문학적인 형상화를 기할 수 있는 방법으로써 여기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수필어'다. 휠 라이트가 말하는 열린 단어가 바로 수필어다. 수필어로 된 문장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추상어보다는 구체어로 표현된다. 감감적 대상을 가리키는 특수어, 구체어들은 정서적, 환기적 언어로서 심상을 떠오르게 하여 상상을 풍부하게 자극하고 생동감을 준다.
② 설명적이기보다는 묘사적으로 표현된다. 다의어를 활용하여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이나 정서를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문학의 기초다. 예술은 '보는 것'을 만드는 것이 목적인만큼 수필도 언어 예술이기 때문에 언어에 의해서 사물을 보는 상태로 만들어 내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시각어로 문장을 회화화함으로써 상투적이고 진부한 즉 눈에 익은 표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이는 동사를 회화화시킴으로써 가능하다. 묘사적 문장은 가치판단적 사고의 배제나 탈피에서 가능함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③ 수필어는 상징, 암시적인 어휘나 함축적인 문구를 요구한다. 즉 상징적 표현에 의해 정서를 암시 내지는 함축시킨다. 이는 주제의 효과적인 의미전달을 위한 것이다.
수필작품은 수필어로서 문학적 형상화를 이룰 수 없다면 수필로서의 묘미를 잃고 만다.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 하여 아무렇게나 써도 되는 글은 아니다. 직접적으로 독자의 감정에 호소하는 것도 좋겠지만 반면에 은은한 향취를 풍겨주는 것도 수필로서의 묘미이다. 이 묘미는 문학적으로 형상화되었을 때 비로소 수필다운 맛이 더해지기 마련이다.
6) 구체적 문장
서술이나 묘사에 있어서 표현이 모호하거나 추상적이어서는 안 된다. 수필의 문장은 작가와 독자 간의 격의 없는 '정감의 교류'다. 때문에 문장은 길든 짧든 보다 구체적이어야 한다. 이를테면, "경희야, 10월인데도 지금 삼촌네 집 뜰에는 해바라기가 뜨겁게 타고 있다." 같은 문장이다. 이는 단문인데도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라는 상황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경희는 조카고, 작가는 그의 삼촌인 관계까지도 알 수 있다.
7) 지성적 문장
정서의 지성화란 정서를 객관화함으로써 가능한 자기감정의 순화요, 자기 이해다. 그 지성화의 작업이 여의치 못할 때는 흔히 자기 몰입이나 흥분에 사로 잡혀 문장의 관념이나 추상에 붙들리고 만다. 넋두리가 되고, 감상 일변도의 잡문이 되는 이유가 정서를 과장되게 처리하는 추상성에 있다. 이를테면, "청춘! 아,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소리 같은 심장의 고동 소리를 들어 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동하는 심장은 거선의 기관과 같이 힘차다. 이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꾸며 내려온 동력은 꼭 이것이다." 같은 문장이다.
지성화의 문장은 어디까지나 정서를 집약, 구체화하여 객관성을 유지하는 입장에서 서술해야 한다. 또한 지성화의 문장은 예시적 문장들이 자연스럽게 조합되어 일단의 분위기를 형성해야 되고, 주제의식 또한 맥을 같이 하는 그들 문장 속에 충분히 희석되어 유현하게 나타나야 한다.
8) 정서화 문장
수필은 대우성의 문학이다. 다시 말하면 명제는 작가의 것이로되 결론은 혼자만의 것일 수 없다. 즉 독자와 공감이 유지되어야 한다. 지성이 독주하면 명제는 빛나고 주제의식은 분명해질지 모르나, 독자와의 대우적 관계를 유지해 주는 정서의 흐름은 막히고 끊길 위험이 있다. 결국 지성의 정서화는 문학의 교시성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신은 나 같은 인생이 자살할 것을 두려워서 여러 가지 방책을 쓴다. 첫째는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리라'는 희망을 내 정신 속에 심어둠이다. 이것은 진실로 생명수다. 이것 때문에 나 같은 사람은 '내일이다. 내일이다……'하고 상한 가슴과 피곤한 다리를 끌고 허덕허덕 인생의 고개를 넘어가는 것이다.
이광수의 수필 "인생의 향기" 중의 한 문단으로서,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리라'에서의 지성을 밑줄 친 부분의 문장으로 정서화 하고 있다.
9) 동화된 문장
동화란 물아일체의 동질화 현상이다. 이는 내가 물이 되고, 물이 내가 되는 물심일여의 상태로서, 철저하게 나를 먼저 제재 앞에 비움으로써만 가능하다. 그 진실 하나를 얻기 위해 수필가는 헐벗은 산이 되고, 고독한 나무가 되고, 때로는 이끼긴 바위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나무를 통해 삶을 말하든, 바위를 통해 영원을 말하든 그 목소리는 어디까지나 작가 자신의 것이어야 한다. 아무리 유능한 수필가라 할지라도 사상과 정서의 동화 없이는 결코 그 진실을 주제의식으로 구체화시킬 수 없다. 다음은 이양하의 수필의 한 대목으로 사상과 감정이 동화된 문장이다.
"불교의 소위 윤회설이 참말이라면, 나는 죽어서 나무가 되고 싶다. 무슨 나무가 될까? 이미 나무를 뜻하였으니 진달래가 될까, 소나무가 될까는 가리지 않는다."
10) 비유적 문장
주제의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문장의 상상화가 필요하다. 단형의 문학인 수필에 있어서 한 개의 문장은 때로 소설에서의 한 사건에 해당하는 것으로, 주제 전달이란 큰 몫을 다하기도 한다. 신변사나 생활에서의 깨달음이나 견해들이 소재가 되고 주제가 되는 수필이라면, 내밀한 경험이나 고백을 객관화하기 위해서는 상징, 비유, 암시적인 문장 표현은 불가피하다. 교시적인 기능을 문예화하기 위한 수단으로는 가장 이상적인 기법이 문장의 상상화다.
" 아이, 그 놈의 개구리 우는 소리에 잠이 와야지, 그래서 만주로 가는 길이야."
수필의 한 대목인데, 조선으로 이주한 일본인들의 농지탈취로 더 이상 제 땅에서는 살 수가 없어 만주로 쫓겨 가는 한 농부의 익살이다. 발붙일 곳이 없어 유랑이 길을 떠나면서도 가는 이유가 어이없게도 '개구리 우는 소리 때문'이라니, 주제의식을 상상 처리하는 자조, 자탄의 극치라 할 수 있다.
"서양인은 13의 수를 싫어하여 여관이나 선실에도 12 다음에는 14h가 된다 하며, 전화에도 13번은 싫어한다. 하기는, 우리 조선도 13도로 가르더니 별로 좋지를 못하였다."
이광수의 수필의 일부이다. 역시 일제 하의 참상을 풍자하는 주제를 상상 처리하는 비유의 문장이다.
11) 의미화 문장
의미화란 사상을 비유나 상상을 통하여 문예적으로 나타내는 작가의 개성적인 시각이요, 마음이다. 사상의 의미화는 수필의 문예화를 위해서 가장 바람직한 표현 형식 중의 하나다.
"내 어머니는 '레프라(문둥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 어머니를 '클레오파트라'와 바꾸지 않겠습니다."
"어린이의 생각으론 잘못이 아닌데 그것이 잘못인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꾸중을 듣고 있는 어린이들에게서 나는 슬픔을 느낀다. 이 슬픔은 우리 어른들이 갈아먹어야 할 돌가루 같은 약이다. 어린이날은 어른이 약을 먹어야 하는 날이다."
위의 예문은 김소운, 유강환의 수필에서 발췌한 사상을 의미화 한 문장의 예다.
수필가 김진섭은 수필은 "다만 자기를 말하는 문장"임을 강조한다. 또 김광섭은 "평정한 마음에서 마치 먼 곳의 그리운 동무에게 심정을 말하려는 듯한, 그러한 한가로운 듯한 붓을 움직여서 무의식한 가운데서의 단성으로 한 편의 문장"을 써가야 한다는 작자의 '마음가짐'을 당부한다. 이에 백철은 수필이란 "산문으로 쓰여야 한다."고 전제하고, 이어 "의견표시이며 대화적이며 교훈적인 글"이어야 함을 피력한다. 문장으로서의 그런 글이어야 함을 말한다. 그로부터의 개성 있는 문장이어야 한다. 개성 없는 문장은 마치 그 나름의 맛을 잃은 음식물과 같기 때문이다.
다음은 문장암에 걸리지 않는 비결 30조다. 문장암의 5대 증상이 보이는 글은 첫째 어렵고 까다로운 글, 둘째 딱딱하고 건조로운 글, 셋째 문맥이 어지러운 글이다. 혈맥의 막힘은 건강의 적신호요, 문맥의 막힘은 의사소통의 적신호다. 넷째 장문이다. 문장암의 제1호는 장문일 것이다. 표현, 전달의 효과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것이 이 장문이다. 다섯째 간결하지 않은 글이다. 간결체는 모든 문장의 최대공약수요, 현대 문장의 제1조다. 문장의 경제학은 최소한으로 필요한 어휘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글을 쓸 때, 특히 조심할 사항 30조를 열거해 보겠다.
먼저 단락의 조직면에서 살펴보겠다.
(1)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하여, 쉽고 빠르게 묻어가게끔 단락을 짠다. (2) 독자의 편에서 구상하고, 그 구상을 좇아 단락을 짠다. (3) 긴 문에선 결론단락을 앞에 놓아 쉬운 문장을 꾀한다. (4) 큰 문맥의 전개는 가급적 쉽고 단순하게 한다. (5) 단락의 길이가 너무 길지 않게 한다. (6) 읽기의 시각적 효과를 노려, 읽는 싫증을 가시게끔 배려한다.
이번에는 문의 내부면에서 살펴보겠다.
(7) 문장의 이음에 지나친 이음말은 삼간다. 긴 단락은 많아야 한두 개 정도가 적당하다. (8) 긴 문장은 적당히 자른다. 60자가 넘으면 다시 생각해 보라. (9) 한 문장 안에 두 가지 내용을 곱쳐 넣지 않는다. (10) 복잡한 내용을 나타낼 때는 대등절로 끊거나, 주종절로 끊어 읽으며 헷갈리지 않게 한다. (11) 수식어가 길어질 때는 따로 문장을 세운다. (12) 긴 수식어를 앞에 놓고, 짧은 수식어를 뒤에 놓는다. (13) 꾸미는 말은 가급적 꾸미어지는 말 앞에 놓는다. (14) 주어 서술어 사이를 가급적 가까이 한다. (15) 문장의 중간에서 주어가 바뀔 때는 그 주어를 생략하지 않는다. (16) 부사의 조응을 확인한다. (17) 같은 꼴의 조사는 그 문장 안에서 가급적 되쓰지 않는다.
다음은 서술 표현면에서 살펴보겠다.
(18) 오해를 살 수 있거나 불쾌한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표현은 삼간다. (19)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표현이나 명령조의 표현은 삼간다. (20) 지나친 과장 표현은 삼간다. (21) 귀걸이도 되고 코걸이도 되는 표현은 삼간다. (22) 비유법 사용이 적절한가를 점검한다. (23) 비문법의 표현은 고친다. (24) 남의 의견, 남의 글은 자기의 것과 섞지 않는다. (25) 서두와 결구는 문장의 효과를 위하여 특단의 배려를 기울인다. (26) 독자가 읽으며 싫증을 느끼거나 식상할 문미는 바꾼다.
마지막으로 어휘면에서 살펴보겠다.
(27) 군더더기 말, 애매한 말은 피한다. (28) 자기만이 아는 말이나 신조어, 전문어는 피한다. (29) 사전을 찾으며 읽어야 할 어휘는 딴 말로 바꾼다. (30) 지나친 준말은 삼간다.
*************************************************************************************
수필의 문맥 / 권대근(수필가. 문학평론가. 문학박사)
문맥이란 문장 안에 일렁이는 역동적 맥줄기다. 정적인 문장의 나열에서, 행간에 숨은, 필자의 생각과 숨소리를 엿듣는 게 '문맥의 파악'이다. 문맥이란 곧 문장 전체에 뻗친 구조의 됨됨이요, 완결과 조화의 모양새다.
문장의 뜻이 끊어지거나 막힐 때 인체가 부자연스럽게 되는 것과 같다. 문맥은 한 단락(문단) 안에서도 이어져야 하고, 단락과 단락 사이에서도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문맥을 잇는 것은 반드시 앞의 말을 설명하듯 이어받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설명하듯 하지 않아도 뜻으로 연결이 이루어지면 된다. 초심자의 경우는 설명을 붙여야 하는 것으로 알고, 문장에 군더더기를 붙여 놓는다.
문맥이 끊기거나 흐려지거나 정연하지 않은 경우는 다음과 같다.
① 앞의 문장에 이어댄 문장의 개념이 다르거나 필요가 없을 때- 논리성을 잃을 때,
② 관련지은 것이 군더더기가 되고 있을 때,
③ 강도가 따라야 할 표현이 약하게 됐을 때,
④ 부드러워야 할 부분이 강한 표현이 되었을 때,
⑤ 솔직하고 쉽게 표현해야 할 것을 미화 분식했을 때,
⑥ 앞문장과 같은 뜻의 말이 되풀이 되었을 때,
⑦ 앞 뒤 순서가 바뀌었을 때,
⑧ 추상적 상징적인 말로 알 수 없게 썼을 때,
⑨ 문장의 음운유형이 중복될 때 등이다.
문맥은 문장이 제자리에 놓여 있을 때라야 통한다. 문단과 문단이 통하지 않을 땐 접속사로 이어야 할 경우가 있으나, 그렇게 하지 않고서도 통하도록 해야 한다. 초심자의 경우는 이것이 쉽지 않다 문맥을 통하게 하는 일이 문장을 조직하는 일이다. 한 단락의 여러 문장이 서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야 한다. 문맥이 통하고 안 통하는가를 예를 들어 살펴보자.
서양인들에게는 낮은 신이 지배하고 밤은 악마가 지배한다는 통념이 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자연히 밤의 상징인 달이 그리 달갑지 않은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보름달은 서양인들에게 거의 공포의 상징처럼 되어 있다. 여기에 반해 동양에서 보름달은 아주 좋은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다. 추석날 동산 위에 걸린 둥근 달을 바라보는 모습은 우리의 정서에 태평연월로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위 예문에서 괄호 속의 문장을 빼내어 버리면 글의 맥락이 통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글을 쓸 때에는 통일된 주제를 일관성 있게 진술하는 데 필요한 문장만을 골라서 단락을 짜야할 것이다. 이는 대단락의 이음새도 논리적으로 유효하게 전개되어야 하겠지만, 낱낱의 문장에서도 긴밀히 그 줄기가 이어져야 이상적이란 말이다. 흔히 '맥 풀린 문장, 맥 빠진 문장'이란 바로 이런 구조의 결함이나 조화의 결함을 지적한 말들이다.
따라서 좋은 글이란 첫째 주제의 일관성, 둘째 구성의 확연성, 셋째 문맥어의 명확성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
문장의 요건 / 권대근(수필가. 문학평론가. 문학박사)
'좋은 문장'은 문장론 최후의 과녁이요, 이 책의 종착역을 뜻하는 말이다. 많은 문장학자들이 내세우는 내용들이 열거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 '문장'이란 본디 정신의 종합적 산물이요, 그 필자 경험과 지혜에서 빚어진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좋은 문장으로 된 좋은 수필이 되자면 몇 가지 규범이 따른다. 첫째 문장이 솔직하고 소박해서 진솔성이 있어야 한다. 사물을 나타내는 말에는 오직 그것에 맞는 말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진실을 나타낸다는 뜻이며 솔직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이 수필 문장의 본질이다.
문장은 아름답게 꾸미려고 할수록 진실과 멀어진다. 이런 것을 바로 잡고자 한 운동이 중국 당나라 때의 고문 운동이다. 한나라 이후 8백여 년 간에 걸쳐, 문장을 겉치레로 꾸며 내용이 허약해지고 퇴폐적으로 이르게 되어, 한유와 유종원 등이 건실한 문장정신의 복귀를 위해 일으킨 운동이다.
여하간 꾸미는 글은 좋은 글이 될 수 없다. 수필의 문학성을 미문으로 오해하고 있는 경향마저 있다. 수필의 문학성을 한 마디로 말할 수는 없으나, 이론이 명쾌해도 그렇게 쓰이지 않는 것이 수필 문장의 특성이다.
수필의 문학성은 일차적으로 독자를 감동시키는 데 있다. 그것은 내용과 함께 문장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작자의 사상과 감성의 내부에서 걸러지고 삭혀져서, 잘 익은 술처럼 향기를 내게 해야 한다. 이것은 작자의 품격과도 관련이 된다.
수필의 문학성을 서정성에 두고 있으나, 지적이거나 논리적이라 해서 공감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수필의 문학성은 어떤 것이든 궁극적으로 인간의 문제가 담기면서 감동을 주는 것이라야 한다. 수필의 요건으로 제시한 것을 보기로 하자.
공덕용은 '수필답지 못한 수필'은 주제 파악이 부족한 데서 왔다고 지적하면서 수필의 주제는 던져주거나 강요하기보다는 넌지시 시사하면서 독자가 깨닫게 하는 수법이 수필적이라 하고, 최승범은 수필의 형식이 본질적으로 자유분방한 것임에 비추어, 현실을 지나치게 안이하게 간주한다는 폐단을 지적하면서, 수필은 적어도 삼단의 구성이 갖추어져야 한다고 했고, 김영규는 목하 실명론적인 허명의 제목이 범람하면서 상업주의와 결탁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제목은 수필의 성격처럼 간결해야 한다고 했으며, 김용구는 지금은 수필의 소재가 자기 주변이나 과거를 그리는 사수필적 회향주의로 기울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수필이 인간의 공통성 추구나 미래 지향적인 일에도 공헌해야 한다고 했고, 유병현은 요즘 수필 문장이 터무니없이 대화나 인용을 많이 삽입하거나 수식의 범람이 일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메시지 전달을 필요로 하는 수필에 수식어가 필수는 아니라고 했다. 끝으로 정목일은 수필이 매체의 범람으로 상업주의와 영합, 수필의 독자성을 상실할 우려가 있음을 지적하면서, 수필은 본래의 격대로 정갈의 맛, 여백의 향기를 지녀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어서 허세욱은 논어에서 끌어내 말하기를 진리를 추구 지향하는 인격과 가난을 긍지로까지 여길 줄 알며, 근심하거나 두려워 지 않으며, 진실과 정의를 사랑하는 일이라고 했다. 인격적 신축성과 의연성 그리고 지성을 갖춘 자기반성의 태도를 들고, 포괄적으로 작자의 인격적 품위를 강조했다.
좀더 구체적으로, 좋은 수필이 되게 하는 매력은 무엇일까. '매력' 그것은 내부에 있는 번득임이다. 외부에 나타나는 번득임, 그것은 '매력'이 아니라 호기심을 자극하는 연기일 뿐이다. 명작의 매력은 그래서 일생 동안 가슴의 내부에서 번득이는 영원한 메아리에 있을 것이다.
매력적인 문장, 그는 첫밗부터 사람을 사로잡지 않아도 좋다. 엉성한 표현이어도 좋고, 섣부른 표기이어도 좋다. 거기, 그 무엇으로도 허물릴 수 없는 '진실'이 있으면 그만이고, 타고난 '소박'이 깃들였으면 그만이고, 독자와 손 마주잡을 '눈물'이 있으면 그만이다. '진실'과 '소박'과 '눈물', 그를 능가할 매력거리는 다시없을 것이다.
이끌리는 문장의 절대 조건이 '주제의 감동'이라 하더라도, 그러나 문장도 아트요, 솜씨임을 놓치지 말 일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매, 꿰는 솜씨로 하여 한결 구슬이 빛난다면 굳이 솜씨를 외면할 턱은 없다는 말이다.
몇 가지 매력적인 문장의 요건을 들어 본다.
① 감동적인 주제가 으뜸
② 틀을 깬 독창적인 구성
③ 효과적인 유도의 서두
④ 여운스런 마무리의 뒷맛
⑤ 구체적이고 재미로운 내용, 소재
⑥ 운치로운 수사법
그러나 매력을 너무 의식한 나머지, 주제를 너무 과장하거나 호들갑떠는 기교를 부린다면 품위 없는 문장으로 전락한다. 어디까지나 '진실'과 '소박'과 '눈물'을 바탕으로 해야 할 것이다. 아름다운 조화에는 나비가 안 가도 쓴 냉이꽃에는 나비가 앉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좋은 수필이 되는 몇 가지 요건을 살펴보자.
1) 뛰어난 예술성
작품에 반영되어 수필을 빛나게 하는 탁월한 인품이란 반드시 도덕적으로 높은 경지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예리한 관찰력과 풍부한 상상력, 해박한 지식과 심오한 사상, 뛰어난 예술 감각, 뚜렷한 개성 등 모든 방면에 있어서의 탁월성은 어느 것이나 좋은 수필을 쓰는 데 보배로운 자산이 될 것이다. 특히 뛰어난 해학은 값진 수필을 위해서 크게 도움이 되는 특질이다.
2) 인품과 문장력
표현되는 대상으로서의 나와 표현하는 문필가로서의 나는 수필을 구성하는 두 가지 기본 요소이다. 따라서 수필의 우열은 표현되는 대상으로서의 나의 우열과 표현하는 문필가로서의 우열의 결합에 의하여 결정된다. 만약 표현되는 대상으로서의 나의 사람됨이 탁월하고, 또 표현하는 문필가로서의 나의 문장력도 탁월하다면, 그 결합으로 이루어지는 수필은 더없이 훌륭한 작품이 될 것이다.
수필에 있어서 인품과 함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문장력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문장력이라는 말은 구상까지도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 사용된다. 자신의 체험과 사색을 글로 나타낼 수 있는 표현의 능력을 통틀어서 편의상 문장력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어떠한 인품이 탁월한 인품이냐에 대해서 견해의 대립이 있을 수 있듯이, 어떠한 문장이 좋은 문장이냐에 대해서도 견해의 대립이 있을 수 있다. 인품에 있어서나 문장에 있어서나, 탁월성의 기준을 정하는 문제에 있어서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 것은 인간성과 문화적 전통일 것이다.
3) 솔직과 평명성
수필가가 자기의 인품의 탁월함을 과시하고자 하는 동기를 따라서 글을 쓸 때, 그 작품은 결정적으로 실패한다. 성현 군자연한 글 뿐 아니라 자신의 박식이나 견문을 과시한 글은 독자에게 거부감을 일으킨다. 의도함이 없이 은연중에 작가의 인품이 작품에서 풍길 때 독자는 기쁜 공감에 젖는다.
자신의 결함 또는 실패담을 솔직하고 꾸밈없이 다룸으로써 좋은 작품을 얻을 경우가 있다. 솔직함은 그 자체가 미덕일 뿐 아니라 마음의 여유와 결합하면 해학을 낳기 때문이다. 자기만을 위한 것이 아닌 모든 글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그 뜻이 독자에게 잘 전달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의미 전달이 잘 되지 않는 문장은 원칙적으로 좋은 문장이 아니다. 다만 높은 경지에 이른 작가는 더러는 탁월한 독자에게만 이해될 수 있는 글을 쓸 특권을 갖는다.
4) 표현의 적절성
독자의 미적 심금에 와 닿는 문장은 좋은 문장이다. 다만 어떤 독자의 미감을 매혹하느냐가 문제이다. 초보적 독자들의 미감과 잘 어울리는 문장을 세상에서는 흔히 미문이라고 부른다. 의도적으로 멋있는 글을 쓰고자 꾀하면 도리어 저속한 글이 된다. 평범한 듯하면서 평범하지 않은 글이 좋은 글이다.
5) 함축과 간결성
독자에게도 느끼고 생각할 여지를 남겨 놓는 글이 좋은 글이다. 모든 말을 다해 버리면 독자는 지루함에 빠진다. 함축은 수필의 생명이며, 함축을 위해서는 문장이 간결해야 한다. 군소리는 글을 죽인다.
6) 문장의 보편성
되도록 여러 사람에게 감동을 일으키는 글이 좋은 글이다. 자기 혼자의 정취나 감흥에 젖어 제 멋에 도취한 글은 소수의 독자들에게만 매력이 있을 것이다.
7) 결말의 여운성
수필은 여운이 길어야 좋다. 결론을 단정적으로 내려버리면 글은 여운을 잃는다. 결말에서 여운을 남기면 독자에게 강한 영상과 심상을 준다. 이른바 동양화에서 보이는 여백과도 같은 것으로, 할 말을 다 하지 않고 여운과 여정을 남김으로써 독자 나름대로 유추하고 사고할 수 있는 상상의 폭을 넓혀 주는 수법이다.
8) 작품의 품격성
수필은 품위가 높아야 한다. 문장은 수필의 품위를 좌우함에 있어서 결정적 구실을 한다. 야비하거나 표독한 표현은 글의 품위를 깎는다. 재주를 앞세워도 품위는 떨어진다.
9) 전달의 차단성
수필에서 삶의 교훈을 얻는 것은 보배로운 일이다. 그러나 작가가 목소리를 높여서 설교를 꾀해도 좋은 것은 아주 특수한 경우에 국한된다. 수필에 있어서 비판정신은 글을 돋보이게 할 수가 있다. 그러나 비판은 공정해야 하며, 자기 자신의 분수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교훈의 경우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비판도 직선적이기보다는 간접적인 것이 수필에 어울린다.
*************************************************************************************
수필의 호흡 / 권대근(수필가. 문학평론가. 문학박사)
시조나 한시의 율시처럼 구절의 글자 수가 일정한 형식을 갖춘 것을 정형시 혹은 산문의 대칭으로 운문이라 한다. 이러한 정형시는 외형율에 의한 음악적인 리듬이 있고, 외형적 리듬이 있으면서도 내재율이라는 리듬이 있다. 이 내재율 같은 것이 수필문장에 있어서의 호흡이다.
호흡이란, 동물체가 숨을 쉬는 생리적 현상으로, 정상 상태에서는 반복하는 규칙이 일정하다. 그러나 문장의 호흡이란 이와 같이 일정한 반복적 리듬을 말하는 것은 아니고, 불규칙한 규칙성을 말한다. 문장엔 호흡이 살아 있지 않으면 생동감이 없다.
수필문장의 호흡을 흐르는 물에 비교한다면 잔잔히 흐르다가 여울이 되고, 완만한 흐름이 되다가 굽이쳐 돌아가며, 격류가 되다가 다시 구부러져 가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호흡이란 불규칙적 배열의 내재적 리듬을 말한다. 예문을 보자
간호원의 지시에 따라 겉옷을 벗었다. 의사가 없는 방 안이 썰렁하다. 얼마를 기다려도 들어오지 않는다. 밖에는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다. 종합병원은 어딜 가도 마찬가지다. 불평을 할 수 없어 참을 수밖에 없다. 얼마 후에야 의사가 들어왔다.
위의 예문을 보면 문장마다 구절 길이가 거의 비슷하다. 동물의 호흡처럼 규칙성이 일정한 셈이다. 이 글을 읽으면 자연히 가슴이 답답해진다. 유연성이 없는 까닭이다. 문장의 호흡이란, 바로 유연성을 말한다. 유연성이 없으면 삭막하고 정감이 없다.
따라서 문장의 호흡이란, 구절의 길이를 조절하는 일이다. 불규칙한 상태로 배열의 균형을 잡는 일이다. 앞의 글의 호흡을 살리려면 다음과 같이 되어야 할 것이다.
간호원의 지시에 따라 겉옷을 벗었다. 설렁한 방에서 특진의가 나타나기를 기다렸으나 좀처럼 나타나지를 않았다. 밖에는 환자들이 구름처럼, 기다리고 있다. 한기를 참으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종합병원은 어딜 가도 마찬가지이니 참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얼마를 기다린 후에야 수련의를 거느린 특진의가 나타났다.
이 글은 처음 글보다 읽기에 훨씬 편안하다. 문장의 길이가 짧았다 길어졌다 해서 불규칙하게 배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문장의 호흡을 살리는 리듬이다. 문장의 호흡은 수사적 요소로 조절을 하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수사는 미사여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문장의 주성분에 붙는 부속 성분으로 길이를 조절한다는 뜻이다. 두 마디 말을 한 마디로 줄인다거나, 주성분에 부속 성분을 가하거나 빼거나 해서, 내재적 리듬과 외형적 호흡을 살리는 일이다.
문장은 주어와 서술어가 합쳐져서 골격을 이룬다. 새(주어)가 날아간다(서술어), 밤(주어)이 깊었다.(서술어) 따위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여기에 여러 가지 문법 요소에 의해 다시 복합적으로, 주성분에 부속 성분이 붙어서 엮어진다. '매가 하늘 높이 날다(주성분), 목표물을 향해 쏜살같이(부속 성분) 급강하했다.' 따위이다.
문장의 호흡을 살리는 일은, 이와 같은 주성분과 부속 성분의 조직 과정에서 분식하지 않고 리듬을 조절하는 일이다.
*************************************************************************************
문장의 강조 / 권대근(수필가. 문학평론가. 문학박사)
문장이란 필자가 노린 목적 달성의 수단이다. 겨냥하는 과녁을 에누리 없이 잘 맞히면 좋은 문장이 되는 것이다. 과녁 속에서도 다시 알짜 과녁이 있다. 그 과녁을 더 세게, 더 정확하게 맞히기 위해서 '강조'라는 기법을 쓴다. 변화 없는 얘기는 지루하다. 기복 없는 들판을 걷는 것은 권태로워지기 일쑤다. '읽힐 문장', 독자가 '도중하차 않을 문장'이 바라지는 까닭이다. 독자에게 강하게 안길 표현법, 독자의 주의를 끌 기법이 바로 문장의 강조법이다.
1) 위치선정
단락이나 문장의 구성으로 본 강조다. 독자의 주의를 끌기에 적합한 곳은 서두와 결미와 본문의 첫 단락 셋이다. 독자 중에는 서두와 결미만 읽어 보곤 가부를 결정하는 이가 있다. 그만큼 중요하다. "첫 석 줄로 수필의 성패가 좌우된다"는 것은 첫밗이 그만큼 중요함을 말한다.
2) 집중연타
연타식이란 상대방이 지루해하거나 허튼 생각할 겨를을 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쏘아 대는 강조다. 일변도로 몰아붙이는 세몰이의 효과가 있다.
3) 단락분량
긴 단락은 그만큼 필자가 하고픈 말이 많다는 증거요, 하고픈 말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강조함을 뜻한다. 단락의 길이가 다른 단락과 어느 정도 균형이 맞도록 조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4) 문미표현
문장의 노른자위는 서술어에 있고, 글쓴이 태도의 가위다리는 그 문미에 매인다. 서술어의 어미활용은 글쓴이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유일한 창구멍이다. 그 어미를 강하게 하면 전 문장이 강하게 표현된다.
5) 이중부정
하나의 완곡법이다. 부정을 다시 부정함으로써 긍정을 강조한다. 이중부정에 의한 강조는 정적 수필 문장에 적합하지 않다.
6) 강조부사
일명 '화식부사'라고도 하는 이 부사는 문장부사의 하나로 문 전체를 꾸미는 경향이 짙다. '결단코' '마땅히' '실로' '물론' '기어코' '부디' '제발' '아무쪼록' '과연' '반드시' 등의 말이다.
7) 반복강조
"중요한 것은 되풀이하라"는 문장 표어는 바로 이 반복의 강조법을 대변한다. 반복 강조 역시 서정 수필 문장에 어울리지 않는다.
8) 표현기교
"기교'란 표현의 효과를 높이려는 노력이다. 이에는 과장법, 현재법, 운율화 따위가 있겠고, 각 단락의 시작을 변화롭게 하여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 따위를 생각할 수 있겠다.
9) 단락변화
단락의 내용이나 구성을 변화롭게 하는 기법이다. A단락은 자기 경험으로, B단락은 친구의 경험으로 시작한다든지, A단락은 영화의 내용으로, B단락은 소설의 내용으로 시작하여, 변화나 호기심을 안기는 강조법이다. 단락의 첫 문장을 평서형으로만 하지 말고, 한 단락은 설의법으로, 한 단락은 인용법으로 하는 따위다.
10) 표현의도
강조한다는 필자의 의도를 서슴없이 드러내는 기법이다. 수필은 자신의 주장은 강하게 드러내지 않는 글이 좋다. 너무 주장을 강하게 하면 명제는 빛나게 되나 독자의 참여나 상상의 기회를 좁히게 된다.
11) 문장부호
느낌표만이 강조를 뜻하지는 않는다. 부호로서의 강조는 문장의 시각화요, 입체화다. 읽기 쉬운 글의 한 방법이겠다. 그러나 느낌표나 말줄임표, 의문부호 등이 남발되면 시각적으로도 보기 흉하고 감정 노출이 드러나 수필의 격을 낮춘다.
*************************************************************************************
문장의 용어 / 권대근(수필가. 문학평론가. 문학박사)
'용어는 문장의 핏줄이고, 낱말은 문장의 세포다' 의 저자 오소백 씨의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용어는 수사적 의미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문장으로 쓰는 말과 입으로 하는 말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근래에 와서 우리말은 일본말에 물이 들어있고, 이것이 다시 서구어 체계로 물들여져 문장에서 혼란을 빚고 있다. 이런 현상은 외국 문학이 들어오는 과정에서 번역이 잘못된 데에도 원인이 있으나, 대중 매체가 발달되어서 잘못된 용어들이 확산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글학회 조사에 의하면 순 토박이말이 43.6%다. 우리는 가급적 토박이말을 사용함으로써 국어를 풍부하게 하고, 풍부해짐으로써 품위 있는 문학어로 순화할 수 있을 것이다. 플로베르의 적어설을 참고로 읽어 보자.
우리들이 표현하려는 모든 것에는 그것을 표현하려는 유일한 명사, 그것을 움직이는 유일한 동사, 그것의 특질을 나타내는 유일한 형용사가 있을 뿐이다.
우리들은 그 유일한 명사, 유일한 동사, 유일한 형용사를 발견하기까지 그것을 탐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과 흡사한 언어의 정도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저만이 언어를 구하기 어렵다고 어름어름 속여 넘겨서는 안 된다. 세상에는 전혀 똑같은 두 알의 모래알, 두 알의 파리, 두 개의 손이 있을 수 없다. 하나의 타오르는 불이나, 한 그루의 나무를 묘사하는 데도 우리들은 그 불과 그 나무를 우리 눈으로 정밀하게 감시해서 다른 나무와 전연 다른 점을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최근 방송 심포지엄 토론 장면을 보면, 교수급 출연자의 말과 학생 신분 출연자의 말이 뒤바뀌어지고 있는 것도 그런 중의 하나이다. 말에는 높임말과 낮춤말이 있으나 이것이 뒤죽박죽이 되어 있는 것이 이즈음의 현상이다. 이처럼 말의 문장이 가속적으로 변질·저급화되어가고 있는 현상이 수필초심자의 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사람을 가리키는 호칭에서부터 용어의 사례를 보자. 특정인이 아닌 나이든 사람을 말할 때 '할아버지'라는 말을 쓴다. 이 호칭은 원래 손자가 조부를 부를 때 쓰는 한국 가정의 전통적 호칭이다. 이것이 근래에 와서, 노인의 대명사가 되었다. 노인을 할아버지로 부르는 것은 어린 아이들이, 현장에서 직접 대화할 때나 쓰는 말이고 성인이 문장에서 쓰는 말일 수는 없다. 수필이 어린 아이들의 글이 아닌 바에야 더더욱 그러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노인이 아닌 순수한 우리말-'늙은이' 또는 '늙은 사람'으로 표현해야 옳을 때가 있다.
'아저씨' 호칭도 그런 것 중의 하나이고, 젊은 여성이나 중년 여성이 남편을 가리켜, '아빠'라고 하는 것도 천격스런 말의 대표적인 것이다. 이 말을 문장에 쓰는 것이 옳지 않은 것은, 일인의 언어 습속에서 왔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식이 생기면 자식이 부르는 식으로 남편을 '아빠'(돗짱)라고 한다. 60년대 초 한일 국교가 트이면서 들어온 이런 말을 분별없이 수필문장에 쓴다는 것은, 작가의 교양에 관한 문제가 된다.
또 하나의 경우는 필요 없는 경어체를 쓰는 일이다. 20∼30대 젊은 여성이 방송에 출연해서 말할 때, 자기 남편에게 극존칭 경어체를 남발한다. '아빠께서는 ××을 좋아하시고, ××을 잘 잡수시고' 따위이다. 이런 말은 가정 안에서 자신의 손아래 사람에게나 자식에게 쓰는 말이고, 많은 시청자를 대상으로 하는 마이크나 카메라 앞에서는 삼가야 할 말이다. 우리의 전통으로는 어른 앞에서 남편을 높여 말하지 않는다. 마이크 앞이라 해서 시청자가 남편보다 모두 아랫사람일 리는 없다.
이러한 비뚤어진 언어 현상은 각계각층의 출연자들에게서 거의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이를테면 '그 나라 사람들은 모두가 부지런하더군요'해야 되는 것을 '모두가 부지런하시더군요'다. '그 나라 교수가 말하기를……'해야 할 때 '교수가 말씀하시기를……'따위로 무턱대고 경어를 쓴다. 말할 줄 모르는 어린이의 말솜씨보다도 서투르다. 존경하는 은사라 해도 역사적 기록의 성격이 되면, 이미 사적관계를 떠나는 것이므로, 서술에서 경어체는 쓰지 않아도 된다. 호칭에 있어서 존칭을 말할 때, 가령 장관과 마주앉아 말할 때, 예전에는 '대감'이라 했을 뿐 '님'이 붙지 않는다. '대감께서'하면 바로 그것이 존칭이었듯이, '장관께서'하면 바로 그것이 존칭이 된다.
오늘의 문장도 마찬가지다. 직접 제자가 되거나, 부모와 같은 위치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선생께서'하면 '님'이 붙지 않아도 경칭이 된다. 오늘의 초심자 수필에는 이와 같은 용어의 바른 사용이 보이지 않아 수필문장의 격이 낮아져가고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았으나 잘못 쓰는 용어의 예를 들자면 한이 없다. 한 가지 덧붙일 말은 인칭대명사가 잘못 쓰이는 예다. 사람이 아닌 동물이나 식물 따위에는 인칭 대명사는 쓸 수가 없다. 예들 들면 '그' 또는 '저' 따위 3인칭 대명사의 복수가 될 때 '그들' '저들'이 되는데 이것을 동물이나 식물에 '그들' '저들' 따위로 쓰는 일이다. 사람이 아닌 사물을 가리킬 때는 '그것들, 저것들' 등 일반적 지시 대명사라야 한다. 이러한 현상도 외국어가 들어오는 과정에서 잘못 사용되고 있는 것들이다. 아울러, 표준어를 써야 할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