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0월, 부.마 민주항쟁을 아시나요?]
- 草露(초로) 김성남 [자전적 실화] -
☞2024년 10월 16일은 부마민주항쟁
45주년 기념일!
강원도 감자바우 친구의 실제 경험담을
통해 지난 역사의 일부나마 반추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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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9년 10월 / 격동의 열흘! ]
☞16일: (이날은 유신선포 7주년 기념일)
부산 마산에서 유신·군사정권에
항거한 최초의 민주 항쟁 시작
☞17일: 밤, 11시 40분
중앙청 임시국무회의에서
부산 지역에 대한 비상계엄령 선포
☞18일: 오후, 부산대학교
베일속의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3공수 여단장 등을 만나서 '초동 강경진압'을 지휘(사실상 실세였음)
☞18일: 저녁, 청와대
(부산 시위 현장을 살펴보고 돌아온)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부마 사태는 민중봉기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박통
"부산 같은 사태가 생기면 이제는 내가 직접 발포 명령을 내리겠다!"
◐차지철 경호실장
"캄보디아에서는 300만명을 죽이고도 까딱 없었는데, 우리도 데모대원 1,2백만 명 정도 죽인다고 까딱 있겠습니까?"
☞19일:저녁, 마산
당시 고교생이던 나는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린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3.15의거 기념탑이 지척에 있는 마산 창동에서 시작된 '유신철폐·독재타도' 데모에 참여했다가
체포 연행 구금되어 군화발에 짓밟히고, 집단 구타를 당하는 등, 폭압적이고 야만적인
국가폭력(state terror)에 의해 죽을 뻔...
(같은 동네<산호동>에 살던 유치준씨<당시 51세>는 당시 주구 경찰의 폭력으로 인해 다음 날 주검으로 발견 됨)
☞20일: 0시를 기해 마산지역에 대한 위수령 선포
☞26일: 궁정동 안가
◐김재규
(오른쪽에 앉아 있던 김계원 비서실장을 오른손으로 툭 치면서)
"각하를 똑바로 모십시오!"
(차지철 실장을 쳐다보며)
"각하 이따위 버러지 같은 자식을 데리고 정치를 하니 올바로 되겠습니까?"
(차지철을 향해) 탕~
◐차지철
"김부장, 왜 이래? 왜 이래?"
◐김계원
"무슨 짓들이야!"
◐김재규
고향(선산) 선배이자 만주 관동군 선배이며, 유신의 심장인 박통을 향해 다시
탕~탕~
☞이렇게 18년 유신.군부독재가 끝나면서ㅡ
불과 10일 전 시작되어...
부산에서, 마산에서
수 백명이 연행되어
불법 고문 등의 고초를 겪었던 부.마 민주항쟁은,
10. 26 사태의 기폭제가 되었지만 이어진
전두환 신군부의
12.12 쿠데타로 근 30년간
역사 속에 묻혀 있었다
☞다행히 부마민주항쟁이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과 더불어 우리 현대사를 대표하는 4대 민주항쟁으로 인정받아
'국가 공식 기념일'로 지정되었다
☞나는, 국무총리실 산하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위원회'의 인터뷰에 이은 6개월 간의 증언, 증인, 관련조사를 거쳐서 2020년 12월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사망 구속 구금 상해]로 공식 인정되었다
부마 항쟁 당시의 폭도에서,
명예를 회복하는데 41년이 걸린 셈이지만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한다
☞나는 당시 고교생으로서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증인으로 사실을 증언하고 싶었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압 과정과 조사과정의 진실규명에 일조하여
역사에 바르게 기록되길 바랄 뿐이다
☞한 예로서, 당시 조사과정에서 나를
미리 파놓은 흙구덩이로 끌고가서 "실토하지 않으면 묻어버리겠다"는 식의
야만적인 겁박 조사는 내가 최초 증언자이고,
그런 만행은 지금도 계속 조사 중이다
앞으로
이러한 비정상적이고 비인간적인 국가폭력은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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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은
감자바우 친구 김성남의 스무 살 때의 초상!
- 초로(草露) 김성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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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제는 카카오가 말썽을 부려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아직도 복구가 덜된 것 같네요
고운 작품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한 주 되십시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