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수업을 마치고 뛰어 들어온 손자의 첫 마디다. 집에 있는 한 대의 컴퓨터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치열하다. 간혹 회사업무를 집에서 처리하는 아들 내외와 틈만 나면 게임을 하려는 손자 녀석 그리고 인터넷에 빠져 “안 하면 못 견디겠다”는 할아버지까지. 우리나라의 인터넷 보급률이 전 세계 1위라지만 낯선 광경일 수밖에 없다.
올해로 여든넷인 김노진(강서구 화곡동) 할아버지. 그가 인터넷을 처음 접한 것은 4년 전, 온갖 매스컴이 연일 인터넷에 대한 내용을 보도하던 때였다. 인터넷만 할 줄 알면 굳이 발품을 팔지 않아도 물건을 살 수 있고 요금을 내지 않아도 먼 친척에게 소식을 전할 수 있다고 했다. 의식주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손쉽게 찾을 수 있는, 한마디로 ‘도깨비 상자’라고 했다.
궁금했다. 배우고 싶었다. 우연히 신문 광고에서 정보통신부가 주관하는 실버 정보화교육을 알았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선착순 30명 안에 간신히 들어간 할아버지는 컴퓨터 켜는 방법부터 배웠다.
“손이 굳어서 마우스 만지는 것도 쉽지 않아. 더블클릭 하라는데 그게 마음대로 되나. 왼쪽 버튼 누르라면 오른쪽 누르고, 오른쪽 버튼 누르라면 왼쪽이 눌러지니. 원~”
젊은 사람들이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마우스지만 할아버지에게는 커다란 장애물이었다. 하루 2시간짜리 열흘 교육만 받아서는 마우스 움직이는 것도 여의치 않을 것 같았다. 교육대상이 65세 이상이라고는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 중에서도 최고령. 딴 생각을 하다가는 수업진도 따라가는 것도 빠듯했다.
“다 늙어서 인터넷은 배워 뭐하냐는 소리도 많이 들었지. 내가 인터넷 하고 있으면 다들 우습다고 했으니까.”
오기가 생겼다. 매일 나가서 컴퓨터와 씨름했다. 점점 재미있어지더니 ‘컴 세상’ 에 빠져들게 됐다. 할아버지는 맨 앞자리에 앉아 모르는 용어가 있으면 솔직하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교육원에서 나눠준 책으로 예습·복습도 철저히 했다. 나이 탓에 들었던 내용을 자꾸 잊어버려 애를 먹긴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잊어버리면 또 물어보고, 잊어버리면 물어보기를 반복했다. 당시 옆자리 친구와 주고받은 이메일이 온통 ‘끝까지 열심히 공부해서 꼭 졸업 합시다’ 일 정도라고.
그 후로도 할아버지는 여러 차례 컴퓨터 교육을 더 받았다. 모니터를 보고 있으면 눈이 침침해 눈물이 날 지경이지만 교육시간이 2시간밖에 안 돼 아쉬웠다. 게다가 “노인들도 ‘컴맹’이면 대화에도 못 끼는 세상”이라는 확고한 믿음이었다.
“애들도 신통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애비니까 그렇게 말은 못하고 다행이다, 생각하겠지.”
할아버지는 주로 언론사 사이트를 즐겨 찾는다. 인터넷을 통해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듣고 이슈에 대한 여론까지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또 아내를 위해 골다공증 등 건강에 대한 정보를 찾기도 하고, 취미생활이 등산이라 주요 등산코스를 검색해보기도 한다.
모 포털 사이트에 자신의 이름으로 도메인을 등록한 홈페이지(myhome.naver.com/kim no chin)도 가지고 있다. 현재는 좋아하는 영화와 지난 아테네올림픽 사진을 조금 올려놓았지만 인터넷에 대한 할아버지의 관심과 열정은 대단하다.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등산복을 사기도 하고 온·오프라인에서의 가격을 비교하기도 한다. 뿐이랴. 간혹 메신저로 ‘한잔 하자’는 친구들의 연락이 오기도 한다.
특히 큰 딸은 ‘한자 고사성어 찾는 프로그램’이나 ‘옛시조 감상’ 등을 메일로 보낸다. 비록 몸은 떨어져있지만 할아버지에게 도움이 될만한 자료들을 하루에도 몇 개씩 보내며 부녀지간의 정을 돈독히 하고 있다.
“예전에는 채팅도 했지. 그런데 나이 많다고 ‘강퇴’ 당하고, 어떤 고약한 사람은 ‘꺼져’라고까지 말하더라고. 그래 요즘은 잘 안하지. ”
그런 젊은이들을 호되게 꾸짖을 만도 한데, 할아버지는 오히려 그들을 감싸 안는다. “인터넷에서는 틈을 두면 안 된다”며 자신이 워낙 독수리타법이다보니 꼼지락 꼼지락대고, 기호나 채팅용어를 잘 모르니 상대방이 얼마나 답답하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인터넷을 놀이의 수단 정도로만 인식하는 것에는 불만이란다.
“컴퓨터를 만지면 뭔가를 찾을 생각을 해야지. 요즘 젊은이들은 인터넷을 시간 보내는 ‘심심풀이’로 생각하더라고. 인터넷을 활용해서 머리 쓸 생각을 좀 했으면 좋겠어.”
할아버지와 손자의 대화라고 하면 흔히들 옛날이야기를 떠올린다. 그러나 김노진 할아버지는 “옛날~ 옛날에” 대신 “컴퓨터가 바이러스를 먹었나? 익스플로어가 안 열려”라며 손자에게 말을 건넨다. 그러면 손자는 “할아버지, 부팅을 다시 해볼까”라며 맞장구친다.
만화로 도배된 바탕화면은 손자 녀석 짓이며 컴퓨터에 깔린 프로그램은 아들내외의 것이고, 전반적인 컴퓨터 관리는 김노진 할아버지의 몫이다. 컴퓨터는 한 대지만 가족애가 물씬 묻어난다. 할아버지 말마따나 ‘컴퓨터 가족’이다.
독일 시인 사무엘 울만은 그의 시 ‘청춘’을 통해 “청춘이란 강렬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오르는 정열,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선호하는 마음을 물리치는 모험심이다. 나이를 더해가는 것만으로 늙지 않는다. 이상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다”고 노래했다.
올해로 여든넷이지만 여느 젊은이보다 당당하고 활기차 보이는 김노진 할아버지. 그가 ‘클릭’하는 인생에 언제까지 젊음이 함께하길 기대해본다.
<미디어칸 이성희 기자 mong2@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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