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죽기 전에 내게 말했다. 세상의 모든 딸들은, 결국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호랑이의 뒤를 따를는 까마귀처럼 그렇게 살아가게 된다고, 과연 그것만이 진실의 전부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호랑이의 뒤를 따르는 까마귀도 될 수 있지만, 호랑이와 동행하는 다른 어떤 짐승도 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그렇게 살아왔을지 모르지만, 틸이나 아울이나 이 세상 모든 여자들이 한결같이 고기를 지배하는 남자들을 위해 불을 지필 장작을 모으고 그들을 위해 파카와 모카신을 만들며 그 일에 만족하면서 살아왔을지 모르지만 난 그런 것만이 여자의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주인공 야난이 1~2권에선 그냥 딸이었을 뿐이지만 3권에 와선 그 화려한 주인공의 지위에 올라서게 된다.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녹록할 거라면 어느 여자가 뭍 남자들의 위에 군림하고 싶지 않았을까. 그렇게 야난은 험난한 세상을 온몸으로 헤쳐나가야만 할 운명을 짊어졌는데...
출판사 돌고래의 『돌봄과 작업』(2022)은 일과 자녀 양육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11명의 여인들이 자신들의 삶을 솔직하고 고백하고 있다는데...그들 이야기 가운데 박찬욱 감독과 영화 '헤어질 결심'의 시나리오를 공동 집필한 정서경 작가의 아래 이야기는 여기서 말하는 세상의 모든 딸들 1~3편의 주인공 야난의 생각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이제야 모든 것을 알 것 같았다. 임산부를 향한 아낌없는 호의, 뭔가 모의한 듯한 미소의 진짜 의미를. 이제 네 차례다, 이거지. 인류는 이런 식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아이를 갖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절대로 말하지 않으면서...
하지만 우리 시대에선 그나마 아낌없는 호의를 임산부에게 베풀고 있는진 모르겠으나 적어도 20,000년 전 원시시대에선 그게 가당키나 한 얘기였을까? 야난의 어머니가 야난의 동생을 낳다가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하릴없이 죽어갔던 것맹키로 그녀의 딸 야난 역시 아이를 생산하다가 깊은 숲 속에서 혼자서 그렇게 죽어갔을 뿐이었다.
다만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야난의 어머닌 누구난 인정하는 자식을 낳다 그렇게 죽어갔지만 그녀의 딸 야난은 누구의 자식인지 말하지 않은 채 그 한 많은 이야기들을 미궁 속으로 남긴 채 죽어갔다는 것이다. 씨, 종자가 무엇인가? 야난이 잉태한 아이가 누구의 아이인들 그게 뭐이 중요한가? 단지 야난이 아무런 탈 없이 아이를 낳는 게 중요하지 않냔 말이다.
TV 드라마 'House of the dragon'의 제 1편에서 에서 왕의 부인인 왕비가 출산을 앞두고 사경을 헤맬 때 전의(殿醫)가 왕에게 말한다. "둘 중 하나만 살릴 수 있습니다. 누굴 살릴까요?" 약간의 주저함 끝에 왕이 말한다. "대를 잇는 게 중요하니 아이를 살리라." 하니 왕비는 속절 없이 죽어가면서 아이까지 함께 데려가고 만다. 그리고 혼자 남은 딸이 대습상속을 하게 되지만...
우리의 야난은 대물림 되어 온 인습, 장작을 모으고 파카와 모카신을 기운 여자의 일을 버리려 발버둥쳤지만, 종국에는 여자의 운명인 출산에 임하다 죽음을 맞게 된다. 그래, 인류는 그런 식으로 종족을 보존하고 대를 잇는 것이란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