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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1:29~33(260) 먼저, 앞서 가시는 하나님 2022.9.18.
며칠전인 9월 8일에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1926-2022) 96세의 나이로 돌아가시면서 많은 영국민들을 애통하게 만들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엘리자베스 2세도 영국민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여왕이지만, 정말로 오늘날까지 영국민들과 세계사에 큰 획을 그은 여왕이 잇습니다. 그 여왕의 이름은 빅토리안 여왕인데, 엘리자베스 여왕의 증조할머니입니다.
영국의 안렉산드리나 빅토리아 여왕(1819-1901)의 재위 기간은 역사적으로‘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로 따로 구별하여 부릅니다. 왜 이렇게 구별해서 통칭하느냐 하면, 빅토리아 여왕이 재위하였던 때, 영국을 두고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극찬을 받았던 때입니다. 이때는 대영 제국 최전성기 인정을 받으면서 영국이 전 세계 각국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때였습니다. 더군다나 빅토리아 여왕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왕이었습니다.
그녀가 하루는 왕실 전용열차를 타고 영국 북부 웨일즈 지역을 방문할 때였습니다. 늦은 밤에 열차를 운전하던 기관사는 갑자기 선로 앞에 나타난 이상한 장면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열차 헤드라이트 불빛에 사람 모양의 알 수 없는 존재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사람 모양을 가진 형체가 철로의 중앙에 서서 양팔을 흔드는 모습으로 기관사의 눈에 나타났습니다.
크게 놀란 기관사는 기차를 급정거 시킵니다. 급정거에 놀란 기관사와 객실에서 여왕을 보좌하던 보좌진들이 긴급정차 한 것 때문에 모두 내려서 열차 앞으로 와서 살핍니다. 하지만 열차 앞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상한 예감이 들었던 기관사는 안개가 깔려져 있는 철로 앞을 조금 더 나아가 봅니다. 짙은 안개 속을 몇 걸은 걸어간 아연실색을 합니다.
철로가 사라져 있고 철교각이 중간 부분이 없는 것을 본 것입니다. 낮 시간에 이 지역에 내린 폭우로 인해 철교가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멈추지 아니하고 몇 초만 계속 달렸더라면 기차를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면서 대참사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자 조금 전에 기차선로 위에서 손을 흔들며 기차를 세웠던 사람은 누구냐? 라는 것에 관심이 모아집니다. 이 사람은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을 살리고 고관대신들을 살린 영웅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서로 주변을 살펴도 사람은 인기척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왕을 실은 기차는 우여곡절 끝에 런던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런던 정비창에 열차가 보관되며 정비를 할 때에 드디어 그 비밀은 벗겨집니다. 기차를 점검하던 기술자 한 사람이 기차의 헤드라이트 속에 죽어있는 한 마리의 나방을 발견합니다. 선로에 있었던 신기한 일에 대해 들었던 기술자는 죽은 벌레를 헤드라이트 유리에 붙이고 스위치를 켜보니 앞에는 사람 모양의 그림자 같은 것이 나타납니다. 그리하여 모든 수수께끼를 풀어지게 됩니다.
이 사실이 여왕에게 보고되었을 때, 빅토리아 여왕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그것이 나방이 만들어낸 우연의 일치였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를 보호하신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도우시는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신명기 말씀은 광야 40년 생활을 모두 마친 후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모세가‘광야 생활에서 태어난 사람들을 대상으로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모세는 말씀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가나안땅에서 지켜야 할 것은 어떤 것인지, 불순종하면 어찌되는지’를 말씀합니다.
특히 가나안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12명의 정탐꾼의 보고를 받고 이스라엘이 원망하고 불평할 때, 모세가 그들을 훈계하고 책망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광야 40년을 이끌어 주셔서 여기까지 인도 주셨는데 그 사랑과 은혜를 잊지 말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을 죽음의 광야 40년에서 인도하신 하나님입니다.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은 오늘 현재도 우리 모두를 인도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1. 우리보다 앞서 가시는 하나님입니다.
30절,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눈 여겨 보아야 되는 문장이 등장합니다.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라는 부분입니다. 나보다 먼저 가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나 보다 한발 더 먼저 가시는 하나님, 내 앞에 서서 먼저 행동하시면서 움직이는 하나님, 내 앞에 먼저 가시는 하나님이 어떤 뜻으로 사용되었을까요? 먼저 가시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요?
‘나보다 먼저 가시는 하나님’이란 뜻은 “또한 먼저 가시면서 나로 하여금 좋은 길을 택해서 편안하게 걷게 하여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내가 가는 길 앞에 하나님이 먼저 가시면서 내 앞에 놓여진 이런저런 장애물 다 제거해 놓아서 내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배려 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문제가 있으면 문제도 해결해 주십니다.
먼저 행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낯설은 모습이 아닙니다. 홍해 바다를 열어서 바다를 육지처럼 지나가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합니다. 항상 앞서 행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 생활할 때에 불편함이 없도록 배려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광야 40년 생활을 마친 후 당도한 요단강에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혀 상하지 않도록 요단강을 열서서 건너가게 합니다.
성경은 흔히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가리켜 ‘목자와 양의 관계’라고 표현을 합니다. 목자가 양을 데리고 갈 때, 목자는 뒤에 쳐져서 한가롭게 놀고 양들이 먼저 앞서서 가는 법이 없습니다. 반드시 맨 앞에 목자가 서고 그 뒤로 양들이 따라가는 모습입니다. 목자와 양들의 모습 또한 하나님께서 나보다 먼저 앞서 가시면서 나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는 모습입니다.
찬송가 98장을 보면 “주 예수 내가 알기 전 날 먼저 사랑 했네 그 크신 사랑 나타나 내 영혼 거듭났네 주 내 맘에 늘 계시고 나 주의 안에 있어 저 포도비유 같으니 참 좋은 나의 친구”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내가 주 예수를 알기 전에 주 예수님은 날 먼저 아시고 날 먼저 사랑하시고 나를 먼저 이끌어 주셨다는 고백입니다.
이런 모습을 두고 신학적 용어를 사용한다면 ‘창세전에 나를 하나님이 먼저 선택하셨다’는 말로 정의합니다. 천지만물이 만들어지기 이전에 이미 하나님은 나를 아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창세전에 나를 선택하시어서 나를 세상 끝나는 날까지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한문 뜻은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라는 아주 간단한 내용입니다. 단순한 내용이지만, 잔꾀로 사람을 농락할 때에 사용하는 말이라서 좋은 의미를 가진 말이 아닙니다.
조삼모사의 유래를 살펴보게 되면, 송나라의 저공은 원숭이를 좋아했는데 기르는 원숭이의 수가 늘어나자 먹이를 구하기가 힘들어집니다. 기르는 원숭이 숫자는 자꾸 많아지고 식량은 자꾸 줄어들자 고민 끝에 저공은 원숭이 먹이를 줄이기로 하고 원숭이들에게 말합니다.
“아침에는 도토리를 세 개 주고 저녁에는 네 개를 주려고 하는데 어떻겠느냐?”
그러자 원숭이들이 식사량이 너무 적다고 화를 불같이 냅니다. 이에 저공은 잔머리를 굴려서 “그럼 아침에 네 개 주고 저녁에 세 개를 주면 어떻겠냐?”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원숭이들은 아침부터 도토리 4개를 받게 된다고 좋아하게 됩니다. 실제로 식사량이 많아진 것이 아니지요.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나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나 합하면 숫자는 똑같습니다. 그냥 잔머리 굴리면서 화려한 언변으로 사람을 농락하는 모습을 두고 조삼모사라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도토리 3개 줄까 4개 줄까 하면서 우리는 가지고 노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내가 살아 가는 인생을 두고 장난질하면서 농락하는 하나님이 절대 아닙니다. 나보다 먼저 가시면서 내가 치루어야 할 모든 문제를 앞서서 미리 다 해결해 주시는 분입니다.
30절 다시 보세요,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내 목전에서 나를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이라 말합니다. 내 목전, 내 눈앞입니다. 내가 두 눈 뜨고 똑똑히 하나님의 능력을 볼 수 있도록 행동하시는 하나님이 라는 말입니다. 에굽에서 행하였던 그 놀라운 기적들을 눈앞에서 보여 주시면서, 가나안의 삶 모든 생활속에서 나를 이끌어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허풍쟁이가 아닙니다. 뻥치기 좋아하고 사람 기만하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손가락 걸고 맹세를 하면서도 뒤에서 뒤통수치는 일을 벌입니다. 사람을 믿었다가는 실망하는경우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절대 신뢰할 수 있는 분입니다.
새로운 태풍이 올라온다는 뉴스 보도를 보았습니다. 12호 태풍이 지나간지 한주전인데 13호 14호 태풍이 만들어지는 뉴스가 나오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불안한 시기에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에게 모두 맡기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나보다 먼저 가시는 하나님이 모든 문제를 다 처리할 것입니다.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서 나보다 앞서 가시면서 내 문제를 해결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2. 우리를 안아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31절,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여기에서도 참 흥미로운 표현 하나가 등장합니다.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하나님이 너희를 안으사’라는 표현입니다.
자기 아들은 안는 것이라는 표현은 참으로 사랑스러운 표현입니다. 아들이라 번역되었지만, 아들 선호사상을 주장하는 말이 아닙니다. 더 좋은 번역은‘자녀’입니다. 아버지와 엄마가 사랑하는 자신의 아들과 딸을 두 팔로 감싸 안으면서 사랑을 전달하는 모습입니다.
저와 우리 모두는 매 주일마다 이런 사랑의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합니다. 주일이 되어 예배시간이 가까워지면, 김현수집사님 내외의 사랑스런 아들인 유현이가 아버지와 엄마를 뒤따라 쫄래쫄래 교회당 안으로 들어옵니다. 활기차게 들어와서 처음에는 예배당 안 여기저기를 순찰하듯이 휘젓고 다닙니다. 목양실에도 들어와서 자신이 왔다 갔다는 흔적을 남깁니다.
그렇게 잠시 휘젓고 나면 몸이 피곤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어떠한 행동을 할까요?
엄마와 아빠더러 안아달라는 제스쳐를 보입니다. 비록 지혜집사님이 임신 중이어서 몸이 무겁지만, 거절하지 않고 아이를 품안에 꼭 안아 줍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경우에 유현이는 그냥 잠들어 버립니다. 이런 모습이 김현수집사님과 유현에게만 있는 특별한 모습이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은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과 딸들을 다 그렇게 안아서 키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바로 이런 사랑의 행동을 보여 주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합니다. ‘너희들이 출에굽하고 홍해를 건너고, 그리고 광야 40년 길을 행하고, 이제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고 하는 모든 시기 동안 내가 너희들을 안아서 이끌어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어떻게 이끌어 주시고 안아 주시고 인도해 주신 것일까요? 그 해답이 마지막 33절에 잘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33절,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큰 두 가지 하나님의 안아서 이끌어 주시는 행동이 나타납니다. 1)30절에도 기록되어져 있지만 33절에도 ‘먼저 그 길을 가시면서 장막 칠 곳을 찾아서 배려해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가신다’는 말이 두 번이나 등장합니다. 두 번이나 등장하는 것은 하나님아 나보다 먼저 앞서 가시면서 모든 문제를 풀어 주시고 해결해 주신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먼저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나를 품에 안아서 이끌어 주시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입니다.
2)밤에는 불기둥으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내가 가는 길을 지켜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분입니다. 한 밤중에 광야에서 잠이 들 때에 광야의 추위로부터 막아주는 따뜻한 불기둥입니다. 광야의 사나운 짐승들이 덤벼들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불기둥입니다. 게다가 낮에 등장하는 구름기둥은 한 낯의 살을 태워버리는 따가운 태양을 막아주는 고마운 구름기둥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사정과 우리의 모든 것을 안으시는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우리 모두를 눈동자같이 여기시사 밤이나 낮이나 쉬지 않고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며 우리를 돌보아 하나님입니다. 이런 놀라운 사실을 이 시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자신이 해야 할 본분에 최선을 다하며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보다 앞서 가셔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인도하여 주시는 하나님, 우리를 위하여 싸워주심으로 승리를 통하여 부족함이 없게 하여 주시는 하나님, 나를 안으시사 나로 하여금 강하고 담대함을 입도록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이 나의 참 좋으신 하나님 되심을 믿고 언제나 감사하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금세기 최고 부흥사였던 무디 목사님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던 경건한 신앙인으로 헨리 무어하우스(Henry Moorhouse, 1840-1880)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무디 목사님은 다들 알지만 헨리 무어하우스는 모르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헨리가 있었기에 무디가 있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무디목사에 큰 영향을 미친 신앙인이었습니다.
헨리가 어려운 시련을 당하고 낙망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날도 풀이 죽은 모습으로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집으로 돌아오니 거실 있던 어린 딸이 반가이 맞습니다. 아빠가 들고 오는 것을 보자 휠체어에서 ‘아빠, 그것이 무엇이에요?’라고 질문합니다. 딸의 질문에 헨리는 ‘엄마에게 주는 선물이라 말하며 엄마는 어디에 있느냐’고 물어 봅니다.
그러자 딸은 2층에 있다고 말하면서 엄마 선물을 자신에게 주면, 자신이 그것을 2층에 있는 엄마에게 전달하겠다고 말합니다. 이 말에 헨리는 정색을 하면서 ‘아니, 너는 걸을 수 없는데 어떻게 이것을 엄마에게 가지고 가느냐?’반문합니다. 헨리의 막내딸이 소아마비였기에 온전히 걸어서 없어서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딸은 말합니다. ‘나는 이 선물을 들고 아빠가 나를 안고 가면 되잖아요?’그 순간 헨리는 깨닫게 됩니다. “그렇다. 하나님이 나를 안고 가시는데 왜 내가 실망하고 좌절하였던가? 내가 왜 이리 어리석은 모습을 보였는가?”그렇게 뉘우치며 자신을 돌아보았다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내가 아무리 어려운 고통의 짐을 들고 있어도, 나를 안아주심으로 가게 하시는 하나님이 내가 믿는 참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유현이가 아무런 의심 없이 엄마와 아빠의 품에 안기듯이 우리들 또한 아무런 의심 없이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모습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29절 보세요,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말합니다. 무서워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고, 믿지 못해서 의심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나보다 먼저 앞서 가시면서 내 모든 기도를 들어 주시고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만 찬양하는 9월의 모든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내 힘으로 만들어지는 9월이 아닙니다. 내 고집대로 살아가면서 만족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손을 부여 잡고 하나님의 품에 안기어 생활함으로 행복한 9월의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