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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8. 지속가능한 인권운동을 위한 활동가 조사 결과 보고회 발표 토론문)
운동이 이어지려면 사람이 이어져야 한다
우리는 이별에 익숙해지는 운동, 도돌이표 운동을 넘을 수 있을까
난다 (청소년활동기상청 활기)
“난다는 언제까지 청소년운동 할거야?” 스무 살이 되었을 때 다른 단체의 활동가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 그 때만 해도 청소년 시기가 지나면 청소년운동을 그만둬야 한다(?)는 운동 안팎에서의 이상한 압박이 있었다. 실제로 10대 때부터 활동을 시작했다가 스무 살이 되면서(혹은 대학에 진학하면서) 청소년운동을 그만두고 멀어지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고, 비청소년인 채로 청소년운동을 지속하는 활동가들은 드물었다.
나는 2008년에 청소년운동을 시작했다. “너 지금 이러면 나중에 배추 장사나 한다.”는 담임교사의 ‘설득’을 뒤로 한 채 고등학교를 그만뒀다. 해방감과 불안감이 교차하는 20대를 보냈다. 활동과 알바를 병행하며 ‘다음엔 무슨 일 해서 먹고 살지?’를 고민했다. 3년 정도 인권단체에서 상근활동을 했던 기간을 제외하곤 늘 소득이 불안정했다. 최종학력을 적어내야 하는 일거리가 들어오면, ‘중졸’과 ‘고등학교 중퇴’ 사이에서 길을 잃고 망설였다. 주 3일 알바를 구하려 면접을 본 자리에선 “나이가... 그 동안 뭐 하셨어요?”라는 질문 아닌 질문을 들어야 했다. 카페 알바 구직 이력서에 활동 경력을 줄줄이 적어 넣을 순 없었다. 이력서에 적을 수 없는 경험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돼버렸다.
1. 최소한 먹고 살 걱정을 덜 수 있어야 한다.
“하고 싶은 활동을 하면서 생활하고 싶다. (...) 생계 문제를 이유로 떠나는 이들에게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고 그게 너무 속상하다.” 청소년운동의 역사가 길어지면서 이 운동에 오래 함께하는 이들도 늘어났다. 20대가 되어도 계속 청소년운동을 하면서 ‘청소년인권운동의 활동가’라는 정체성을 갖고 살고자 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활동가들이 운동에 전념하면서 살 수 없는 상황이고 ‘하고 싶은 활동을 하면서 살고 싶은’ 많은 이들의 바람이 무색하게 청소년운동의 재정은 불안정하다.
2008년, 함께 촛불을 들었던 청소년활동가들 중 활동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한 손에 꼽힌다. 경기도와 서울 등에서 학생인권조례를 만들고 제정할 때 함께했던 이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청소년기를 지나서도 계속 활동에 참여하는 활동가들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있지만 그렇게 해서 5년, 10년 청소년운동을 해온 활동가들이 생계를 유지하고 안정적으로 운동을 지속할 수 있는 기반은 만들어지지 못한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 운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운동에 전문성과 지속성을 갖고 활동할 활동가들이 존재하려면 생계 보장이 가능한 활동비가 절실한 상황이다.
청소년운동의 재정이 불안정한 이유는 세 가지 정도로 꼽아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운동의 당사자인 청소년 대중의 수가 적진 않으나 정체성이 약한 편이고, 경제적 능력이 없는 점이다. 대부분의 청소년은 후원을 하고 싶어도 소득이 없는 경우가 많고, 용돈 등이 있더라도 자기 명의의 계좌를 갖기 어려우며 경제적 거래 자체가 친권자의 통제 하에 있다 보니 청소년 당사자들의 후원을 조직하기 어렵다. 두 번째로는 청소년인권의 옹호자 집단이라 할 수 있는 교사와 부모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잠재적 지지자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잠재적 가해자로 지목될 때가 있다. 이에 운동이 발전할수록 청소년인권에 대한 거부감이 커지는 경향이 있다. 교사들의 경우 학생인권에 관심 있고 감수성이 있는 소수의 교사들이 주로 후원을 해왔지만 학생인권조례, 체벌금지 등 운동을 통해 성과를 얻을수록 교사 대중(전교조 조합원들을 포함하여)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세 번째로는 청소년인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적고, 비청소년들의 대부분은 이 문제가 더 이상 자기 문제가 아니라고 여기는 문화가 있다. 청소년인권운동에 대한 잘못된 인식('청소년들이 한때 하는 것이다'와 '아동 구호/학대 대응 같은 거다'라는 생각)도 후원 조직을 어렵게 만드는 원인 중에 하나이다. 물론 우리 운동의 역량이 부족해서 후원을 계획적, 대대적으로 모으지 못한 탓도 있을 것이다.
작년(2018년)에 진행한 <“청소년인권운동, 세 명의 상근활동가를 만들자! 청소년인권운동의 든든한 빽이 되어주세요.” 빽빽(100x100) 프로젝트>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담아 기획되었다. 지금 이 상태로는 운동이 이어질 수 없다는 생각으로 많은 이들의 후원을 모아 목표한 금액을 모으는 데 성공했고, 2019년 1월부터 총 3개의 단체에 월 100만원씩의 활동비를 지급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할 수 없다. 100만원의 활동비조차 한 사람에게 지급되지 못하고 여러 활동가의 활동비로 나누어 쓰는 경우도 있다. 지금 청소년운동에는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한 활동비를 한 사람에게 지급할 수 있는 단체가 없다.
2. 청소년운동을 둘러싼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
“언제까지 청소년운동 할거야?” 이 질문에 적절한 대답은 무엇이었을까. 응. 나 오래오래 계속 하려구. 라는 말은 왜 바로 나오지 못했을까. “만 24세까지는 청소년이야”라는 말로 그 상황을 퉁치고 넘겼으나 오래도록 그 질문과 대답이 마음에 걸렸다.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 운동’이라고 하면 청소년 당사자들의 사회 참여 활동 또는 ‘청소년 지도자’들의 청소년 선도/보호 활동을 주로 떠올리곤 한다. 사회운동/인권운동 안에서도 청소년운동은 한때 잠깐 하고 그만두는 운동이라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청소년운동이 쌓아온 활동들, 목소리, 주장, 이론 또한 이 사회를 바꾸려는 움직임이다. 청소년운동 또한 다른 소수자운동과 마찬가지로 ‘사회 운동’이라는 인정이 필요하다.
지금은 청소년이 아닌데도 이렇게 활동하고 있는 이유를 새삼스레 다시 돌아보았다. 2018년, 청소년 참정권을 외치며 국회 앞에서 농성을 할 때 있었던 일이다. 선거연령 하향을 비롯한 정치 개혁을 반대하는 정당에서 일하는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이 문제는 ‘민감하지 않은 문제’라고. 그러니까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다고. 언제든지 와서 다른 방법으로 이야기하면 들어주겠다고. 하지만 정말 민감하지 않은 문제라면 지금까지 우리의 목소리는 왜 묻혔을까? ‘고작 한 살’ 낮추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걸까? 왜 정작 중요한 순간에 논의조차 하지 않았을까? ‘민감하지 않은 문제’라는 말이 담고 있는 뜻은 무엇인가. 논쟁꺼리가 아니다,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라는 말과 비슷한 말이다.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인권은 중요한 문제가 아닌 적이 많았다. 청소년들이 겪는 부당한 일들, 차별과 폭력들은 별 것 아닌 일처럼 취급되곤 했다. 무척 심각한 사건에 대해서만 주목하곤 했다. 그 때도 ‘어른들’이 대신 해결해주겠다고 했다. 청소년인권운동은 중요하지 않았던 문제를 중요한 문제로 만들기 위해, 청소년도 여기 함께 사는 사람이라고 말하기 위해, 청소년도 인간답게 존중받으며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작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활동한다. 또한 여전히 바뀌지 않는 청소년인권 현실이 활동가들을 움직이게 하고 있다.
우리는 학생인권이라는 말을 이 땅에 낯설지 않은 언어로 만들어냈으며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운동을 성공시켰다. 걸 페미니즘(Girl-feminism)과 나이주의에 관한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냈고, 나이와 생애주기로 인한 사회적 억압과 차별로부터 벗어나자는 주장을 펼쳐왔다. 모든 사람은 조금씩 미성숙한 면이 있음에도 미성숙함을 부정하며 이를 근거로 권리를 제한하는 세상은 ‘어른들’에게도 힘들다. 청소년운동은 ‘어른들’만 ‘성숙’하다고 믿는 것, ‘성숙하다고 인정받는 존재’만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다는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운동이다.
3. 사람이 이어져야 한다.
많은 활동가들이 ‘보편적인 삶’과는 조금 다른 일상을 살고 있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설명할 ‘이름’을 찾아야 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청소년인권활동가들 중 대학을 거부한 이들은 ‘이름 찾기’가 더욱 막막하다. 학생도 아니고 직장인도 아닌데, 그럴 때 내가 활동하는 단체와 내가 몸담고 있는 운동이라도 안정적이었다면 그나마 덜 외로웠을까. 무한경쟁을, 바늘 구멍 같은 ‘성공’의 기회를, 혼자 열심히 노력해서 살아남으라는 세상을 거부한 이들이 발붙일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모두가 불안하고 불행한 오늘과 내일을 바꾸기 위해,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도 충분히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위해, 하루하루를 견디지 않아도 되는 삶을 바라며 대학/입시경쟁을 거부했다. 그러나 이러한 거부의 대가가 지금의 현실이라면, 지나치게 가혹하다.
대학에 진학한 경우도 다르지 않다. 활동과 학교를 동시에 해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는 스펙 경쟁의 시대, 각자도생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진로를 고민할 때 이 활동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이나 전망이 보이지 않다보니 운동을 지속하는 것이 부담이 된다. ‘정상적인 삶의 경로(중고등학교 때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 가고, 대학 가서 열심히 학점 쌓고 취업 준비 등등)’를 걷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자격이 없다고, 정상이 아니라고, 내몰고 차별하는 사회 또한 운동의 지속성을 가로막는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자조적으로 청소년운동이 ‘이별에 익숙해져야 하는 운동’, ‘사람을 떠나보내는 운동’이라고 말하곤 한다. 사람이 이어지지 못하고 떠나가는 상황은 당연하게도 운동의 안정성에 영향을 준다. 이 운동에 집중할 수 있는 전문적이고 지속적인 활동가가 없다는 것은 운동에 필요한 여러 여건과 기반과 담론을 만들기도 어렵다는 뜻이다. 운동이 성장하지 못하니 사회적 지지를 확대하기 어렵고, 사회적 지지를 확보하지 못하니 자원도 열악해진다. 그리고 운동의 자원이 열악하기에 활동가가 운동을 지속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지 못하고, 그러다 보니 활동가가 부족해서 운동이 성장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위와 같은 악순환을 바꿔내기 위해 2018년 초, 몇몇 청소년인권활동가들이 모여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준)’이라는 단체를 꾸렸다. 운동이 멈추지 않고 이어지려면, 우리가 만들어온 목소리가 널리 퍼지고 또 다른 인권/소수자 운동과 더 깊이 연결되려면, 전문성과 지속성이 보장되는 활동가 단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운동의 성장을 고민하며 우리가 만들고 싶은 세상의 모습 또한 함께 그려나갔다. 활동가 단체가 만들어지려면 공익 재단의 지원이 절실했다. 2019년, 아름다운재단의 인큐베이팅 지원 사업에 신청했다. 심사 도중 들은 이야기로는 단체의 준비성이나 활동 계획성 등은 높게 인정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최종 선정되지 못했다. 자세한 심사 과정이나 이유야 듣지는 못했지만, 결국 이 운동의 사회적 필요성이나 의미를 인정받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이라 절망스러웠다.
몸과 마음 그리고 생계의 고단함, 좌절감과 절망감에 지쳐 하나둘 떠나가는 활동가들... 더 이상 청소년활동가들이 이 운동을 했던 걸 후회하며 떠나가지 않기를 바란다. 함께 활동하길 잘했다고, 우리가 만들어온 이 모든 변화들이 기쁘고 뿌듯하다고 말하는 시간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이 활동을 오래, 함께 하고 싶다.
+) 인권운동 중에서 소수자인권 문제를 다루고 경제적 기반을 갖기 어려운 이슈를 다루는 경우(트랜스젠더 인권운동, 빈민 운동 등 또한 해당되는 문제일 것)를 위해서라도 개인 소액 후원금 모금 모델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개인 소액 후원 모금이 건강하고 튼튼한 모델이란 것에는 이견이 없음. 그러나 이를 보완할 방법이 필요. 모금을 공익 재단 등이 해서 배분한다거나. 정부로부터 독립성을 침해당하지 않으면서도 공익성 있는 인권운동단체가 지원받을 수 있는 정책 요구(지금의 프로젝트-사업 지원 방식을 넘어서) 등을 고민해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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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어느 신문 읽는 청소년인권 활동가의 의문> (브레히트의 시 패러디)
누가 네 개의 광역지자체에 학생인권조례를 만들게 했는가?
신문에서 그대는 교육감들의 이름을 발견한다네.
교육감들이 조례를 작성했는가?
몇 번이고 벌어지는 학생인권침해
누가 세상에 알리고 대응했는가?
활동가들이 관공서 건물에 앉아 있었던가?
국가인권위는 많은 청소년인권에 대한 권고를 했다.
누가 진정을 내고 공론화했던가?
국회의원들은 학생인권법안, 청소년 참정권 확대 법안들을 발의했다.
그들이 혼자서 법안을 추진했던가?
두발자유가, 청소년 참정권이 공중파 TV 토론에서 다뤄지던 날 밤, 왜 활동가들은 패널로 초대받지 못했는가?
언론사 페이지에서 검색해보면 청소년인권에 관한 소식들이 잔뜩 나온다. 누가 그것들을 쓰고 말했는가?
조중동은 누구를 ‘운동권 고등학생/청소년’이라고 딱지를 붙였는가?
교육부는 누가 집회에 나오지 못하게 하려고 공문을 보냈던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청소년인권이 새삼스레 거론된다.
누가 이 문제를 잊히지 않게 이야기해왔던가?
그 밑에 누구의 삶이 있는가?
그 많은 사실들.
그 많은 의문들.
[참고자료] 청소년인권운동의 ‘활동 기반’을 만들어가는 활기 - 활기 활동 소개글
청소년활동기상청 활기(이하 ‘활기’)는 청소년인권운동의 활동기반을 다지고 지속 가능한 운동을 만들기 위해 꾸려졌습니다. 청소년인권운동의 재정, 교육 등 어려움을 해결하고 연대를 통해 청소년운동의 탄탄한 기반을 만들고자 합니다. 2006년부터 2011년까지 활동해온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가 ‘활기’의 전신이며 ‘활기’는 2012년부터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습니다.
1. 모금 사업 및 재정/공간 지원
- 돈(재정), 공간 등 물질적 기반이 부족한 청소년인권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모금 사업을 고민하고 기획함. 특히 직접 후원을 모으기 어려운 여건의 신생단체나 활동가들에게 지원을 제공하는 데 의의를 두고 있음.
예) 청소년단체들의 공용사무실 ‘나름아지트’ 운영 및 대관업무(2010년~현재) / 청소년운동 후원/모금 행사(2010년 핫유스, 2013년 활기충전, 2017년 활기의 마블, 2018년 빽빽프로젝트) / 청소년운동 지원사업 <그맘알아요>, <꿈만같아요>(2014년~현재, <꿈만같아요>는 2017년까지 진행함.)
2. 청소년인권운동의 네트워킹 및 아카이빙 역할
- 활동 경험이 축적되고 공유되는 운동, 역사가 있는 운동, 각 단체 및 활동가들 사이에 충분한 교류가 이뤄지는 운동을 만드는 것은 ‘활기’의 주요한 과제임. 청소년인권운동의 역사를 엮고 오늘을 기록하는 자료실의 역할 및 연대의 자리를 만드는 역할을 통해 보탬이 되고자 함.
예) 청소년활동가마당(2012년~현재) / 소식지 활력소(청소년인권운동의 역사와 목소리 기록, 2014년~현재)/ 정기 간담회(청소년운동이 함께 해야할 고민/주요 의제에 대해 깊이 토론하고 공유하는 자리, 2012년~2014년) /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백서 발간(2013년) / 울타리 워크숍(‘문제 대응/해결’ 고민, 청소년운동이 다른 사회운동과 갈등을 빚거나 운동 사회 안에서 고립되는 문제를 함께 살피기 위한 워크숍, 2017년)
3. 청소년인권활동가를 위한 교육/역량강화 지원
- 활동가를 위한 교육/프로그램 개발 또는 역량강화를 위해 필요한 강좌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자 함. 여러 주제의 강좌나 워크숍을 기획하고, 교육 자료를 만들어내고자 함.
예) 저공비행(2010년~2012년, “저항을 공부하는 비행청소년들”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내 활기프로젝트팀 시절에 진행한 사업) / “담론의 허상을 삶으로 뒤집다” 청소년론 강좌, 청소년활동가를 위한 법 강좌(2013년) / 청소년론 세미나(2014년~2016년) / 청소년인권활동가를 위한 ‘역량 튼튼’ 1박 2일 교육 과정(2019년) 등
*고민꺼리: 활기는 이처럼 크게 세 가지의 역할을 하고자 만들어졌지만 지금까지의 역사를 돌아보면 이 역할들을 동시에 해낸 적이 없음. 예를 들어 강좌 사업과 재정 사업이 양립할 수 없음. 대부분 활기 구성원들이 활기 외의 다른 단체 활동/생계 활동을 하나 이상 병행하는 상황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