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왕기상 11:34-36(534) 여호와가 주신 등불 2015. 4. 26
경북 포항에는 불의 정원이라는 관광명소가 있다고 합니다. 이 불꽃은 2017년 3월 공원 조성지에서 지하수 개발을 위해 지하 200m까지 관정을 파던 중 땅속에서 매장되었던 천연가스가 나와 굴착기에 불이 붙으면서 시작된 불입니다.
당초에는 며칠 또는 몇 달 타다가 꺼질 것이라 다들 예측보도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예측과 달리 이 불은 꺼지지 않고 계속 타올랐는데요. 며칠간 타다가 꺼질 줄 알았던 불이 꺼지지 않고 계속해서 붙자, 포항시는 이곳 주변에 방화유리를 설치해 ‘불의 정원’이란 이름의 공원으로 꾸밉니다. 그리고 그 뒤로 포항시민을 비롯해 전국의 많은 사람들이 누구나 한 번쯤 다녀가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있는 불꽃이 7년 6개월 만에 꺼졌다는 뉴스가 지난 주간에 보도되었습니다.
7년 6개월 만에 불이 저절로 꺼진 것을 두고 포항시 관계자는 ‘지하에 매장되었던 천연 가스가 고갈돼 불이 꺼진 것으로 본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렇게 자연적으로 등장하는 불들은 오늘날이나 옛날이나 사람들에게 큰 관심이 집중되는 놀라운 자연현상이었습니다.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이런 현상은 여러 곳에서 발생되고 있습니다. 고대 올림포스 사람들 역시 불이 꺼지지 않는 곳을 신비로운 곳이라 판단해서, 불이 계속 피어오르는 장소에다가 신전을 건립했다는 역사적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끝없이 타오르는 불이 신비했기 때문입니다.
꺼지지 않고 계속 타오르는 불에 대한 이런 신비한 경험은 모세도 하였습니다. 십계명을 받기 위해 시내 산에 올라간 모세가 가장 먼저 보게 된 놀라운 사실은 ‘불이 활활 타고 있지만, 나무를 불사르지 않는 신비한 불꽃과 떨기나무를 보았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모세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성경에서 성령의 역사하심이나 하나님의 임재 하는 모습을 두고, 불꽃과 연관시킨 곳이 자주 등장합니다. ‘불꽃 가운데, 불 꽃 같은 눈, 불로 응답하심’등이 바로 그런 모습입니다.
왜 불을 연관시키느냐 하면, 불은 모든 것을 태워 버리기도 하고, 불은 어두움을 밝히는 역할을 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더러운 것들을 소멸하는 불이면서 아울러 하나님은 세상을 밝히시는 등불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현충원에 가도 무명용사의 헌화탑이나 현충원 중앙 탑에는 불이 24시간 365일 동안 꺼지지 않고 불타오르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미국의 국립묘지나, 파리의 무명용사의 탑이나, 인도의 영웅인 간디의 무덤이나, 모스크바의 국립묘지 등에 가면, 탑이나 묘비 앞에 꺼지지 않는 불이 타오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을 영원히 잊지 않고 있다는 표시이며, 아울러 민족을 위한 영웅들의 헌신이 영원히 빛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조선시대에 보면 가끔 임금님이 야밤에 행차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임금님의 야행에는 호위무사이든 또는 하인이든, 그 누구인가 항상 임금님이 걸어가는 앞에 앞장서서 항상 임금의 앞에는 등불을 비추어 길을 밝힙니다. 하늘의 태양으로 비유되는 임금님 앞에 등불을 비추어서 길을 밝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세상의 임금들도 자신 앞에 불이 꺼지지 않게 하고 등불을 밝혀 둡니다. 밤길을 안전하게 가려고하는 모습도 있고, 또한 자신의 신분과 권위를 드러내고자하는 의도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 앞에 항상 등불을 밝히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마 25장에는 지혜로운 열 처녀의 비유가 있습니다. 성경은 지혜로운 5처녀는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이했지만, 미련한 5 처녀는 등에 기름이 없어서 등불을 켜지 못하게 됩니다. 결국 등불을 들지 못한 미련한 5처녀는 밖으로 쫓겨나게 됩니다.
우리나라 신랑 신부를 상징하는 청사초롱처럼 당시 신부들이 들었던 등을 <람파다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결혼식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개별적으로 준비를 합니다. 그런데 만일 등불을 들지 않은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초청을 받지 못한 불청객이거나 혹은 강도로 취급을 받았다고 합니다. 등불이 없으면 입장할 자격조차 없습니다. 그만큼 등불은 중요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내 종 다윗이 항상 내 앞에 등불을 가지고 있게 하리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합니다. 성도는 항상 진리의 등불을 들고 생활하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비추시는 인도함의 불빛을 받아야 합니다. 또한 성도는 항상 성령의 등불 안에서 생활해야 합니다.
우리 덕민 교회 모든 성도님들도 하나님이 밝혀 주시는 등불로 말미암아 10월의 모든 시간이 안전하고 복된 시간을 누리시길 소망합니다.
1. 하나님이 지키 주시는 나라의 등불.
왕상 11:36에는 “그의 아들에게는 내가 한 지파를 주어서”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희망의 싹을 자르지 않고, 한 지파를 주어서 다시금 회복시키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왜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인가요? 그것은 하나님을 떠나 있으므로 국가가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기보다는 세상의 물질을 사랑했고,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우상숭배에 매달리다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나라가 망해 버린 것입니다.
물론, 다윗 왕 시절이나 아들 솔로몬 시절에는 이스라엘이 최고로 부강했던 시기도 있습니다. 다윗 왕은 천하통일을 이루고 주변 모든 이방 나라들을 다 평정합니다. 그리고 통일된 나라를 아들 솔로몬에게 물려줍니다.
그리고 아들 솔로몬이 최고의 시절을 구가하면서 영광의 시기를 누렸지만, 솔로몬이 죽은 뒤 통일 이스라엘 나라는 두 동강이 나 버립니다. 왕이 된 르호보암은 아버지 솔로몬의 지혜로운 행동을 따라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젊은 혈길로 나라를 다스리려고 하다가 결국 나라가 두 동강이 나 버린 것입니다.
북 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10지파가 뭉쳐서 북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만듭니다. 35절, “내가 그의 아들 손에서 나라를 빼앗아 그 열 지파를 네게 줄 것이요”
이 말씀은 하나님이 북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여로보암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살아 있을 때에는 나라를 빼앗지 않겠지만, 아들 르호보암 때에는 10지파를 빼앗아서 여로보암에게 줄 것을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여로보암에게 10지파를 넘겨주겠다고 하나님께서 25절에서 말씀하시지만, 36절에서는 ‘그의 아들에게는 내가 한 지파를 주겠다’고 말합니다. 바로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통해서 유다 나라가 계속해서 다윗의 등불을 이어 받아 나가도록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등불을 주시겠다고 말씀하는 기준이 무엇일까요? 솔로몬의 잘난 것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윗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34절 보세요. “그러나 내가 택한 내 종 다윗이 내 명령과 내 법도를 지켰으므로 내가 그를 위하여 솔로몬의 생전에는 온 나라를 그의 손에서 빼앗지 아니하고 주관하게 하려니와”
“다윗이 내 명령과 내 법도를 지켰으므로” 한 등불을 두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 한 사람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을 용서하시고 사랑하는 하나님입니다. 다윗도 완벽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다윗은 죄를 지었을 때에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회개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잘못과 실수를 인정하고 하나님에게 나아갈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다윗의 온전한 순종의 모습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말년에 실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솔로몬을 징계하지 아니하고 다윗의 등불을 이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허다한 과오도 그리스도의 사죄의 은총으로 용서를 받게 되면, 하나님이 나에게 구원의 등불을 밝혀 주신다는 점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윗이 내 명령과 법도를 지켰다’를 한 마디가 솔로몬이 누렸던 모든 부귀영화의 출발점인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솔로몬이 똑똑하고 지혜로운 사람이기에 부귀영화를 누렸다고 생각합니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아버지 다윗의 헌신과 충성이 발판이 되어서 솔로몬이 온전하게 설 수 있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는 “한 사람 때문에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한 사람 때문에 하늘 위로 날기도 하고, 한 사람 때문에 천길 낭떨어지로 떨어지기도 한다. 가까이 있는 한 사람이 믿음과 사랑으로 응원하면 그 다른 한사람은 바보라도 영웅이 된다”라고 하였습니다.
세계의 역사를 살펴 보면, 한 사람의 작은 노력이 큰 힘으로 바뀌어서 역사가 바뀌어지고 흘러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처럼 한 사람의 역할은 매우 소중합니다.
롬 5:19에는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한 사람 아담 때문에 후대 모든 인류가 죄인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원죄의 굴레와 속박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내신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태어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는 원죄에서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다윗 한 사람 때문에 남 유다 나라를 살려 주셨습니다. 다윗 한 사람 때문에 등불을 거두어가지 않고 계속 주겠다고 말씀합니다.
지난 주간 국군의 날에 서울에서 국군의 날 퍼레이드가 있었습니다. 한국이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무기들이 일반인들에게 전시가 되었습니다. 탱크부터 비행기, 그리고 엄청난 위력을 자랑하는 현무5라 이름이 붙은 미사일까지 공개되었습니다. 잠깐이나마 시가행진 영상을 보았지만, 정말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가슴 벅찬 감동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퍼레이드를 보면서 아무리 최강의 핵무기를 가지고 항공모함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다루는 주체는 결국 사람이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무기를 다루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애국심이 없다고 말하면, 그 무기를 무고한 백성을 죽이는 살인무기가 됩니다. 아무리 무기가 많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평화를 주지 않으시면, 인간의 노력은 다 헛사가 되어 버리고 만다는 점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성도는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등불, 구원의 등불, 의로움의 등불을 들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어두운 세상을 밝혀야 합니다. 다윗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솔로몬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등불을 받은 것처럼, 오늘 우리도 나 한사람의 의로운 행동으로 말미암아 세상 사람들에게 모범이 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등불이라는 점을 잊지 맙시다. 내가 다른 사람의 앞길을 밝히는 등불이 되고, 내가 예수님의 가시는 길을 비추는 등불이 될 때에 한국교회가 살고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줄 믿습니다.
2. 우리는 여호와 앞에 등불입니다.
36절, “그의 아들에게는 내가 한 지파를 주어서 내가 거기에 내 이름을 두고자 하여 택한 성읍 예루살렘에서 내 종 다윗이 항상 내 앞에 등불을 가지고 있게 하리라”
36절에 보면, “내 종 다윗이 항상 내 앞에 등불을 가지고 있게 하리라”고 합니다.
다윗이 항상 하나님 앞에서 등불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비록 이런저런 죄를 많이 지은 다윗이지만, 회개하고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다윗을 하나님은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본문의 말씀처럼 다윗에게 항상 등불을 주어 다윗이 가지고 있도록 하겠다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덕민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다윗처럼 하나님에게 쓰임을 받는 등불이 되고, 하나님이 주시는 등불을 소유하는 성도가 되길 축원합니다.
존경받는 어른이었던 고한경직 목사님은 하나님에게 쓰임을 받는 일꾼은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설교하였습니다.
1)여호와 앞에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호와 앞에 있다는 말은 늘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생활하는 모습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일꾼이라고 말하면서 항상 세상에 나가 세상에 머물고 있으면, 하나님의 일꾼 자격이 없습니다.
2)여호와 앞에 있되 밝히는 등불로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 등불로 하나님의 사람을 있게 하시는 것을 기뻐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1장에 보면 “나에게서 당신의 얼굴을 숨기지 마옵소서. 나로 죽게 하소서. 죽지 않기 위하여 오로지 당신의 얼굴을 보게 하소서”라는 고백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성도에게 얼굴을 돌린다’는 말은 정말로 무서운 공포가 다가오는 말입니다.
나를 낳아준 부모님이 나를 향해 얼굴을 돌리고, 마주대하지 않으려고 하고, 나와 말 섞는 것을 거부한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이것은 부모를 모시는 자녀가 겪는 가장 큰 아픔이요 충격입니다.
그런데 이런 아픔과 충격을 하나님께서 성도를 향해 얼굴을 돌린다고 생각하면,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모든 성도들에게는 악몽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은 항상 하나님이 나를 향해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 감사하며 찬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모든 신자들은 자신의 얼굴이 항상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시선을 고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내 믿음의 얼굴이 다른 곳을 바라보지 않도록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세상 바라보면, 결국 나에게는 불행이며, 고통이며, 죽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모두 하나님 앞을 떠나지 않는 사람이 되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 앞을 떠나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항상 내 앞에 모시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이것이 성도가 가지는 가장 큰 축복인 것을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옛날 평안도 정주에 맹인이며 박수무당인 백사겸(1860-1940)이란 분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굿을 잘해 막대한 돈을 모았고, 돈이 많다 보니 첩을 두면서 두 집 살림을 하는 무당이었습니다. 하루는 신명나게 굿을 하는데 선교사가 지나가다가 신기한 한국풍습이어서 구경을 합니다. 그런데 무당은 아무리 용을 써도 신이 안 내려 땀을 뻘뻘 흘리며 힘들어 합니다.
이때에 선교사님은 흘러가는 말로 “자식을 망하게 하는 무당 짓을 그만하고 예수 믿고 천당 가세요”라고 말합니다. 선교사가 무당국판에서 사라지자 비로소 굿이 풀리기 시작합니다.
굿을 마치고 난 뒤에 백사겸은 자신이 섬기는 귀신보다 더 큰 신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습니다. 게다가 그 신이 조선 사람의 신이 아니라 서양코쟁이가 섬기는 신이라서 더 충격을 받습니다. 그날 저녁 물어물어 선교사가 머무는 숙소를 찾아가서 “자식을 망하게 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자식이 잘 될 수 있느냐”고 물어 봅니다.
그러자 선교사는 “예수를 믿으면 자식이 잘 되고 복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그 길로 백사겸은 무당 일을 청산하고, 온 가족을 하나님으로 인도합니다. 마침 교회가 건축을 하는데 돈이 없어 공사를 중단하게 됩니다. 그는 무당 일을 하여 번 전재산을 몽땅 바쳐서 교회를 완공시킵니다. 그리고는 교회당 한 귀퉁이에 방을 만들어 기거하면서 교회의 사찰 일을 합니다.
선교사는 백사겸의 아들이 똑똑하다는 말을 듣고, 미국으로 데려가서 공부를 시킵니다.
그리고 귀국한 백사겸의 아들은 우리나라의 초대 참의원 의장, 문교부장관, 연세대학교 총장을 지냅니다. 그 아들이 바로 백낙준박사(1895-1985)입니다. 아버지가 어둠에서 하나님의 밝은 빛으로 들어온 결과 가문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성도는 하나님 안에서 생활하고, 하나님의 등불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가진 등불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고, 또한 나의 등불로 말미암아 불신자가 하나님을 찾아 간다는 점을 깨닫고 올바르게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