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숙 선생 편에도 썼지만, 사람이 편견을 지니고 살면 안 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자기 삶의 범위를 스스로 축소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면서 한 뼘이라도 더 넓게 살라고 하지 않았던가.
요즘 시간이 많아 철학자 강신주 선생의 특강도 들었다. 자본주의에 길들어진 한국인의 정신을 일깨우는 강연이었는데, 그다지 끌리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좋아하는 깊은 울림을 주는 지혜는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강연은 강신주 선생의 특성답게 제자를 사랑하는 스승이 목성 높이며 챙겨주는 모습이 연상됐다.
이 특강보다 EBS 초대석에서 대담을 나눈 영상을 하나 보게 됐는데, 그의 인생사 전체를 볼 수 있고,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삶의 자세도 생각해 볼 수 있어 좋았다.
가장 먼저 느끼게 된 건, 사람은 자기 모습을 올바르게 알아야 한다는 거다. 말이 쉽지 이건 정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지점은 아니다.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객관화만이 도달하게 할 거다. 강신주 선생의 어린 시절을 듣게 됐다. 부모님이 경상도 분들이고 어렵게 사시는 분들이라, 강신주는 어려서부터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하게 됐다 한다. 이건 그냥 타고난 기질과 환경이 어우러져 그 사람을 만드는 거다. 그러면 여기서 현명한 청중은, 내게는 어떤 어린 시절이 있었는가를 물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다음으로 인상적인 것은 다름에 관한 거다. 강신주는 한국 보통의 철학자들과 달랐다. 달라도 철저히 달랐다. 내가 볼 때 그는 철학자로서 별로 다를 게 느껴지는 게 없는데, 그는 다르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것은 다른 철학자들이 철학자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강신주 선생 말로는 지금의 한국 철학자는, 즉 대학교의 철학 교수는 선진 이론을 베껴 오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거다. 한국에서 고민되는 문제와 현상을 탐구해서, 한국 자생의 철학적 이론과 사유를 펼쳐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그는 직설적인 화법을 쓰는 이답게 독설가가 되기로 한 것 같다.
그는 시인 김수영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담에서도 여러 번 김수영을 언급했다. 그를 아버지라 부를 정도로 자신의 정신적 멘토로 삼고 있었다. 힘들 때마다 그의 시를 읽으며 마음을 다잡는다고 했다. 그는 김수영의 시를 읽으면 진지, 그러니까 진짜로 살아야 한다는 강한 암시를 받는다고 한다. 강신주 선생은 진짜와 가짜를 가르는 게 자신의 철학적 사명이라고 한 것 같다. 그는 가짜가 아닌, 진짜가 되기를 바랐다.
나는 그가 덜 여문 철학자라고 평소에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담을 보고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한국의 철학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진정성이 충분했고, 자신의 책을 읽은 독자들을 향한 열정이 대단했다. 이것만으로도 그가 자신의 삶에 얼마만큼 정성을 다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대담을 보며 내게 한 가지 떠오른 생각이 있다. 그게 뭐냐면, 자신의 한계에 대해 사람은 생각할 수 있어야 하고, 범위를 정하면 좋다는 거다. 다른 표현으로 하면 겸손이란 단어가 적당할 수 있겠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이것을 정하지 못한다. 그래서 균형을 잃고 무너지기 쉽게 된다. 그런데 이게 되는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혹은 목표하는 것보다 더 훌륭하고 뛰어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오늘 얼핏 느끼게 됐다. 이제 마흔한 살이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것의 가치를 조금은 알게 되는 듯하다. 아직은 더 채우는 것에 관심을 쏟아야 할 시기로 보지만 말이다.
또 하나 깨닫게 된 사실은, 내가 접한 게 아닌 한 남을 쉽게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강신주 선생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의 부정적 평가를 보고 내가 쉽게 동화되지 않았나 반성한다.
강신주 선생은 길거리로 나선 인생 상담가로 유명하다. 삶에 대해 번민하고 고민이 많은가? 그의 EBS 대담을 들어보면, 분명 어떠한 실마리 하나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더구나 스승의 인도를 바라는 이들에게는 효과가 좋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