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스마일 케릭터
정혜진
“힘들지? 좀 쉬었다 가자.”
아빠가 정안휴게소에 차를 세웠다.
내 얼굴이 밝아졌다.
아빠가 나를 힘들게 들어서 휠체어에 앉혔다.
“먹고 싶은 거 말해. 엄마가 얼른 가서 사 올게.”
“쵸코칩”
엄마는 쵸코칩과 음료수를 사왔다. 호두빵도 한 봉지 있었다.
“밖에 나오니까 좋지?”
아빠 말씀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토할 것 같던 속이 조금 가라앉았다.
6개월에 한 번씩 서울까지 병원에 가는 것이 참 싫다. 차 안에 누워있는 것도 힘들고 뱃속이 울렁거린 것도 참기 어렵다.
아빠는 내 휠체어를 밀고 휴게소 빈 공간을 몇 번 왔다갔다 돌아다녔다.
“또 가보자.”
아빠가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집에서 출발한지 다섯 시간 만에 병원에 도착했다. 무안에서 서울대학병원까지는 정말 멀다.
“한그루님, 들어오세요.”
미리 예약이 되어 있어서 오래 기다리진 않았다.
“스마일 캐릭터! 너 요즈음 운동 안하지? 몸이 더 불어난 것 같은데.”
의사 선생님은 병원에 올 때마다 같은 말부터 시작한다. 내가 씩 웃을 때 아빠가 대답했다.
“그저 그렇지요 뭐. 점점 힘이 없어져서 이젠 아예 걷지도 못해요.”
“저도 답답합니다. 의사가 팍팍 좋아지는 재미로 환자를 치료하는데, 스마일 캐릭터는 왜 내 속을 이렇게도 몰라주는지.”
“죄송합니다. 선생님.”
엄마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저도 미안합니다. 그러나 기다려봅시다. 스마일 캐릭터 아닙니까? 보기만 해도 웃음을 주는 캐릭터가 활짝 웃어야 세상이 웃지요. 기쁨을 나눠줄 거 아닙니까?”
의사선생님은 부모님을 위로했다.
“선생님, 새로 나온 치료법은 아직 없습니까? 이러다가 우리 그루 잘못될까봐 속이 탑니다.”
아빠가 매달리듯 말씀하시자 선생님도 안타까운 눈치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근육이 무력해지는 희귀병이라 치료법이 아직 개발되지 않았답니다.”
의사선생님은 이번에도 특별한 처방을 해 주지 않았다. 부모님 기대는 또 와르르 무너졌다.
집에 도착하니 캄캄한 밤이었다.
“아이고 내 새끼, 고생했다. 어서 오너라.”
기다리던 할머니가 나를 반겼다. 아빠는 끙끙거리며 나를 옮겨 방에다 내려놓았다.
얼른 자라고 했지만 잠이 빨리 오지 않았다.
다음날 새벽, 늦게 잠이 들어서 아직 눈도 안 떴는데 아빠가 들어오셨다.
“오늘도 학교에 못 데려다주겠다. 집에서 할머니랑 있어라.”
아빠는 이른 새벽에 경운기를 몰고 나가셨다. 엄마도 당연히 아빠를 따라 나섰다.
누나와 여동생은 학교에 가고, 할머니는 잠깐 밭에 가셨다. 집에는 나 혼자만 남았다.
가만히 누워서 천정을 말똥말똥 쳐다보았다.
그런데 참 신기하다. 천정에 그림이 보인다. 지나날 내 모습이 텔레비전 연속극처럼 훤하다.
“웃는 얼굴이 왜 저렇게 예쁜지 몰라. 그루야! 그루야!! 이리 와 봐.”
식구들이 서로 나를 안아보려고 손을 내민다. 다른 사람들도 다투어 팔을 벌려서 콜을 한다.
그러고 보니 나는 어릴 때부터 잘 웃었다. 그 버릇이 지금도 여전하다.
“우리 그루는 스마일 캐릭터야!”
맨 처음 누나가 붙여준 별명이다. 그러고 보니 정말 희한하다. 의사선생님도 누나와 똑같이 나를 스마일 캐릭터라고 부른다. 그런데 나는 다섯 살 때부터 다리에 힘이 조금씩 빠져나갔다.
“왜 이렇게 자꾸 넘어져? 헛눈 팔지 말고 다녀!”
할머니의 꾸중이 심했다. 부모님도 야단치는 횟수가 많아졌다.
“엄마! 다리에 힘이 없어서 그래.”
엄마가 야단칠 때 눈물이 난다. 선생님한테 꾸중도 많이 듣고 친구들도 나를 놀려댔다.
“한그루,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니니? 그렇게 넘어지면 어떻게 해?”
“한그루는 넘어쟁이! 자꾸 자아꾸 넘어진대요. 넘어쟁-이! 넘어쟁-이!”
아이들이 놀려도 쫒아가지 못한다. 엉엉 울기만 한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엄마가 아빠를 졸랐다.
“우리 그루, 병원에 좀 데려가 봅시다.”
아빠가 쉽게 들어줄리 없다.
“병원에는 무슨? 농사일이 이렇게 바쁜데!”
아빠는 뚝 잘라 거절했다. 그래도 엄마는 아빠를 끈질기게 설득했다.
“알았으니까 그만해. 모내기나 끝내놓고 가야할 거 아냐?”
며칠 후 아빠는 나를 데리고 광주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갔다.
“근육이 무력해지는 병인 것 같습니다. 더 두고 봅시다.”
병원을 나서면서 아빠는 왕창 짜증을 냈다. 병원이 맘에 안든 것이다. 그러나 엄마는 달랐다.
“우리 그루 데리고 큰 병원에 한 번 더 가 봅시다. 속 시원하게 원인을 알아야 할 거 아니요?”
아빠는 이번에도 쓸데없는 소리한다고 단번에 거절했다.
“무조건 아니라고만 하지 말고 내 말 좀 들어요!”
엄마가 소리를 꽥 지르는 바람에 아빠가 또 졌다. 아빠는 잘난 척해도 엄마한테는 항상 진다.
며칠 뒤 아빠는 나를 태우고 서울대학병원으로 갔다. 진료를 한 의사선생님은 참 친절했다.
“어디보자. 한그루! 너는 스마일이구나, 이름보다 스마일 캐릭터가 더 잘 어울리겠다.”
처음 본 의사선생님이 우리 누나와 똑같은 말을 한다.
“아주 먼 곳에서 오셨군요. 되도록이면 오늘 결과까지 보고가시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의사선생님이 시킨 대로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다. CT촬영까지 했다.
검사를 다 마친 뒤에도 오래 기다렸다. 참 지루했다. 집에 빨리 가고 싶었다.
“한그루님, 들어오세요.”
간호사 누나가 내 이름을 불렀다. 오후 5시가 다 되었을 때다.
진료실로 들어가 의자에 앉자마자 의사선생님이 나를 한참동안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살결도 하얗고 예쁜 스마일 케릭터에게 좋지 않은 일이구나.”
의사선생님은 아빠에게 신중한 표정으로 검사결과를 보면서 설명했다.
“아주 희귀한 병입니다. 근육에 힘이 점점 빠져나가서 나중에는 걷지도 앉지도 못하게 될 수 있습니다. 뼈를 지탱해 주는 근육이 역할을 못 해주기 때문입니다.”
“치료하면 될 거 아닙니까? 그래서 병원이 있는 거잖아요.”
아빠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 병에 대한 치료방법이 아직 나와 있지 않아서요.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아빠는 뜻밖의 소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엄마도 나를 부둥켜안고 소리없이 울었다.
의사선생님은 엄마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집안에 이런 증세를 보인 사람이 있었습니까? 이런 병은 유전에 의해 거의 선천적으로 온다고 봐야 하거든요.”
“유전이란 말에 아빠가 고개를 저으며 그런 사람 없다고 잡아 땠다.
“진정하십시오. 이 병은 아들에게만 나타난 아주 희귀한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딸은 겉으로는 나타나지 않지만 몸속에 유전인자를 갖고 있다가 결혼하여 아들을 낳으면 나타나게 되지요.”
“그러니까 아들한테만 증상이 보인다 그 말입니까? 아들한테만요?”
아빠는 의사선생님 말씀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얼굴이 빨개져서 대들었다.
“친정 동생이 그랬어요. 지금까지 잊고 있었는데,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까 생각이 나네요.”
엄마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랬군요. 동생은 몇 살까지나 살았습니까?”
“열세 살 되던 해에 죽었어요. 13년도 채 못살았지요.”
의사선생님은 안쓰러운 눈으로 엄마를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리 그루 불쌍해서 어떻게 해요? 나 때문에, 나 때문에요.”
엄마가 나를 붙잡고 흐느껴 울었다. 의사선생님이 엄마한테 또 말을 걸었다.
“자녀분은 몇 명이나 되십니까?”
“셋이지요. 큰딸하고 막내딸, 그리고 그루입니다.”
“딸들은 괜찮지요? 잘 생긴 그루에게 운동 많이 시키십시오. 그래야 하루라도 더 삽니다.”
부모님은 한참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나도 눈물이 막 쏟아졌다.
“너무 절망하지 마십시오. 세계 각국에서 치료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연구하고 있으니까요.”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차 안은 조용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잠만 잤다.
나는 1학년 때까지는 친구들하고 놀았다. 학교가 끝나도 운동장에서 신나게 놀았다. 그러나 2학년이 되면서 친구들하고 놀지 못했다. 넘어쟁이는 아예 끼어주지 않았다.
나는 점점 걸음이 느려지면서 움직이기가 싫었다. 가만히 앉아서 컴퓨터 게임만 했다.
2학년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한 뒤부터는 결석을 많이 했다. 그리고 6개월에 한 번씩 병원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의사선생님은 나를 만날 때마다 똑 같은 말을 했다.
“스마일 캐릭터! 너 요즈음 운동 안하지? 몸이 더 불어난 것 같은데.”
나는 피식 웃기만 했다. 몸이 많이 불어나 이미 40kg을 넘어섰다.
“운동 시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외삼촌처럼 오래 가지 못합니다.”
의사선생님이 부모님한테 당부를 해도 운동은 하기 싫다. 숟가락 들고 밥 먹는 것조차 싫다.
아빠는 할머니한테 화풀이를 한다.
“어머니, 밭에 그만 가시고 운동 좀 시키라니까요. 운동 좀......!”
아빠는 농사일에 묻혀 산다. 새벽 일찍 들로 나가시면 저녁 늦게야 들어오신다. 우리 집 농사일만 하는 게 아니다. 동네일까지 맡아서 한다. 우리 집에만 농기계가 많은 탓이다.
아빠는 나를 운동시킬 시간이 없다. 그래서 할머니한테 부탁하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니까 내 운동은 할머니 차지다.
“내 강아지! 할미가 늦었지? 밥 좀 먹고 어서 운동 좀 하자.”
한참동안 누워서 천정에 그려진 지난 일들을 떠올리고 있는데 할머니 소리가 난다. 밭에 갔다 돌아오신 것이다. 나는 끔쩍도 하지 않고 그대로 누워있었다. 할머니는 나를 못해본다. 내 몸이 할머니 보다 더 무겁다. 내가 들은 척도 안하면 아무리 다그치고 얼려도 소용없다.
“따르릉! 따르릉!”
바로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할머니세요? 여기 병원입니다. 그루아빠한테 아이 데리고 병원으로 좀 오라고 전해 주세요.”
할머니 얼굴이 창백하다. 가슴을 손으로 누르면서 겨우 수화기를 놓는다. 걱정이 태산이다.
저녁 늦게 들어오신 아빠는 할머니 말씀을 듣고 마음이 급하다.
“무슨 일이지? 지난번에 해 놓고 온 검사가 잘못 나왔나? 하여튼 얼른 가 봐야지.”
아빠는 당장 서두른다. 내일 농사일은 모두 미뤘다.
다음날 날이 밝기도 전에 병원을 향해 출발했다. 도착하자마자 급히 진료실로 들어섰다.
“어! 벌써 왔구나. 스마일 캐릭터!”
의사선생님이 밝은 목소리로 나를 반긴다. 그리고 아빠한테 말을 건넨다.
“당분간 입원을 시키십시오. 미국에서 치료법이 개발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 도입되어 첫 번째 행운을 차지한 사람이 스마일 캐릭터입니다.”
“뭐라고요? 치료법이 나왔다고요? 진짜입니까? 참말입니까?”
아빠는 의사선생님 손을 잡고 흔들었다. 흥분이 되어 얼굴도 빨래졌다. 저런 모습은 처음이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동안 죄인처럼 기가 죽어있던 엄마가 의사선생님께 ‘감사합니다’를 몇 번이나 한다.
“저 웃는 얼굴 좀 보세요. 내가 스마일 캐릭터라고 괜히 그랬겠습니까? 스마일 캐릭터가 다른 사람에게도 희망이 될 것입니다.”
활짝 웃는 의사선생님 얼굴이 오늘따라 해님처럼 환했다.
“선생님, 부모가 자식을 낳아 키운다고 하지만 생명을 살리는 건 의사선생님입니다.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정말로 감사합니다.”
부모님 얼굴에 웃음이 가득 찼다.
“나도 이제 마음대로 놀 수 있어요?”
나는 벌써부터 방안 감옥에서 탈출할 생각을 했다. 내 몸을 내 마음대로 움직이고 걸어 다닐 수 있다니 세상에서 이보다 더 신나는 일은 어디 또 있을까?
“야호!”
나는 당장 휠체어에서 일어나고 싶었다. 엉덩이를 들썩거려보았다. 그러나 꿈쩍도 하지 않는다.
“지금은 아니지. 성급하기는......”
의사선생님이 나를 보며 웃는다. 나도 따라 웃었다.
“스마일 캐릭터! 간호사 따라 입원실로 고! 고!”
의사선생님이 불러준 내 별명이 지구별에서 가장 좋은 이름인 것 같다.
아니다. 의사선생님이 최고다. 그리고 다음이 나 스마일 캐릭터다.
“얼른 치료 받고 나서 웃음 천사가 될게요.”
나는 오랜만에 두 손을 높이 들어 쭉-쭉-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훨훨 날아갈 듯이 기분이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