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한달 반동안 서울에 와 있었는데 즐겁게 지냈는지 모르겠구나.
네가 떠난 후, 아빠와 엄마가 8월 7일 성당에서 혼배성사를 할 때 같이 찍은 사진을 보니 네 키가 많이 크고 의젖해 보인다. 작년 여름만 해도 누가 더 큰지 나와 키를 재보자고 조르더니 이제는 완연히 네가 더 크구나.
나는 이번에 네가 정말 착한 아들이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물론 그 전에도 항상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번에 아빠 엄마가 혼배성사시 교환할 기념선물로 금으로 된 묵주반지를 사러 갔을 때, 몇 십만원이나 되는 거금을 내가 선뜻 내어 부모님께 선물을 하는 모습에 속으로 감격을 하였다.
너는 항상 평시에 용돈을 받으면 거의 안 쓰고, 돈을 모으는 것을 큰 취미로 여기는 것을 잘 알고 있었는데, 부모님을 위해 아까워하지 않고 선용하는 행동에 너를 다시 보게 되었다.
사실 돈은 모을 수도 있고 또 쓸 수도 있는데, 돈을 많이 모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 돈이 많다고 하더라도 남을 위해 쓰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이를 우리는 인색한 사람이라고 한다. 또 가난 하더라도 그 수준에서도 얼마든지 남을 도울 수 있다.
부처님과 가난한 한 노파의 이야기를 들려 주마. 부처님 탄생일인 사월 초파일에는 절에 소원을 비는 등불을 다는데, 부처님이 오시는 길에 많은 사람들이 각종의 아름다운 등을 들고 서 있는데 돌보아 주는 자식이 없는 늙은 할머니도 그 행열에 서고 싶어서 겨우 초라하나마 한 등불을 구하고 기름을 남에게 빌려서 서 있었는데, 석가모니가 이 노파를 보고 나는 돈 많은 장자의 만등(萬燈)보다 이 가난한 노파의 한등(一燈 )을 더 귀하게 여긴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후 “장자의 만등보다 빈자의 한등이 더 귀하다”는 말이 나왔다.
한번은 너와 같이 일요일에 성당에 갔는데 네가 봉헌금으로 만사천원을 바치는 것을 보았다. 나는 매월 일정액의 교무금을 따로 내기 때문에 주일에는 만원이상을 낸 적이 없는데, 너는 나보다 더 많이 낸 것이다. 그래서 내가 물으니 그 주일동안 십사만원의 용돈을 친척들에게 받아서 십일조로 바쳤다고 하는 말을 너에게서 들었다. 너의 정직한 모습에 내가 도리어 부끄러워졌다. 너의 그 정직한 마음을 항상 간직하기 바란다.
며칠전 네 엄마와의 통화에서 네가 종국이형 가족과 나이아가라 폭포를 갔다 왔다는 애기를 들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다양한 볼거리가 많은 나라인데 그 중에서 나이아가라 폭포에 많은 사람들이 간다. 이 거대한 폭포를 보며 우리는 자연의 장엄함에 감탄하면서 동시에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고 초라하며 유한한 존재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너도 그런 것을 느겼으리라 생각한다.
우리는 여행을 하면서 자연과 생명에 대한 경외감, 인간에 대한 존중심,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 등을 배우게 된다.
곧 대학입학을 위한 SAT시험준비에 바쁘겠지만 공부에만 파묻히지 말고, 동네의 가까운 곳부터라도 다녀 보면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기 바란다.
2008년 9월 16일.
너를 항상 믿는 아빠가
첫댓글 잘 읽어보고 갑니다.
휼융한 아들을두셨군요 축하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