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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세상을 바꾼다
홍사종 지음
▣ 저자 홍사종
1955년 경기도 남양반도 남양 홍씨 1천 년 세거지(世居地)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고려대학교 대학원 경영학과를 졸업했고, 세종문화회관과 국립극장을 거쳐 (재)정동극장장을 지냈다. 정동극장장 재임 시 역발상의 상상력과 아이디어로 혁신적 경영모델을 만들어낸 공로로 공기업경영혁신 최우수상, 지식경영대상, 한국경제신문 마케팅 특별상,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숙명여대 문화관광학과 조교수를 거쳐 동대학 문화예술경영연구소장, 교내 벤처기업 (주)아트노우 대표이사, 동대학 정책 대학원 주임교수, (재)경기도문화의전당 사장을 지냈으며,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생명의 마케팅 자문교수를 역임했다.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부문에 당선된 것을 비롯 주요 일간지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그동안 ‘이야기 경제학’, ‘스토리텔링 마케팅’을 주제로 국내유수 기업과 정부단체, 방송 등에서 900여 회의 강연을 했다. 현재 미래상상연구소 대표, 사단법인 농어촌문화미래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숙명여대 정책산업대학원에서 문화산업론, 문화마케팅이론 등을 가르치고 있다.
▣ Short Summary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생산의 핵심동력’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과연 어떤 사회로 볼 수 있을까? 대부분의 답은 ‘정보화사회’다. 수렵어로사회에서 시작된 인류의 대장정은 농업혁명을 거쳐 산업혁명, 정보혁명의 고비를 숨 가쁘게 넘어왔다. 하지만 이 변화를 면밀히 주시해오던 몇몇의 미래학자들은 이미 정보혁명의 태양이 지고 있음을 관찰했다. 예로 덴마크의 미래학자 롤프 옌센은 자신의 저서『드림 소사이어티』에서 인간의 감성과 꿈의 생산성이 높아지는 ‘드림 소사이어티(Dream Society)’가 도래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21세기는 이야기사회다. 세상은 이야기에 열광하고 이야기에 목말라한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에서 이야기는 상품이 되고, 문화가 되고, 삶이 되고, 그리고 미래가 된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리고 이야기산업, 이야기전쟁 등 이 책에 나열된 키워드와 개념, 주장들은 저자가 올해 초 모 조간신문에 썼던 ‘이야기경제가 세계를 바꾼다’ 시리즈를 좀 더 구체화시켜 확장해본 것이고, 그 외에 이 책에 실린 나머지 글들은 저자가 그동안 틈틈이 써온 ‘거꾸로 본 세상’ 이야기를 정리해본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정면으로 바라본 세계는 사실(Fact)의 세계고, 뚜껑을 열어야 진실(True)의 세계가 보이는데, 농경사회와 산업사회에서는 정면만 보면서도 생존이 가능했지만, 정보사회, 이야기혁명 시대에는 남다른 발상과 기발한 상상력만이 생존무기라고 강조하면서, ‘거꾸로 본다’는 것은 그만큼 더 많이 생각한다는 것이고, 생각한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이 세상에 존재하게 만드는 작업일 것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 차례
추천의 글
고갈되지 않는 상상력의 화수분〈서지문〉
언제나 ‘우리’를 생각하는 우리 시대의 스토리텔러〈김병종〉
머리말
프롤로그_ 이야기가 세상을 구원한다
1장 이야기가 상품이 된다
이야기를 발굴해야 한류도 산다 / ‘넥타이이론’과 이야기사회
이야기와 감성을 팔아라 / 냉장고가 ‘사랑’인 이유 / 장사꾼 ‘박인출’ 이야기
되는 일 없는 세상을 판다 / 거꾸로 보면 시장이 보인다 / 멀리 보면 시장이 보인다
깨뜨린 것은 상식이었다 / 미술품 구입이 투기라고? / 순수예술과 산업경쟁력
지역예술축제와 문화특산품 / 문화경영과 벤치마킹 / 이제는 문화벤처 뜰 때
메세나와 패트런의 진정한 의미 / 문화타운이 대안이다
2장 이야기가 문화가 된다
문화시음회? / 낮잠도 문화상품이 되는 세상 / 문화공간 운영의 3박자
매표원이 곧 극장장이다! / 공연장도 관광자원으로 / 오페라와 창극
무라카미 하루키와〈집으로〉/ 유대계 미국인이 지구를 구한다?
아침드라마 전성시대 / 그리스로마 신화 열풍 / 사교육비지수와 문화지수
‘마스터베이션 음악회’가 관객 쫓는다 / 함께 부를 노래가 있는가
극장을 떠난 바보 음악가들 / 바보성공시대를 위하여 / 통일과 예술경쟁
‘수리안전답형(型)’ 마케팅론 / 가격파괴와 가격포기 / 지방문예회관 공동화 유감
3장 이야기가 삶이 된다
남자여, 부엌을 점령하라 / 방황하는 남자들에게
군림하는 아버지 시대와 포용하는 어머니 시대 / 그러나 남자도 보호받고 싶다
사랑방을 돌려다오 / 여자도 본능대로 살고 싶다 / 이 시대의 아내들에게
여성이 소비의 주체라고? / 여든 노모의 휴대전화 / 노인을 위한 문화는 없다
가족, 그 진부하고도 성스러운 가치여! / 문화의 손맛을 찾아서
끝나지 않은 어머니의 이야기 / 잘려나간 장발, 잘려나간 사랑
4장 이야기가 미래가 된다
다시 흰 와이셔츠가 그립다 / 얼리버드만 새냐 / 메시아는 없다?!
쇼를 하라, 쇼! / ‘물’이 만드는 꿈과 권력 / 거대정책 만능시대의 종언
문화가 흐르는 디지털세상을 꿈꾸며 / ‘경기장 오페라’ 유감
패자부활전이 왕성한 사회 / 이제는 농촌에 빚을 갚자!
나무장수 천상배 씨의 미래학 / 극장과 목욕탕에 죄를 묻다
앙드레 김을 농해 대소(大笑)하는 사회 / 뜨려면 센 자를 물어뜯어라!
마녀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 / 밀실이 좋은 사람들
법과 도덕의 위험한 동거 / 행정시스템과 멋의 패러다임
에필로그_ ‘빠끔 할아버지’는 없다
1장 이야기가 상품이 된다
이야기를 발굴해야 한류도 산다
NHK의〈겨울연가〉의 방영 여파로 일본열도 전역에 이른바 ‘욘사마 열풍’이 불고, 중국, 동남아 등지에서도 한류열풍이 뜨거울 때 우리의 최대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한류를 지속시킬 수 있을 것인가’였다. 그러나 문화계 및 정부지방자치단체까지 합세한 다양한 아이디어들의 양산에도 불구하고, 2005년 KOTRA 일본 나고야 무역관은 “한류열풍에 이상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라고 진단했다. 일본의 한국영화 수입액과 드라마 시청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는 충분히 예견됐던 일이다. 나의 일관된 생각은 “한류열풍이야말로 유행의 일시적 반복현상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1980년대 홍콩영화가 아시아대륙을 열광케 했지만, 이내 식상한 내용과 빈곤한 콘텐츠라는 한계에 부딪혀 사라졌다가 이따금 얼굴을 내미는 것처럼, 대중문화에 전적으로 의존한 한류열풍은 필연적으로 주기적인 한계와 만날 수밖에 없다.
한류 붐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우리의 이야기 자원을 부단히 캐고 다듬어 나가야 한다. 많은 시간과 인력의 투자가 필요한 반도체산업보다 이야기가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해내고 있다. 예로 삼성전자의 수출이익보다 판타지소설 『해리포터』의 판매가 더 많은 수익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렇게 이야기산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나라들의 사례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데 있다. 예로 『해리포터』의 뿌리를 따라가면 그 민족(국가)의 무궁한 서사적 자원과 맞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태초에 생성된 이야기는 설화나 신화로 이어지고, 그 자양 위에서 상상력을 키우고 자란 작가들에 의해 ‘고전’으로 완성되며, 그리고 그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게 된다.
한국은 단군신화, 삼국유사, 중근대사,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서사적 자원이 풍부한 나라다. 문제는 이런 자원이 어떤 작가들의 상상력과 만나 어떻게 탄탄한 이야기 토대로 재탄생하는가에 있다. 스타 몇 명에 일희일비하는 한류 정책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이야기 작가를 발굴하고, 문학, 연극 등 기초예술 분야에 과감한 투자와 지원을 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야기와 감성을 팔아라
1970년대만 하더라도 우리가 시장에서 옷을 살 때 내세운 첫 번째 기준은 아마 옷감의 질이 아니었나 싶다. 다음으로는 바느질 상태가 꼼꼼히 되어 있는가를 점검한 후에야 지갑을 열었다. 그런데 오늘날의 소비자들에게는 옷감과 바느질 상태는 거의 고려대상이 되지 않는다. 놀랍게도 여든을 훌쩍 넘기신 나의 어머니는 옷을 선택할 때 첫째로 브랜드, 둘째로 디자인을 따지신다. 그런데 브랜드는 제품 자체라기보다는 그 옷을 만든 회사의 이미지와 신뢰를 담은 ‘이야기’이며, 디자인은 곧 감성이고 문화다. 이렇듯 시장에서 소비자들은 물건을 사기보다 그 물건 속에 담겨 있는 이야기와 문화를 산다. 시장이 이성의 힘에 의해서보다 이야기와 감성의 힘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야기와 감성을 팔아야 시장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검증해 주는 사례는 이미 기업들의 광고전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예로 2000년대 초반 광고계의 흐름을 바꾼 사건이 있었다. 바로 대형냉장고 광고인데, B사는 초기 텔레비전 광고에서 냉장고 앞에 양 한 마리를 가져다 놓고 “소리가 나지 않는다”며 계속 물건의 기능만 선전한다. 그에 비해 A사는 기능에 대한 일체의 설명 없이 여성탤런트를 등장시켜 “남자들은 모른다, 주부가 갖고 싶은 꿈의 냉장고”라며 초지일관 꿈과 이야기를 판다. 초반부에는 ‘기능’을 판 회사가 우세했지만, 나중에는 ‘꿈과 감성’에 호소한 회사의 완전 우세로 역전됐다. 꿈과 감성과 이야기의 힘이 기술과 물건 중심의 광고를 이긴 것이다. 시장이 완전히 이야기와 감성의 시장으로 변했다는 징후는 이밖에도 도처에서 감지된다.
거꾸로 보면 시장이 보인다
우리가 보는 ‘섬’의 이미지는 사방이 가로막힌 고립무원의 공간이다. 그러나 거꾸로 보면, 섬은 스스로를 향해서 자신을 가둘지라도 세계를 향해서 어디로든 나갈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이렇듯 보기에 따라서 세상의 의미는 달라진다. 이는 문화예술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정동극장에 재직하던 시절, 우리 극장이 대형자본과 큰 극장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펼친 여러 가지 시장개발전략은 기실이 ‘거꾸로 보기’의 산물이다. 400석 규모의 극장이 주먹구구식으로 상품을 만들다보면 경쟁력의 약화는 물론 불황에도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극장의 입장에서 상품을 만들고 판매하는 전략이 아니라, 거꾸로 수요를 만들고 이를 자극해서 극장 안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을 활용했다.
예로 전통장터의 모습을 현대적으로 재현해서 장보기와 친숙한 주부들을 공연과 연결시킨 〈국악장터〉의 개최, 지나간 것들의 그리움을 매개로 잠재적 문화수요계층인 40~50대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극장을 찾게 한〈돌담길 추억이 있는 음악회〉, 동창회나 친목회 등 소비지향적인 모임을 공연과 함께 꾸며주는 주문식 공연상품 등은 정면으로 바라본 세상에서는 만들어질 수 없는 상품들이었다. 거꾸로 본다는 것은 그만큼 더 많이 생각한다는 것이다. 결국 생각한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이 세상에 존재하게 만드는 작업이 아닐까?
멀리 보면 시장이 보인다
문화시장에서 기성세대의 권위에 기를 못 펴고 신세대의 도전에 눈치 보며 지내는 세대가 40~50대인데, 요즘 40~50대의 문화적 소외는 우선 TV프로그램이 주도하고 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마치 전체 대중문화시장이 10~20대만을 고객으로 생각한다는 듯 40~50대를 철저히 외면한다.
물론 젊은 세대는 적극적인 문화소비자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40~50대가 문화소비에 관심이 없는 세대라는 건 오산이다. 사실 젊은이들 못지않은 잠재적 문화소비욕구를 간직하고 있는 세대들이지만, 이들의 잠재적 소비욕구가 수요로 폭발되지 못하는 이유는 간명하다. 40~50대를 위한 진정한 문화프로그램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40~50대의 잠재적 문화소비욕구를 폭발시킬 수 있는 상품만 개발한다면, 경제적 안정에 비례된 이들 세대의 구매력이 젊은 세대를 능가할 여지는 충분하다. 문제는 문화상품 제작자들의 안목과 시장을 멀리 내다보는 전략이 아닐까? 멀리 봐야 시장이 보인다.
이제는 문화벤처 뜰 때
정보화 사회의 물결이 지난 ‘제5의 사회’는 과연 어떤 모습일 것인가 하는 논의가 담긴 『드림 소사이어티』가 2005년 국내에도 번역출간되었는데, 이 책에서 전 덴마크 코펜하겐 미래학연구소장 롤프 옌셴은 저서에 붙인 제목 그대로 “곧 꿈과 감성을 파는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다. 즉 이제 소비자를 즐겁게 해주는 것은 정보나 품질이 아니라, 꿈과 감성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문화상품들의 산업화 전략에는 험로가 예상된다. 지금의 정보화시대를 떠받치는 ‘정보’와 ‘문화’라는 두 축이 불균형한 비대칭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정보사회의 인프라로 불리는 정보통신과 인터넷에 기반을 둔 벤처기업은 끊임없이 생성ㆍ소멸하고 있다. 반면, 꿈과 감성을 담아 팔 문화콘텐츠 산업의 태동과 발전 속도는 여전히 더디고 산만하다. 그러므로 이제 정보통신과 인터넷 분야 못지않게 내용의 다양성을 담아낼 문화벤처의 기둥을 정부가 앞장서서 일으켜 세워야 할 때다. SM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 대표와 JYP엔터테인먼트의 박진영 대표 등이 호소하는 세계시장 진출을 위한 유통망 구축도 정부가 귀 기울여야 할 과제다. 왜냐하면 정보화로 피로해진 세상에 온기를 불어넣어줄 문화벤처사업이 이제는 뜰 차례이기 때문이다.
2장 이야기가 문화가 된다
문화시음회?
청량음료업체들이 신상품을 출시할 때마다 빼놓지 않는 행사 중의 하나가 시음회일 것이다. 1998년 정동극장의 극장장으로 있을 때 나는 이 마케팅전략을 원용했는데, ‘문화시음회’ 전략의 일환으로 탄생된〈정오의 예술무대〉가 바로 그것이다.〈정오의 예술무대〉는 직장인들의 점심식사 후 차 한 잔 마시는 자투리시간과 공연을 결합시킨 무대다. 즉 찻값만 내고 차와 30분간의 공연을 함께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인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공연장 한 번 찾지 않던 관객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국악이나 연극 등 순수공연과 만난 뒤, 저녁공연 시간대에 정식 공연관객으로 흡인된다는 사실이다. 문화의 향기가 넘치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사회를 위해 이제 극장도 관객을 찾아나서야 한다.
문화공간 운영의 3박자
흔히 ‘문화공간 운영의 2박자’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환상적 결합을 말하는데, 이는 좋은 시설과 좋은 작품만 만날 수 있다면 관객창출은 문제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2박자 시대’의 얘기다. 요즘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거기에 마인드웨어가 결합되어야 하는 ‘3박자 시대’다. 마인드웨어란 방관자가 아닌 적극적인 조정과 확산을 주도하는 참여자로서의 문화공간 운영자들의 역할을 의미한다. 앉아서 관객이 오기만 기다리던 시대는 끝났다. 오늘날 중요한 것은 문화창조자의 생산물인 예술작품을 더욱 갈고 닦아 이를 잘 팔리는 상품으로까지 만들어나가는 문화공간 운영자들의 새로운 마인드가 필요하다.
공연장도 관광자원으로
영국런던의 웨스텐드 지역의 한 극장은 1999년부터 현재까지 뮤지컬 〈맘마미아〉를 공연하고 있는데, 런던에 머무르는 관광객치고 이 유명한 관광명소를 그냥 지나치는 사람은 드물다. 이 극장에 몰리는 관객들 중 40%가 외국인 관광객으로 집계되는 걸 보면, 런던의 문화관광에서 이 공연장이 차지하는 비중을 짐작케 한다. 그리고 뉴욕의 무역 외 최대수입원은 브로드웨이, 박물관, 미술관을 활용한 문화관광사업이다. 브로드웨이의 오펌극장에서는 지금도 15년째 뮤지컬 〈스텀프〉를 공연하고 있고, 한국인들도 뉴욕에 가면 이 극장에 가서 뮤지컬을 본다.
나라마다 극장을 관광자원화하고 독창적인 레퍼토리를 개발, 상품화하는 것은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외화획득이라는 유형의 소득뿐만 아니라, 민족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팔아 세계인과 교류한다는 계량 불가한 엄청난 무형적 부가가치를 얻는 일이기 때문이다. 브로드웨이가 뉴욕의 자존심이자 미국의 자랑이 된 것은 이러한 가치의 무형적 소중함을 아는 극장경영자와 많은 예술가들의 피눈물나는 노력 덕분이다. 이에 비해 우리의 현실은 갑갑할 지경이다. 선진국 못지않게 수많은 공연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인들은 제대로 만들어진 ‘한국적 프로그램’ 하나 접할 기회가 없다. 〈난타〉와〈점프〉를 제외하고는 호텔에서 펼쳐지는 눈요기 쇼, 전통 관광식당에서 보여주는 소규모 공연과 몇몇 공연장의 전통예술무대가 고작이다.
문제는 공연장들마다 일회성 실적 위주의 작품은 많아도, 극장을 대표하고 한국을 대표할 만한 고정 레퍼토리가 없다는 데 있다. 특히 관(官) 주도 공연장들은 돈이 적게 드는 보유 레퍼토리의 수정ㆍ보완작업보다는 창작품의 개발에 해마다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해의 예산을 못 쓰면 이른바 불용액이 된다는 이유 때문에 끊임없이 새 작품을 만들고 팽개치는 실적주의를 선호하는 것이다. 이들 공연장들이 ‘창작의 육성’이라는 미명 아래 수많은 작품을 무대에 올렸지만, 경쟁력을 획득하고 살아남은 작품이 별로 많지 않다는 사실은 추락한 우리 공연예술계의 위상을 말해준다. 그러나 반대로 뮤지컬 〈명성황후〉처럼 우수 레퍼토리 제작에 성공한 민간단체는 상설공연장을 확보하지 못해 아직 본격적으로 관광상품화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우리도 공연장을 관광자원화해야 한다. 극장마다 그동안 평가받았던 우수한 작품을 발굴하고 브랜드화해서 관광상품으로 정착시키는 일이 시급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재정적 기반이 확고하고 우수예술단체를 보유한 국공립 공연장부터 시즌별 고유 레퍼토리의 상설무대화를 추진해야 한다. 공연장의 관광자원화는 세계가 문화로 교류하고 친화하는 글로벌시대 국가의 문화이미지를 높이는 데 큰 몫을 담당한다. 정부도 상설 프로그램을 책자 등으로 한데 모아 해외문화원과 관광공사 등을 통해 외국인들에게 홍보하고 판매하는 일에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수리안전답형(型)’ 마케팅론
농지개량이 활발하게 진행되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논은 대부분 천수답(天水沓)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도 많이 바뀌었다. 산골짜기에 위치한 계단식 논이 아닌 웬만한 농지라면, 대부분 관개수로를 충분히 확보한 ‘수리안전답(水利安全畓)’으로 변했다. 그런데 농민들도 극복해낸 이 천수답형 농사법을 아직도 극복하지 못한 곳이 있는데, ‘관객가뭄’으로 전전긍긍하는 우리의 공연예술계다.
공연예술계의 농사법은 오로지 천수답형이다. 공연 임박 전에 각 신문, 방송매체에 보도자료를 돌리고, 그들의 하느님 격인 기자가 비(기사)를 내려주기만 기다린다. 여기저기 보도가 나면 관객은 들지만, 아니면 제작비조차 못 건지고 망해버리기 일쑤다. 그 밖의 마케팅 전략이라는 것을 보면 육교 현판, 포스터 붙이기, TV 스팟광고 등이 전부다. 재정이 열악한 주최자는 그마저도 어려운 실정이다. 결실을 예측하기 어려운 이러한 마케팅 방법은 공연계의 불황을 더욱 부추기에 마련이다. 천수답을 수리안전답으로 바꾸어낸 농업당국과 농민들의 지혜로부터 우리 공연예술계가 한 수 배워볼 일이다.
지방문예회관 공동화 유감
정보화사회의 급속한 발전과 민주주의의 발전에 힘입어 우리나라에도 많은 수의 공연장들이 지방 중소도시 군 단위까지 건립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상당수 지방문예회관의 건립이 지역주민의 사회적 수요와 문화적 욕구에 기반하여 건립됐다기보다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치적용 혹은 문화단체장이라는 이미지 획득을 위한 득표전략으로 세워지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그래서 수요창출이라는 전략적 검토도 없이 문화공간의 가장 중요한 특성 중의 하나인 접근성조차 고려하지 않아, 시민문화생활의 중심이 되지 못하고 공동화(空洞化)된 곳이 하나둘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야말로 전략부재다. 우리의 지방문예회관들도 최대ㆍ최고의 시설만 자랑할 것이 아니라, 수요확대를 위한 적극적 경영전략을 강구해야 할 때다.
3장 이야기가 삶이 된다
사랑방을 돌려다오
접대문화가 술에서 골프, 공연관람 등으로 바뀌고 있다는 소식도 들리지만, 워낙에 밀실을 선호하는 남성들의 문화는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룸살롱에서 퇴폐와 쾌락의 도를 넘고 있다. 그런데 왜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룸살롱 같은 밀실문화가 성행하고 있는 것일까? 혹자는 한국남성들에게 가해지는 유난히 심한 사회적 압박이 원인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문제의 본질과 먼 해석인 듯하다.
엉뚱한 주장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룸살롱 창궐의 주범은 주거공간의 급격한 변화에 있다. 전통사회의 한국형 주택구조에는 남성들만의 공간인 사랑채가 있었는데, 사랑채는 전통사회가 주는 도덕과 윤리의 억압으로부터 남자들이 만든 자신들만의 일탈공간이었다. 즉 아내의 전용공간인 안채와 적당히 떨어진 사랑채는 응접공간인 동시에 남자들만의 내밀한 밀실지향형 공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가 전통사회의 해체와 더불어 주거공간의 변화가 이루어졌고, 아파트는 남성들로부터 ‘사랑방 문화’를 빼앗아갔다. 집 전체가 가족구성원의 공동공간이나 다를 바 없는 가옥구조에서 사랑채를 잃어버린 남성들이 문득 갈 곳이 없어진 것은 당연하다.
남성들에게는 사랑방이 있었듯, 전통사회에서 여성들에게는 건전한 일탈공간으로서 빨래터가 있었는데, 빨래터에서는 삶의 회한과 거침없는 베갯머리 사정들이 오감뿐만 아니라, 은근한 음담패설까지 오고 갔다. 하지만 빨래터는 빨래하는 속성상 동네 총각들과 남정네들의 보이지 않는 시선 안에서 적당히 통제되는 공간이었다. 그런 빨래터 또한 급격한 도시화로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물가를 좋아하는 여성들의 속성은 곳곳에 현대판 빨래터인 ‘찜질방 문화’를 만들어냈는데, 아는 남성들의 시선이 사라진 익명성의 찜질방 문화가 언제까지 당초의 건강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문제는 불건전해진 일탈문화가 사회건강의 상징인 가족 중심의 공동체 문화를 앗아가고 있다는 데 있다. 그러나 해결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앞으로 대형 공동주택을 지을 때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주상복합아파트처럼 공동주거 안에 지인들의 초대가 가능한 ‘공동파티 공간(사랑채)’이나 ‘사우나탕(찜질방)’ 등을 만들어주는 것인데, 이는 남녀 각자만의 놀이공간을 통제가 가능한 공동의 주거 안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노인을 위한 문화는 없다
우리나라는 이미 65세 이상의 인구가 전체 인구대비 7.6%대로 진입한 고령화사회다.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문제는 ‘얼 만큼 더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인데, 이는 곧 노인문화의 문제이기도 하다. 사실 요즘 60대 이상 세대의 사회적 정치적 상실감은 시대변화의 속도와 무관하지 않다. 생물학적 활동능력과는 관련 없이 전개되는 조기퇴직의 여파와 젊은 세대와의 단절감까지, 노인세대의 소외와 상실감은 정말 심각하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사회적 스트레스를 풀어버릴 마땅한 위안거리조차 없다. 무료한 노인들에게 가장 도움이 되어야 할 TV 역시 노인 소외의 첨병일 뿐이다. 모든 것이 젊은 층 취향으로 형성되어 있는 시장 환경에서 노인세대는 문화생활에 있어서도 ‘뒷방 노인에’의 설움과 소외를 톡톡히 맛본다. 당연히 노인도 사랑하고 싶어하고 문화생활을 즐기고 싶어한다. 특히 현실로 다가온 고령사회에서 노인세대의 이러한 문화욕구는 전 세대가 외면할 수 없고 외면해서도 안 될 당면과제다. TV제작자 및 모든 문화공간 운영자와 예술프로그램 공급자들의 현명한 안목과 새로운 시장개발 전략을 촉구해본다.
문화의 손맛을 찾아서
사람들은 어릴 적 음식 맛에 길들여져 평생 그 맛을 찾으며 살아간다. 어린 시절의 경험이 사람의 평생을 지배한다는 것은 현상학자 바슐라르의 책에도 나오는데, 바슐라르는 어린 시절에 맞닥뜨린 물, 불, 흙, 공기의 4원소가 생의 무의식 대부분을 지배한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자연 속에서 자란 시인들의 시집을 읽어보면 모두 자신들이 살던 고향마을의 인심 그리고 나무, 숲, 새, 물, 흙의 추억을 시작(詩作) 곳곳에 담고 있다. 도시로 나온 지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고 그만하면 세련된 도회감각도 완벽하게 익혔을 만한데, 시어(詩語) 곳곳에 숨어 있는 ‘4원소의 꿈’은 날개를 접을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1960~1970년대를 살아온 우리네 중장년층들은 유년기에 문화적 감성과 교감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따라서 문화적 가치보다 물질적 가치를 우선으로 하는 시대에 교육받고 자라온 오늘날의 기성세대가 수용하는 문화의 범위란 극히 한정적이고 조악할 수밖에 없다. 여타의 문화선진국들보다 책이 안 팔리고, 수준 높은 예술작품들이 대중 속으로 저변 확대되지 못하는 이면에는 바로 이 같은 문화사회학적 환경이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기성세대에게 높은 문화의식을 갖게 해주려는 노력은 사회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생에서 가장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 세대들이 문화적 충격과 상시적으로 맞닥뜨릴 수 있도록 수준 높은 문화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궁극적으로 차세대 문화시민을 육성하는 길일 것이다. 어린 시절에 먹었던 어머니의 손맛을 평생 찾아 헤매듯 이 삭막한 세상의 한켠에서 변함없이 내뿜고 있는 문화예술의 아름다움과 조우할 수 있는 기회를 우리의 아이들에게 만들어주는 것도 우리 모두의 의무다.
4장 이야기가 미래가 된다
얼리버드만 새냐
서양에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얻는다(The early bird catches the worm)’라는 격언이 있다. 그런데 정말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얼리버드만 생산성이 높을까? 물론 주행성 새들끼리의 먹이경쟁에서는 얼리버드의 생산성이 단연 돋보일 것이다. 그러나 자연에서는 주행성 새들만 경쟁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야행성 새들도 수두룩하다. 올빼미를 비롯해서 소쩍새, 부엉이, 두견새도 모두 야행성에 속한다. 밤에 활동해야 생산성이 더 높은 야행성 새들처럼 밤에 잠 안 자고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생산성을 낼 수 있다.
얼리버드가 농경사회ㆍ산업사회를 압축해서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모델이었지만, 정보화시대를 가로질러 이야기산업의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은 아침부터 일하는 사람 못지않게 밤새도록 놀며 상상하는 사람도 고부가가치를 내는 생산 활동을 하고 있다. 작가, 게임개발자, 만화가, 작곡자들이 대체로 이런 부류에 속한다. 한때 소비의 측면으로만 치부했던 놀이의 영역이 어느새 경제의 중심이 되어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되고 있는데, 이야기산업과 서비스경제의 확대가 선진산업구조로 가는 지름길이 되었음은 선진국들의 경제구조를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다원화된 세상 한가운데서 탄생하고 자라난 신인류가 바로 요즘의 20~30대인데, 물론 이 중에는 얼리버드도 있지만, 밤을 꼬박 밝히는 올빼미족들도 적지 않다. 신인류의 이러한 진화와 관련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다양성에 기초한 가치관들이 성장하고 있는데, ‘잘’ 노는 방법을 몰라 ‘막’ 놀 수밖에 없었던 구인류와 달리, 이들은 재미있고 즐거운 것들이 너무나 많은 세상임에도 여전히 폭발적인 문화적 욕구를 호소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세대는 이야기산업뿐만 아니라 일반 제조업도 브랜드라는 ‘이야기’를 담아야만 생존할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 어쨌든 얼리버드가 절대적 선이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얼리버드만 새나, 올빼미도 새다.
문화가 흐르는 디지털세상을 꿈꾸며
정보화사회가 촉발한 디지털기술의 발전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인간소외의 문제를 야기한다. 첫째는 인터넷, 전자상거래, IT산업으로 이어지는 사회변화를 이끌어가는 주체적 주도계층조차 급진적ㆍ단절적 시대변화에 급격한 불안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문제는 디지털경제가 포괄하는 지식기반경제 하에서 정보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극단적인 소외감인데, 디지털 경제환경 하에서 필연적으로 대두되는 이 두 가지 인간 소외의 문제는 지금부터 당장 풀어가야 할 당면과제가 아닐 수 없다.
디지털 경제환경을 거꾸로 읽으면 지금이야말로 정보산업 경쟁력과 더불어 사회적 일탈욕구와 소외문제를 풀어줄 건강한 이야기산업의 육성을 위한 중요한 시점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정부의 아날로그식ㆍ공공근로사업식 사회복지정책을 디지털식ㆍ문화복지식으로 전환해야 할 적기임을 알 수 있다. 디지털경제와 문화산업, 문화복지는 상생과 보완의 쌍두마차다.
이제는 농촌에 빚을 갚자!
뉴질랜드 정부가 농업보조금을 폐지하면서 예상했던 농업실패율은 10%였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뉴질랜드의 농업개혁 5년이 지난 후 실패농가는 1%에 그쳤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농업보조금 철폐 전에는 연 1.5%에 불과하던 농업생산성도 연 6%로 급상승했다. 그 이유는 농업위기를 농민들 스스로의 창의적 상상력과 아이디어로 극복해냈기 때문이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농촌을 아름답게 만들어 관광사업과 연결시킨 전략이었다.
소위 ‘선진국’들의 농촌마을을 지나다 보면, 자연과 공생하는 아름다운 전원풍경에 감탄을 금치 못하게 된다. 그에 비해 우리네 농촌마을들은 대부분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낮은 소득수준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경제성장 우선주의의 풍토 속에서 살아온 우리의 미적 안목과 상상력의 빈곤 때문임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아울러 농업에 대한 정부의 과잉보호(?)와 과잉제제도 한몫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예로 이번 한미자유무역협정(FTA) 협상과정에서 보듯, 정부의 농업지원금 등 쌀직불보상정책은 위기를 기회로 바꿀 만한 동인을 제공하지 못했다. 또 획일화된 관료주의와 전시행정, 빈곤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정부가 농촌발전을 위해 내놨다는 ‘시범마을’ ‘생태마을’ 같은 농촌지원사업도 미적 상상력이 부족했던 1960~1970년대식 새마을운동처럼 마구잡이 개발만을 재연하고 있다.
이제는 음식점도 ‘맛집’에서 ‘멋집’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없다. 독일 아우디자동차의 빈터곤 회장은 한 인터뷰에서 “튼튼하고 안전한 자동차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아름다운 자동차라야 고객이 산다”라고 말했다. 조만간 미(아름다움) 관련 산업이 국부를 좌우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따라서 FTA로 고뇌하는 우리 농촌이 살길은 미적 상상력을 키워나가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우리는 지금 정부개입을 배제한 민간차원으로 이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농촌마을 만들기 운동’이 민간차원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먼저 농촌마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마을을 가꾸고 싶다는 생각을 갖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후에 운동가들이 그들에게 인적ㆍ기술적ㆍ문화적ㆍ정보적 지원을 할 수 있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지금은 건축가, 화가, 농촌전문가, 관광전문가, 경제경영 전문가, 디자이너, 음악가, 법률가, 언론인 등 고향과 농촌에 빚진 채 살아가고 있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 한데 모여 농민들과 머리를 맞대고 아름다운 농촌마을 만들기 운동, 아니 ‘농촌에 빚 갚기 운동’을 위해 상상의 나래를 펼쳐야 할 때다.
행정시스템과 멋의 패러다임
아우디코리아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가장 처음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 ‘아름다운 차가 있습니다. 안전한 차가 있습니다’라는 카피였다. 보통사람들의 생각으로는 당연히 ‘안전한 차’가 먼저다. 하지만 아우디자동차는 ‘안전한 차’는 너무나 당연한 기본이므로 의식적인 우선순위를 ‘아름다운 차’에 두겠다는 것이다. 빈터곤 회장의 취임 이후 아우디자동차의 사세는 급성장했다. 물론 작금의 경제 불황 이전의 얘기다.
20여 년 전 삼성전자의 이건희 전 회장은 그룹 임원회의에서 “디자인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했는데, 삼성생명의 배정충 전 사장은 ‘구조조정 등으로 회사가 한창 어려울 때 애매하기 짝이 없는 디자인 분야에 천문학적인 투자를 하는 게 과연 올바른 판단인가?’라는 의구심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의구심은 10년 만에 완전히 해소됐다고 한다. 삼성전자의 ‘애니콜 신화’는 기술의 신화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디자인의 신화였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의 선견지명 덕분에 멋지고 매력적인 삼성의 가전제품과 휴대전화기는 세계를 휩쓸고 있다. 기술의 시대를 넘어 감성과 이야기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꿰뚫어본 통찰력의 승리라 할 수 있다.
‘잘 만든다고 팔리지 않는다. 멋지게 만들어야 한다’라는 새로운 시장동인의 패러다임 시프트는 이제 기업의 전유물이 아니다. 정치도 이런 시장변화의 속성을 잘 활용해 대박을 터뜨린 바 있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후보의 당선은 어떤 의미에서든 이성보다는 감성으로 유권자를 파고든 결과라는 것이 중론이다(‘품질’의 문제는 임기 이후의 평가과제로 남겨졌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세상변화의 추세는 지방행정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의 지방행정은 아직도 ‘살기 좋은 ○도 만들기’ 정도의 캐치프레이즈 수준에 멈춰 있다. 예컨대 지방행정의 ‘고객’인 주민들은 도로ㆍ항만 도시계획 인프라의 조성에서부터 소프트 개발에 이르기까지 지방만의 독특한 멋과 매력을 담을 수 있는 행정적 마스터플랜이 하루빨리 마련되어 삶이 업그레이드되길 절실히 바라고 있다. 기존 행정서비스의 양대 축인 ‘공간 중심의 행정’ ‘사람 중심의 행정’이라는 패러다임은 이제 기본으로 남겨두고 ‘멋 중심의 행정’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추어 나아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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