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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주묘엄품(世住妙嚴品) ▣
1. 내가 이와 같이 들었다
경문 한때에 부처님께서 마갈타국 아란야 법 보리도량에서 계시사 비로소 정각을 보이시었다. 땅은 견고하여 금강으로 되었으며 가장 미묘한 보배수레와 온갖 보배꽃이 청정한 마니주로 장엄되어 모든 색들이 한량없이 나타났다. 또한 마니로써 깃대가 되어 항상 광명을 놓고 미묘한 소리를 내며 온갖 보배그물과 향기가 나는 꽃다발로 두루 드리워졌다. 이 땅의 모든 보배나무와 꽃은 부처님의 신력(神力)으로 말미암아 나타난 것이며 이 도량의 모든 장엄이 다 그림자처럼 나타났다.
2. 보리수의 장엄
보리수는 높고 훌륭해서 금강으로 몸을 이루었으며 유리로써 줄기가 되고 온갖 미묘한 보배로 가지가 되어 있었다. 또한 잎이 무성하여 드리운 것이 마치 구름과 같고 보배꽃의 갖가지 색들은 가지마다 마니로써 그 열매가 되어 안과 밖으로 빛이 났다. 보리수 주변네 광명을 놓아서 그 광명 속에서 보살들이 있어 구름과 같이 동시에 출현하였다.
3. 궁전의 장엄
여래께서 거처하시는 궁전과 누각은 넓고 장엄하고 화려해서 시방에 충만하여 가지각색의 마니로써 이루어졌다. 모든 장엄한 곳에 광명이 흘러나와 구름 같으며 한량없는 대중들이 그 곳에 모였는데 부처님의 광명과 불가사의한 소리를 내었다.
4. 사자좌의 장엄
사자좌는 높고 넓으며 미묘하고 훌륭해서 마니로 좌대가 되고 연꽃으로 그물이 되었으며 청정한 미묘한 보배로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마니광명은 서로서로 밝게 비추었다. 보배나무에서 미묘한 광명을 놓아서 찬란하게 광명을 비추니 여래의 위신력으로 여래의 광대한 경계를 설하시니 첫째는 부처님은 마음대로 항상 태어남을 보이시며, 둘째는 여래가 삼세에 행한 온갖 복덕의 바다는 다 청정하다. 셋째는 끝없는 색상과 원만한 광명이 온 법계에 두루하여 차별없이 평등하시고 일체 세계를 다 수용하시되 아무런 장애가 없으시다. 각각 한량없는 신통력을 나타내시어 일체 중생을 교화하고 조복하신다. 넷째는 또한 부처님의 세계에 미진수와 같은 신중신이 있으니 족행신(足行神), 도량신(道場神), 주성신(主城神), 주산신(主山神), 주림신(主林神), 주약신(主藥神), 주하신(主河神), 주해신(主海神), 주수신(主水神), 주화신(主火神), 주풍신(主風神), 주공신(主空神), 주방신(主方神), 주야신(主夜神), 주주신(主晝神)이라. 다섯째는 아수라왕, 가루라왕, 긴나라왕, 마후라가왕, 야차왕, 용왕, 구반다왕, 건달바왕, 월천자, 일천자, 삼십삼천왕, 수야마천왕, 도솔천왕, 희락천왕, 타화자재천왕, 대범천왕, 광음천왕, 변정천왕, 광과천왕, 대자재천왕 이러한 이들 이외의 무수한 헤아릴 수 없는 수로써 모두 부지런히 행하는 바가 평등하였다.
5. 사자빈신(獅子頻伸) 삼매에 들다
그 때 세존이 보살들의 생각을 아시고 큰 자비로 몸이 되고 큰 자비로 문이 되고 큰 자비로 머리가 되고 크게 자비한 법으로 방편을 삼아 허공에 가득히 사자빈신 삼매에 드시었다. 이 삼매에 드시니 일체 세간이 모두 깨끗하게 장엄하시고 그 때에 크게 장엄한 누각이 홀연히 넓어져서 끝닿은 데가 없었다. 금강으로 따이 되고 큰 보배로 위에 덮고 한량없는보배꽃과 마니보배들을 가운데 흩어서 곳곳에 가득하였다. 유리로 기둥이 되고 모든 보배로 합하여 된 대광마니로 장엄하고 그 위에 장엄하게 꾸몄으며 솟은 높은 누각과 높이 구름다리가 곁으로 뻗었으며 추녀와 추녀가 마주 닿았고 창문과 섬돌과 모든 것이 다 구비하였다.
해설 부처님은 대단히 크고 큰 위신력을 가지신 것이 분명합니다. 인생은 꿈이라고 말합니다. 부처님은 이 꿈을 깨어 버리신 분입니다. 부처님은 깨달은 분입니다. 깨달은 입장에서 일체 중생을 바라보았을 때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일체 중생이 깨닫지 못했으니 부처님의 자리에서 보면 참으로 불쌍하기 짝이 없을 것입니다.
또 부처님이 깨달은 후 중생을 바라보니 '그들도 나와 똑같은 자성과 소양과 깨달음의 근본자리가 너무도 완벽하게 같다' 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나는 저들을 위하여 큰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하여야 할 것이다' 라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사자빈신 삼매에 들어서 보니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가.' 부처님은 이렇게 생각하신 것입니다. 부처님이 깨달아서 본 세계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세계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본 세계는 끝이 안 보일 정도로 어마어마한 넓은 누각과 마루 그리고 대광명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마치 꿈에서 깨어난 사람은 단지 꿈만 깨어난 것이 아니라 완전히 형실로 바뀌듯이 깨달음의 세계는 바로 완전히 바뀐다는 사실입니다.
♧ 꿈
중국에 유명한 유학자 '주해암' 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의 말중에 "아직 꽃이 피어나기 전의 그 꽃의 자리는 근본의 자리요, 성품의 씨앗이다. 꽃이 피어난 자리는 마음을 드러낸 모습이다." 라고 말하고, 또 말하길, "어짊(仁)이라고 하는 것도 마음을 깨닫지 못하면 어짊을 얻을 수 없다" 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은 말을 보면 참으로 깨달은 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진정한 어짊을 얻는 것, 진정한 자비를 베푸는 것은 깨달음을 성취하는 그 자리에서 많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은 변덕이 심한 마음으로 자비를 좀 베풀다가도 심사가 뒤틀리면 그냥 비방을 해대곤 하는데 이것은 바로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 옛날 밀린다 완이 나가세나 존자에게 묻습니다.
"존자시여, 시간은 있는 것입니까?"
나가세나 존자는 답합니다.
"왕이시여,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밀린다 왕은 다시,
"존자시여,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고 또는 죽고, 또 태어나고 늙고 하는데 당신은 어떻게 해서 시간이 없다고 하십니까?"
여기에 맞는 비유로 저 조선시대에 잇었던 '조신' 이라는 스님의 얘길 하겠습니다. 이 스님이 나이 어린 사미로 있을 적에 강릉 목사의 부인과 그 고명딸이 낙산사로 수양을 왔습니다. 그들은 절에서 며칠 묵으면서 불공도 드리고 산책도 하면서 쉬다가 돌아갔습니다. 그 때 사미승인 조신은 이 외동딸의 자태에 마음을 빼앗겨그만 사랑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꿈에도 나타나고, 물을 떠올 때도 눈앞에 아른거리고, 기도를 할 적에도 앞에서 웃고 있고, 아무리 해도 이 아가씨의 영상(影像)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조신은 법당에서 관세음 보살님께 간절하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제발 제 앞에 아가씨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게 하소서. 관세음보살'. 그런데 어느날 나타나지 말라는 아가씨가 앞에 나타나서 사미승 조신의 옷소매를 잡아 끄는 것입니다. 그 길로 둘은 손을 잡고 먼 곳으로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아름다운 사랑을 꽃 피우고 오순도순 살았습니다. 세월이 지나니 애들이 태어나고 애들에게 무얼 입히고 먹일까만 생각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세월이 유수와 같이 흘렀습니다. 아이들이 점점 커가자 결혼을 시키려니 조신이 본래 근본이 내세울 바 없는지라 마음에 큰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둘은 이제 늙어 얼굴은 쭈글쭈글해지고 삶이 고단 하기도 하여 도저히 사랑은 사치스러워졌습니다.
부인이 "여보, 우리 그러지 말고 저 낙산사에 와서 기웃기웃 하는데 그 때 큰 범종 소리가 울립니다.
깜짝 놀래어 눈을 뜨니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종 한 번 치는 시간이었습니다. 꿈이더라. 이것입니다. 조신 스님은 깜빡 졸았던 것이었습니다. 그 졸았던 잠깐 동안, 일생을 살아본 조신 스님은 그 후 수행을 잘 하여서 큰스님이 되었다고 합니다.
나가세나 존자가 "대왕이시여, 죽은 사람에게는 시간이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해탈한 사람에게는 시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 시간은 없다 하고 해탈한 자에겐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아주 오래 전에 미국에서 심리학자들이 이 시간 개념에 대해 실험을 해본 적이 있는데 그 실험 방법은 죄수들을 각각 독방에 넣고, 방에 전깃불만 마음대로 쓰고 끄게 하고, 그 외의 창문도 막고 용변도 그 속에서 해결하게 하고, 또 일어나 있으면 밥을 주고, 자고 있으면 밥을 주지 않는 이 같은 실험을 한 석달간을 하고 나서 각각에게 물었습니다.
어떤 죄수는 "글세 한 일주일 정도 지났나요?" 또는 한 "일 년지난 것 같네요." 이와 같이 그 대답이 각자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전에 삼풍백화점이 폭싹 주저앉았을 때에 살아나온 한 젊은이도 시간은 감각이도, 우리가 느끼는 저 해가 지고 뜨고 함에 미혹되어 있는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해가 뜨고 지고 하는 숫자에 따라서 시간이 있다고 하고 없다고 할 뿐이지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입니다. 시간은 과거에도 없었고, 현재도 없으며, 미래에도 시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깨달은 사람에게는 시간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달음은 이처럼 중요한 것입니다. 이 깨달은 사람에겐 무량 겁의 업장도 그 자리에서 싹 없어져 버리고 맙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깨달음을 얻는 것은 이처럼 삶을 바꿔 놓습니다. 이미 해탈한 사람에게 더 이상의 증오는 없고, 더 이상의 구함도 없으며, 더 이상의 너와 내가 없어집니다. 이런 사람에겐 모든 환경이 그 사람의 창조적 환경으로 바뀌며, 이런 사람에겐 고요한 적묵한 향기만이 납니다. 나는 어떤 향기를 내는 사람일까? 향기라는 것은 그윽한 것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마음가짐이냐에 따라 향기가 다를 것입니다. 부처님의 진리의 말씀에 따라 나를 변화시키고 나를 성숙시키고 나를 자숙시켜서 나의 고유의 향기를 만들어 가는 그런 불교인의 자리가 참으로 아쉬운 때입니다.
6. 보살들이 얻은 보배
경문 해월광대명 보살 마하살은 보살의 모든 지위와 모든 바라밀을 내어서 중생을 교화하고 온갖 부처님의 국토를 깨끗이 장엄하는 해탈 문을 얻었으며, 운음해광이구장(雲音海光離垢藏)보살 마하살은 생각생각에 법계의 갖가지 차별한 곳에 널리 들어가는 해탈문을 얻었고, 공덕자재왕정광(功德自在王淨光)보살 마하살은 시방 모든 보살이 처음으로 보리도량에 나아갈 때 장엄하여 널리 보는 해탈문을 얻었고, 선용맹연화계(善勇猛蓮華界)보살 마하살은 여래의 지혜를 성취하여 한량없는 겁 동안 길이 머무는 해탈문을 얻었고, 향염광당(香焰光幢)보살 마하살은 현재의 모든 부처님이 처음 닦는 보살행과 지혜의 무더기를 성취함을 보였고, 덕이 깊고 깊은 한량없는 많은 부처님이 비로자나 부처님의 큰 서원 바다에 들어 해탈하는 문을 얻게 함이니라.
나는 시방을 남김없이 다 보며 나 또한 모든 부처님의 신통력을 나타내어 도량에 앉아 정각을 이루엇고 보살대중이 법을 듣기 위하여 둘러 앉아 있음을 보았노라.
광대한 비로자나 법신에서 광명이 나고 능히 자비방편으로 세간에 나투어 널리 중생의 마음에 즐김에 따라 근기에 맞추어서 법비를 내리느니라.
진여는 평등하여 형상 없는 몸이 이 때(垢) 없는 광명 청정한 법신이라. 지혜는 고요하고 몸은 무량하니라. 나는 널리 시방에 법을 연설함이로다. 시방의 경계 다함도 없고 같음도 없으며 끝도 없고 모두 각각 다르리니 나는 걸림없는 힘으로 광명을 놓아 모든 국토 밝게 비춤이라.
7. 구름을 일으키다
혜자재신통왕 보살마하살과 뇌음보진(雷音普震)보살 마하살과 부사의공덕보지인(不思議功德寶智印)보살 마하살과 선용맹광명당(善勇猛光明幢)보살 마하살 들이 있었다. 이러한 상수 보살들이 세계 티끌 같은 수의 이들과 동시에 출현하였다. 모든 보살들이 제각기 가지가지의 구름을 일으키니 온갖 마니보배 꽃구름과 향기구름과 온갖 보배가 원만한 광명구름과 끝없는 경계의 향기로운 꽃구름과 광명구름과 등불광명구름과 온갖 나뭇가지의 꽃열매구름과 다함없는 보배의 청정한 광명 마니보배 구름과 장엄구의 마니왕 구름이니라.
8. 부처님 자리를 찬탄
비로자나 부처님이 상호 갖추사 연꽃 사잦ㅘ에 앉으시고 모든 대중 청정하여져 고요함과 머무름 없어라. 갖가지 변화하여 시방에 가득하고 여래의 장광설 화현으로 연설하니 모든 보살 그 속에 있음이라. 이러한 자리에 부처님 앉으셨네.
경해 뇌음 보살은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어 이 세상의 무량한 소리의세계를 말함이라. 뿐만 아니라 뇌음 보살은 소리 진동함이 천지를 나눌 수 있을 만큼의 널리 진동하고 진동한 소리마다 다 공덕이 있게 하니라 하였다. 부사의공덕보지인(不思議功德寶智印)보살은 그 공덕이 사량으로 분별할 수가 없고 많은 공덕이 있으니 그것은 모두가 다 보배스런 지혜의 공덕이라고 하였다.
하늘세계[天]는 자재하는 힘이 있는 연고이니 첨[天]은 자재[自在]의 뜻이며 광명의 뜻이며 청정의 뜻이다. 지론(智論)에 이르되, 천(天)이 삼종이 있으니 제1은 인천(人天)이니 제왕을 이름이요, 제2는 생천(生天)이니 욕색천(欲色天)등을 이름하니라. 제3은 정천(淨天)이니 불보살의 제 일의천(一義天)을 이름이라. 모든 하늘나라 사람들의 수명의 길고 짧음과 몸의 크고 작음과 옷의 가볍고 무거움과 궁전의 좋고 나쁨은 구사론 제11과 유가등론(瑜伽等論)에 밝히었다. 삼십삼천(三十三天)이란 불지론(佛智論)에 수미산을 가운데 두고 사면으로 각각 팔대천왕(八大天王)이 있거늘 그 가운데 있는 천왕이 제석천왕(帝釋天王)이다.
고로 삼십삼천왕이 있나니, 또 능가대운소(楞伽大雲疎)에 제석의 이름이 108이 있으되 그 가운데 둘을 해석하면, 첫째 인타라(因陀羅)이니 인타라란 존중(尊重)이라는 뜻이다. 33천이 한가지로 존중함이니라. 둘째는 석가(釋迦)이니 중국 말로는 용맹(勇猛)이라. 존중과 위덕과 용맹은 제천(諸天)보다 수승한 연고라 하였다. 셋째는 불란타(不蘭陀)이니 불란타란 항복이라 한다. 마군중(魔軍衆: 마는 귀신이라 함이니 마음이 조용하지 못함이요, 항상 남을 엿듣고 엿보는 것을 즐겨하여 눈은 찢어지고 시기하는 마음이 그치질 않음이라 하다.)을 항복받는다 한 것은 마군은 33천의 마군들이다. 또 구사론(俱舍論)에 이르기를, '마군은 오직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니라'하다. 아수라(阿修羅: 아수라란 싸움을 좋아하는 연고로 항상 남을 헐뜯고 꾸짖으며 욕하고 때리고 남을 괴롭게 하는 것이다. 항상 남을 생각하지 않음이요, 그래서 그들은 작은 고깃덩어리를 놓고도 서로 살점을 뜯는 중생이라 한다)를 한복 받은 것이다.
9. 부처님의 열 가지 힘
경문 지난 옛적 천정한 인욕을 닦아 신해(信解)가 진실하여 신색(身色)과 상호(相好)가 원만하고 광명 놓아 시방을 비추노라. 옛적 끝없는 큰 겁 동안 청정한 계(戒)바라밀을 닦아서 청정한 몸을 얻어 시방에 가득하게 세간의 고통은 이미 없도다. 나는 일체 중생의 모든 번뇌와 미혹과 습기(習氣)를 세간에 와서 방편으로 소멸하니라.
경해 부처님은 지난 세상에 세간에 오시어 인욕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 인욕은 닦으니 색신인 이 몸이 상호가 원만하고 금색이 나며, 뿐만 아니라 몸에서 광명이 나며 광명을 놓으신다고 합니다. 우리들도 사람들이 사람에서 빛이 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빛이 나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일까를 생각하니 그 사람은 깨끗하여 믿음으로 부더러운 말씨를 쓰고 항상 남을 존중하는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불평을 늘어 놓고 남을 헐뜯는 사람은 몸에서 광명이 나질 않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인욕을 하셨다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그리고 청정한 계를 지키고 수행을 한 공덕은 바로 습기(習氣)를 제거하고 일체 세간의 번뇌를 소멸시킨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 향기로운 사람 향기로는 세계
모든 부처님의 경계는 중생으로서는 가히 헤아릴 수 없습니다. 큰 그릇은 큰 그릇만큼 물을 담고, 작은 그릇은 작은 그릇만큼 물을 담습니다. 작은 그릇이 아무리 '나는 큰 그릇이요'하며 많은 물을 담으려고 해도 자기의 그릇만큼밖에는 담아내지 못합니다. 이것이 바로 중생과 부처님의 차이입니다. 소인이 대인의 경계를 어찌 알겠습니까?
부처님의 세계는 항상 여여히 있건만 중생들은 그 곳을 모르고 방황하기만 합니다. 부처님은 마치 땅과 같아서 삼라만상을 다 살려냅니다. 부처님은 그러므로 우리들의 복밭입니다. 따에 복의 씨앗을 뿌리면, 거두는 것은 복의 열매입니다. 마음으로만이 갈 수 있는 부처님의 세계, 부처님의 법을 우리가 알 수만 있다면, 우리에게는 어떠한 장애도 없습니다. 여기 열쇠가 있습니다. 많은 열쇠가 있는데 부처님 세계에 도달할 수 있는 문의 열쇠는 단 한 개만이 필요합니다. 이 단 한 개의 열쇠만이 바로 내 앞길을 열어주어 시공을 초월한 부한한 삶을 살게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외도에 따라다니면 어떻게 될까요. 깡패 따라 다니면 깡패되고, 도둑 따라다니면 도둑 되고, 사기꾼 따라 다니면 사기꾼 됩니다. 그러나 공부하는 사람 따라 다니면 공부를 해서 자신의 삶을 풍족하게 해 줄 것입니다. 향 만진 손은 향내가 나고, 생선 만진 손은 비린내가 나듯, 선한사람, 향기로운 사람, 괜찮은 사람, 위대한 사람은 그들의 삶에서 향기가 납니다. 때때로 경악을 금치 못하는 사고가 일어나는 이유는 사람들이 잘못된 편견이나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악인도 선인도 본래는 없습니다.
먼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사람에겐 미래가 열려오지 않습니다. 반드시 미래는 준비하는 사람에게만 열려옵니다. 그러므로 늘 준비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기도하고, 참선하고, 염불하고, 공덕 짓고, 참회하고 이와 같이 항상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기도의 성취는 이러한 행동이 무르익을 때 그 모습을 나타내 보입니다. 살아가는 것을 늘 연습처럼 우리는 삽니다. 하지만 연습이 거듭됨에 따라 실상의 삶이 오는 날도 있을 것입니다. 나를 담아내는 그릇이 큰 그릇이 될 그날을 위해 겸허한 자세로 나를 키워 나아가야 되지 않을까요.
우리의 마음을 개발하는 것은 끊임없이 샘솟는 샘물과 같은 것입니다. 퍼내도 퍼내도 샘솟는 저 샘물, 우리 마음도 쓰면 쓸수록 그 마음그릇이 커집니다. 한량없이 큰 마음, 나누어 주고 또 나누어 주어도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마음, 사랑. 자비. 존중, 이러한 것들을 누구를 막론하고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부처님 사상은 저 하늘에 있고 저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바른 삶을 실천하는 그 곳에 화엄의 바다는 관대히 열려 우리에게 진리를 안겨 줍니다. 자비의 관세음 보살도 좋지만 열 가지 원을 가지시고 행의 실천자인 보현보살도 있습니다.
첫댓글 한량없는 큰마음의 그릇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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