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영양은 온통 산(산림이 86%)이다. 이렇듯 무수한 산 가운데 우리 민족의 영산이 백두산이라면 영남의 영산은 일월산(해발 1천219m)이다.
사람들은 일월산에 신령스러운 일월(日月)신이 살고 있으며, 이로부터 정기를 받고 영험을 얻는다고 믿는다. 그래서 즐겨 찾는다.
경북의 최고봉인 일월산은 동해가 한눈에 들어오고 해와 달이 솟는 것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다 해서 이름 지어졌다.
산정에는 2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주봉은 일자봉(日字峰 1천219m)이며, 그 서쪽에는 월자봉(月字峰 1천205m)이 솟아 있다. 태백산맥의 중앙부에 솟아 있으며, 주위에 흥림산(興霖山 767m), 청량산(淸凉山 870m), 통고산(通古山 1천67m) 등이 있다.
기반암은 편마암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산세는 북서방향에서 남동방향으로 놓여 있고 동북·남서 사면은 비교적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낙동강의 지류인 반변천의 소지류들이 일월산의 동북부와 남쪽 사면에서 깊은 하곡을 형성하면서 남류한다.
토양은 갈색삼림토·적갈색삼림토이며 떨기나무 등과 희귀한 약초 등이 자란다. 고산자 김정호는 조선 철종 12년(1861년)에 작성한 대동여지도에서 일월산을 찬양했다. 그는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동쪽은 영동, 서쪽은 영서, 남쪽을 영남이라 일컬었고, 이 세 곳의 정기를 모은 곳이 바로 일월산이라 했다.
△백두대간의 중심부 일월산 일월산은 세인들의 접근을 쉬 허락하지 않는다. 그만큼 여정이 험난하기 때문이다.
안동에서 31번 국도를 따라 영양으로 들어와 다시 강원도 태백(봉화) 방면으로 북상해 올라가면 된다. 그러나 길은 좁은 데다 구불구불해 초보 운전자들에겐 조금 난해한 코스다. 하지만 일단 일월산을 향하면 때 묻지 않은 산야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한폭의 동양화를 보는것 같아 연방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안동에서 1시간 이상 달려오면 일월산이 둥글둥글 큰 덩치의 모습으로 눈앞에 다가온다. 일월산의 산행코스는 다양하면서도 쉽다.
등산로 대부분은 가파르지 않다. 어떤 코스도 남녀노소가 함께 즐길 수 있다. 오르락내리락하며 기름진 흙길로 이어져 있다. 이 중 일월면 용화리 대티골에서 정상부의 일자봉(1천219m)과 월자봉(1천205m)으로 오르는 2개 코스가 가장 인기다.
이를 번갈아 오르내리면 4시간 남짓 걸린다. 등산로변은 봄이면 정상까지 이름 모를 수많은 야생화가 널려 아름다운 자태와 향기를 자랑한다.
여름에는 잘 보존된 원시림이 하늘을 가려 긴 터널을 이루고 차디찬 계곡물은 등산객들의 더위와 피로를 씻겨 준다. 가을이면 울긋불긋 각양각색의 옷을 입은 나무들이 장관을 이룬다. 겨울에는 하얀 눈꽃들의 향연이 펼쳐져 동화 속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정상에 서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태백산맥 줄기의 수없이 많은 작은 산들이 구름바다를 이루며 저마다 두둥실 떠다닌다. 그 너머로 멀리 동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섶은 야생화 군락인데다 처녀지 같아 밟기조차 미안할 정도다.
여느 산이던 마찬가지겠지만 정상에 올라서서 산 아래를 내려다보는 감흥은 천하를 다 얻은 느낌이지만 일월산 정상에서 내려다 보면 산마루에 걸린 흰 구름이 신령함을 더해 묘한 느낌을 들게 한다.
△무속신앙의 명소 일월산은 무속 신앙의 명소다. 무속인들은 접신을 위해, 일반인들은 영험을 얻기 위해 사시사철 찾는다.
월자봉 남서릉에 있는 황씨부인당은 영험의 상징이다. 옛날에 첫날밤을 치르기 전에 소박맞은 황씨 부인의 영혼을 모신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영양군지에는 “황씨 부인의 신랑은 신혼 첫날밤 뒷간에서 볼일을 보고 신방 앞에 서자 문 창호지에 칼날 그림자가 얼씬거리자 연적의 소행이라 오해하고 놀라 달아났다.
칼날 그림자는 사실 문 앞에 있던 대나무 그림자였다. 황씨는 그것도 모르고 신랑을 기다리다 지쳐 한을 품고 죽었다.”고 전한다.
일월산의 음기와 영기가 가장 강하다는 일월 용화리 선녀골의 선녀탕(기도객들이 목욕 재계하는 곳)은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내고, 계곡과 잇닿은 곳에 수많은 넙적돌로 쌓아 만든 굿당과 기도처가 즐비하다. 계곡은 온통 무속의 기운뿐이다. 이 때문인지 일월산은 전국의 다른 명산과는 달리 천년 고찰이 없다.
이곳 주민들은 “예부터 일월산의 주신은 황씨 부인이어서 부처님을 모시지 못한다는 속설이 전해지고 있다. 비록 암자 크기인 천문사 등의 절이 있지만 불상을 모시지 않는 사찰이다.”라고 귀띔한다.
△인재배출의 명당 태백산줄기 낙동정맥의 마지막 백두대간의 정기가 온축된 민족의 영산 일월산은 명당으로 소문났다. 수많은 인재가 배출된 곳이기 때문이다.
특히 일자봉 아래에 자리한 한양 조씨의 집성촌 ‘주실마을’은 ‘승무’로 유명한 시인 조지훈을 비롯해 문인과 박사만 28명, 장성 10여명 등 숱한 인재를 배출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시(詩) 전문지 ‘시원(詩苑)’을 창간한 항일시인 일도 오희병도 일월산 자락 감천마을에서 태어났다.
일월산 골짝 중 가장 골이 깊고 넓은 일월면 오리동은 1970년대 한국 구세군사의 전환점을 마련한 제14대 구세군 한국사령관 김해득 부장이 태어난 곳이다.
일월산의 물줄기가 면면히 이어지는 석보면 원리리 두들마을은 작가 이문열의 고향이다. 그는 2001년 이곳에 광산문학연구소를 열어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의 어머니 상으로 떠오른 조선 중기 여성 군자 장계향 선생도 (음식 디미방 저자(최초의 한글 요리책))일월산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다.
첫댓글 일월산이 명산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당신의 글을 보고 새로운 것을 알았네 일월산 정기를 받아 수 많은 인재가 태어 났다는 것도 잘알았네 수비면 출신인 당신도 인물은 출중하잖아 히 히.............부르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