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2월 25일
제목:병고침의 순서
성경본문: 막 2 : 1 - 12 찬송: 528장 205장
서론) 예수께서 병을 고쳐주실 때 병 자체만 고쳐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문제 가운데 제일 근본 요소가 되는 죄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 주신다. 이것이 예수의 병고쳐 주심의 원뜻이요, 희망인 것이다. 예수께 병고침 받은것만 가지고 기뻐하기 보다 병고침 받는 그 속에서 나의 죄 까지 사함 받음을 더욱 원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않는 생활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1.믿음과 죄사함
예수께서 사람을 보실 때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신다. 사람의 중심은 믿음이다 믿음이 있는가 없는가 믿음이 흔들리는가 견고한가 믿음이 없는자는 사람으로서 중심이 없는 자이다 바닷물에 요동하는 배와같다 예수께서 중풍병자의 믿음을 보시고 죄를 사해 주셨다 사람이 볼때는 눈에보이는 중풍병자의 불편한 몸을먼저 해결해 주셨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데 예수께서는 사람속에 있는 보이지 않는 죄를 사해 주셨다 죄가 사해졌는지 안 사해 졌는지 알 수 없는 부분을 먼저 언급하고 계신데 믿음이 없는 자들은 예수의 죄사함의 선언을 빈정거리며 우습게 여길수 있다. 죄 사함은 보이는 일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믿음은 보이지않는 일을 보는 것 같이 받아들이고 영접하는 행위이다 그러기에 예수의 죄사함의 선언을 통해 내 속에 있는 죄가 떠나가는 것을 보는것같이 받아들여 죄와 상관없는 자가 되는 것이다.
2.너희로 알게하노라
예수께서는 병든자를 고쳐 주시기만 하면 병든자에게는 더 이상 바랄것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예수께서 병든자에게 병을 먼저 고쳐주시지 않고 죄를 사해주셨는가 그것은 예수께서 세상에서 사람들의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해서라 했습니다 이 말씀을 다시 생각하면 사람들은 악하기 때문에 죄만 사해 주시면 믿지않고 받아 들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병을 고쳐주시고 죄를 사해 주셨다하는 말씀을 받아 들이게 합니다 예수께서는 이적을 행하시고 병든자를 고쳐주시고 하는일은 부수적인 일이지만 이 일을 통해 핵심적인 근본적인 죄를 사해 주시는 일을 이루시고자 하십니다
3.말씀으로 고쳐주셨다
예수께서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말씀하신데로 중풍병자가 일어나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앞에서 나아갔다 했습니다 중풍병자의 행동 하나 하나가 다 예수의 말씀대로 움직여 졌다. 모든 사람들은 예수께서 중풍병자를 향해 네 죄사함을 받았다고 했을 때 반신반의 했을 것이다 말씀으로 죄 사해주신 예수께서 말씀으로 중풍병자를 고쳐 주셨을땐 중풍병자의 나은모습을 보고 중풍병자의 죄도 사해진 것을 믿게되고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진 것에 대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는 모든사람의 죄를 사 해주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결론)믿음을 보시는 예수여 당신의 눈에 발견되는 믿음이 되기를 원합니다
알려주시는 예수여 당신은 죄사해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말씀하시는 예수여 당신의 말씀은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 지나이다
제목: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 2000년 2월 27일
성경본문: 막 2:13-17 찬송: 144장 276장
서론)예수께서 세상에 와서 사람들을 부르시는데 바닷가에서도 부르시고 세관에서도 부르시고 어디서든지 부르신다. 그런데 그 부르심은 죄인이라는 한계속에 있는자를 부르신다
1.예수의 가르치심과 부르심
예수님의 가르침은 천국복음이다. 세상의 지식이나 철학을 가르침이 아니다. 하늘의 권세있는 새교훈을 가르치셨다. 바닷가나 산 위에서나 바위에서나 마을에서나 회당에서나 잔치집에서나 장소를 가리지 않고 천국복음을 전파하셨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예수께서 나를 좇으라고 부르신다. 예수는 세상에 있는 모든사람을 향해 담대하게 나를 좇으라고, 나를 본받으라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말씀하셨는데 그와 같이 예수는 길과 진리와 생명이기에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세상사람들이 가고 있는길에 대한 도전이요 회개와 돌이킴의 촉구입니다. 내 길은 죽음의 길이니 예수의길 생명의 길로 들어서라는 권고요 명령인 것입니다.
2.서기관의 질문
율법의 사람은 율법을 가지고 이야기 한다. 바리새인들은 복음이신 예수를 율법으로 문제를 삼고 시비를 건다. 율법에 죄를 가까이 할 수 없도록 가르치고 있는데 그것은 죄가 전염될 까 봐 차단하기 위한 뜻이었는데 죄를 미워하기보다 죄를 지은사람을 미워하여 율법의 본뜻이 흐려지게 되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또 함께 식사하는 것을 보고 문제를 삼는다. 죄에 가까이하지 않아 죄에 감염되지 않겠다는 뜻이 있다면 좋은 일이나 죄라는 문제로 인해 죄인된 사람을 멀리하는 행위는 소극적인 행동이다. 죄인을 멀리하기보다 죄인의 문제속에 들어가 죄를 해결해주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죄를 방어 하기위한 방어를 하다 사람을 미워하는 죄를 짓는 자기모순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근본 취지인 본 뜻을 오해하니까 결국 자기 모순을 드러내는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이다.
3.예수의 답변
예수의 답변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데있다고 했다. 이 이야기는 바리새인과 같이 건강하다고 하는 자들에게는 의원되신 예수가 필요없지만 병 들었다고 하는 세리와 죄인들에게는 의원되신 예수가 필요함을 빗대어서 비유로 말씀하셨다. 바리새인들에게 예수께서 말씀하심은 너희 건강한 자들이라 하는 자들아 건강한 자들과 놀아라 나는 이 병든 자들의 병을 치료해주고 담당하리라 죄인들의 죄를 씻어주리라 죄인을 부르러 왔기에 죄인이라 하는 자들은 내가 친구가 되어 그들의 문제를 치료해 주고 해결해 주리라.
결론) 오 주여 나를 가르치시고 부르소서. 당신의 길은 생명과 진리의 길임을 깨 달았습니다. 오 주여 죄인을 사랑하고 죄를 미워하게 하옵소서 더러운 자 를 피하기 보다 씻어주는 용기를 갖게 하소서
제목:금식과 혼인집 2000년 2월 28일
성경본문)막 2:18-22 찬송: 469장 162장
서론)어떤 일의 동기가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라면 형식 의식이 되기 쉽다. 본래적인 동기와 뜻이 그대로 살아있어야 아름답고 귀하고 좋은 것이 된다. 시기, 때도 중요하다. 장례식 집을 잔치집 분위기로 만들면 별 의미가 없다. 잔치 집을 장례식 집으로 만들면 더 더욱 어색하다.
1.금식문제
금식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경건한 삶이다. 나의 문제의 심각성을 가지고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결심을 갖고 하나님앞에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기도이다. 그런데 이러한 금식이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되고 금식을 하느니 안하느니 하며 사람들에게 판단받는 금식이 된다면 본질에서 떠난 이야기가 된다. 금식은 은밀하신 하나님과 은밀히 이루어지는 무언의 기도요 사랑의 고백이다. “나는 당신의 도움이 없으면 이렇게 죽어가고 있습니다. 당신의 사랑의 손길, 도움이 필요하오니 당신의 눈 길 한 번 만이라도 주옵소서.“하는 사모함의 표현이다.
2.혼인집 이야기
혼인집에서 왜 금식문제가 대두되냐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금식할때에는 금식하지만 지금은 그러한 때가 아님을 말씀하신다. 지금 신랑예수와 함께 있으므로 예수의 제자들에게는 기쁘고 즐겁고 행복해 하는데 왠 금식이냐고 왜 찬물 끼얹느냐고 반문하신다 금식은 신랑예수 빼앗기고 잃어버렸을 때 신부된 자들이 금식하고 슬퍼하는 것이지 지금 신랑이 같이 있는데 무슨 문제가 있는가?
금식을 해야지 잔치를 해야지 하는 행동이 있기 전에 크리스찬은 하나님의 때를 아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 지금이 울 때인지 웃을 때인지 알지 못하고 행동하면 어리석은 자이다. 내 마음가운데 예수가 있으면 기뻐하시고 예수를 잃어버렸으면 슬퍼하시기를 바랍니다.
3.조화를 이룬 합침
합치는 것이 좋다하여 무조건 합치면 문제가 생긴다. 조화가 이루어지는 합침이 이루어져야 한다. 낡은 옷에다 새 옷감으로 땜질하면 조화로운 합침이 아니라 어쩐지 어색하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조화를 이루듯 예수의 복음(포도주)을 잔치집의 형식(부대)에 담아야 한다.
율법은 금식의 부대에 담아야 조화를 이룰 수 있다. 그런데 예수의 복음을 금식의 부대에 담고 율법을 잔치집의 부대에 넣으려하면 부조화로 문제가 발생한다. 지금은 예수의 복음이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이기에 율법주의에 빠진 신앙생활을 하면 오래갈 수 없다. 예수의 복음을 가지고 혼인집 삶을 이루는 항상 기뻐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시기 바랍니다.
결론) 금식은 은밀하게 하나님과 교통하게 하시고
잔치는 떠들석하게 복음의 나팔 불게 하시고
신앙생활은 조화를 이루는 지혜로운 신부같이 하게 하옵소서.
2000년 2월 29일
제 목: 안식일에 주인
성경말씀: 막2:23-28 찬송: 57장 221장
서론) 안식은 하나님의 환경이다. 하나님의 안식을 깨뜨린자는 반역자 사단이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반역자 사단 때문이다. 사단을 심판하기 위해 하나님의 일이 시작됐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까지 동원이 되어 세상에 보내심은 마귀의 일을 멸하시기 위함입니다. 마귀의 일을 멸하신 후에 하나님은 안식을 되 찾을 것이고 안식을 하나님의 자녀들과 누리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보내신자 예수도 안식일에 주인으로 세상에 왔다.
1.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했다고 시비 (바리새인의 질문)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6일동안 창조하시고 제 칠일에 안식하신 날이다. 하나님께서 천지창조하심은 하나님의 안식을 깨뜨린 마귀를 심판하기 위한 일이었다. 이 일을 다 마치고 원래의 하나님의 환경인 안식에 거하셨다 하나님은 그토록 안식의 환경을 원하시기에 천지창조를 다 하시고 쉬셨다. 하나님께서도 쉬신 날, 복주신 날, 거룩한 날이기에 안식일에 관한 관심은 하나님께서 더하셨다. 그래서 십계명을 주실 때에도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하셨다.
그러므로 안식일 지킴은 생명같이 지킬 것이어야 하는데 안식일을 깨뜨림은 마귀적이요 하나님의 심판과 버림을 받는다. 예수의 제자들도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버림받고 심판받는 것이 마땅하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이 문제를 들고 나온다. 안식일 지킴에 대해 예수의 생각과 바리새인들의 생각이 달랐다 바라새인들은 안식일에 노동하지 않고 일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참된 안식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안식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함께함이 안식의 시간이요 안식의 삶이다.
2.다윗이 시장 할 때에 한 일 설명 (예수의 설명)
다윗이 피난중에 젊은 군인들과 도망하다 배고파서 성전에 가 대제사장에게 요청을 해서 성전안에 진설병을 얻어 먹은 일이 있다. 성전안에서 진설병은 항상 성전안에 차려놓은 떡이다. 그래서 이것은 제사장의 가족들이 먹는데 아무때나 먹는 것이 아니라 진설해 놓은지 시간이 지나면 거두어내는데 그때 거둔 것을 제사장과 그 가족들이 먹을 수 있었다 대제사장이 다윗과 그의 젊은 군인 성결한 자에게 떡을 주었다.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가르쳐 준다. 예수 자신은 대제사장이 되어 제자들이 밀 이삭을 먹음에 대하여 율법에 접촉되지 않음을 설명하고 있다.
3.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예수의 해답)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주신 것은 안식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하나님께서도 안식일에 거하셔서 쉬셨는데 그날을 복을 주고 거룩하게 하셨다.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안식일에 안식지킴으로 하나님의 복과 거룩을 받게 하기 위함이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안식이 주인이 아니라 인자가 안식일에 주인이라 말씀하시므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음을 확인시켜 주셨다. 안식일에 대제사장 예수 안에서 일하고 먹어도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다. 늘 예수 안에서 성결한 자 됨이 중요하다.
결론)안식일에 안식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 예수와 함께하는자 되기를 원합니다.
대제사장 예수가 주는 떡과 잔을 안식일에도 먹고 마시게 하옵소서
인자가 안식일에 주인이 되시니 주인되신 예수를 안식일에도 따를 수 있는 제자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