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입장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최고의 테크니션 감독이라 항상 작품을 만들 때마다 전작 이상의 것을 만들어내야 하니 어려울 수밖에. 그저 그런 영화를 만들었다가 평론에서 박살나기 십상이고, 또 평작을 내는 것은 자신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으니 작품 만들 때마다 아마 죽을 맛이지 싶다. 최근에 배창호 감독이 <흑수선>을 내어놓고 옛날 그의 영화와 다른게 하나도 없다고 뭇매를 맞은 것처럼 말이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잘 만들어진 영화이다. 어쩌면 그의 순진한 낙관론이 뒷받침되는 밝고 즐거운 영화에서 다소 벗어나서 약간이나마 <블레이드 러너>식의 디스토피아의 세계 쪽으로 옮겨갔다는 점에서도 제법 유쾌한 변신이라고 할 수 있다.
SF영화가 가지는 중요한 의미와 의무가 뭘까? 그것은 상상 속의 미래 사회를 그리면서 역설적으로 인류의 현실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것, 바로 그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스필버그는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존 앤더튼(톰 크루즈)는 수년 전 아들이 유괴돼 살해되는 아픔을 겪은 후 경찰에 들어와 능력을 인정받아 워싱턴 D.C. 프리크라임팀의 반장으로 활약중이다. 프리크라임이란 세 명의 초능력을 가진 예지자의 도움으로 살인사건을 미리 예견하고 살인이 일어나기 직전 그 범인을 체포하여 살인을 막는 첨단 치안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으로 워싱턴 D.C.의 살인사건 발생률은 거의 제로로 떨어졌으며 이제 프리크라임은 미 전역으로 확대 실시될 순간에 있다. 바로 그때, 예지자들은 다음 사건의 살인 용의자로 존 앤더튼을 지목하고 그는 이제 자신의 부하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만다. 쫓기면서 자기는 절대로 살인할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자신이 저지르게 되는 그 살인의 현장으로 달려가지만 그곳에서 수년 전 자기의 아들을 유괴해 죽인 범인을 만나게 되고 그를 죽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 그를 죽이면 시스템의 예언대로 되는 것이고, 죽이지 않으면 시스템이 반드시 옳은 예언을 한다는 체제는 무너져 시스템 기능 불능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과연 지금까지 살인 직전에 체포되었던 사람들은 반드시 예언대로 다 살인을 저질렀을까? 그런 갈등 속에 또 다른 문제가 있으니 그것은 상관이었던 버지스(막스 폰 시도우)의 흉계가 주위에 깔려있었다는 점이었다.
필립 K 딕의 소설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최첨단 하이테크놀리지 미래사회를 제시하는 형식 속에 그 내용은 비교적 고전적인 줄거리로 진행된다. 체제와 개인, 국가 이데올로기와 개인의 자유의지 사이에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라는 늘 들어왔던 진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아마 조지 오웰의 <1984>의 SF판 오마쥬 랄까? 조지 오웰처럼 필립 K. 딕의 철학적 사유의 특징은, 인간은 체제가 만들어놓은 그물망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다소 극단적인 비관주의에 있다. 그는 전작소설들인 <블레이드 러너>, <토탈 리콜>에서 보듯이 미래사회의 현실을 그리 낙관적으로 보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 딕의 소설에서 앤더튼은 예언된 살인을 피해 프리크라임 시스템을 붕괴시키기보다 예언대로 살인을 행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체제를 유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다. 인간은 점점 더, 체제가 짜놓은 각본에 따라 조종되는 꼭두각시처럼 얽혀 매여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보면 무서운 일이다.
하지만 스필버그는 딕의 이념적 내용을 그대로 베끼지는 않았다. 그는 체제에 매여 꼼짝 못하는 모습보다, 오히려 개인의 선택 문제에 보다 무게를 두는 쪽으로 이야기의 방향을 바꿨다. 국가주의 혹은 전체주의가 초래할 인류의 암울한 미래는 전체적으로 거두어 내고 주인공 앤더튼의 실존적 선택을 갈등 구조를 핵심으로 다루고 있다. 관객들은 주인공 앤더튼이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 그러니까 과연 예언대로 살인을 저지를 것인가 혹은 자기 의지대로 체제를 부수더라도 살인하지 않을 것인가에 온통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관객들은 스필버그가 <'E.T'> <쥬라기공원> <'A.I'> <칼라 퍼플> 등에서 반복해서 보여주는 그의 가족주의를 통해 우리는 영화 속의 앤더튼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쉽게 짐작해낸다. 스필버그는 결코 비극적 결말로 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그간의 경험에서 아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필립 K. 딕의 원작 단편소설이 싸늘하고 명철하게 제기했던 생존본능과 명분, 자유와 치안, 프리크라임의 패러독스를 제대로 파고들 야심이 없다. 예지의 분열을 상징하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존재도 영화에서는 스토리나 테마의 몸체와 무관한 사소한 수수께끼로 전락한다. 다만 예지자가 하는 말, “아직 기회가 있어요. 당신은 미래를 알았으니 바꿀 수 있어요”라는 반복되는 호소가 인간 의지의 위대함을 강조할 뿐이다. 결국 스필버그의 인간의 자유의지야 말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다소 순진한 낙관론은 필립 K. 딕이 쓴 <마이너리티 리포트>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비관론과 낙관론. 이야기의 갈래는 소설과 같이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필버그는 전혀 다른 미래 사회를 만들어낸 셈이다. 다시 말하면 낙관론 쪽으로 간 것이다. 늘 스필버그는 말한다. "인간은 살아갈 가치가 충분한 존재이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