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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자-註) 여기에 모은 열 한 편의 글들은 포덕 144(2003)년부터 145(2004)년까지 2년 동안 천도교와 관련된 게시판에 올려진 것들 중 지난 과거를 한 번 정리하고 나가는데 있어 자료로써 좋은 글이라 판단되어 모은 것입니다. 이 글들을 쓰신 분들은 대 부분 교단과 직, 간접으로 교단의 직위를 가졌었거나 현재도 가지고 있거나 또는 교단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던 분들이므로, 천도교의 현실적 상황에 매우 깊은 이해가 있어 사실적 정황(情況)을 바탕으로 한 반성이고 제안이라 생각되어 매우 의미가 있는 글이라 사료됩니다. 이 글들의 모음은 포덕 146년 2월 1일에 오암 동학사상 연구소 자유게시판에 올려져 있습니다. 또한 동학, 천도교중흥을 위한 대안-(2)<포덕 146년 2월 4일 홈에 게재 참조.>에서 반드시 살아져야할 세 가지 망령들을 주장하게 된 이론적 바탕이 된 글들입니다 특이 두 번째 망령의 논리적 근거로 여러분들이 꼭 읽어주시기를 바라 소개했던 글입니다. 이 글들은 지난 2 년동안 게재된 각 홈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꾸준히 읽었고 계속 읽고 있습니다. 사건 진행일자별로 한데 모아 읽었을 때 오는 천도교의 현실에 대한 인식은 더욱 적확(的確)하게 파악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추가분(7편)은 포덕 146년 1월 1일부터 2월 25일까지를 정리한 것입니다. 이 글들에 대한 모든 판단은 방문자와 특히 독실한 천도교 교인들께서 갖추신 천도(天道)에 대한 해박(該博)한 지식과 만사(萬事)에 대하여 폭 넓게 이해하는 예리(銳利)한 지성(知性)에 맡기겠습니다. 단 천도교 중앙 총부 홈에 게재된 것은 생략했습니다.
편집 정리자- 오암 동학사상 연구소. 김 용 천.
천도교의 현실에 대한 반성과 비판과 제안들.(추가분 -7편.-포덕 146년 1, 1-2,25.)
R21'개벽종소리 박철 문제지적 교직자 양심고백 필요
-21'개벽종소리(11타) 박철님 현실문제 지적관련 교직자들의 양심고백 필요-
천덕산 (korea_o_un@naver.com) 천도교 대학생단 자유게시판-2004/10/13(수)
[박철님 글]
...이제는 더 이상 과거의 인물론이나 정지된 실체에 혼을 빼앗겨 지금이라는 현실을 놓치는 우를 범하여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벌어지는 고루한 심법논란, 정통연원 문제, *각개 연원간의 보이지 않는 미묘한 마찰. 동귀일체를 명분하면서 진실로 동귀일체의 정신을 거역하는 일체의 행동***은 결코 변화하는 이 시대의 삶에, 이 시대를 이끌수 있는 정신영역의 교화에서 오히려 국민들의 비웃음 과 외면만이 있을 것이라는 냉엄한 현실을 직시하여야 합니다. 그만큼 사람들의 지적인 능력과 영적인 교감력이 많이 향상되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박철님의 " 윗글은 저의 장모님께서 자주 하신 똑 같은 말씀이여서 다시 강조하고 싶습니다 [자신의 양심을 속이면서 거짓말하는 사람, 거짓 행동하는 사람들은 남을 바보로 생각하고 있는 지 몰라도, 지금 세월은 사람들이 영이 매우 발달하여 거짓 행동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 알고 있다. 세상에서 거짓말(거짓행동)하는 사람이 가장 바보다" 그러니 너희들은 절대 거짓말은 하지 말라]고 자식들에 강조하였습니다
[사욕에 의한 거짓은 핵폭탄 보다 다 무서운 간악한 무기다]
거짓 !! 사욕을 위한 거짓은 나라도 망하게 하고 여하한 조직도 단체도 망하게 하며 우리교단 경우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교단이 오래전 부터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는 이유는 여러가지 원인들이 있겠으나 .그중 가장 큰 원인중 하나는 교인들 특히 교직자들이 지금까지 정정당당하게 나아가지 않고 교인들 대상으로 거짓말과 거짓행동을 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 많은 사람들이 "거짓과 무식은 가장 큰 죄악을 낳는다"고 한 말이 이제야 뼈저리게 느끼게 합니다.
.인간생할에서 거짓의 행동은 사람과 사람들의 심장을 정지시켜 한울님을 압살하는 핵폭탄 보다 더 무서운 간악한 무기이다 수도원에 가서 수련은 왜 하는지? 수도원장님들이 거짓말 기술은 지도하지는 않았으리 !! 이 왠 일인고 ! 현재 교직자중 진정으로 교단 발전을 위한다면 스스로 거짓말과 거짓행동, 난법난도한 교직자들은 양심고백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용기가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행동)을 한것을 지적해 줄 것을 요청한다면 몇 분에 대해서는 서슴없이! 과감히! 공개 또는 비공개할 수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스스로 모두 새롭게 태어나겠다는 마음의 변화가 없으면 교단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현 교직자들부터 솔선수범하여 스스로 양심을 고백함이 순서가 아닐까 ? 이런 사람들이 교단발전을 명분 삼아 항상 하는 말씀은 우리 모두 화합하자 고 ! 뭐 동귀일체하자고 !! 협조하라 고 ! 한울님이시여 이 거짓 불쌍한 인간들을 용서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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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주인은 누구인가 2 - 동학뉴스닷컴-한이의 동학이야기
박 길수. 한이 (2005-01-31 22:11:23, Hit : 4, Vote : 0)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제로 병합했을 때, 장지연은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사설을 써,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울부짖었다. 지금의 천도교단을 보면, 나라를 빼앗기던 그 무렵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시일야방성대곡이다.
거짓과 협잡으로 교권을 잡은 사람들이, 아집과 독선으로 사상 누각에, 위선의 탑을 세운다. 선거로 해서 등장한 교역자들이, 교회의 주인인양 판을 친다. 지금의 교회 형편이 꼴도 보기 싫은 어진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고 돌아서 돌부처가 된다.
교회의 주인은 누구인가? 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 지 7개월이 지났다. 그때는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는 않은 상황이었다. 이제 희망은 사라졌다. 남은 기간 동안 교회는 얼마나 더 미친년 속곳처럼 갈기갈기 찢겨질 것인가?
* 소위 몽골 대교구 (설립) 위원회의 수운회관 진입 과정을 보면서... 유구무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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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모임 이야기1 - (변형) 한이의 동학이야기- 한이 (2005-02-05 00:42:46, )
* 한울마음 카페에 올린 글 뒷부분을 수정 보완하였습니다.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 30분 여성회 사무실(수운회관 902호)에서는 글쓰기 모임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어느덧, 회수를 헤아리는 일조차 그쳐 버리고, 이제는 당연한 일처럼 그렇게 만나 두시간에서 세시간 동안, 한두 편의 글을 읽으며, 우리들이 살아온 이야기 살고 있는 이야기, 살아갈 이야기들을 나눕니다.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함박 웃음 넘치는 그 자리에서 우리는 글쓰기의 참 맛을 만끽합니다. 한편으로는 우리들이 신앙생할에 너무도 게을렀다는 자책감도 가지면서 글쓰기를 통해 내 안에 모신 한울의 성품과 이치를 맘껏 드러내 보일 수 있음을 느꺼워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을 하루하루 넓혀 가기도 합니다.
지난 2일의 글쓰기 모임에서는 화두가 여성이 쓰는 천도교사였습니다. 아, 이 이야기는 물론 그 전 시간에도 이야기되었고, 그보다 먼저는 지난번 복호동 수도원에서의 강의시간에 제가 처음 제기했던 문제이기도 하지요. 여성이 쓰는 천도교사란, 여성들의 역사도 아니요, 여성들만이 쓸 수 있는 역사도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동학 천도교 역사가 혁명과 운동 그리고 저항과 투쟁의 내력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반성을 바탕으로 우리의 역사는 수도의 역사이며, 공부의 역사이며, 생할 속의 도를 실천하는 깊은 역사를 바탕으로, 그 일각이 드러난 것이 혁명이요 운동이라는 점을 실질적으로 역사적으로 이해하는 공부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지금의 천도교 역사가 제도 변천사, 중앙 총부 (교역자) 중심, 그리고 신구 분열의 역사 등의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못하는 데 대한 반성으로부터 출발해서 새로운 역사관을 수립하자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기도 합니다.
더욱 중요한 점은, 여성이 천도교사를 다시 써야 하는 이유는 천도교단을 위해서도 아니요 남성들과 대결하기 위해서도 아니라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그 역사를 다시 쓰고, 그것을 공부하는 사람 그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거지요.
우리(라는 존재)는 우리가 먹는 것(음식)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지식, 역사)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천도교의 역사를 운동과 혁명의 역사로만 알고 있을 때 우리는 혁명의 후예요, 운동가의 아들딸이 되는 것이며 우리가 신앙인의 자손이요, 후학들이 될 때 우리는 진실된 신앙인, 참 한울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더불어, 우리가 이야기했던 것은 앎과 실천의 문제였습니다. 돌이켜 보면, 우리 천도교의 지금의 모든 문제들은 천도교인들이 교리를 잘 몰라서도 아니요, 교사를 잘못 알고 있어서도 아니라는 문제 의식이 이 이야기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문제 상황은 천도교인들이 아는 것과 실천(실행)하는 것이 서로 어긋난다는 데 있습니다.
첫 번째 예가 바로 성미의 문제입니다. 오늘날 도정, 직접 도훈의 월성미와 연성미 호수는 교헌과 그 하위 규정이 정하는 바에 따른 규칙과 하한선을 지키지 못하고 있음은 누구나 알고 있는 비밀입니다. '탁명교인'이라는 말이 횡행하고, '가짜 교인'이라는 말이 넘쳐나며 더불어 '가짜 도정'이라는 말이 별스럽지도 않게 이야기되며 정작 그 당사자는 별다른 죄의식은커녕, 그것이 무슨 큰 권력이나 되는 양 온갖 패악을 저지르는 경우도 적지 않으니, 규정은 그저 일반 교인들이나 지키라고 있는 것이 되고 말았으며 한번 도정은 영원한 도정이라는 철밥통 의식만으로 '교회중흥'과 '오관실행'의 구두선을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외쳐대고 있습니다. 허위의 모래밭 위에 아무리 튼튼한 말의 기둥을 세워본들 그것이 제대로 집이 될 리가 만무합니다.
두 번째 예가 사회 봉사의 문제입니다.
수운 대신사 시대에서부터 '유무상자'의 전통은 우리 교단의 오랜 미풍이었습니다. 해월신사는 물론이고 의암성사 역시 교육 기관에 대한 투자 등을 아낌없이 함으로써, 교육의 기회를 넓히는 '대사회적 봉사'를 솔선수범하였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교세의 신장으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천도교인과 교단은 수도연성만들 강조하거나 재정의 빈곤만을 이야기하며, 대사회적 봉사활동에 인색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가난한 것은 수련이 아니라 천도교인 마음이요, 부족한 것은 돈이 아니라 봉사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교리 곳곳에는 남을 위해 살라는 말이 차고 넘치는데, 천도교인들이 '남'에게 관심을 갖는 부분은 오로지, 저 '무식한' 이들을 '가르쳐야겠다'는 일념뿐입니다.
이렇듯, 앎과 실천이 괴리되는 데서, 나약함이 비롯되었고, 그 허약한 천도교인의 모습은 뭇 세상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게 되었던 것이지요. 지도자부터, 거짓을 고백하고, 허위의 무덤 위에서 내려와 스스로 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것 그것이 남은 생명이 되살아날 유일한 살길의 처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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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화를 경고한다-한이의 동학이야기
한이 (2005-02-06 01:34:12, Hit : 0, Vote : 0)
파시즘이란 묶음을 뜻하는 파쇼(fascio)에서 나와 결속/단결의 뜻으로 전용(轉用)되었다. 파시즘은 일반적으로 18세기 말부터 쌓여 온 사회적 불안과 제1차 세계대전 후의 만성적 공황 및 전승국 ·패전국을 막론한 정치적 ·사회적 불안에서 초래된 각종의 혁명적 기운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근대사회의 위기적 양상은 모두 파시즘의 배경이 된다. 19세기 들어 현실화하기 시작한 온갖 위기요인의 격화에 의해 정치체제의 안정과 균형이 파괴되고, 게다가 기존 정치세력이 사태를 효과적으로 수습할 능력을 상실할 경우, 무정부적 진공상태를 메우기 위하여 파시즘이 등장한다.
그러나 어찌됐든 이 말은 오늘날, 전체주의의 동의어로 사용된다. 파시즘이 처음 등장하던 시기에 그것은 나찌즘과 마찬가지로 대중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 '지지'가 '대중조작'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현상적으로 그 '지지'는 엄존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의미에서의 '파시즘'은 부도덕하고 폭압적이며 독재적인 정치 행태를 일컫는 말이다.
오늘, 천도교 교단은 파시즘적 징후를 보이고 있다. 이것이 언제부터 유래했는가는 지금 쉽게 따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천도교가 해방 이후 오랫동안 경향적으로 쇠퇴/쇠락을 거듭해 오고, 사회적인 영향력을 상실한 것은 물론, 지방의 여러 교당은 텅텅비어가고 있는 현실 속에서 교인들은 일상적인 무기력증에 빠져 있는 등의 '위기상황'에서 '파시즘'이 등장할 여건은 충분히 갖추어졌다고 할 수있다.
그 이전 단계의 징후는 어떻든 간에, 우리가 천도교의 파시즘적인 징후를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었던 것은 김철 교령의 등장에서부터였다. 김철 교령은 그 자신의 말이 곧 법이요, 그 자신이 곧 천도교 그 자체라는 착각 속에서 전횡을 일삼았다. 교헌에 대한 해석도 그 자신의 전유물이었고, 당연히 규정이나 공문서 따위는 언제든지 여반장이었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우리는, 다시는 김철 교령보다 더 나쁜 교령이 등장할 수는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새로운 교령 체제가 출범했다. 새 교령의 성향이 드러나는 데는 좀 시간이 걸렸다. 그가 취임 직후에 사고를 당해 오랫 동안 병상 생홀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천도교의 행정은 종무원장이 책임을 졌다. 종무원장은 김철 교령처럼 그 자신이 곧 천도교의 권위를 전적으로 대변한다는 착각 속에 몇 개월을 지냈다.
그리고 지난 해 4/4분기부터 교령이 다시 전면에 등장했다. 몇 번의 좌절을 겪으면서, 서서히 신임 교령의 파쇼적인 성향이 드러나고 있다. 그는 포덕에관한 자신의 정책에 반대하는 사라들은 '해교분자'로 취급하여 엄격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말을 수시로 한다. 어떠한 행사를 기획하고 시행할 때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누가 어떠한 이유로 어떠한 형식으로 반대를 한다는 건지에 대한 언질도 없이, 그저 '반대하는 사람'들을 지칭함으로써 총부를 공포분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그러나 실은 그에게 중요한 것은 천도교단의 발전이 아니다. 천도교단을 좌지우지하는 그의 힘을 과시하는 데 주안점이 주어져 있다는 사실을 그 자신도 잘 알지 못하고 있다. 그 자신이 어떠한 경로를 거쳐 그 자리에 있게 되었는지에 대한 반성도 없이, 그는 사람들(교인들)을 거리로 내몰거나, 성금 납부의 길을 강요하고 있다. 그 행사를 해서, 그 다음, 그 다음이 어떻게 된다는 생각을 할 겨를보다는, 그저 내가 이 자리에 있을 때 깃발을 꽂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외에는 다른 의견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총부는 때로 기획사 사무실이 되기도 하고, 도떼기시장이 되기도 한다. 싸구려 물건을 어떻게 팔아 넘길까 하는 장사꾼들이 넘쳐나는...
거짓으로 권력을 잡은 자가, 거짓에 대한 반성없이, 다른 이들의 거짓과 불성실을 탓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 목소리 높아질수록, 구역질만 깊어질 뿐이다. 때로는 저급한 장사꾼이 되어 이곳 저곳을 찾아다니며 일을 꾸미곤 한다. 그것을 실적이라고 자랑한다. 고위직 공무원 생활을 했던 것이 자랑이요 무기다. 천도교의 쪽이 팔리고 있다.
파시즘의 본래 모습과 다른 것은 그러한 현 총부의 모습에 박수를 보내는 이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천도교인들의숫자가 절대적으로 적기도 하고, 박수를 보낼 기운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박수를 보낼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더욱 솔직한 진단이라고 본다. 다시 한번, 총부로부터 얼굴을 돌린다. 부끄러움이 온몸을 감쌀 뿐이다. 천도교의 파시즘화를, 지금은 지켜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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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긴급조치 9호시대
한이의 동학이야기- 한이 2005-02-15 21:16:08,
아직도 박정희를 추억하며, '위대한 대통령'으로 추앙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그는 체육관 선거를 통해 99.9%의 찬성으로 선출되었고, 국회의원(유정회)의 3분의 1을 임명하였으며 말 한 마디로, 헌법조차 바꿔 버리기도 했다. 1975년 들어서면서 유신 체제에 저항하는 불길이 끊임없이 타올랐고, 박정희 정권은 월남 패망을 기화로 반공을 내세운 안보 궐기 대회 등으로 전국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사람은 혼란을 야기하여 북한의 침략을 방조하는 사람이라고 몰아붙였다. 그리고 그 끄트머리에 긴급조치 9호가 있다. 긴급조치 1호나 4호와 마찬가지로, 긴급조치 9호의 핵심은 유신헌법 개정에 대한 논의 자체를 금지하는 것이었으니, 말하자면, 자신에 대한 어떠한 반대도 허용치 않겠다는 파쇼적 발상의 결과였다.
긴급조치 9호는 전국을 침묵으로 몰아갔다. 학생회 대신 학도호국단으로 개편되었고, 대학 교정은 학생 반 경찰(정보부원 포함) 반이라는 말이 공공연했고, 정부에 대한 비판저인 책은 모두 판매금지 되었으며, 가요들조차 해괴망측한 이유들로 금지곡이 되곤 했다. '고래사냥'이나 '행복의 나라로' 등이 그것이다.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도 너를 잊은 지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추억이
신새벽에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만세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나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치떨리는 노여움이
신새벽에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만세
이 노래가 그리는 시절이 바로 그 시절이다. 77년 들어서면서 학생들의 유신반대 데모는 엄중한 탄압을 뚫고 재개되어 78년도에는 거리로 진출하기 시작했으며 이 유신반대 데모는 79년 들어서 더욱 거세지기만 했다. 그리고 마침내 79년 10월의 부마항쟁이 일어났고, 10월 26일을 맞이했다. 아직도 완전히 그 망령을 털어 버리지 못한 긴급조치 9호는 헌법에 관한 일체의 비방이나 개폐 논쟁을 금지했기 때문에 국민들은 ‘헌법’이라는 말을 입 밖에만 내어도 수사기관에 끌려가 고초를 당해야 했다. 지금 천도교에는 새로운 긴급조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교령은 '포덕'을 지상과제로 내세우면서, 교령 또는 총부가 전개하는 포덕에 관한 정책에 반대하는 행위를 '해교행위'로 간주하겠다는 말을 수시로 내뱉고 있다. 또한 천도문화축제를 앞두고 이에 대한 반대나 비판 역시 '해교행위'로 간주하겠다고 했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
긴급조치는 '유신정권'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지만, 그것은 결국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도화선에 불과했다. 자신과 자신의 행위에 대한 어떠한 반대에도 쌍심지를 켜고 대응하며, 합리적이고 장기적인 계획 수립 절차 따위는 애시당초 기대하기 어렵다. 모든 회의는 오직 정해진 지침을 수행하고 달성하기 위한 논의로 국한되어 가고 한다. 한 사람이 아이디어를 내고 총부와 전체 교인은 그 아이디어를 달성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파쇼 집단이며, 병영 단체라 할 만하다. 그렇게 우격다짐으로 해서 설령 눈앞의 성과를 거둔다고 한들, 그것이 과연 얼마나 가는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단순한 상식조차 돌아보지 않는 근시안들의 조직에 바랄 것이 무엇이랴! 도대체, 그렇게 해서 무엇을 이루려고 하는가? 누구를 위해서 그 일을 하는가?
100년 대계는 아예 처음부터 그들의 안중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오직 내 재임 중에, 오직 내가 살아 있을 때에, 빛나고, 흥청거리면 그뿐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도대체, 이럴 수가 있는가? 가련하다 가련하다 무인지경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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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신문에 1면에 기사화된 문선명의 천주 통일평화의 왕 추대식에 이철기 교령이 추대사를 하는 추태를 부린데 대한 글<천도교 교령은 문선명의 통일교의 신자인가? 신하인가? -견해와 기사 전문 수록. 옥계산인의 글 2005. 2, 22. 동학뉴스 닷컴>에 댓글로 달은 내용.
봉암 최명오(2005-02-22 22:19:30)
한울님! 더이상 어디까지 5만년지 무극대도를 욕보이시렵니까? 부끄러워 3.1절에 성사님 뵈러 가려던 스케듈을 취소하고 싶어집니다. 종의원으로서 이런 파렴치한 행위에 대해 단죄할 수 있는 방도가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쪽 팔려서 죽을 지경입니다.
한이 박길수 (2005-02-22 23:01:31)
자질을 갖추지 못한 교령이 저지른 망발입니다. 이번 기회를, 천도교가 거듭나는 계기로 삼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이철기 교령은, 물러나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입니다. 봉암장님! 부디 흥분을 가라앉혀 주십시오. 차분하게, 그러나 치열하게, 우리 천도의 정체성을 바로 세워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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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 불감증에 빠진 천도교
한이의 동학이야기- 한이 (2005-02-24 02:06:50,)
이철기 교령이 문선명 세계가정연합(전 통일교) 총재 문선명을 '천주통일 평화의 왕'으로 추대하는 행사에 참석하여 문선명을 '천주통일 평화의 왕'으로 추대하는 추대사를 읽었다고 한다.이 내용은 종교신문에 기사화되어 사진과 함께 실렸으며, 이 사진에 따르면 이철기 교령은 문선명 총재를 중심에 둔 단하에 서서 '세계의 지도자'들과 나란히 기념 촬영을 했다. 천도교인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이철기 교령은 단지 '축사'를 했을 뿐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고 한다. '추대사'를 한 것과 '축사'를 한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만약 이철기 교령이 주장하는 대로 '축사'를 한 것이라면, 즉각 정정 보도를 요청하고, 사과문을 게재토록 하며, 배포된 신문의 회수조치를 단행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설령, '추대사' 아닌 '축사'를 했다고 해서, 이철기 교령의 과오가 '용서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문선명 총재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가정연합'의 현재와 과거와 미래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그를 이단으로 보거나, 신흥 종교 교주로 보는 따위는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신흥 종교'라는 말 자체가, 우리 스스로를 아프게 했던 규정인데, 이제 와서 그 규정으로 다른 사람(과 종단, 혹은 단체)를 배타하고, 이단시하는 것은 삼가야 하고 그렇게 하게 될 때도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다. 이철기 교령은 왜 그 자리에 가서, '축사'를 했는가? 진심으로 문선명 '총재'가 '천주통일 평화의 왕'으로 등극하는 것을 축하하는가? 그렇다면, 그렇다고 천도교인들에게도 알려 주어야 한다. 교령님께서 대외적으로 축하 메시지를 전하는 일에 대해, 그리고 그 내용에 대해 천도교인들만 모르고 있대서야 말이 되는가? 그리고, 진실로 그렇게 축하를 한다면, 천도교인들에게도 그것을 권장하면 어떤가? 선출된 교령이라고 해서, 천도교인들의 총의를 무시하거나 돌아보지 아니하고 스스로의 판단으로 대외적인 활동에 참석하여 교인들을 크게 상심케 할 메시지를 날려도 좋은가? 이에 앞서, 얼마 전 이철기 교령은 세계가정연합(?)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하여 두루 견문을 넓히고 돌아왔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번 '축사(추대사)' 낭독이 그 일과 연관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얻어 먹은 것'이 있으니, '갚아 줄 일'이 생겼고, 이번 '축사'로 그것을 갈음한 것이 아니냐고,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교령의 입으로 '의례적'이고 '빈말'에 가까운 축사를 남발하고 다닌다는 얘기다. '공인'으로서, '교령'으로서 해서는 안될 위선적인 행동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추대사'를 한 것이 아니라, '축사'를 했으므로, 문제될 일이 없다는 것이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교령의 태도이다. 이에 대해 분개하는 교인들이 대다수이겠지만, 인터넷 상으로만 볼 때, 그래도 우리의 교령이므로, 이런 실수를 재발하지 않기를 바란다면서 묵인하고 넘어갈 수 있다는 발언도 한두 명 보이고 있다. 지독한 도덕 불감증이요,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판단 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돌이켜 보면, 이러한 도덕 불감증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요, 오랫동안 시나브로 만들어져 온 일이라는 데에, 이번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고 본다. 전임 교령들도 그러했으니, 이철기 교령의 실수도 용서할 수 있지 않느냐는 말은, 전임 교령의 실수를 그 때 바로잡지 않았기 때문에 이철기 교령이 이러한 실수를 되풀이한다는 말로 갈음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이철기 교령'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들 천도교인 개개인의 문제이다. '중이 제 머리를 못 깍는다'는 말이 있듯이, 스스로는 스스로의 과오에 관대해지기 마련이다. 적어도 현재의 천도교단의 '지도자'들은 스스로의 과오를 변명하고 발뺌하기에 급급하다.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고, 바로잡아야 하는 책임을 가진 것은 우리들 개개인 교인들이다.
지금의 천도교의 위기의 본질은 바로 이 도덕 불감증이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올바른 판단력도 없고 (아래 길일기 님이 지적하셨듯이, 이미 45년 전 5.16쿠데타와 유신을 쌍수를 들어 환영한 일에서도 보이듯이, 이 판단력 상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 전의 교단 지도부의 칠일 행각 또한 일러 무삼하리요.) 그에 따라 자신의 행동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르는 지경에 처해 버렸다. 사회적으로 이런 상태에 놓인 인간은 금치산, 한정치산자로서 재산권과 법적 권리를 박탈 내지 유예당하게 된다. 사회적 인격의 사망선고를 받는 셈이다. 이러한 논리에 입각해서 볼 때, 천도교는 죽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죽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철기 교령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번 일이 천도교의 포덕을 위해 이철기 교령이 고육지책을 짜는 과정에서 나온 돌출적인 실수로 보고 있으나 이철기 교령 출범 이래, 이러한 류의 실수들은 한두 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리고 이러한 잘못이 이철기 교령대에 처음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 교령부터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문제는 '동기의 순수성'을 참작하여 용서하고 넘어갈 문제는 아니다. 그것을 용서할 수 있다고 보는 분들의 의식까지를 통틀어 천도교의 도덕적 감성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우리의 우려가 커지는 이유는, 이철기 교령 스스로 문선명과 같은 '교주적' '교령'의 역할을 선호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예를 들어 이철기 교령은 취임 이래 기념식 행사장 등에서 교당에 입장할 때 집례자가 "이철기 교령님께서 입장하십니다"라는 말을 되풀이 하게 하고 있다. 이렇게 가다간 교령님이 입장할 때는 모두 일어서서 기립 자세를 취하라는 말이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겠다. 대신사님은 스스로를 천황씨라 일컬었지만 더불어 "나는 도시 믿지 말고 한울님만 믿었어라"고 했다. 문선명 총재의 기념식장에서의 '축사'가 그저 의례적인 축사로 여겨질 수 없는 이유는 문선명 스스로가 자신을 '하느님의 아들'로 치부하고 '하나님의 친서'를 받았다고 자임하며, 그 편지를 공개하는 등으로 스스로를 우상화하고 신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털 것은 털어버려야 새 살이 돋는다. 상처의 피딱지에 불과한 것들이 '살' 노릇을 하려하고, 뼈 노릇을 하려하고, 머리 노릇을 하려 하면 '새살'은 결코 돋지 않을 뿐 아니라, 몸체마저 영영 죽고 말 것이다.
'새 하늘, 새 땅, 새 사람, 새 만물'
의암 성사가 일본에서 돌아오시면서 던진 일성이 "한울을 뜯어 고쳐야 한다"였다.
지금이야말로, 한울을 뜯어 고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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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개벽종소리,박성일님 메일주소 부탁과 도덕성 타락 교직자와 단절 필요
천도교 대학생단 자유게시판
천덕산 (korea_o_un@naver.com) ;2005(포덕146년)/5/24(화)
Re21'개벽종소리(10타) 이메일 주소 부탁은 네티즌간 사전 갈등 방지를 위한 것
님께서 좋은 글 올려주시어 감사합니다. 21'개벽종소리에서는 천도교 자유게시판(이하 :천 자 판)이용관련 천도교 발전과 쇠퇴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중앙교직자(총부, 본부여성회 등)들에 대해서 비난 아닌 확실한 근거에 의한 비판과 문제를 적극적으로 언급하고 있으나
천 자 판 이용 네티즌(평교인)들에 대해서는 교인간 갈등을 피하고 글을 올리신 네티즌들의 입장을 고려하여 칭찬, 지지 격려는 하지만 누구를 막론하고 네티즌의 글에 대해서는 직접 비난. 비판하거나, 말꼬리 잡는 시비 등 간섭하는 행동은 않도록 노력하는 등 게시판 이용 네티즌이 올린 글에 대해서는<불간섭 원칙>을 기본 방향으로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질문하고 싶은 문제에 대해서도 가능한 전화 또는 네티즌의 이메일(e-m)로 이용
왜냐하면 글은 자신의 마음속 모두를 전달하기에는 높은 지식과 천재적 문학소질을 가지고 있지 않는 일반 사람들은 쉬운 일이 아닌바(예 :수련에서 접한 희열과 참회 감정? 기록 등) 자칫 잘못하다가는 사람은 이성과 과 감정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글을 올린 상대방에 누를 끼치거나 감정을 상하게 한다면 그로 인해 네티즌의 게시판 참여 의욕을 감퇴시키고, 나아가 네티즌(교인)간 갈등을 유발하게 되어 결국 교단 발전을 위해 일치된 힘을 모아야 한다는 중요한 과제를 놓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인들은 교단을 망쳐온 중앙단위 교직자들에 대한 견제역할을 하기 위해서는(현재 견제역할 별무)우선 지금은 최소한 교단발전을 갈망하는 진심어린 관심과 적극성을 가진 게시판 이용 교인들간 상호 교류와 개별의견에 대한 이해의 폭을 가지는 한편 갈등을 배제하여 동귀일체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임을 생각할 때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네티즌간 게시판 글에 대해 <불간섭 원칙>을 고수하여 사전 상호 갈등을 방지하는 등 화합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해봅니다.
따라서 21‘개벽종소리에서는 1 차적으로 모든 평교인 네티즌의 게시판 글에 대해서는 응답을 요구하지 않는 한 칭찬이나 격려 이외는 이러쿵 저러쿵하는 등 간섭하지 않는 즉 <불간섭 원칙>고수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단 이 철기 전 교령과 같이 중앙교직자들에서 교단의 기관명칭을 공론화 없이 외부에서 사사롭게 함부로 이용하거나 사용하는 난법난도 행위자들이 올린 글에 대해서는 예외) 하오니 님께서 많은 글을 올리시고 있는 상황하, 긍정 내용과 이해가 어려운 부문에 대해서는 질문이 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는바 잘못하다간 여타 네티즌들이 오해와 갈등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천도교 게시판 글에 대해서는 부담 없이 누구나 님과 대화 가능할 수 있도록 이메일(e-m) 주소를 게시판에 게제하여 주시면 어떨까 해서 말씀들입니다
서두에서 언급한바 총부 등 중앙단위 교직자에 대해서 싫은 소리를 하는 이유는 게시판의 기능은 과거나 현재까지도 임금 등 집권자에 대해 백성이 관리들의 횡포(부정부패. 직무유기 등)에 억울함의 호소, 불합리 정책수행 등으로 인한 피해들에 대한 비판과 대책강구를 건의하는 등 신문고적 기능을 일면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21'개벽종소리에서는 교단을 똑 바로 책임지고 발전시켜야하는 교령을 비롯한 중앙총부, 여성본부(전체교인 약50% 관할 대내외 포덕활동에서 가장 중요 영향력 단체)등 주요 교직자들이 올린 글에 대해는 사실대로 공적인(교단적) 문제 대해서는 과감하게 비판할 것입니다
특히 그들은 교단을 운영관리하면서 <교단을 똑 바로 발전 시켜야하는 막중한 권한과 임무를 부여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교단으로부터 예산등 유무형의 지원과 시설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중앙단위 교직자들이 공적활동에 대한 문제가 있을 때 교인들의 대내외 근거 있는 여론과 사실에 입각한 비판과 문제 제기, 대안제시를 과감하기 적극적으로 전달할 것입니다
지금 적지 않은 교인들과 일부 교직자들에서는 현재교단의 쇠퇴를 확실히 인정하고는 있으나 몸보신(?)을 위해 바른 소리를 피하고 있고 가급적 듣기 좋은 소리를 하는 사람들과 교직자 주변에 맴돌면서 한자리 얻으려고 온갖 추태를 부리면서 교단문제 발생시 침목과 방관의 기회적 처신을 보이고 있음이 현실입니다
바로 이런 심각한 문제는 교인을 지도하는 설교자와 학자출신 특히 중책을 맡은 교직자들은 일반교인들에 비해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식이하의 감투 욕심으로 전개된 비열한 감투싸움!!에서 오는 결과라 볼 수 있으며 이 비열한 감투싸움은 일반사회 사람들에서도 가지고 있는 극히 상식적이며 기초적, 기본적 도덕성이 결여되었거나 도덕성이 타락(원인)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개인 또는 이해집단의 감투 욕심자들의 교권싸움이 10년 전, 20년 전부터 계속되고 있으며 아직도 잘난 6 인방 이 건재하고 있음은 이를 반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교인들은 피 흘린 스승님과 수십만의 동학의 선배님들의 대가없는 그날의 희생들을 생각하면서 소신 있는 적극적인 활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직자들은 더 이상 순진한 교인들을 속이지 말라 !> <교인들은 교직자들에게 더 이상 속지 맙시다 !>라는 말을 강조하면 어떨 까 ?생각해 봅니다. 왜냐하면 3년 이상 천도교 중앙단위 교단에서 감투자리에 있었다면 도덕군자에는 미치지 못할지라도 평교인 보다는 욕심이 적으며 특히 일반사회 사람들 보다는 조금이라도 앞서 나가는 양심과 기본적 도덕성은 가져야 함은 당연지사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교단의 교직자(중앙단위 교직자를 지칭 :이하 동일)들을 보십시오, 대부분이 수 삼 년(수년, 10년-20년이상) 중앙교단의 교직 자리에 있으면서 교단이 극히 쇠퇴한데 대한 책임감이나 미안한 생각을 하며 자신들의 과욕에 대한 양심 선언한 교직자가 한사람이라도 있습니까? 또한 얼마 전 교단을 다른 종단에 바치는 행위라고 다수교인들이 분노한바 있는 이 철기 전 교령의 통일교 사건문제 대해 한 사람의 교직자라도 윗사람을 보좌하고 한배를 탄 교단의 책임을 가진 공동운명체로 보나 또한 자신이 모시고 있는 윗사람 대한 의리를 생각하여 스스로 사퇴한 교직자가 있습니까? 다른 한편 윗사람의 잘못을 예방하지 못한 직무상, 도의상 책임을 통감하며 스스로 퇴진한 교직자가 몇 명이였습니까?
금일까지 교령 징계 이외는 그 아래 사람이나 특히 동 사건을 사전 예방하여야 할 책임이 가장 많은 당시 감사원장과 감사들이 직무를 다 하지 못했음을 깊이 반성하며 감사직을 사퇴한 사람이 있었던가? 교직자 모두가 이 철기 당시 교령 혼자 한 것이라 나는 모른다고만 하며 발뺌에 급급한 모양새를 보고 있노라면 이 글을 올리는 한 사람만의 찹찹한 심정이 였을까 ?
바로 이러한 상식이하의 행위들은 다름 아닌 현 교직자들은 소위 도덕 불감증 환자이거나 아니면 복구할 수 없는 이미 도덕성이 완전 타락한 교직자들이라 할 수 있으며 이러한 기본적 도덕성을 찾아볼 수 없는 교직자들이 중앙단위에서 일 할 자격이 있는가 ? 이다. 현시점에서 우리들은 이러한 상황에 있는 교직자들이 과연 우리교단을 올바르게 발전할 수 있겠는가? 의문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 따라서 이제는 한 두 사람이 아니라 다수가 특히 교직이라는 감투에 과욕을 부리지 않는 천도교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교인들은 심각하게 생각하여야 할 것입니다
21' 개벽종소리에서는 현재 교직자들이 교단 운영 결과에 대해 전망 내지 결론을 내리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도 할 수 있겠으나 복잡하고 어렵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간단한 생각하면 즉 종교(천도교)를 가지는 것은 종단에 교직자리(감투)를 가지려고 종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면, 더구나 천도교는 심학, 수심정기를 가장 강조(핵심)하는 것이라면 ? 분명 감투를 하려고 심학(마음 공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초등학생도 답을 얻을 수 있는 문제로 답은 간단하다
결론을 나름대로 언급한다면 "현재의 교직자들은 진정한 참회가 없는한 하늘이 갈라져도 이들은 우리교단을 바르게 발전시키지 못할 것이며. 다만 오직 그들을 믿고 싶고, 교헌을 몇 개 고치면 교단이 발전될 것이라고 목마르게 믿고 있는 착한 교인들이 꽤 있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박동덕님에게 이러한 글을 올리게 됨은 교단의 발전을 위해서는 지금 게시판 이용하는 우리들부터 먼저 동귀일체를 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이를 위해 네티즌간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메일 주소를 알리도록 하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포덕 146년 5월 24일 까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