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당에서 영면하소서 / 이미란
묵직한 침묵의 그림자가 이천 구丘가 넘는 묘역을 푹 덮고 있는 세계 유일한 *유엔묘지에 발을 내디딘다. 나지막한 가지에 장미 꽃송이가 기지개를 켜고 옆에는 영산홍이 얼굴을 붉히고 있다. 잔디밭에는 잡초 한 포기 없이 층층이 가지런하게 정리 정돈된 뜰이다.
성질 급한 더위는 4월답지 않게 따가운 햇살로 넓은 묘역을 내리쬐고 있다. 명치에 바윗돌을 매단 듯 마음이 무겁다. 숨이 턱턱 막혀오는 압박은 숨쉬기가 힘든 고통이 따라온다. 꽃이라도 피워 분위기를 아름답게 하면 덜 외로울까.
일 제곱미터도 안 되는 손바닥만 한 땅에 일렬로 누워 사열하고 있다. 무엇으로 하여금 이 병사들을 여기에 이런 모습으로 생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했을까.
낯설고 물선 먼 이국땅에서 귀에 들려오는 소리도 익숙한 소리가 아니요, 찾아오는 이도 머리 쓰다듬어주든 다정한 이웃도 아니요, 같이 뛰놀던 동무도 아니다. 가져오는 음식도 입에 설다. 심지어 하늘을 유유하는 솜털 같은 구름도 주위를 떠도는 공기조차 낯설다. 모든 것이 보고, 듣고, 느끼던 익숙한 것이 아닌 낯선 고립무원이다.
자기 나라로 유골을 가져간 전몰장병까지 합하면 4만이 넘는 숫자의 피 끓는 장정들이 대한민국이라는 조그만 약소국 자유민주주의 평화를 위해 총을 잡았다. 붉은 흙탕물의 홍수처럼 휩쓸며 마구 쳐들어오는 공산군을 막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귀한 목숨을 아낌없이 바쳤다. 멀고 먼 이국땅에서 선혈을 쏟으며 아우성치는 그들의 외침이 귓전을 맴돈다. 누워있는 그들을 위무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이 안타깝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아린 통증이 인다.
오전 10시 유엔기 게양식에 수필가 협회 회원들이 단체로 참석하여 국화 한 송이씩을 헌화하였다. 두 회원께서 애끓는 추모 글을 목메게 낭독하며 명복을 비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일 뿐이다.
두 회원분의 추모사는 모두 ‘천당에서 영면 하소서’로 추모 글 낭송을 마친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전사한 모든 병사는 우리가 기원하는 것처럼 천당에 가 있을지, 연옥을 헤매고 있을지, 보고 싶은 부모님 곁으로 달려갔을지, 아니면 꿈에도 보고 싶은 그리운 임 곁에 달려갔을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저 생에서라도 좋은 곳에서 편히 사시라는 기도밖에 해 줄 것이 없다. 그곳에서나마 할 수만 있다면 전쟁 때문에 하지 못한 모든 것을 이루어도 보고 누려도 보시라고 기도드린다. 미안한 마음이 목이 멘다.
무거운 마음으로 고개를 숙이고 걸어가노라니 도은트 (DAUNT)수로가 있다. 도은트 병사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수로다. 이 병사는 전몰장병 중 제일 나이가 어린 호주에서 참전한 17세 소년병이었다. 17세로 입대가 불가한데 형의 신분증을 도용하여 한국 전쟁에 참전했다고 한다.
17세는 고등학교 일 학년 재학할 나이다. 게임기나 가지고 놀 나이에 무슨 사명감이 있어서 자기 나라에서 일어난 일도 아니고 들어보지도 못한 생소한 이역만리 타국의 전쟁에 뛰어와서 총 들고 싸웠을까. 어찌 이 병사뿐이랴 4만 명 병사 한분 한분이 모두 안타까운 사연이 있을 것이다. 그들의 부모님과 친인척들, 손잡고 뛰놀던 동무들은 얼마나 가슴 아팠을까.
우리 집에도 같은 아픔이 있었다. 큰오빠가 군대 복무 중 교통사고로 우리 곁을 떠나버렸다. 엄마는 지갑 속에 누렇게 낡은 오빠 사진을 끼워놓고 돌아가실 때까지 틈틈이 들여다보며 눈물을 흘리셨다. 그 모습을 가슴 아프게 보며 보낸 세월이 엊그제 일처럼 머리에 떠오른다. 지금도 ‘오빠 생각’ 노래 가사만 생각해도 눈가가 뜨거워진다. 동병상련이라 남의 일 같지 않다.
수많은 사람들의 귀한 생명을 담보로 누리는 오늘날의 자유 민주주의 평화가 과연 그들이 바라는 모양일까. 보릿고개를 걱정하던 가난한 나라, 원조를 받는 헐벗은 나라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 원조를 주는 나라로 너무 많이 먹어 다이어트하려고 병원을 찾고, 아름다운 미모를 위해 성형외과와 피부과 병원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부유한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매일 흘러나오는 정치판 뉴스는 답답하다. 자기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진흙탕 싸움으로 조용한 날이 없다. 이런 나라를 지키기 위해 귀한 목숨을 바쳤었다고 생각하면 분통이 터져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 자기 나라로 가고 싶을 것 같다.
‘자유민주주의 평화’ 그 단어 하나를 위해 자기들의 삶을 바쳤건만 이 나라의 정치인들은 자기 자리가 애국이고 평화인 양 떠들고 있다. 특히나 이북을 찬양하며 육이오가 북침이라고까지 하는 무리를 보면 숨통이 막힌다. 누워계시는 저분들이 이 모양새를 보면 얼마나 원망스럽고 억울할까.
여기 잠들어 있는 분들에게 죄송하기 그지없다. 유일한 목숨,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목숨을 걸고 지켜준 평화임을 제발 기억했으면 좋겠다. 여기에 자식, 정인을 묻어둔 가족들이나 친인척들도 먼 나라에서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체제 아래 평화롭게 잘 살아가는 것을 봐야 가슴 아픈 희생이 조금이라도 덜 원통하지 않을까.
나 역시 누워계시는 분들에게 드릴 말씀이 없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천당에서 영면하소서.’ 두 손 모아 빌며 발걸음을 돌린다. (13.4)
*유엔 묘지 : 재한 유엔 기념 공원은 세계 유일 유엔 기념 묘지.
유엔군 전몰장병 추모 명비(19506/25~1953 7/27)~전사자 40,896명을 안장하기 위해
유엔군 사령부에 의해 조성.
재한 유엔 기념 공원에는 총 13개국 2,327명이 안장되어 있다.
1) 전투지원국 : 호주, 벨기에, 캐나다,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프랑스, 그리스, 룩셈부르크, 네델란드, 뉴질랜드, 필리핀, 남아프리카 공화국, 태국, 튀르키게, 영국, 미국(16개국)
2) 의료지원국 : 덴마크, 독일, 이탈리아, 노르웨이, 스웨덴(6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