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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道家) 입문 2
"자네도 도인(道人)이 되어보겠나?"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느새 열한 살 더 많은 북창이
지함에게 하대를하고 있었다.
북창 정염.
병인년(丙寅, 1506년), 충청도 온양에서 났다.
산수, 미술, 중국어에 능통하여
아버지 정순붕은 그를 끔찍이도 위해 길렀다.
중국에도 여러 차례 드나들며
외국의 문물을 접했다.
그런 덕분에 일찍부터
장낙원(掌樂院)의 주부(主簿)를 거쳐
관상감(觀象監)과 혜민서(惠民署)의 교수를 지냈다.
정순붕이 을사사화를 일으켜
칼에 묻은 피를 씻을새가 없던 시기에는
포천현감을 지냈다.
그러다가 현감직을 던져버리고 부자 관계를 청산한뒤
과천 관악산에 들어가 마음 가라앉히는 공부를했다.
정염이 도가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은
관상감에서 일하는 동안
눈여겨 보아두었던 게있어서였다.
그러다가 공부의 장소를 바꾸어
양주봉선사로 오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예로부터 면면히 내려오는
한 줄기도가 따로 있다네.
그것은 천축(天竺, 인도)의 불교도아니고
공맹(孔盟, 공자와 맹자)의 유교도 아니라네.
일찌기 신라의 최치원(崔致遠)이
풍류도(風流道)라일컬었던 것,
곧 선(仙)일세."
"그런 게 있었습니까? 과문하여 처음 듣습니다.
어찌 한 하늘 아래에 이토록 다른 세상이..."
"난 이미 선도(仙道)에 입문한 몸,
자네가 뜻을같이 한다면
그동안 내가 배워 알게 된 것을 모조리토해 놈세."
"이미 벼슬도 버린 몸입니다.
일신의 부귀영화는 더이상 저와 상관없는 일입니다.
천하를 떠돌면서 질긴목숨이나 닳아 없앨 생각입니다."
지함은 북창에게 바짝 다가앉으면서 각오를 밝혔다.
"허허허, 천하를 떠돌겠다고?
그게 바로선가(仙家)의 풍류(風流)라는 걸세."
"예로부터도인이라는 사람치고
천하를 두루 돌아보지 않은사람이
아무도 없을 거네.
신라의 화랑들이 다그러하여
산천경개를 두루 감상하는 것을
가장 큰공부로 여겼고
근조에 이르러서는 김시습(金時習)과,
내 스승 대주(大珠) 큰스님이 그러했다네.
나도 한바퀴 돌아왔다네.
명산에 가서 하늘에 기도를 하고,
단전 호흡으로 신체를 단련하여 도력을 높였지."
"선도에 들면 무엇을 공부하게 됩니까?"
"노자의 <도덕경(道德經)>, 장자의
<남화경(南華經)>, 열자 등 도가서(道家書)를 읽고,
역리(易理), 음양(陰陽), 오행(五行), 참위(讖緯),
의술(醫術), 방술(方術), 부적(符籍), 주술(呪術),
천문(天文), 지리(地理)를 익히고,
단전 호흡과
단약(丹藥) 제조 비방을 배우고 나면
비로소 도인의대열에 드는 거라네
이렇게 튼튼한 줄기를 갖고
힘차게 뻗어내려온 도맥(道脈)을
자네도 이어보지않으려나?"
" 전 워낙 천학 비재한 몸이라서 말씀하신 것 가운데
한두 가지만을 겨우 알아들을 수 있을 뿐입니다."
" 한 가지 먼저 짚어두고 공부를 시작하세.
자네를야인으로 몰아부친 그 사건을 공부해보세.
나는 내가이 삶을 선택했지만
자네는 운명에 이끌려서 이렇게된 것 아닌가."
"무슨 말씀이신지?"
"자네와 안명세 사관, 그리고 정혼했었다는 여인,
내 아버지. 각자의 운명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살펴보세.
이해를 하지 않고 넘어가는 운명은
언젠가는 같은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다네."
"사주(四柱)를 보신다는 것인가요?"
"그렇다네. 아는 대로 사주를 대주게."
지함은 기억을 되살려 안명세와 민이의 사주를대었다.
명세의 생일을 기억할 수 있었고,
민이는사주단자가 양가를 오갈 때 외워두고 있었다.
그리고지함 자신의 사주도 불러주었다.
북창은 지함이 불러준 사주를 받아 적고는
아버지정순붕의 사주를 마저 적었다.
북창은 한참 동안 글을 적어가더니 고개를끄덕였다.
"역시, 그랬어. 이보게, 지함. 이 사주를 보게.
안명세는 이 나이에 명이 끊겨 있네.
여기서 명을잇기란 여간해서는 어렵다네.
내가 여러 사람 사주를보았는데
이런 경우에는 영락없이 끊기고 만다네.
그리고 자네와 정혼했던 이 사람을 보게.
정실이 될수 없어. 첩이 될 운명이야.
그런데 이게 뭔가. 명도길지 않군.
머지않았어."
"이건 우리 아버지 사주일세.
첩이 여럿 있는 거야 그렇다 쳐도,
살(煞)이 이렇게많다네.
아니, 명이 여기서 끊기는군.
이상하군.
아버지와 민이 두 사람이 비슷한 때
세상을떠나는군."
"그런 것까지 다 나옵니까?
어떻게 그런 것까지세세하게 알아볼 수 있는지요?"
"글쎄, 무슨 이치로 이렇게 맞아들어가는지,
하늘의오묘한 뜻이
어떻게 사람의 지혜에 잡혔는지
나도의문일세.
관상감에 있을 때 배워둔 지식일세.
하여튼자네에게서는 관운(官運)이 보이질 않네.
한곳에 오래붙어 있을 사주가 아니야.
여기저기 떠돌아 다닐운명일세.
자네와 안명세,
그리고 정혼했던 여인의성격까지 얘기해줌세."
북창은 지함이 어려서 부모를 잃었다는 사실까지
짚어내었다.
그리고 안명세가 몇 살에 부친을 잃었고,
몇 살에결혼했다는 사실도 말했다.
북창은 안명세의 성격까지하나하나 밝혔다.
"내가 이 사람들의 사주를 밝히는 것은
자네가 그사람들에게서
아주 떠나오기를 바라기 때문일세."
"명심하겠습니다."
"알았네. 함께 가보세. 이 길이 어디로이어졌는가."
그러나 그 길을 시작하기도 전에
봉선사에 와 있던학인들이 들고 일어났다.
둘 다 절을 떠나라는것이었다.
"간신배의 무리와는 함께 공부할 수 없다."
"도대체 간신배의 무리를 감싸는 녀석은 어떤놈이냐?"
그러나 북창은 대꾸도 하지 않았다.
지함도 밖을내다보지 않았다.
학인들도 정순붕이 살아 있는 한
심하게 굴지는 못했다.
문밖은 여전히 소란했지만
북창은 지함과 함께 도가공부를 계속해 나갔다.
북창은 신선이 되는 길을 낱낱이 드러내보였다.
그가 관상감에 있으면서 배웠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뒤 관악산에서
승(僧) 대주에게서 전수받은 내용까지남김없이 쏟아냈다
.그것은 폭포처럼 지함에게 쏟아져내렸다.
지함은 인생이 완전히 새로 시작되는 것 같았다.
세상이 갑자기 넓어진 듯한 착각이 들었다.
어디에 이런 신비한 학문이 숨어 있었단 말인가.
어디서 기다리다가 불쑥 나타나 나를
송두리째 휩싸는것인가.
그것도 원수 정순붕의 아들을 통해서.
운명은이렇듯 얄궂은 것인가.
다음날부터 지함은 아예 북창의 방에서 살다시피했다.
북창의 방문을 열 때마다
지함은 언제나 새로운세상을 보았다.
북창은 하얀 연기를 피우면서 환단을 만들고있거나,
이상야릇한 향을 피워놓고 가부좌를 하고있기가 일쑤였다.
어떤 때에는 몸을 좌우로비틀어대면서 숨쉬기를 했고,
어떤 때에는 주술을외우고 있기도 했다.
"자네가 세상을 주유하게 되거든
반드시 명산에들러 하늘에 기도를 하게.
사람은 신통(神通)해야모든 능력이 열린다네.
예전부터 무당들이 명산을찾아다니며
기도하고 수도했다는 소식 못 들었는가.
무당이 바로 도인일세.
이제는 석가에 쫓기고 공맹에시달려서
무당도 옛무당이 아니고,
이처럼 은자가되어 살아가고는 있지만.
이제 그 모습은
국가적으로는 관상감에서 일부 찾을 수 있고,
소격서(召格署)에서 찾아볼 수 있을 뿐이라네."
"세상에서 버림받은 사람이나
세상을 버린사람들만이 찾는 꼴이 되었군요."
"그렇다네. 그러나 꼭 그렇지만도 않다네.
근엄하게성리학이나 따지는 조정에서도
공공연히 도가(道家)의식을 행한다네.
내가 관상감의 교수로 있을 때에는
여름철 토왕일(土旺日)이 되면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단(丹)을 만들어 임금께 올렸다네.
그러면 임금은
그것을 신하에게 각기 세 개씩 나누어주곤 했다네.
게다가 관상감에서는 주사(朱砂)로 벽사문을 찍어
민간에 나누어주기도 했으니,
나라에서 도를 편것이지.
소격서에서는 강화도 마리산에서
해마다 제천의식을 집행하여
하늘에 나라의 안녕과 번영을기도했다네."
북창의 유수 같은 달변에 넋을 빼앗긴 지함은
안명세도 민이도 잊고 오로지 도서(道書) 공부에만열을 올렸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세계에 비해
북창이 가져다주는 세계는
깊이도 알 수 없고 끝도 알수 없는 바다,
바로 홍성에서 보았던 바다와 같이크고 넓었다.
북창은 마치 아버지가 지함에게 지은 죄를
대신갚으려는 듯이
지함을 쉴 새 없이 공부에 몰아붙였다.
북창은 풍류, 천문, 지리, 역학, 의학, 관상, 호흡등을
차례로 강의해 나갔다.
자기가 배우면서 들였던공보다
더 뜨거운 열의로 지함을 가르쳤다.
생각지도 못한 때에, 생각지도 아니한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사람으로부터 지함의 인생이
송두리째뒤바뀌는 공부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풍류.
지함은 정신을 올곧이 갖고 경청했다.
"조선의 정신이라네. 지금 우리나라에서
글깨나읽었다는 선비들이 쓰는 글을 보면
시와 사(詞)가
모두 중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네.
이는 몸만 조선에살고 있지
혼은 중국에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네.
자나깨나 아는 건 공맹(孔孟)이라,
우리나라 선조들이무슨 일을 하면서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 사람이 거의없다네."
"중국은 어떤 나라입니까?"
지함이 궁금해 하자 북창은
중국에서 보고, 듣고 온문물에 관해
상세히 얘기해 주었다.
"고을만 달라도 백성들의 성정이 다르고
풍습이달라지는데, 하물며 나라가 다름에야."
북창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쪽에서도 성리학이 승합니까?"
"공맹을 가지고 죽고 못사는 것은 오히려 우리라네.
우리는 중국에 중독되어 제 정신이 무엇인지 모르고있네.
중국은 조선을 영 다른 나라로,
그것도 아주보잘것없는 소국으로만 여기고 있는데
오직 조선만이중국에 스스로 예속되어
자신을 소중화(小中華)라고착각하고 있다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공맹 만한 철학이 없지않습니까?"
"우리나라에도 저 단군 시절부터 면면히 내려오는
정신이 있다네.
우리나라 민족만이 갖고 있는 고유한사상일세.
어느 나라고 그 나라만의 사상이 있게 마련인데,
우리는 그만 우리 것을 잃어버리고
중국것을 우리 것인 양 외우고 있기 때문에
모르고 있는것일세."
북창은 우리나라의 고유한 사상을 찾는 것이
조선을일으키는 큰 길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지금 조선의 선비라면 사화(士禍) 같은 세속적인
사건에 연연해 할 때가 아니라네.
내가 학인들의 매를주저하지 않고 맞을 수 있는 것도
다 조선의 혼을찾아내려는 열정 때문이라네.
자네라면 사화의 충격을딛고
오히려 더 큰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이네."
"조선의 정신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습니까?"
산중에 숨어 세상을 등지고 사는 도인들이
그것을쥐고 있네.
그것을 찾아 세상에 펴지 않고는
사화같은 격변을 막아낼 수 없네.
딴 나라의 정신으로사는 것은,
인간이 짐승의 혼으로 사는 것이나다름없네."
북창은 조선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도가를 살리는것이
조선을 바로 살리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기위해서는 세상을 꿰뚫어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부단히 수련을 해야 한다는것이었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북창은 음양론(陰陽論)을설명했다.
"오늘은 음양론에 대하여 이야기하세.
일찍이 화담선생은 기 철학을 설파하셨는데,
우리는 음양을논해야겠네.
음양을 낳은 것은 무엇인가?
태극(太極)이라고한다네.
태극, 도대체 태극은 무엇인가?
도대체 어떻게생겨먹은 게 그 모습일까?
성현들이 일컫기로
만질수도 없고, 냄새 맡을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다고했네."
"불가(佛家)의 불법(佛法), 정법안장(正法眼藏)이
다 같은 이치입니까?
선도(仙道)니 무위(無爲)니 하는것도 다 같은 말 아닙니까?"
"그렇다네. 그것을 뭐라고 부르든
그 본질은 변할게 없다네.
'똥 젓는 막대기'라고 부르면 어떻고
'썩은 감자'라고 부른들 무슨 변화가 있겠는가.
그태극이 변하기 위해서는 오직 기(氣)만 필요할뿐이네.
그 기 작용에 따라 음양(陰陽)이 생산되는것이라네.
그런데 어찌하여 기는 음기(陰氣)와 양기(陽氣)로변화하는가,
이것을 밝히는 것이 참으로 하늘을 여는열쇠가 아니겠는가
. 이 세상 어떠한 물건이나생명체도
음양으로 나뉘지 않는 게 없으니
참으로불가사의하지 않을 수 없다네.
그것을, 나는 '하늘'이 그렇게 이치를 정한 까닭은
변화에 있다고 생각하네.
하늘은 정지되어 있는것보다는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네.
사람도 남자와 여자로 갈라서 서로를 좇게 만들어
계속 아이를 생산해 나가도록 만들어 놓지 않았는가.
이 오묘한 이치, 왜 남자는 여자를 그토록따라다니고,
여자는 왜 남자 없이는 살지를 못하는가.
그것은 결론적으로 생식(生殖) 때문이라네.
사랑,
사람들은 사랑이란 추상적인 말로 그것을 설명하려하지만,
그것도 음양에서 나오는 기에 지나지 않는것이네.
하늘은 남자와 여자같이 분명히 구분되는 물체만
음양으로 가른 것이 아니라,
남자 속에도 음양이있고,
여자 속에도 따로 음양이 있으니
바로 양 속에음이 있고,
음 속에 양이 있는 이치라고 보네.
오행으로 보자면
목과 화는 목이 양이고 화가 음 역할을 하지만,
화가 토를 만나면 화가 양이고 토가음이 되는 것이니
이렇게 상황에 따라 역할이변화하는 것이라네.
이 세상에 고정된 것이라곤아무것도 없으니
역시 무상(無常)의 도리가 여기에있지 않나 생각하네.
이 음양의 이치는 땅에서도 그렇고
하늘에서도그렇게 이루어지네.
그러니 해가 있고, 달이있잖은가.
이 음양론을 오래도록 궁구하다 보면
세상의 이치가 저절로 열리게 되어 있다네.
음양론 하나만 오로지뚫어져라 생각하기를,
미련한 선자(禪者)가공안(公案) 하나 붙들 듯이 하다보면
활연개오(活然開悟)할 날이 저절로 찾아들 것이네."
첫댓글 북창으로부터
중국 인문지리를 접하는 지 지함의 안목은 새로운 세계를 보는 듯
뭔가 달라져 가는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
새벽에 두편을 읽고
댓글은 이제 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