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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오성술 [吳成述, 1884.5.15~1910.9.15] |
호 |
죽파(竹坡), 본명은 인수(仁洙) |
본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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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전라남도 광산(光山) |
주요활동 |
1905년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체결되자 의거할 것을 결심하고 김태원(金泰元) 의진에 들어가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08년 1월 1일 창평(昌平) 무동촌(舞童村)전투에서 일본 헌병 요시다[吉田]를 비롯한 수 명을 사살하였고, 1월 10일에는 군자금 모금을 위해 광주에 거주하는 일본인을 습격하여 3명을 살해하고 무기를 탈취하였으며, 나주에서는 밀정 황도현(黃道玄)을 살해하고 재산을 탈취하였다.
같은 해 4월 광주 무등산(無等山)전투에서 김태원이 전사하자 의진을 수습하고 의병장이 되어 항전을 계속하였다.
1909년 1월 광주에 거주하는 일본인 모리[森十內]의 집을 습격하여 물품을 탈취하였으나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순국하였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
어록 |
-죽파가 의병활동중 읊은 시
내 평생 시름없는 사람이라 자위했건만 나라의 운명이 어려워져 그 걱정뿐이네. 술속의 취기는 밤낮이 없건만 글속의 대의는 춘추를 지녔구나.
집안이 기울어도 천금 부자를 돌아보지 않았지만 붓을 내던지니 오직 백성 시중들 생각만 하네. 세상살이에 마음속 일을 알기 어렵지만 분노 그밖에 다시 무엇을 구하겠는가.
生平自謂我無愁 天步艱難是可憂 酒褒微醺罔晝夜 書中大義有春秋 傾家不顧千金富 投筆唯思萬戶候 處世難知心內事 慨然此外更何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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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인물 |
김태원, 심남일, 안규홍 |
가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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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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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 |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산동 |
기념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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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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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참고 |
네이버백과, 네이버블로그(용진선사와 오성술 - 작성자 민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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