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양우씨 집성촌을 찾아서(33) 경남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 문강공파
함양군 안의면 월림리
경남 고성군 일대의 집성촌 취재를 끝내고 다시 함양까지 가는 강행군이 이어졌다.
함양일대에는 문강공 파 시조공 이신 9세 國珍 선조님의 둘째아들 10세 愼 (신) 선조님,
11세 작은집 梧谷公 恪(각) 선조님께서 함양 일대에 세거하여 600년의 역사가 된다.
조선시대 임진왜란때 진주를 거쳐 올라 온 왜적들은 함양 일대를 침략하면서 많은 후손들이
뿔뿔이 남서로 흩어져 호남지방까지 왜적의 난을 피해 이주하여 소수 집안만 남아 있다.
함양에 대표적인 집성촌이 두곳이 있음을 확인하고, 방문 지역을 망설이다 함양읍과 가까운
병곡면 도천리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마을에 들어서서 확인하니 우리성씨보다 현재 하씨
성씨가 더 많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재실과 선조님을 모신 제각도 보인다.
도천리는 함양에 처음 세거하신 입향조 11세 오곡공 각 선조님과 두 자제분을 모신
2세 3부자 제단비가 최근에 전망이 좋은 종산 임야에 잘 조성되어 있다.
도천리 옛 집성촌을 떠나서 함양에 또 다른 집성촌 안의면 월림리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마침 안의에 도착과 함께 시외버스가 이어져 월림리 황대 마을에 쉽게 도착된다.
수년전 2011년 안의에서 택시를 대절하여 천등재 7세손 휘 천석 선조님의 시향에 오셔서
뵙게 된 인연이 있었던 우병태 문장 어른을 이곳 황대 마을 집성촌에서 다시 뵙게 된다.
황대 마을에는 과거 단양우씨 일가분들이 15호에서 현재 8세대로 줄었으며 안의면 일대에
30여호가 살았다고 한다.3형제분이 사이좋게 거주하고 있다.
경찰에 입문하시어 정년을 맞으신 문장 어르신의 막내분도 최근 귀촌하여 살고 계셨다.
함양 일대 집성촌에는 과거 타성씨들과 함께하며 정자를 세우며 모임을 같이한 역사가
남아 있는데, 황대마을 집성촌 입구 개천가에 남아 있는 九老亭 정자가 대표적이다.
집성촌내에는 영모재라는 재실이 현존하여 남아 있으며 과거 선조님들의 조상 모시기가
대단하였음을 한눈에 알수 있는 귀중한 탐방 여행이었다.

진주시내로 들어서니 남강변에 경남 문화예술회관이 보인다.

경남 내륙의 중심 함양읍내 중심가 풍경

고목 느티나무가 지키고 있는 함양읍 사무소

함양읍내 학사루 전경

함양 객사 자리에 있었던 것을 현재의 위치로 1692년에 중수했다고 한다.

함양군 관내 대표적인 집성촌 도천리와 월림리 위치

한눈에 알수 있는 문강공파 세계도

함양읍에서 3Km 떨어진 도천리 마을입구 표지석

마을에는 현재 진양하씨가 많이 살고 있으며 하씨 재실이다.

일가분들의 집을 찾다가 작은 암자를 짓고 있는 스님을 만났다. 대구 평광동 출신으로 자기도
우씨라고 한다 스님은 이마을과 인연이 되어 왔다며 우탁 선조님을 영적으로 모시고 있다고 한다.

임시 법당과 나그네에게 매실차를 권하고 일가분집을 안내 해 주었다.

도천리 집성촌내 진양하씨 선조를 모시는 위패각이 보인다.


과거 집성촌이었던 도촌리 소수 집안만 살고 있는 마을에 연로하신 일가 할머니를 뵙는다.

도촌리 수령 350년의 소나무


소나무 뿌리 쪽에 샘이 있는 보기드문 풍경이다.

저녁에 도천리 문강공파 집안분의 가정을 방문, 족보를 부인이 더 친숙하게 찾아 보고 있다.

충주 비행장 건설 때 노동 일을 했다는 일가분과 소주를 한잔 하며 집안 이야기를 나눴다.

자제분 중 따님이 전국 태권도를 휩쓸고 있다고 하며 많은 메달이 보인다.

가족들이 함께한 칠순 잔치 사진이 보인다.

서예를 입문했던 딸의 글씨가 보인다. 진주에서 유학중

족보에 나온 함양 정읍 문중의 입향조이신 오곡공 恪 (각) 11세 선조님 (1388년생)

육형제분이 계셨으나 3남과 5남 형제분 자손만 번창이 되었음 알수 있다.


이른 아침 도천리 마을에서 자고 일어나니 동이 튼다.

서울에서 조경업을 하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다시 고향으로 온 일가분 동생

2세 3父子 제단비 아래 새로 확장 건설되는 88올림픽 고속도로가 보인다.


수풀을 헤치며 둘러서 어렵게 도착한 2세 3父子 제단비

문강공파 파 시조공의 막내 손자 이신 11세 梧谷公 恪 (각) 선조님 제단비


오곡공의 셋째 아들이신 決 (결) 12세 선조님 제단비

오곡공 각 선조님의 다섯째 아드님이신 12세 疇 (주) 선조님 제단비

3부자 제단비 조성에 성금을 내신분들


집성촌내 오래된 농가 주택 대문간이 둘러보다 집안을 찾는다.

단양우씨는 떠나고 진양하씨 집성촌으로 바뀐 고가 주택을 둘러 본다.

더위가 한창인 8월 초 멀리서 찾아 온 나그네에게 막걸리로 접대를 하신다.

마루에 제단이 만들어진 보기 드문 한옥 구조를 처음으로 접하게 된다.

1977년에 국무총리께서 하사 하신 4H 활동 공로 표창장이 보인다.

젊은 시절에 수집한 오래된 40년이 된 책자들이 보인다.

함양에 거주하는 집성촌내 타 성씨 어른과의 소중한 만남의 시간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성공한 자제분이 책자를 발간하며 부모님께 받치는 인사 글

함양군청에 근무하시는 자제분이 집필하신 책자를 방문기념으로 선물 받는다.

도천 문중의 종가댁을 찾아 집안 모임 운영에 대한 애로 사항을 청취한다.

안의에서 육십령으로 향하는 도로가에 세워진 황대마을 표지석

월림리 황대 마을 집성촌 전경

九老亭 정자 인근지역 박.우.이.노씨 각기 다른 문중 9개 성씨분들이 성금을 모아 지었다함

집성촌에 함께 하셨던 백씨 성씨의 묘소가 보인다.


문장어른 우병태 어른과 둘째 동생이신 우병오 어른

마루 천정에 오래된 별도의 선반이 남아 있는 주택 구조

30년이 넘는 세월인 1982년과 84년에 문중행사에 만들어진 홍보 접시가 보인다.


옛 담장길이 남아 있는 황대마을 집성촌

재실로 향하다 길목에 위치한 효행 공적비

황대마을 영모재 전경 (1885년)

영모재 현판

문장어른께서 모친 사망시 쓰여질 관을 재실 마루 위 천정에 모셔두었다.
미사용으로 남아 있었는데, 혼자 취재시 음침한 분위기로 혼이 났다.

입향조 어른의 일대기가 세겨진 현판

영모재 중수기 현판 안의 인근 잘 지어진 한옥을 문장 어른의 고조부님 27세
諱 墉(용) 선조님께서 사비를 들여 인력으로 등짐을 메서 옮겨 지었다고 한다.

1977년에 효자 휘 禹公 光男 선조님의 공적 현판

과거 원거리에서 오셨던 일가 어른들이 사용하셨던 재실 방 내부

재실에 들렸다가 근년에 귀촌한 형제의 막내 동생분 집을 찾았다.

잘 지어진 거실 내부를 둘러보며 음료수를 대접 받는다.


막내이신 우병호 전 함양 경찰서 서장님의 재직시절 정복과 사진이 보였다.

마을 문장이신 우병태 어른의 가족사진

멀리서 찾아 온 나그네에게 점심식사를 접대해 주신다.
첫댓글 참 부지런도하십니다. 덕분에 일가분들을 여기에서나마 보게됨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네 회장님 감사합니다
수정하실 내용이 함양운봉 고성 밀양까지 그위 적 할아버지 후손입니다
3세 제단비는 2세 3부자로 결 할아버지 오곡공 3째아들 주할아버지는 5번째 아들입니다
수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