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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수일정과 소개할 내용 ≫ | |||||||||||||||
출국해서부터의 일정내용과 제가 경험한 것을 여기에 상세히 모두 기록하는 것은 무리지만 제 홈을 방문하셔서 저의 북경 연수기에 관심을 갖고 읽어보시는 분들을 위해 제가 북경을 다녀오기 전에 궁금했던 점, 꼭 경험해 보고 느끼고 싶었던 부분들을 중심으로 하여 아주 편하게 기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전반적인 내용을 요약하여 기술한 후에 한 달 동안 북경에서의 연수를 통해 제가 느낀 소감과 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북경에서 가본 유명한 곳을 사진과 함께 소개할테니 기대하세요~~~
2001年, 7月 5日. 우리 학교(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 同學들과 교수님을 동반하여 오전 9:20에 북경으로 출발~ 그러나 비행기 시간이 한 시간 반 연착되는 바람에 도착은 예상보다 늦어졌다.
북경공항에 도착했을 때 벅차 오르는 내 마음을 표현할 적절한 단어를 나는 지금까지도 찾지 못했다. 공항에 도착하자 공항 여기저기에 "中国北京机场 欢迎你!"이라는 글귀가 보였다. '드디어 내가 중국에 왔구나.. 그렇게 와보고 싶어 했던 중국 땽을 내가 밟았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거대한 나라, 무한한 발전가능성을 갖고 있는 나라, 중국.. 그 중에서도 중심인 북경을 한 달의 시간동안 많이 돌아다니면서 보고 듣고 배우리라고 다짐을 하였다. 북경공항에서 약 15분 가량 버스를 타고 들어온 곳에 위치한 "北京化工大学"에 우리는 머물게 되었고 한 달 동안 화공대학교 안의 숙사에서 생활을 하고 그 곳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우리가 숙사에 짐을 갖고 들어갈 때 그 학교의 服务员들은 아주 친절하게 우리를 도와 주었다. 숙사가 새로 지어진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처음 사용하게 되었다. 내 예상과는 달리 숙사는 너무나도 깨끗했고 에어컨과 TV, 개인 욕실까지도 잘 구비되어 있었기에 공부하기에는 전혀 무리가 없는 좋은 환경이었다. 도착 첫 날 짐 정리를 하고 저녁식사를 하러 現在북경어언문화대학에서 연수 중인 선배를 만나 가까운 북경식당을 들어가게 되었다. 중국음식에 대한 이론적인 지식은 있었지만 정식으로 맛을 본 적이 없는 나는 역시나 기대감과 설레임, 두려움이 교차하였다. 음식을 주문하는데 그 동안 교과서에서 배운 유명한 중국요리들을 주문하였다. 물론 茶는 따로 주문할 필요가 없었고 우리나라와 달리 신기한 것은 식사 전에 물이 기본적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물을 마시려면 주문을 해서 돈을 주고 그 값을 따로 지불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중국은 물의 질도 별로 좋지 않은데다가 귀하기까지 하다. 오죽하면 맥주 값이 물값 보다 더 쌀까?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중국요리의 맛은 생각 보다.. 아니 정말 그 이상으로 너무나 맛있었다.. 물론 우리 입맛에 맞을 것 같은 음식만 주문했기 때문이겠지만 말이다. 그 중 가장 내 입맛에 맞는 요리가 '위시앙로우쓰'와 '로우쓰라피'라는 요리였다.. 그래서 나는 이 요리, 특히 위시앙로우쓰는 중국을 떠나기 전 날까지도 먹고 왔다. 중국인들이 왜 그렇게 茶를 좋아할까? 이것은 중국에 가서 중국음식을 먹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중국음식은 정말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기름기가 아주 많다. 따라서 중국요리를 먹으면서 차를 겸하여 먹으면 입안에서 기름기가 사라지고 다시 입맛이 깨끗해진 상태에서 요리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차는 원하면 무한정 준다. 물론 주문해서 사먹는 차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어느 식당이나 차는 제공된다. 우리나라의 물처럼 말이다. 북경에서 거의 대부분의 식사는 학교 맞은편의 "北京烤鸭"라는 식당에서 먹었는데 그 식당의 요리 맛도 좋았고 특히 "服务态度"가 좋았다. 특히 服务员중에 한 명은 우리를 아주 세심하게 배려하고 신경을 써 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오기 전날 그녀에게 한국의 전통사진이 담겨 있는 엽서를 선물해 주고 왔다. 그녀가 정말 너무나 좋아했기 때문에 나는 北京을 떠나는 발걸음이 한층 더 무거워 졌다.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북경에서의 식사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덧붙여 과일 얘길 좀 하자면 가장 많이 먹었던 과일이 복숭아이다. 쌀 뿐만 아니라 맛 또한 너무 달았기 때문에 원없이 복숭아를 먹었다. 그리고 양귀비가 그렇게 즐겨 먹었다는 리쯔도 먹어 보았다. 다른 과일들도 비교적 싼 편이긴 하지만 상점에 따라서 그 가격도 千差万别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즐겨 먹었던 음료수와 과자를 적어보겠다. 흔히 중국에서 먹는 음료수나 과자가 한국에서처럼 맛있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그러나 맛있는 아니, 내 입맛에 맞는 음료와 과자가 있었는데.. 지금도 먹고 싶은 그 음료수는 바로 '真朋友'라는 과일음료였는데 종류가 다섯가지 정도된다. 이 글을 쓰는 지금 真朋友가 간절히 생각날 만큼 내가 북경에서 먹어본 음료 중에 가장 맛있었다. 그리고 과자는 바로 '三加二'이라는 것이었는데 말 그대로 3+2! 과자 세 조각이 샌드위치처럼 가운데 잼을 두고 겹쳐 있었고 그 과자가 두 조각으로 쪼개지게끔 가운데 점선이 가 있는 과자이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인 것 같은데, 여러 가지 맛이 있었고 나는 그 중에 치즈 맛이 가장 맛있었다. 솔직히 그 밖에도 할 얘기가 많지만 먹는 얘긴 여기서 그만 줄이도록 하겠다. 어.. 그리고 내가 떠나기 전에 궁금했던 점이 뭘까? 아! 북경의 여름날씨는 정말 말도 못하게 덥다. 내 피부가 원래 까만 편인데다가 잘 타기까지 하기 때문에 나는 중국에 가서 그 덕을 톡톡히 봤다. 오죽하면 중국에 같이 연수간 후배가 "언니, 언니가 여기 중국 온 울과 사람들 통털어서 젤 까만 거 같아요" T.T 그런 부분에 별로 민감하지 않은 나 조차도 경악할 만큼 북경은 정말 너무나 더운 곳이다. 보통 온도가 39도까지 올라가고 비가 거의 오지 않기 때문에 인공적으로 비를 내리기도 한단다. 한국의 여름과 가장 다른 점은 바로 습기가 없다는 점이다. 덥고 건조한 북경의 여름! 그래서 뜨겁긴 하지만 끈적거림을 느껴본 적은 없다. 한국에 도착했을 때 내가 북경보다 더 덥다고 느낀 것은 바로 습도차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생활얘기는 여기서 접도록 하고 (그 외에 북경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있으신 분은 비록 짧은 한 달의 기간이었지만 보고 온 것, 느낀 것에 대해 모두 알려드릴테니 게시판이나 Q&A를 참조하세요!)
여기서는 한 달 동안 북경을 경험하고 온 나의 소감과 그에 대해 나름대로 정리해본 생각에 대해서 간단히 기술해 보겠다. 중국이라는 곳은 후진국인가 아닌가? 여기에 대해 누군가가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면 나는 "위협적인 후진국"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 한 달 동안 내가 본 북경은 우리나라 보다는 사람들의 의식면, 생활면에서 뒷떨어 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곳에 있는 한 달 동안도 중국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혹자는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 한 달 가 있어서 뭘 보고 느꼈겠냐구..나 역시 한 달 간의 짧은 기간동안 경험해본 북경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는 것이 조심스럽다. 그러나 보고 온 그대로, 내가 느낀 그대로 솔직히 기술하는 것이다. 중국은 정말 무한한 발전 가능성이 있는, 아니 이미 너무나도 빠르게 발전을 준비하고 발전하고 있는 국가이다. 내가 연수한 기간이 7월5일에서 8월4일이기 때문에 북경에 있는 동안 올림픽 개최지가 결정이 되었다. 북경으로 결정이 된 후 바로 내 눈앞에 보이는 숙사직원들은 펄쩍펄쩍 뛰면서 너무나 기뻐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 날 저녁, 아니 밤 새도록 천안문 광장은 열광의 도가니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많은 민족들이 너무나도 흥분했고 기뻐했기 때문에 그리고 신기하게도 정말 그 감정들을 내가 피부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올림픽개최지 결정 다음날로 바로 TV광고부터 해서 곳곳에 올림픽 개최에 대한 표지를 볼 수 있었고 학교 앞 도로주변에 장정들이 꽃을 심기 시작했다. 내 짧은 소견으로도 중국은 올림픽을 치룬 이후에 무섭게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무서운 속도로 말이다. 중국은 정말 많은 인구가 살고 있다. 젊은 사람들이 상점마다 서서 지키고 있고 어디서나 공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크지 않은 작업을 하는데 있어서도 아주 많은 젊은 중국남자들이 웃통을 벗고 일하고 있었다. 저런 곳에도 사람을 쓸 필요가 있을까 싶은 곳에도 북경에는 영락없이 사람이 서 있다. 비록 북경이 중국의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생활모습이 조금 후진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내면까지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느꼈다. 솔직히 내가 갔을 때는 거리에 젊은 여성들은 너무나도 키도 크고 예뻤으며 정말 몇몇 여성들은 한국의 명동거리에 내놓아도 전혀 손색이 없게 옷을 입은 사람도 있었다. 또한 연인사이의 애정표현 또한 한국보다 더욱 과감했다.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알아가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한 달 간의 시간은 정말 너무나 짧고도 짧은 시간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비록 그 짧은 시간 중에도 나는 많은 것을 보고 느끼려고 노력했고 그렇게 가보고 싶어했던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후회없이 보내려고 노력했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나 역시 북경에서의 시간이 완벽했다고는 할 수 없고 그에 따른 후회 역시 많이 남는다. 그러나 한 가지! 중국은 더 이상 우리 밑에 있는 후진국이 아니라는 것, 언젠가 우리가 중국의 경제속에 빨려들어가 흡수돼 버릴 만큼 중국은 여러 면에서 무섭게 발전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존경하는 교수님께서 항상 말씀하시듯이 '문화에는 차이가 있을 뿐, 우열은 없다'라는 말씀의 뜻을 가슴깊이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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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의 신무문을 나서면 바로 보이는 곳이 경산공원입니다. 세 개의 정자가 산의 정상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 특색입니다. 비교적 평평한 베이징 시내에서 가장 높은 곳이며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경산공원은 매산(煤山)이라고도 하는데, 매(煤)란 중국어로 석탄을 말합니다. 이 산은 원(元)대에 만들어졌는데, 그때 석탄을 쌓아올리고 그 위에 흙을 덮어서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 그것은 베이징이 적에게 포위되었을 때 연료에 곤란을 겪지 않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또는 인접한 북해를 판 흙을 쌓은 것이라든가 고궁의 호(壕)에 해당하는 통자하(筒子河)를 판 흙으로 만들었다고도 말해집니다. 경산의 높이는 90m지만, 길도 좋고 급비탈이 아니기 때문에 간단히 오를 수 있습니다. 산 위의 ‘만춘정(萬春亭)’에 서면, 고궁 전체를 조망할 수 있습니다. 황금색의 기와가 널리 물결치고 있는 고궁의 광경은 특히 훌륭합니다.
자금성은 영어로 Forbidden City라고 불리우며 72 헥탈의 넓이에 건축된 방대한 궁전입니다. 1406년에 건축을 시작하여 16년이 지난 1420년에 완공을 한 이 거대한 궁전은 명나라와 청나라의 궁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황제만이 붉은 색깔을 사용할 수가 있었고 일반 시민은 그 색깔을 이용할 수가 없었다고 해서 붉음을 금한다고 해서 자금성이라고 한다고 하나 궁안의 어느 곳에도 자금성이라는 명칭은 없습니다. 단지 고궁이라고만 알려져 있습니다. 자금성에 가면 꼭 듣게 되는 이야기 하나가 있습니다. 황제는 아들들이 많았을 것 아닙니까? 그래서 황제의 후계자를 선택하여 몇 번째 아들이라고 적어 황제의 용상 위쪽에 있는 액자 뒤에 감춰놓았다고 합니다. 황제가 서거를 하면 왕자들과 신하들이 그 숨겨 놓은 종이를 꺼내 보고 지정된 서열의 왕자가 황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금성 안에는 수십 개의 방화수 통이 있습니다. 큰 가마솥 같은 용기에 물을 담아두고 겨울에는 얼지 않도록 밑에 불을 땠다고 합니다. 그 방화수 통의 외부는 금으로 입혀 놓았는데 후에 영국과 프랑스가 중국을 침입했을 때 그 방화수 통은 너무 무거워서 가져가지는 못하고 입혀 놓은 금만 긁어 가져갔다고 합니다. 그런 만행을 기억하기 위해서 지금도 금빛 도금을 외면에 해 놓고 긁힌 자국을 남겨놓고 있습니다. 자.. 그럼 이화원으로 자리를 옮겨 볼까요?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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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원은 북경시 서북 교외에 위치, 도심에서 약 19키로미터 거리로 청나라 때의 황실 원림과 행궁이었다. 이화원의 원명은 청의원이며 1764년에 건조되었다. 부지 290헥타르, 그 중 수면이 220헥타르이다. 원내는 궁정구, 전산 전호구, 후산 후호구 3개 경치구로 나뉜다. 전당, 누각, 정자가 도합 3,000여칸으로 황제와 황후가 정치 활동을 하며 휴식, 유람하던 곳이다. *동궁문* *인수전* *낙수당* *대희루* *서태후* *장랑* *불향각* *청영방(석배)* *17공교* 자.. 그럼 이번에는 아름다운 호수 곤명호로 가 볼까요?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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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원의 바다를 방불케 할만큼 규모가 어마어마한 호수 곤명호(昆明湖 )는, 자연적인 호수가 아니라 사람이 땅을 파서 만든 것이라 한다. 이 호수를 만들 때 파낸 흙을 쌓은 것이 바로 옆에 있는 만수산이다. 이화원의 불향각은 이런 만수산 정상에 위치했는데 그 곳에서 내려다 보이는 곤명호는 햇살에 빛나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불향각을 주체로 지형과 수면을 충분히 이용하여 가산의 조성으로부터 길의 주향, 전당. 누가의 배치로부터 다리의 조형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전통적 원림 조성 기예를 충분히 계승, 발양함으로써 상부 상조의 전체적인 원림 예술 효과를 나타내었다. 또한 이화원의 곤명호와 불향각은 만리장성과는 다른 또 하나의 거대한 '권력'과 '사치향락'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자.. 다음은 만리장성으로 가 볼까요? 그럼 클릭! 이제부터 홈지기 민희와 함께 북경의 곳곳을 둘러볼까요?
현존하는 만리장성은 명대 특히, 그 후반기에 축조된 것으로, 동쪽은 보하이 만 연안의 산해관(山海關)부터 중국 본토 북변을 서쪽으로 향하여 베이징(北京)과 대동(大同)의 북방을 경유하고, 남쪽으로 흐르는 황하강(黃河)을 건너며, 산서성(陝西省)의 북단을 남서로 뚫고 나와 다시 황허 강을 건너고, 실크로드 전구간의 북측을 북서쪽으로 뻗어 자위관에 다다른다. 문화혁명때 농부들은 집을 수리하고 돼지우리를 만들기 위해 장성의 돌을 훔치 곤 하였다. 자.. 그럼 이번에는 중국의 명동! 王府井(왕푸징)을 가 볼까요? 바로 클릭! 이제부터 홈지기 민희와 함께 북경의 곳곳을 둘러볼까요?
왕푸징은 베이징의 중심부에 있고 제일의 번화가여서 외국인 여행객이 많이 찾는 곳이다. 한국의 명동이라고 설명하면 쉬울 것이다. 중국의 수도인 북경의 가장 현대화된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북 1Km의 거리 양쪽에 1백여채의 상점들이 늘어서 있다. 그 한 켠에 전세계 미식가들을 불러 모으는 먹자골목이 자리잡고 있다. 좁은 입구부터 강한 풀잎 향의 독특한 향신료 냄새가 코를 찌른다. 골목 2개를 사이에 두고 1평 남짓한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여 있다. 중국 각지에서 온 55개 소수민족의 전통음식들이 눈과 입과 코를 자극한다. 꼬치구이, 쇠고기 볶음밥, 대나무 밥, 국수, 전갈요리, 메뚜기구이,조선족이 하는 평양식 냉면까지... 이들 음식엔 중국 특유의 향신료인 향채가 들어가 있는데 외국인들은 이 냄새 때문에 중국음식에 불쾌감을 느껴 제대로 먹지 못한다. 향채를 뺀 볶음밥이나 국수에 음료(대개는 차(茶))를 곁들이면 한끼 식사로 거뜬하다.
왕푸징에서 택시로 30분길인 골동품 전문골목 류리창은 한국의 인사동과 흡사하다. 천안문광장에서는 약 20여분 거리다. 동서 7백50m의 이 거리는 18세기초부터 고서나 문물상점이 모이기 시작하여 청나라 때 문화골목으로 번창했다. 각 상점의 처마밑은 하늘을 나는 용이나 화조풍월(花鳥風月) 등으로 화려하게 채색되어 있어 중국 전통미를 물씬 풍긴다. 서적, 그림, 공예품, 자기, 문방사우나 도장재료 등을 전문적으로 취급한다. 어느 상점을 들어가도 고풍스런 갤러리에 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골목을 가득메운 노점상들과 물건값을 흥정하는 재미도 색다르다.
삼리툰 카페골목은 한국의 압구정이라 할만큼 카페가 많다. 근처에 외국대사관들이 자리잡고 있어 외국인들이 많이 붐비는 곳이기도 하다. 카페에서는 각 성(省) 출신 가수들의 라이브 콘서트가 펼쳐져 중국 최신 유행음 인근에는 젊은 감각의 옷이나 잡화 등을 파는 고급 상점들이 모여있어 산책 삼아 돌아보는 것도 괜찮다. 자.. 그럼 이번에는 자전거 천국을 실감할 수 있는 천안문광장으로 출발~
http://myhome.naver.com/deadsociety/yonsu6.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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