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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창설된 제201신속대응여단 초대 여단장
‘보병야전과 특전통’ 이동희 대령
전통을 계승하며, 창조와 혁신을 새긴다
2021년 1월 1일 창설된 제201신속대응여단의
초대 지휘관이라는 중압감을 어깨에 인 채 부대 기반을 다지고 있는 여단장 이동희 대령은 군 생활 26년을 육군 5보병사단 최전방과 특전사에서만 근무한 야전통이자 특전통이라는 점에서 보병과 공수 임무가 병행된 여단을 이끄는데 맞춤으로 보인다. 큰 아들이 5사단 수색중대 최전방 수호병으로 복무한 데 이어 둘째 역시 최근 직계가족 복무부대병으로 5사단 최전방을 지원해서 합격함으로써, 아버지가 소대장, 중대장으로 근무한 부대에 두 아들이 복무하게 되는 진기록까지 세우게 될 군인가족의 엄하면서도 자애로운 가장. 그에게 듣는 아주 특별한 부대 이야기, 그리고 인생 이야기.
3부자가 최전방 같은 수색부대 근무 진기록
먼저 따끈따끈한 최신 소식부터 전해야겠다. 여단에서 가졌던 1차 인터뷰 당시 둘째 아들이 ‘직계가족 복무부대병 제도’를 통해 아버지가 소대장, 중대장으로 근무했던 육군 제5사단의 최전방 수호병을 지원했는데, 결과가 3월 17일 발표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직계가족 복무부대병 제도란 조부, 외조부, 부모, 형제자매가 복무한(복무중인) 부대(아래 1,3군 예하 35개 부대만 해당)에서 군 복무를 하고자 할 때 지원입영하는 제도를 말한다. 전화로 이어진 2차 인터뷰에서 소식을 들었다. ‘다행히도 “합격됐다”’란 답변이 돌아왔다. 분명히 그랬다. 다·행·히·도….
게다가 “너무 감사하고 자랑스럽다”라는 말까지 이어졌다. 사실 전방부대 최전방 근무가 군인으로서 그만한 가치가 있지만, 통상적으로는 그다지 인기 있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더욱이 GP 근무지는, 휴대폰을 갖고 들어갈 수 없다. 휴대폰까지 없는 군 생활, 상상이라도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둘째만이 아니다. 아들만 둘 두었는데, 첫째 역시 아버지가 위관시절 9년 동안 근무했던 열쇠부대, 그중에서도 GP를 담당하는 여단 수색중대를 지원해 최전방 수호병으로 이미 복무한 바 있다. 이번에 둘째까지 아버지와 형을 따라 같은 길을 선택한 것이다.
“어린 시절을 5사단이 있는 연천에서 보낸 아이들입니다. 쉽지 않은 선택일텐데, 그리 결심해주니 정말 고맙고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참, 제 작은 아버지도 5사단 포병으로 군 생활을 하셨으니, 정말 대단한 인연이지요.”
신속대응여단장 이전, 군 생활을 굵직하게 5사단과 특전사 두 곳에서만 근무했다는 이동희 대령은 지난 2008년 5사단 창설 60주년사 발간에 참여하며, ‘1,000년 전우 명품 사단’이라는 표현을 처음 만들었다는데, 전역한 큰 아들에게서 그 표현을 듣고는 감회가 새로웠다고. 자연스레 인터뷰는 지난 군 생활 이야기로부터 시작하는 게 맞을 듯 하다
군인이라는 자부가 당당하다. 6·25전쟁에 참전하며 무공훈장을 받은 할아버지, 5사단 포병으로 근무했던 작은 아버지. 그리고 두 아들 역시 자신이 소대장, 중대장으로 근무했던 5사단 수색대의 최전방 수호병을 지원해서 복무를 마쳤으며, 복무를 앞두고 있다.
군 생활 이력이 명확하게 양분되어 참 굵직합니다. 먼저 그 이야기부터 들려주시죠
대학시절 사회체육을 전공한 저로서는(학군34기) 당연히 특전사로 선발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나, 장교로서 군 생활의 시작은 당연히 소대장으로 임무수행 하는 것이 의미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특전사는 군 생활 중 언제든지 지원할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임관 당시에는 다른 선택을 했던 거죠.그런데 특이하게도 저는 전입 부대에 오래 근무하게 되더라고요. 군 생활 26년을 돌아보니 임관 이후 소대장으로 시작해 열쇠부대에서 5년, 특전사에서 위관 시절 4년, 다시 열쇠부대 수색대대 및 여단 수색중대에서 4년, 이후 특전사로 돌아와 영관 시절 12년을 보내게 되었지요.
보병사단과 특전사에서의 그런 이력이 최초로 창설된 신속대응여단의 지휘관으로서 임무 수행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 같은데요
국방개혁 2.0의 주요 성과로 판단되는, 전·평시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게 될 육군 최초의 신속대응사단 창설의 일원임과 동시에 여단 초대 지휘관으로서의 영광을 멋진 전우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201신속대응여단은 이전의 특공여단을 모체로 탄생했는데, 창설부대 소개와 함께 특공여단과의 차이에 대해서도 말씀 부탁드립니다
2작전사 직할부대였던 3개의 특공여단은 2008년에 205특공여단, 2020년에 201, 203특공여단이 해체되어 역사 속 부대가 되었습니다. 수행했던 주요 임무는 후방지역에 발생 가능한 테러 및 적 침투세력을 탐색격멸하는 2작전사 예비대 임무를 수행하는 전투력이 강한 부대였습니다.
반면 신속대응여단은 국방개혁 2.0에 의거 2019년에 해체된 2보병사단을 모체로 창설된 제2신속대응사단의 예하로 201, 203신속대응여단이 함께 창설되었는데, 각각 201, 203특공여단이 모체가 되었습니다.
여단은 3개 신속대응대대와 독립작전이 가능하도록 포병대대와 직할대가 편제됐으며, 전 평시 다양한 위협에 대해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다목적 부대’입니다.
여단장님께서는 특전사에서도 16년을 근무하신 특전통이신데요, 특전사와도 다소 다른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특전사는 널리 알려진 것처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특수부대입니다 적의 후방지역에 항공기를 이용해 적의 후방지역에 들어가 낙하산을 타고 침투하여 팀 단위로 특수정찰, 항공화력 유도, 비정규전 작전 등을 포함한 특수작전 수행을 주요 임무로 하는 부대입니다. 일반 부대와는 달리 부사관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특전팀이라 부르는 중대는 특수작전을 수행합니다.
작전계획을 세부적으로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우리 신속대응여단도 특전사와 유사한 형태의 작전을 수행하는데, 더 나아가 정규군으로서 공격 및 방어작전을 수행하는 것이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시도 전시지만, 평시에도 임무가 다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평시에는 2작사 지역에서 임무를 수행하는데 작전반경이 넓어지며 특공여단 시절보다 두 배는 더 많은 임무를 수행하는 것 같습니다. 1년여가 쏜살같이 지나갔는데요, 나로호 발사체 경호작전부터, 울진 산불 진화작전까지 많은 작전이 주마등처럼 흘러갑니다.
초대 여단장으로서 우선 부대의 단합에 중점을 두었다. 카카오톡 프로필에는 ‘소통은 존중과 배려로부터 시작된다’라 적어놓았다. 모든 일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라, 서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지론
사실 초대 여단장으로서의 부담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이것만은 반드시 해내자는 마음으로 가장 역점을 둔 게 있다면 무엇인지요
부대의 전력화에 대한 고심도 많았지만, 저는 무엇보다 부대의 단합이 우선이라고 봤습니다. 특공여단 모체에 여러 부대에서 전입 오고, 구성원이 뒤섞이며 보이지 않는 벽과 알력이 생길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1년 동안은 화합과 단결을 위해 힘썼구요, 어느 정도 성과가 보이면서 2년차에는 각자의 역할과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강인한 체력과 함께 훈련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여단장 임무 수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2021년 1월 1일부 창설 이후 여러 장면이 떠오릅니다. 부대원들과 함께 첫 강하를 했던 기억, 근속 20주년 간부 축하행사로 가족에게 감사 인사를 받았던 일, 부대 내 카페를 개장하여 복지여건을 마련한 일, 부대 식별 표지를 만들어 자부심을 고취한 일 등등이 떠오르지만,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육군 최정에 300워리어에 우리 2신속대응대대 81mm 박격포반이 최종 선발되어, 부대 복귀 날 지프를 준비해서 전 부대원의 축하 속에 카퍼레이드를 해주었던 것입니다. 특공여단 시절 60mm 박격포반이 2연속 선발됐는데, 그것까지 치면 3연속 선발되는 대단한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쁠 때가 있다면 힘들었을 때도 있겠죠. 어떤 순간이 그랬나요
물론 부대원이 다치거나, 사고 칠 경우가 가장 마음이 좋지 않지만, 그것은 자주 발생하는 일은 아니어서 다행입니다. 그런데 부대 군견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추모식을 해주었던 기억이 가장 힘들고 안타웠던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창설된 부대의 초대 지휘관으로서 보람되며, 즐겁고 행복하게 여단장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어떤 지휘관으로 남고 싶으신지요
제 카카오톡 프로필에 ‘소통은 존중과 배려로부터 시작된다’라고 적어놓았습니다. 모든 일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라, 서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와 함게 근무하고 있는 전우들과 소통하는 지휘관! 전우들의 공로를 잊지 않는 지휘관! 전우를 믿고 전우의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지휘관! 존경받을 행동을 하는 지휘관! 부대원과 늘 함께 할 수 있는 체력이 강한 지휘관! 이 되고 싶습니다.
부대 창설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해준 부대원들에게 늘 고마운 마음을 갖는다. 육군 최초의 신속대응사단 창설의 일원임과 동시에 여단 초대 지휘관으로서의 영광을 멋진 전우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갖는다고
여단장님께서는 창설부대로서의 창조와 혁신만큼이나 전통의 계승도 중시하신다고 들었는데, 다소 상충된 두 가치가 어떻게 양립할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대한민국이 1948년 건국됐지만, 그 뿌리가 된 상해임시정부를 잊을 수 없는 것 아닌가요. 국군 역시 1940년 임시정부가 창설한 광복군이 모체인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모체는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역사와 전통은 계승되고 발전해야 합니다. 저는 얼마 전 201특공여단 전우회 분들과도 만났습니다. 접견실에는 201신속대응여단의 창설뿐 아니라 모체가 된 201특공여단의 역사와 궤적도 함께 전시되어 있습니다. 부대의 발전을 위해 계속 관심가져 주시고, 함께 하자고 하니 모두 좋아하시더라구요. 부대에는 특공여단 시절 묻어둔 타임캡슐도 있습니다. 개봉까지는 시간이 좀 더 남았지만, 그것 또한 우리 모두가 부대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저는 국방개혁2.0의 성과물인 국내 최초의 신속대응사단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모든 역량을 그 임무수행에 맞추어 끊임없이 새롭게 갈고 닦아야 한다는 창조와 혁신의 자세도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함께 해온 여단 장병들에게 한 말씀 하신다면
코로나19 상황에도 불구하고 부대 창설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해준 부대원들에게 늘 고맙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우리 황금독수리 장병들은 ‘불굴의 투지로 이겨놓고 싸운다!’라는 여단의 부대훈처럼 어떠한 임무가 부여되더라도 서로를 믿고 함께 지지않는 투지를 갖고 임한다면, 우리 앞에는 승리가 함께 하리다고 생각됩니다. 승리하는 부대를 만들기 위해 다 같이 노력해 나갑시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HIM>을 발행하는 사랑의책나누기운동본부의 전언에 의하면 여단은 바쁜 훈련중에도 독서에 열심인 부대라 하는데, 혹시 젊은 장병들에도 꼭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 있으신지요
뉴욕에 거주하는 저널리스트 톰 밴더빌트의『일단 해보기의 기술』이라는 책을 젊은 장병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습니다. 저부터도 배워보고 싶은 것이 있는데도 도전해보지 않고 고민만 했던 기억이 많습니다.
구경은 그만, 이제는 행동할 차례입니다. 꼭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배우는 게 아니라, 어느 날 문득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운다든지 오랫동안 배우고 싶었던 일을 갑자기 해 본다든지 하면서 자신의 삶에 변화를 주고 다양한 여러 가지의 것들을 경험하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뇌가 활성화된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우리 젊은 장병들에게도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배우려는 자세를 조언하고 싶습니다. 일단 해봐야 뭐라도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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