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도희(1972년 8월생)
내 이름은 김도희. 나이는 31세. 잘 나간다는 외국계 투자회사에 다니는
싱글 커리어 우먼이다. 주변에선 나 같은 사람을 '청담동 피플'이라고도
한다. 직장 일이 끝난 뒤엔 서울 강남구 청담동을 열심히 쏘다니기 때문이다. 청담동을 자주 찾는 것은 회사와 집과 가까운 까닭도 있지만 열심히 일하며 보낸 하루를 기념하고 내일을 위한 활력을 얻기 위해서다. |
◈ 커리어우먼 김도희씨의 밤과 휴식
서울 청담동. 유행의 보증수표라고 할 만한 트렌드의 첨단 지구다. 세계 무대에 내놔도 빠지지않는 최신 유행으로 개성있게 차려입은 패션 피플들이 거리를 활보한다. 명품 매장에 진열된 상품은 눈을 즐겁게 한다. 미국 뉴욕의 거리나 일본 도쿄의 복판에서 유행하는 새로운 레스토랑이나 바(bar)도 모여 있다.
이 곳에 들르면 우선 입이 행복감에 젖는다. 외국 영화에서나 보던 멋스러운
사교와 파티 문화도 감상할 수 있다. 흔한 표현으로 '물 좋은 곳'이고, 고급 유행으로 분주한 동네다. 그러다 보니 청담동 문화에 거리감이나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적지않다. '사치만 있고 철학은 없는 비(非)문화 지역'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와 같은 청담동 피플들이 단지 트렌드만 좇는 것은 아니다. 그 한가운데 서서 세상의 변화를 읽고 다음날 업무로 확대 발전시켜나간다.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열정과 활력을 함께 나누면서 말이다.
다른 번화가에서도 이같은 발전적 향유가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청담동에는 매너가 존재한다는 점이 나를 편안하게 한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은 있지만 방해나 간섭은 안한다. 장소나 분위기를 해치지
않기 위해 드레스 코드를 갖추는 것이 자연스러울 정도다. 배고픔을 달래기보다는 미식(美食)을 즐기는 여유도 있다. 이를 "사치스럽다"고 말한다면 "멋스럽다""우아하다"고 쏘아붙이고 싶다.
최근 청담동의 달라진 모습을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게다. 외환위기와 경기 침체를 겪으면서 무척 건실해졌다. 실속없는 겉치레 공간은 버텨내지 못한다.
음식 맛은 엉망인데 겉만 번지르르하게 꾸민 레스토랑이나 카페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이들이 떠난 자리에는 합리적인 가격과 독특한 개성을 갖춘 공간들이 들어섰다.
김도희씨(왼쪽)'미즈'에서 저녁을 먹고 ,(오른쪽)외국잡지 전문점 '르북'에
들러 해외의 유행을 엿봄
동남아.중국.일본 등의 아시안 스타일 레스토랑이 더해졌다. 프렌치.이탈리안
음식 등과 공존하며 청담동 공간에 새로운 맛을 제공한다. 무척 반가운 일이다. 술 문화도 마찬가지다. 위스키 바.와인 바.일식 주점.포장마차 등 동서양과 한국이 함께 하면서 다양한 음주문화를 나눌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어느 광고 문구처럼 '2% 부족'이 현실이다. 외국에서 온 손님들과 청담동을 찾을 때 그나마 객관적인 평가를 듣는다.
그들은 "패션은 있으나 역사는 없다"고 입을 모은다. 유행을 선도한다는 미명
아래 억지로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상인들, 그리고 진득하지 못하고 쉬 싫증내는 청담동 사람들이 문제다. 이들을 '역사를 망치는 훼방꾼'이라고 다른 지역
사람들이 비난해도 청담동 피플인 나도 변명할 말이 없다.
파리.뉴욕.도쿄 등 세계적인 패션 도시의 번화가 안에는 몇 십년 동안 그 곳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명소들이 많다.
현재 청담동 피플의 사랑을 받는 장소들이 내 나이 50세가 됐을 때 그 자리에
남아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레스토랑이든 바든 포장마차든 구멍가게든 상관없다. 훗날 서울 청담동의 화려하고 우아했던 추억의 잔을 그 자리, 그 분위기에서 다시 맛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녀가 즐겨 찾는 청담동 공간베스트 10
1. 호면당 (511-9517)
뉴욕 스타일 누들(국수)바. 건강식을 주제로 해 식사에 대한 부담이 덜하다.
즐겨 먹는 메뉴는 아보카도와 장어를 주 재료로 만든 롤 요리인 송 스페셜(1만2천원). 호해면(1만4천5백원)은 해산물로 우려낸 국물이 시원하다. 면 위에 올려지는 대파 채와 쑥갓이 시원함을 더한다.
2. 무비 (518-2924) [상세정보보기]
퓨전 일식으로 청담동에서 주목받는 레스토랑들을 몇 개 배출시킨 남경표
주방장의 솜씨를 만날 수 있는 곳. 새로운 맛 외에 요리의 연출이 멋스럽다.
비프 스테이크(2만6천원), 된장소스메로구이(2만3천원), 알밥(1만6천원)
3. 라미띠에 (546-9621) [상세정보보기]
예약 하지 않으면 식사가 어려운 프렌치 레스토랑. 맛과 서비스로 승부한다는 서승호 주방장이 미식가들에게 특별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예약할 때 데이트인지 비즈니스인지 목적을 물어 그에 맞는 메뉴를 제안하는 차별화를
시도한다. 오리간 요리(2만8천원)와 생선요리(4만원)가 주 메뉴.
4. 빌라 드 하노이 (3444-0101) [상세정보보기]
베트남 부촌의 가정집을 연상케 하는 건물과 인테리어를 갖췄다. 쌀국수와
쌈요리 등 다양한 베트남 요리를 만날 수 있다. 중국요리와 흡사하지만 한결
담백한 맛이다. 새우·게살·야채를 버무린 고이하이산(1만3천원)이 내가
즐겨 먹는 메뉴.
5. 미즈 (546-2229)
퓨전 로바다야키집이다. 저렴한 가격에 생선회를 즐길 수 있는 곳. 5만~6만원만 준비하면 친구 3명에게 술과 식사를 한꺼번에 쏠 수 있다. 젠(Zen)스타일의 실내분위기. 가끔 이정재·김원희·전진 등 연예인도 눈에 띈다.
6. 카페74 (542-7412)
커피와 음료를 마시는 카페지만 식사시간엔 파스타와 샐러드 등의 간단한
음식을 낸다. 동양요리라 부담없고 질리지 않는 중국식 파스타(1만7천원)가
매번 내가 먹는 메뉴. 해산물·크림·봉골레 파스타 등이 먹을 만하다.
7. 카사델비오 (542-8003)
청담동에서 아주 잘 나간다는 와인 바. 비교적 저렴한 가격과 세련된 실내
분위기가 매력 포인트. 그러나 정말 놀라운 것은 10쪽이 넘는 와인 리스트다. 독일산 뤼즈링 화이트 와인 한병 시키고 안주로 메뉴판에 없는 과일과
야채를 섞어 달라고 해도 군말 없이 오케이.
8. 베라짜노 (517-3274)
저렴한 가격대에 다양한 종류의 와인을 갖춘 바. 일반 주택으로 초대받은 느낌이 든다. 와인 동호회 회원들과 모일 때 자주 이용하는 장소. 겨울철에는
군고구마를 구워주는 등 청담동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서비스로 유혹하기도 한다.
9. S-바 (546-2713)
집에 들어가서 드레스 코드를 바꾸고 찾아가는 위스키 바. 뉴욕
·파리 등에서 유행하는 펑키한 라운지 음악이 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사람들을 들뜨게 한다. 세련된 레드 컬러와 편안한 맛의 '코스모폴리탄'을 주문하고 내가 청담동 피플임을 확인한다.
10. 오뎅바 돈부리 (517-9570)
기분이 울적한 날 노처녀 언니랑 즐겨 찾는 집. 소박한 일본 스타일 바(bar)다. 테이블에서 끓고 있는 오뎅(1만5천원)과 따뜻한 정종이 기분을 '업(up)'
시켜준다. 쉽게 찾기 어려운 골목길에 있어도 좌석 잡기가 어려울 정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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