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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꿈이있어행복한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박목사
10. 열왕기와 역대기의 테마 여행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거절하면 그도 우리를 거절하실 것이며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실 것이다.
“이 때에 여호와께서 비로써 이스라엘을 찢으시매”(왕하10:32)
본래 히브리어의 성경은 열왕기상, 하가 한 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무엘 상 하, 역대상하도 모두 한권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던 것이 히브리말 보다 부피가 1/3이나 많은 헬라말로 번역될 때 두루마리 책의 길이가 제한되어 있으므로 상하로 분리된 것이다.
열왕기의 저자는 아마 예레미야였을 것이다. 그 책은 최초의 성전이 아직 서 있는 동안 쓰여 졌다(왕상8:8). 열왕기상하는 사무엘서의 연속으로 솔로몬 왕시대의 사건들과 그들 계승하는 유대와 이스라엘 왕들의 사건들에 대한 것을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분리 된 왕국과 이스라엘과 유대가 노예로 끌려간 것을 찾아보게 된다.
남부왕국(유대)에는 20명의 왕이 있었으며, 북부왕국(이스라엘)은 19명의 왕이 다스리고 있었는데 그 기간은 약 400여 년간으로 그 기간의 왕국의 부흥과 쇠퇴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이 두 권의 책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책으로 열왕기 외에는 전혀 아는 바 없었던 역사의 기록물을 오늘날의 고고학자들은 발견해 내고 있다.
여기에 기록된 왕들의 생애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말해준다.
1. 하나님은 사람들을 차별하는 분이 아니시다(행10장).
2. 우리의 모든 것이 제단 위에 놓여질 때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로 하여금 불나리기를 기다리도록 하지 않으신다(왕상18:38). 이것의 영적의미는 무엇일까?
3. 마지막 포로생활은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불순종 때문이었다. 이 사실은 이전에 이미 예언되었다(신28:49).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개개인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셨나?
열왕기는 다윗 왕으로 시작하여 바벨론의 왕으로 끝난다.
이 열왕기는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을 다스린 역대의 왕들에 대한 기록으로 솔로몬의 통치기간 중 가장 부강이 극치에 달하였다. 솔로몬의 죽음으로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왕을 통해 다스리시던 매개 정치는 사실상 끝나고 위대한 엘리야에 의하여 선지시대가 새로이 열려가기 시작했다.
열왕기상은 선지자 엘리야의 이야기로 끝나고 열왕기하는 엘리사를 중심으로 전대되고 있다. 이스라엘과 유대 왕국은 그들이 포로생활을 하기 전부터 기우려지고 있었다.
열왕기상 하의 장면들
장면1. 솔로몬의 찬란한 통치 - 왕상1-10장
장면2. 분열된 왕국 - 왕상11-16장
유대의 열왕 - 왕상15:1-24절, 이스라엘의 열왕 - 왕상15-16장
장면3. 엘리야의 사역 - 왕상17-22장 왕하1:1-2:2
장면4. 엘리사의 사역 - 왕하1-9장
장면5. 이스라엘의 부패로 인한 포로생활(이스라엘의 거역) 및 분산 - 왕하1-17장
장면6. 유대의 포로생활(유대의 거역) 및 분산 - 왕하13-25장
장면1 - 솔로몬의 찬란한 통치(왕상1-10장)
장소 : 예루살렘 인물 : 솔로몬, 다윗, 나단, 아도니야.
나이 70세인 다윗왕은 그의 나이에 비해서 너무 일찍 늙은 편이었다. 그때 그의 아들 솔로몬은 겨우 19세였다. 다윗의 몸이 쇠약해진 것을 기회로 왕위를 차지하려는 소동이 벌어졌다. 아도니야가 그의 아버지의 왕좌를 취하려 한 것은 그가 다윗의 살아남아 있는 아들중에서는 가장 맡아들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다고 볼 수 있다(삼하3:4). 이 반란은 선지자 나단에 의해 곧 평정되었다. 다윗은 그의 계승자로서 솔로몬이 가장 적합한 아들임을 알았다. 솔로몬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였다(대상22:9, 왕상2:15).
솔로몬의 선정이 백성들을 흡족히 해주었음은 명백한 사실이었다(왕상1:39, 40). 아도니야의 반란으로 오히려 솔로몬은 다윗이 죽기 전에 왕관을 물려받게 되었던 것이다(왕상1:30, 39, 53).
솔로몬은 선지자 나단으로부터 종교에 관한 지식을 넓혔다. 이 현명한 선지자는 솔로몬을 지극히 사랑했으며, 그에게 “여호와께 사랑을 입음”란 뜻의 “여디디야”란 별명을 지어주었다(삼하12:25). 솔로몬의 집정은 찬란한 영화로 시작되었으나 솔로몬의 생애는 사울과 같이 허망 되이 끝났다.
“왕의 마음이 그 부친 다윗의 마음과 같이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치 못하였으니”(왕상11:4).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의 마음을 원하신다.
솔로몬은 위대한 왕이었으며 그의 왕좌는 세상에서 찾아 볼 수 없는 가장 찬란한 왕좌였고 그의 생애는 놀랍고도 기이한 일들로 가득 차 있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6만 평방마일이나 되는 광대한 그의 왕국 영토는 그의 아버지가 물려받았던 땅보다 거의 10배나 더 큰 땅이었던 것이다.
노쇠한 왕 다윗은 여호와에게 충성된 종이 되라고 그의 아들에게 유언을 남기고, 40년간의 통치와 함께 그의 최후를 마치었다.
저 영국의 유명한 빅토리아 여왕은 젊은 몸으로 대영제국의 왕이 되었을 때, 먼저 켄터베리의 대주교를 찾아가 자기를 위해 기도해 줄 것을 원하였다.
대주교와 챔벌린 경은 함께 꿇어 앉아 하나님께서 여왕에게 은총과 함께 지혜를 내려주실 것을 기도드렸다. 영국의 빅토리아 朝가 어떻게 그토록 부강할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우리는 알게 되었다.
나라와 백성을 다스린다는 것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이다. 솔로몬도 그 점을 인식하였기 때문에 왕위에 오르게 된 그는 그의 집정을 기도로서 시작했던 것이다.
* 솔로몬과 그의 성격
Ⅰ. 위대하고 선한 솔로몬
1. 솔로몬은 그에게 “여호와께 사랑을 입음”이란 뜻의 ‘여디디야’란 별명을 부여한, 현명하고 경건한 나단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였다(삼하12:25).
2. 그의 왕직은 온전한 것이었다. 온 성은 “솔로몬의 나라위에 앉았다”고 기쁨의 환호성을 울렸다(왕상1:46).
3. 그의 아버지로부터의 유언은 축복의 약속으로 가득했다(왕상2:1-9).
4. 하나님께로 부터의 지혜의 선택은 하나의 거룩한 선택이었다(왕상3장).
5. 그의 내각은 그 어느 왕때보다도 훨씬 규모가 컸다(왕상4장).
6. 그의 생애를 집중시킨 위대한 업적은 성전건축이었다. 적어도 약 8,100억여원(삼십억불)의 건축비가 소요된 그 성전 건축 헌당식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나도 호화로웠던 것임으로 기록에 전해지고 있다.
7. 그가 세운 왕국은 여호수아에게 기록되어 있는 광대한 업적을 400년 후에 결국 확보하였던 것이다(수1:4).
8. 솔로몬의 주권과 부귀영화는 스바 여왕의 정신을 현황케 하였다.
“여왕의 정신이 현황하여라”(왕상10:5)
9. 그의 인생의 아름다움은 시45편에 암시되어 있다.
10. 그의 뜨거운 사랑을 아가에게 찾아보자(솔로몬의 아가).
“솔로몬은 이와 같이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왕이었으나, 우리는 곧 퇴폐해가는 그의 행로를 본다”
Ⅱ 솔로몬의 약점과 각오
1. 그의 부친 다윗과 달리 그는 그의 형 아도니아를 무참하게 처치하였다(왕상 2:24,25).
2. 사울과 같이 그의 마음은 점점 자만해져 갔다(왕상10:18-29).
3. 이방 첩들에 이끌린 그는 우상숭배에 빠졌다(왕하11장).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후6:14)
솔로몬은 영적인 지혜를 얻어내지 않았다. 절망적인 마음을 내포하고 있는 전도서는 바로 그 고백이다. 그는 하나님과의 신실한 관계에서 얻어지는 화평한 마음이 없었다.
1. 지혜로운 선택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집정초기에 그의 꿈에 나타나셔서 그가 원하는 것 한 가지만 선택하라고 하셨다. 그 때 젊은 솔로몬 왕이 무엇을 택했는지 말해보자.
그는 자신이 무능력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원하는 대로 지혜를 주셨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는 무엇을 약속하셨나?(약1:5)
다윗이 그의 아들을 가리켜 “지혜있는 자”라고 말한 것과 같이 솔로몬은 과연 그러했다(왕상2:6-9).
솔로몬은 “듣고 분변하는 마음”을 주시기를 간구했던 것이다. 우리도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신약에 “내가 솔로몬보다 더 크다고 하신 예수님” 외에 솔로몬을 따를 지혜의 소유자가 또 없었다(마12:42).
온 세상이 솔로몬을 칭송하고 존중하였다. 그러나 정말로 솔로몬보다 더 큰 이(그리스도)가 오셨을 때는 그의 백성들은 그를 영접하지 않았던 것이다(요1:11).
그것이야말로 비극이다!! 당신은 지금 어떠한가? 그리스도를 영접했나?
솔로몬은 그의 왕국을 다스리는 첫 걸음으로 현명한 인재를 온 나라안에서 불러 모아 각기 중요한 직책을 담당케 하였다.
이것이 곧 후일에 솔로몬 왕국을 극치의 부영의 나라로 끌어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2. 건축된 성전(왕상5:1-8:66)
솔로몬 집정기간 중 가장 큰 사업은 성전건축이었다.
그 건축의 기초 초석은 아주 육중하게 큰 돌로서 그중 한개의 길이가 38피트 9인치나 되는 것도 있었다.
이곳은 오늘날 오말 회교도들의 소유지가 되어 있다.
거창한 모양의 돌들, 향내 나는 백향목, 황금으로 도금된 실내장식품등 모든 특출한 건축재들이 성전을 더욱 웅장 화려하게 빛냈다.
3. 역사적인 터전
성전이 건축된 장소는 역사적인 터전이다.
아브라함은 모리아산 위에서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쳤다(창22:2).
다윗이 어떻게 아리우나의 타작마당을 샀으며 오늘날 그곳엔 회교도들의 오말사원이 서 있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이 성스러운 땅을 밟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배웠다.
유대인들은 성안으로 들어갈 수 없으므로 멀리 이곳까지 찾아와 그 성밖에서 성전이 있었던 곳을 향하여 하나님께 자비를 구하고, 그들의 원수의 손에서 놓아주실 것을 간구하는 것이다.
그들 앞에 가로막힌 성벽의 돌들은 솔로몬 전당의 기초돌로 사용되었던 그 돌들이다.
4. 황금의 진리
예전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하여 성전을 향해 순례를 떠났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우리의 몸이 곧 하나님의 전이라는 놀라운 진리를 알게 되었다(고전3:16, 6:19).
과연 당신의 몸은 참다운 성전이 되어 있는가?
하나님은 당신 안에 거하시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죄에 빠져 있으면 하나님은 당신 안에 거하실 수 없다.
5. 성경에 기록된 새 성전
첫째, 솔로몬의 성전 - 이 성전은 주전 587년에 바벨론 사람들에 의하여 파괴되었다(왕하25:8,9).
둘째, 스룹바벨의 성전(스5:2, 6:15,18) - 물론 이 성전은 웅장함이나 우아함에 있어서 솔로몬의 성전을 따를 수 없었다.
셋째, 헤롯의 성전 - 이 성전은 주전 20년에 광대한 대지위에 세워지기 시작하여 주후64년에 준공되었다. 이 성전은 주후 70년에 디도에 의하여 파괴되었고 지금은 오말 회교사원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4. 솔로몬의 영광스러운 통치
왕상9:1, 28과 10:14-29을 읽고 그러한 영광가운데 있는 솔로몬으로서 저지를 수 있는 위험을 생각해 보자!
그의 높은 명예와 심오한 지혜, 그리고 절대의 권리와 막대한 부! 이러한 영광된 환경에서 하나님을 잊지 않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바로 이러한 영광이 솔로몬을 타락의 길로 이끌었던 것이다. 그가 하나님을 배신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대적하여 싸울 적군을 보내어 그를 괴롭히셨다.
구약의 전도서는 이 때의 솔로몬의 인생이 그 얼마나 허무한 것이였던가를 말해 주고 있다. 솔로몬은 40년간 나라를 통치하였다.
솔로몬의 그 영화의 집정이 절정에 다 달았을 때 이를 본 스바의 여왕은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이 죽기 1년 전에 그의 아들을 위하여 드린 기도가 이루워진 것을 목격하였던 것이다.
솔로몬의 높은 명성이 세계방방곡곡에 널리 퍼진 것은 아마도 여러 곳으로 항해한 그의 해군 때문이었을 것이다(왕상9:21-28).
주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솔로몬의 이름은 스바의 여왕에게 커다란 관심을 주었다. 스바여왕은 ① 솔로몬과 그의 지혜, 그리고 그의 부로 말미암아 깊은 인상을 받았고, ② 솔로몬의 신하들에 의하여 더욱 강한 인상을 받았으며, ③ 그의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정신이 크게 현황되었다(왕상10:1,7,8,9).
장면2 - 분열된 왕국(왕상11-16장)
장소 : 예루살렘 인물 : 르호보암, 여로보암.
솔로몬은 두 번째로 완전히 통일된 왕국을 40년간 다스렸다(왕상11장). 집정초기에는 모든 일이 순조로웠으나 후기에 가서는 혼란상태에 이르렀다. 여러분은 사울, 다윗, 솔로몬이 모두 40년간씩 통치하였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행13:21, 삼하5:4, 왕상11:42).
솔로몬 집정기간 동안 백성들은 과중한 세금 때문에 크게 괴로움을 당하였고 사치와 우상숭배는 그들의 도덕생활을 부패로 이끌어 넣었다. 솔로몬이 원하는 대로 부귀와 권세를 누리기 위하여는 백성들은 도탄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솔로몬은 백성들에게 반감을 사게 되었고 백성들은 반란을 일으킬 마음을 갖게 되었다.
솔로몬은 또한 예루살렘에 그의 궁전을 건축하기 위하여 많은 재료를 외국으로부터 사들이는 한편, 외부로부터 많은 기술자를 초청하여 호와로운 궁전을 세웠다. 그러는 동안 나라는 혼란과 부정으로 부패해 갔으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백성들 간에는 울분의 마음만 더욱 커갔던 것이다.
1. 이스라엘 지파간의 시기심
왕국을 분열로 이끄는 사건들을 생각해 보자, 이미 오랫동안 북방 왕국(이스라엘)과 남방왕국(유다)간에는 상호 대립감정을 품고 있었다.
이 두 족속간의 시기심은 먼 옛날 삼백년 전으로 소급되어 그 때의 에브라임과 유대족속간의 시기심에 요인하는 것이다.
야곱이 에브라임에게 준 축복을 다시 한번 주의 깊게 읽어보자(창48:17-22, 42:22-26). 그 후 에브라임 족속에 속한 여호수아의 때로부터 에브라임은 그 지도력을 크게 하였었다. 그러다가 유대지파의 다윗이 왕에 오르자 억눌렸던 유대의 세력은 다시 고개를 들게 되었다. 이러한 연고로 해서 위축된 세력 속에 기회만 엿보고 있던 지파간의 질투가 크게 폭발된 것은 솔로몬의 고압적인 정치체계 때문이었다.
그의 지나친 정권반동은 백성들의 원한을 샀으며 그의 하나님께 대한 불충실함은 심판을 초래하였다(왕상11:26-43, 12:4).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백성들의 짐을 더 한층 무겁게 하였으며, 그의 현명치 못한 집정은, 사사시대이래 300년을 두고 원한이 쌓이고 쌓인 백성들의 마음에 불을 질러 놓았다. 옛 지파의 반란이 무섭게 일어났다(왕상12:16). 유대와 베냐민족속만이 르호보암을 따르게 되었고(왕상12:17), 한편 북방왕국에서는 여로보암이 왕의 자리에 올랐다.
2. 왕국 쇠퇴의 원인
이스라엘 역사상 중요인물이 된 새로운 한 사람이 일어났으니, 그의 이름은 곧 여로보암이었다. 그는 비천한 태생의 사람이었으나, 그의 성실한 성품과 행위는 그로 하여금 귀한 자리에 오르게 했다. 아히야 선지는 그의 새 옷을 열두 조각으로 찢고 여로보암에서 놀라운 사실을 예시하였다(왕상11:31).
왕국은 마침내 분열되었다. 오랜 시기를 두고 부와 명예와 권세를 자랑하던 솔로몬 위에 심판이 내려진 것이다. 온 이스라엘 땅은 부정과 혼란으로 부패하여 갔으며 그 위에 우상숭배마저 창궐케 되어 회복할 수 없게 되었다.
하늘에 빛나는 태양이 사라져 보라! 풀, 나무, 꽃, 과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우리들에게서 하나님이 떠나가 보라! 우리에게는 집, 학교, 사회생활 그 어느 것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된 원인이, 종교적인 부패가 그 원인 중의 하나였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3. 죄로 인한 분열
백성들 자신은 의식치 못하였더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목적을 이루어 나가고 있었다(왕상12:15, 11:29-33).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의 통치자로 세운 솔로몬이 그의 명령을 순종치 않는 것을 묵과하실 수 없었다.
마침내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의 왕국은 갈라졌다. 그때로부터 이스라엘은 약 3,000년 동안 분리된 상태에 있게 되었다. 이스라엘 왕국은 죄로 인하여 분리된 것이다. 그 분리된 왕국은 심지어 외국이 포로가 되기까지 이르렀다(왕하17장, 25장).
그 때에 갈라진 이스라엘은 그리스도께서 영광 중에 재림하시게 돌 때 다시 통합하게 되리라고 성경말씀은 우리에게 알려준다(사11:10-13, 겔37:15-28까지의 놀라운 말씀을 읽어보라).
장면3 - 엘리야의 사역(왕상17-22, 왕하1:1-2:2)
장소 : 길르앗의 고지 인물 : 엘리야
엘리야 선지는 하나님께서 사악한 왕 아합과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을 치기 위해 보내신 하나님의 “불덩어리”이다. “길르앗에 우거하는 디셉 사람”이란 간단한 소개로 기록되어 있는 이 엘리야선지는 역사의 페이지에 번개 불같이 갑자기 나타나, 무섭고 날카로운 빛을 던진 사람이다. 엘리야란 곧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이란 뜻이다.
엘리야는 여러 선지자들 가운데에도 가장 뛰어난 선지자였다. 그의 돌연한 출현, 불굴의 정신, 불같은 정열, 갈멜산에서의 고고한 승리, 깊은 절망, 회오리바람을 타고 영광의 승천, 그리고 변화산상에서의 다시 나타남, 등에 대하여 주의 깊게 공부해 보자.
엘리야는 길르앗 고지 주민으로 격한 성격의 사람이었다. 그의 길고도 숲이 많은 머리털은 허리에 맨 가죽띠까지 늘여 떨어져 있었다.
여호와께서는 악한 이방 여인 이세벨을 아내로 삼은 아랍 왕의 집정하에 바알신을 섬기는 백성들에게 우상숭배를 제거하기 위하여 엘리야선지를 보내셨다.
산지에서 갑자기 나타난 이 엘리야가 화려하고도 장엄한 왕궁에 들어가 왕 앞에 서서 담대히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고 말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 땅에는 3년 반 동안 우로가 내리지 않았다. 그 후 그는 바알 선지들을 갈멜산에 모아 놓고 하늘에서 불이 내려주시기를 여호와께 간구했다. 갈멜산에서의 크나 큰 사건을 다시 한번 읽어보자!
장면4 - 엘리사의 사역(왕하1-9장)
장소 : 사마리아 인물 : 엘리사
엘리사는 엘리야의 뒤를 이은 선지자이다.
불같이 역사한 엘리야 선지에 비해 엘리사는 자비롭게 역사하였다.
엘리야 선지는 엘리사를 그의 후계자로 훈련시켰다. 50년 동안 선지자 일을 한 엘리사는 친절과 자비로 이적들을 행했고 역대왕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쳐 주었으며 그들이 위기에 처할 때에는 지체없이 구원해 주러 가곤 하였다.
엘리야와 엘리사는 서로 대조적인 성격의 선지자이다.
엘리야는 율법과 심판과 준엄의 선지자.
엘리사는 은혜와 사랑과 온유의 선지자.
악한 왕후 이세벨에 의하여 들어온 바알 숭배는 30년후 엘리야, 엘시사, 예후 선지들에 의해서 단절되었다.
장면5 - 이스라엘의 부패(왕하1-17장)
장소 : 사마리아 근경 인물 : 이스라엘의 왕들
북방왕국 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은 이스라엘 땅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었던 세겜을 수도로 정하였다.
이스라엘에는 정기적으로 예루살렘에 올라가 예배하는 풍습이 있었다(신12:11, 14, 16:6, 15,16, 삼상1:3,7) 여로보암은 자기의 백성들 즉, 열 지파족속들이 남방왕국 르호보암의 나라 수도인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가 르호보암의 편이 될까봐 두개의 금송아지를 깍아 만들어 백성들이 다니기 편리한 남쪽지방 벧엘 - (창28:11-19)과 북쪽지방 단-(삿18:29,30)에 두고 백성들로 하여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대신 금송아지를 섬기에 하였다.
1. 인간이 만든 종교를 조심하라.
여로보암의 악행에 대하여는 20회 이상이나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란 말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사람이 만들어낸 종교를 식별할 줄 알아야 한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히10:25).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영적인 불길을 밝게 타오르도록 하기 위하여 함께 모여 예배해야 한다고 하신다. 이스라엘은 256년 후에 앗수르 왕에 의하여 볼모로 끌려갔다(왕하17장). 앗수르 사람들은 힘세고 잔인한 호전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다른 나라들로부터 빼앗은 땅에 그들의 왕국을 세웠다. 그들의 만행은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그들은 사람을 산채로 가죽을 벗겨냈으며, 혀를 자르고 눈을 빼냈으며,사지를 토막 냈으며, 더욱 사람들의 공포심을 자아내기 위하여 시체의 해골을 무더기로 쌓아 올려 해골산을 만들기도 하였다. 300년간 앗수르 나라는 세계적인 강국으로 자처하고 있었다.
장면 6 - 유대의 포로생활(왕하13-25장)
장소 : 유대지역 인물 : 유대의 열왕
남방왕국은 북방왕국을 정복하려하여 두 왕국간에는 80년간 전쟁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정복하지 못했다. 그후 80년 동안 이 두 왕국사이에는 여호사밧(남방왕국)이 아합(북방왕국)의 딸과 결혼함으로서 평화가 깃들게 되었으나 얼마 후 다시 그들은 싸움을 시작하여 그 싸움은 그들이 다 볼모로 잡혀 갈 때까지 50년 동안 계속했다.
남방왕국의 왕조는 하나뿐인 다윗 왕조이다.
이 다윗왕조는 르호보암으로 시작하여 시드기아 왕까지 이르렀다. 그 기간을 통하여 위대한 선지들은 이사야, 나단, 예레미야, 요엘, 스바냐였다.
북방왕국이 앗수르에 의하여 볼모로 끌려간 지 136년 후 다시 유대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하여 볼모로 끌려갔다.
예루살렘은 파괴되었고, 성전은 불태워졌으며 왕자들은 끌려갔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저버리고 선지자들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1. “악인의 길은 험한 길”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그에게 순종하고 의지할 것을 원하신다.
열왕기상에서 우리는 자만과 교만으로 가득 차 있던 이스라엘이 산산이 흩어지는 것을 본다. 열왕기하에는 많은 죄를 지은 이스라엘이 볼모로 잡혀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과연 “악인의 길은 험한 길”이다.
불순종의 백성들을 경멸하시는 가운데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은 사랑하사 자비로움과 측은함을 가지고 계셨다.
유대인의 몰락에 가장 깊은 원인은 왕하 3:2에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충실하자.
악을 행함으로서 우리에게 선한 보상이 오는 법은 없다.
열왕들의 행적을 쭉 살펴볼 때 우리는 그 과정에서 가련하고 허무한 인생행로를 많이 보게 된다.
그 기간 중 가장 적극적이었으며 현명하게 움직이는 인물은 엘리야와 엘리사였다.
엘리야는 이스라엘의 “힘”이었다. 아합 왕의 이세벨 왕후는 백성들을 우상신들 앞에 굴복하게 하려했으나 엘리야는 굳건히 서서 여호와를 나타냈다. 왕상 17:1의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이러한 말씀을 다시 생각해보자! 악한 마음으로 방황하는 백성의 무리를 앞에 그는 여호와를 위하여 반석과 같이 굳건히 서 있었던 것이다.
주의 : 이스라엘의 몰락과 유대의 퇴폐에는 크나큰 차이가 있었다.
즉, 이스라엘은 온 나라가 산산히 흩어졌는데 그것은 무한정의 분산이었고 유대의 흩어짐은 하나님께서 70년으로 한정하신 것이다. 유대는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었고 그 유대족으로부터 장차 메시야가 오실 예정이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 메시야가 바벨론이나 앗수르의 땅이 아니라 팔레스틴으로 오게 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그의 계획을 실천하시기 위하여 심지어는 적국의 통치자들까지도 사용하셨다.
예를 들면 파사의 고레스 왕은 모든 유대인들이 팔레스틴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선포까지 하여 유대인을 귀향시키기에 힘썼던 것이다.
2. 기억할 사항
구약의 역대기와 같은 기록물에서 우리는 유대인의 역사를 찾아보게 된다.
이 유대나라를 통하여 우리의 주님은 세상에 오셨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위대한 약속과 함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이 유대백성들을 택하셨다. 여호와는 아직도 그들의 하나님이시다(롬11:1).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그들 가운데에서 이루실 목적을 가지고 계신다. 이러한 진리로 비추어 볼 때 역대기는 새로운 의미와 능력을 지니게 된다.
큰 부흥을 일으킨 통치자들이란?
아사왕 - 대하15장, 여호사밧왕 - 대하20장, 요아스왕 - 대하23,24장
히스기야왕 - 대하29-31장, 요시야왕 - 대하35장
예수그리스도는 열왕기와 역대기에도 왕으로 묘사되어 있다.
11.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테마 여행
에스라 및 느헤미야는 사무엘과 열왕기가 각각 한 책으로 되어 있었던 것과 같이 히브리 성경에 있어서 원래는 한권의 책이었다.
이 책들은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들이 오랜 유랑생활 끝에 귀향하는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다. 이 책은 또한 바벨론의 유랑생활에서의 복귀에 대한 내용도 실려 있다.
1.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요절
스7:10 - 에스라의 요절, 느6:3 - 느헤미야의 요절
2. 하나님은 기억하신다.
이 두 책은 약 백 여년의 내력을 취급하고 있다.
1) 이 두 책은 다 같이 바벨론에서 시작하여 예루살렘에서 끝을 맺는다.
2) 두 책 다 이 책을 쓴 하나님의 사람을 중심삼고 있다.
3) 두 책의 이야기는 똑같이 바사왕의 선포(포고)로 시작된다.
4) 두 책 다 건물(성전)에 관한 것을 주요한 소재로 취급하고 있다.
5) 두 책 다 제9장에 굴종과 고백의 긴 기도문이 실려 있다.
6) 두 책 다 백성의 정결로서 끝맺고 있다.
하나님의 목적은 혹 지연되는 것 같은 때도 있기는 하나 절대로 버려지는 일은 없다.
느헤미야는 “모세에게 명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했다(느1:8).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그의 약속을 어떻게 기억하셨으며, 또 어떻게 그의 백성을 유랑생활에서 해방시키셨는지 나타내 보이고 있다. 렘 29:10-13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기억하심에 대하여 찾아보자.....
3. 복귀를 약속하심
포로생활을 하는 선지자 예레미야와 에스겔은 유대의 복귀에 대해 말했으며 예루살렘을 재건하게 될 것을 예언하였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이 일이 70년 후에 일어나리라는 것을 예언했다(렘29:10).
열왕기 상,하권이 북부왕국 이스라엘의 포로생활과 남부왕국 유대의 포로생활에 대한 이야기로 끝맺쳐 있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다니엘도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잡혀갔다.
포로 역사에 나타난 최종의 사건이 곧 사자굴 안에 있던 다니엘의 이야기이다(단5:16-24). 이러한 일은 고레스가 바벨론지역의 왕이 되기 약 10여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다니엘은 유대백성이 복귀의 기쁨을 알게 되었을 때 이미 나이 많은 노인이었다.
“뒤를 돌아보며”-우리는 사로잡힌 이스라엘이 두 번째로 속박의 나라에서 벗어나오는 것을 본다. 첫 번째는 애굽으로 부터였다. 이번 출국시에는 모세 대신 에스라가 백성의 인도자였다. 모세와 같이 그는 하나님의 성신에 감동받은 작자이며 지도자였다.
두 사람 다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세움을 받은 위대한 통솔자였으며, 율법사(입법자)였고, 선각자였으며, 사로잡힌 이스라엘을 노예 신세에서 구출해 낸 영웅들이었다.
“앞을 바라보라” - 속국에서 돌아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의 본국 땅을 밟으면서도 마음은 불안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발 디딜 땅을 굳게 하셨다. 그 땅은 이 전도 하나님의 것이었거니와 지금도 여전히 그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이곳에 다시 돌아오게 하시고, 시온을 멸망중에서 일으키시고자 하셨다.
에스라의 장면
장면1. 스룹바벨 인도 하에 복귀와 성전의 재건 - 스 1-6장
장면2. 에스라 인도 하에 복귀와 개혁 - 7-10장.
유대인의 국민생활을 재건하는데 약 100년 걸렸다.
1. 두 중요시기
1) 20년(주전537-517년)
바사의 고레스 왕 1년부터 다리오 왕 6년까지 스룹바벨과 제사장 예수아(여호수아) 지도 하에 성전을 재건하였다. 다음 각 성구를 찾아보자.
* 스 1-6장, 스가랴, 학개, 대상1장과 대하36:22-23, 시편126편,
그리고 고레스에 대해서는 사44:23-45:8
2) 25년(주전458-433년)
백성의 지도자인 느헤미야와 제사장 에스라가 예루살렘의 성곽을 재건하고 예루살렘 성읍을 복구시켰다. 말라기는 그 당시의 선지자였다.
에스라는 위의 두 기간에 대하여 다 기록하였고, 느헤미야는 성벽을 건설한 제2기에 대하여만 기록하고 있다.
2. 포로생활과 복귀(復歸)
유대민족은 처음에 앗수르에게 포로로 끌려갔고(왕하17장), 두 번째로는 바벨론에 의하여 포로가 되었다(왕하25장). 그들은 바사 나라의 집정하에서 본국으로 돌아 오게 되었다. 이들을 볼모로 데려간 바벨론 나라는 그 후 바사 국가 메데국에 의하여 정복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방왕국 즉 이스라엘의 열 지파 족속들은 앗수르 나라에 끌려간 후 내내 돌아오지 못했다. 그들이 어떻게 되었나 하는 것은 우리의 큰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장면1 - 스룹바벨 인도하에 복귀와 성전건축(스1-6장)
장소 :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 인물 : 바사왕 고레스, 수룹바벨, 다리오왕
스 1:1-6을 보면 바사의 고레스 왕이 그 나라에 사로 잡혀 와서 얽매어 살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 갈 수 있다는 포고령을 내렸다.
200년 전에 이미 여호와께서는 그와 같이 되리라는 것을 예언하셨고 그 일을 위하여 사용할 사람의 이름이 고레스라는 것까지 밝혀 놓으셨던 것이다.
고레스 왕이 세상에 태어나기 훨씬 이전이니 놀랍지 않은가!(사44:28, 45:1-4)
고레스 왕이 이러한 선포를 하게 된 이유는 그가 이사야서를 읽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편 왕궁 안에서 다니엘이 끼친 영향도 지대하다.
그는 왕궁 안에서 왕에게 보좌하는 중책을 맡고 있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에 의하여 바벨론으로 끌려갔던 왕자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1. 온 나라의 귀향
고레스왕의 첫 명령으로(B.C.537) 약 5만 명의 유대인이 스룹바벨의 인솔 아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되었다(스 1:1-4).
이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명칭이 유대인으로 불리워진 것을 우리는 찾아보게 된다. 그 이유는 그들의 대부분이 유대지파 족속에 속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고레스왕은 수룹바벨에게, 오래전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약탈해간은 그릇과 금 그릇들을 다시 돌려주었다(스 1:5-11). 백성들은 700여마일이나 되는 길도 없는 사막을 지나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 돌아 왔다.
70년 전 바벨론으로 끌려간 유대인들은 상류계급의 사람들이었고 그 외는 본국에 그대로 남아 괴롬을 당하고 있었다(렘24:5-8, 44:15).
포로생활로 끌려간 사람들도 70년이란 세월이 지나는 동안 가정을 가지고 그런대로 만족하게 살아 왔다.
그들 중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겠다고 한 사람은 경건하고, 성실한 유대인들이었다.
그들은 어떠한 위험이나 난관에 부닥치더라도 그것을 헤치고 기어이 사막을 횡단하여, 그들의 옛 고향인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결의를 굳게 하고 귀로에 올랐던 것이다.
오늘날 세계 각처에 흩어져 살고 있는 유대인들이 이제 그들의 나라를 찾아 팔레스틴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보라, 그러나 아직도 많은 유대인들은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다. 물론 바벨론에 있던 유대인의 대부분이 유대족속이었겠으나, 그 중에는 이스라엘 각지파의 사람들이 섞여 있었을 것이다.
그 모든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모하는 사람들만이 옛 고향으로 돌아갈 결심을 했다. 그 70년 동안 바벨론에서 출생한 유대인도 많았겠고 그들은 ‘포로’가 아니라 망명객들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흩어진 유대인을 ‘디아스포라’라고 하나, 영어식 발음은 “다이아스포라”이다.
2. 하나님께서 부담하심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기 위한 많은 비용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으로 떠나가는 무리들의 여비 그 밖의 모든 필요한 것까지도 고레스 왕을 통하여 마련해 주셨다(스 1:4,6).
그래서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성전의 은기와 금기를 보관해 두시기 위하여 바벨론을 이용하셨다”고 말하기도 한다.
예루살렘으로 돌아 온 유대인의 이름들이 에스라 2장에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돌아온 즉시 최초의 일로서 성전의 기초를 닦았다. 슬픔의 날들이 지나고, 이제 그들에게는 기쁨이 왔다.
그들은 자기들이 살 집을 세우기에 앞서 무엇보다 먼저 주님의 집을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또한 성전을 건축하기에 앞서 먼저 여호와 앞에 제단을 쌓았다(스 3:2).
3. 먼저 하나님을!
우리 인간생활에는 항상 죄가 따라 다니고 있다. 그럴 때 우리는 먼저 하나님을 우리 마음에 모시고 우리의 마음을 올바로 가져야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해 주실 수 있다. 유대인 종교의 중심은 ‘제단’이고 그리스도인 신앙의 중심은 ‘십자가’이다.
4. 일이 방해되다
유대인들이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해 일을 수행코자 할 때 훼방하는 자들이 있었다(스 4:1-22). 하나님을 위한 참된 일에는 그러한 훼방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상’과 짝하지 말아야 한다. 격심한 반박과 반대는 그들의 마음을 약하게 하였다.
그들에게는 학개의 使信이 필요하였다. 학개서를 참고로 읽어보라.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는 백성들을 격려하여(스 4:23-5:17) 4년 내에 성전은 완축되었으며, 하나님 앞에 헌당하였다(스6장).
스룹바벨의 지도아래 재건된 성전은 아주 간결하고 단순한 건축이었다.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과 같이 정교하고 웅장한 건축은 아니었다. 파괴 가운데 다시 세워진 솔로몬 전의 하려했던 모습에 비해 너무나도 대조적이어서, 그 당시의 솔로몬 전을 보았던 어떤 노인은 소리 높여 통곡하였다 한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집임에 틀림없으므로 백성들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용기와 희망을 되찾았던 것이다.
장면2 - 에스라 인도 하에 복귀와 개혁(스7-10장)
장소 ;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 인물 : 에스라
에스라 7장에 이르러, 비로소 에스라는 직접 그 모습을 나타낸다(B.C.458).
제1차 귀향자들이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지 60년 후 에스라는 다시 제2차로 1700명이나 되는 무리들을 이끌고 바벨론을 떠나 4개월이나 걸려 팔레스틴으로 돌아 왔다. 에스라는 백성들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거의 맹목적으로 도와준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를 가지고 떠나왔다(에스라7:11-8:14).
에스라7:25절을 읽고 바사 왕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에스라의 깊은 사랑에 얼마나 감동되었는지 보라.
우리 믿는 사람들도 이와 같이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 주 하나님의 말씀-성경에 큰 감명을 받게 하는가?
이로부터 다시 13년 후에 아닥사스다 왕은 느헤미야에게 예루살렘 성벽을 쌓도록 허가 해 주었다(느2장).
이들 바사 왕들 즉 고레스, 다리오, 아닥사스다 세 왕은 유대인에게 극진한 호의를 베푼 왕들이다.
1. 회당에서의 예배제도 설립
전통설에 의하면, 유대인들이 타국에서 포로 생활을 할 때 예배드릴 곳을 가지기 위하여 에스라는 공회당 예배제도를 그 때 처음으로 마련하였다고 한다.
성전은 이미 파괴되었고, 백성들은 예배할 곳을 무척 갈구함으로 유대인이 사는 거주지역 마다 적당한 장소를 마련하고는 거기에서 사람들은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배웠다. 유대인들이 본국에 돌아 온 후에도 이러한 예배센터가 지속 되었으며 이스라엘 국내 뿐 아니라, 국외에 흩어진 유대민족 가운데에도 이러한 공회당이 세워지게 된 것이다.
2. 동시대 역사
구약성서의 역사는 유대인이 포로생활에서 복귀한지 약100년 후에 끝난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아는 희랍의 알렉산더 대왕이 바사(페르샤)를 정복하고 그들의 손에서 세계의 패권을 잡은 것도 한편 유대인이 복귀의 길에 오른 지 100년 후였으니, 알렉산더 왕도 유대인에게 커다란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
3. 서기관 에스라
에스라에 대하여는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여,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한” 사람이라고 기록되어 있다(에스라7:10). ‘에스라’라는 이름은 ‘도움’이란 뜻이다.
그는 구약역사의 위대한 세 영도적인 기록자 중의 한 사람이다(모세, 사무엘, 에스라).에스라는 당대의 문예와 교회부흥에 크게 이바지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 임명하신 성경을 편집하는 일에 열중하였다.
전통학설에 의하면 에스라는 구약성경(정성)을 엮은 120명 연구원의 회장이었다는 학설도 있다. 그는 또한 역대기 상하권의 일부와 시편 119편의 저자였다는 것이 또한 그에 대한 전통파학설이다. 또한 이미 언급된 바와 같이 에스라는 오늘날의 우리의 예배당의 모체인 유대인 공회당의 창건자이기도 하다.
에스라의 지도와 영향 아래 성경연구의 위대한 부흥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겠다.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그는 그곳의 모든 상태가 자기가 생각했던 이외로 악화된 것을 발견했다. 거기에 남아 있던 백성들은 비록 우상숭배를 하고 있지는 않았으나, 이방사람들과 통혼하여 그들로부터 배운 악습을 행하고 있었다(에스라9:1-4).
그 중에도 왕자들과 통치자들이 그러한 영향을 가장 크게 받고 있었다.
에스라는 너무 마음이 아파서 머리를 뜯고 옷을 찢으며 몹시 슬퍼하였다.
에스라의 애절한 기도와 고백을 보라(에스라9:5-15).
4. 에스라의 기도
에스라가 울며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을 때(에스라10:1-44), 그의 주위에 많은 무리가 모여와 자기들의 죄를 시인하고 참회하였다. 즉시로 에스라는 그들과 더불어 하나님께 거룩한 언약을 맺었다. 죄의 고백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고 계신지 읽어보라(요1:9)!
5. 느헤미야의 기도
느9장에서 그의 기도를 읽을 수 있다.
성경 안에 기록된 ‘기도’는 하나도 빼놓고 읽어서는 안 되겠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특권이다. 에스라의 기도가 끝나는 데에서 느헤미야의 기도가 이어지고 있다.
그의 기도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완전히 내어 맡긴, 깊은 신뢰와 굴복의 기도이다(느9:1,2와 에스라9:15-10과 비교해 보라).
6. 하나님의 약속은 이행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유대 백성들을 70년 후에 바벨론으로부터 이끌어 내오시리라고 약속하셨다(렘25:11,12, 29:10)에스라 첫 구절에서 우리는 “여호와께서 바사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어” 유대인의 복구를 선포하게 하신 것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기도를 통하여 그의 뜻을 이루시고자 하신다.
유대인의 ‘복귀’는 이스라엘로서는 받을만한 가치가 조금도 없었으나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마음’ 때문에 받은 것이다.
7. 하나님의 백성의 복귀의 결과
첫째 성전의 재건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그와 백성들 간의 교통의 문을 열어 놓으셨다. 70년이란 긴 고난의 세월 끝에 백성들은 기꺼이 그들의 본국으로 돌아가 성전을 재건할 결심을 하였고 진정한 여호와의 종(그리스도)이 오실 때까지 기다릴 것을 다짐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장차 땅위에 구속자가 오실 것을 다시 확약하셨다. 그 구속자는 팔레스틴과 관련을 갖게 될 것이라는 것이 예언되었다.
셋째로, 갈4:4에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때가 찰 때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실 것을 준비하였다.
느헤미야의 장면
장면1 - 성벽의 수축(修築) : 느1-7장
장면2 - 백성들의 도덕개선 : 느8-13장
장면1 - 성벽의 수축(느1-7장)
장소 : 수산궁,, 바사나라, 예루살렘 인물 : 느헤미야 아닥사스다(바사왕)
느헤미야는 바사왕궁에서 왕의 잔을 받드는 일을 했다. 이것은 대단히 높은 직위였다. 그러나 이와 같이 높은 직위에 있으면서도 느헤미야는 자기의 조국과 백성을 항상 생각했다. 예루살렘이 황폐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의 마음은 심히 슬펐다. 그러한 그의 슬픔은 감출 길 없어 마침내 왕에 눈에까지 띄었던 것이다. 유대인들이 본국으로 돌아 간지도 이미 100여년이 흘렀건만 그들은 예루살렘이 훼파된 것도 고치지 못했다.
아닥사스다 왕의 계모는 유대의 여인 에스더였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일할 수 있는 허락을 받은 것도 에스더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그는 왕궁의 모든 호화로운 생활을 버리고 모국으로 돌아가 예루살렘을 재건할 결의를 굳게 할 만큼 충성스런 사람이었다.
1. 드디어 예루살렘이!
느헤미야가 주전 445년에 예루살렘에 도착하였을 때 에스라는 그곳에서 13년 지낸 후 였다. 에스라는 제사장이어서 그곳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있었다.
예루살렘에 도착한지 사흘 만에 느헤미야는 한 밤 중임에도 불구하고 성위에 올라 황폐한 성벽을 목격하고 곧 사람들을 소집하여 그들을 격려한 후 성벽 쌓는 일을 시작하였다.
이 일은 가족별로 분담하여 52일 만에 끝났다. 느4:6에 “백성이 마음 들여 역사하였음이라”는 말씀에 그들의 열의가 나타나 있다. 느헤미야는 훌륭한 건축기사였음에 분명하다.
2. 사방에 적!
유대인의 적은 첫째로 사마리아인들이었다. 그들은 유대인이 하는 일을 방해하려 하였기 때문에 느헤미야는 일하는 사람들을 둘로 나누어 한편에서 일하는 동안 또 한편 사람들을 경계하도록 시켰다.
그런데 뜻밖에도 반대의 소리가 유대인 무리 안에서 일어났다. 유대인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일에 지쳐 불평을 토하고 소동을 일으켜 성벽수축 공사는 제대로 진전되어 가지 못했다. 성벽을 올려 쌓기 전에 거기에 쌓여진 흙을 치워야 했는데, 너무나 엄청나게 많은 그 흙더미를 차나 어떤 운반물의 힘을 빌릴 수 없었던 그 당시에는 일일이 사람의 손으로 치워 버려야 했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피곤한데다가 부자들에게 빌린 고리(高利)를 지불할 수 없어 불평의 소리는 더욱 높아만 간 것이다.
적들은 유대인들이 성을 거의 완축시켜 나감을 보고 다시금 흉계를 부려 느헤미야를 물리치려 했지만 느헤미야가 그들의 꾀에 넘어가겠는가?
그 동안에도 바사 왕들은 모두 유대인에게 극진한 호의를 베풀었다. 느헤미야는 일을 마친 후 예루살렘의 행정을 그의 동생 하나님에게 마꼈다(느7:1-4).
느헤미야가 조사한 전체수는 42,360명이었고 그 밖에도 종의 수가 7,337명이었으며 245명의 노해하는 남여 악대가 있었다.
장면2 - 백성들의 도덕 개선(느8-13장)
장소 : 예루살렘 인물 : 느헤미야, 에스라, 백성들
1. 말씀의 부흥
온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문 앞에 모여, 서기관이던 에스라에게 모세의 율법 책을 가져오게 하여 그 말씀을 알게 해 달라고 청하였다. 에스라는 단위에 올라서서 백성들 앞에 율법을 설명해 주었다(느8:1-13). 이러한 공중 앞에서의 율법의 낭독은 백성들의 참회를 일으켰던 것이다.
요시아 왕이 성전에서 율법서를 찾았을 때에도 백성들 간에는 큰 부흥이 있었다. 현대의 종교개혁은 마틴 루터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을 때 일어났다. 오늘 우리는 다같이 이 ‘말씀’을 읽어 개인부흥, 가정부흥,,,,일어나야 한다. 그래서 교회는 부흥하게 되어 있다. 말씀대로 살면,,,
2. 백성들의 도덕 개선
바벨론의 포로생활은 유대인의 우상숭배의 악습을 고쳐 주었다. 유대인은 그들이 사로 잡혀 외국땅으로 끌려가게 되기까지 우상을 숭배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포로가 되어 외국으로 끌려간 이 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간 약 2,500년간에 유대인은 그 우상숭배죄를 다시 범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의해 봐야 한다.
유대인들은 우상을 섬기는 이방인들과 통혼함으로서 우상숭배의 죄를 범했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ale지 않는 사람들과 통혼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 바울은 말했다(고후6:14).
느헤미야는 편안하고 호화로운 그의 생활을 버리고 위험하고 고달픈 삶을 택하여 주님과 조국을 위해 일한 개혁자였다.
또한 느헤미야는 기도의 사람이었다. 그의 인품에서는 한 점의 결점도 찾아 볼 수 없는 주님께 대한 사랑과 조국과 동포를 위한 사람이었다.
예수그리스도는 에스라와 느헤미야 책에 어떻게 묘사되고 있나?
3. 성경말씀 훈련
이 책을 배우는 모든 성도들은 먼저 성경 말씀을 미리 읽어 와야 한다. 말씀으로 내 자신이 먼저 훈련되어져야 본 강의가 쉽게 접근되어 진다. 말씀을 사모하는 밭이 중요하다. 말씀을 사모하는 몸부림없이 왔다가는 몇 날이 못 되어서 포기하게 된다. 우리는 말씀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말씀이 하시는 순간순간을 포착 잘 하는 성도가 바로 깨어 있는 성도이다.
* 중간복습
구약성경 역사개요 -
1. 족장시대 : 아담에서 모세까지 - 창세기
2. 위대한 지도자의 시기 : 모세에서 사울까지 - 출애굽기~사무엘상
3. 위대한 열왕들의 시기 : 사울에서 바벨론의 포로생활까지 - 삼상,하,왕상,하,대상,하
4. 외국 왕들의 시기 : 포로생활부터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에스라, 느, 에스더,겔,단
*족장시대에서 알아야 할 것 ; 하나님의 택함 받은 사람들, 하나님의 택함 받은 가족들,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들과 이스라엘의 각 지파를 기억하자^^
*하나님의 택함 받은 사람들 : 창세기에서는 국가를 찾아볼 수 없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택하셔서 그를 알게 하셨으나 세상은 더욱 더 악해졌다(창6:5).
택함 받은 사람들 - 아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음, 셋: 아담의 경건한 아들, 에녹 :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 노아: 방주를 지은 인내의 사람, 셈(노아의 아들)과 그의 후손들.
*이 시대에 일어난 중대한 사건 들 - 창조: 창1,2장, 타락: 창3장, 홍수: 창6-8장, 바벨탑과 분산: 창11장.
그 결과로 형성된 4대 국가 - 북아프리카의 애굽, 지중해상의 페니키아(수리아), 디그리스와 유브라데 강 사이의 갈대아, 갈대아 북방의 앗수르.
* 하나님의 택함 받은 가족들 - 인류는 죄를 범했다(창6:5).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약속을 한 가족에게로 제한하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불러 이스라엘의 선조로 삼으셨다.
아브라함을 부르심(창12:1-25:11), 야곱이 선택됨(창25:19-36장), 요셉이 사랑을 받음(창45,46장)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들 - 열두지파는 한국가가 되었다.
위대한 지도자의 시기 : 모세에서 사울까지, 출애굽기에서 사무엘상까지의 성경, 우리는 이 기간을 통하여 사건을 찾아낸다.
출애굽 - 출애굽기, 광야에서의 방황 -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가나안의 정복 - 여호수아, 사사들의 집권 - 사사기.
* 위대한 열왕들의 시기 : 사울에서 바벨론 포로생활까지
사무엘, 열왕기, 역대 및 선지서에서 나타난 성경, 부족생활은 국가로 발전했다. 이간에 중요한 인물은 사울과 다윗, 솔로몬이다.
분열된 왕국은 이스라엘의 열왕 - 북부왕국, 유대의 열왕 - 남부왕국, 북부왕국의 몰락, 남부왕국의 몰락 원인은 불순종과 우상숭배이다. 즉 살아있는 예배의 부실과 자기마음대로 드리는 예배정신이다.
*외국 왕들의 시기 - 포로생활로부터 그리스도가 오기까지,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에스겔 및 다니엘에 나타난 성경말씀,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강림을 위한 땅과 백성 및 세상을 준비하시고 계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