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 2024.01.08 03:30
다비트 오이스트라흐
▲ 다비트 오이스트라흐의 모교인 우크라이나 오데사 음악원. 우리나라의 대학교에 해당하는 고등 교육기관이지만, 바이올린 신동 오이스트라흐는 중·고등학생 나이인 15세에 입학해 이곳에서 4년간 바이올린을 배웠어요. /우크라이나 유형문화재 등록부
푸른 용의 해인 2024년이 이제 힘차게 시작했습니다. 이맘때 클래식 애호가에겐 "올해는 또 어떤 음악가가 특별한 해를 맞이할까?" 찾아보는 게 쏠쏠한 재미입니다. 클래식 관련 기획사나 페스티벌 주최 측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해마다 특별한 인물에 맞춘 행사를 준비하죠. 2024년은 '특별한 해' 관련 행사로 만나게 될 음악가들이 유독 많은 해입니다. 다양한 개성과 색깔을 지녔던 인물들의 이야기가 일 년 내내 쏟아질 것 같아요. 맨 먼저 올해 사망 50주기를 맞게 되는 음악가를 소개합니다. 20세기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불리는 다비트 오이스트라흐(1908~1974)가 그 주인공입니다. 그는 수많은 명연과 녹음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그를 잇는 훌륭한 제자들까지 길러내 바이올린의 역사를 새로 썼답니다.
다비트 오이스트라흐는 1908년 우크라이나 오데사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항구도시인 오데사는 20세기를 주름잡은 명연주자를 여럿 배출한 지역이죠. 바이올리니스트 나탄 밀시테인, 피아니스트 에밀 길렐스 등도 여기 출신입니다. 오이스트라흐는 여섯 살에 데뷔 음악회를 열 정도로 음악에 천재적인 능력을 보였다고 해요. 1923년 오데사 음악원에 입학해 바이올린을 배웠는데, 졸업 연주회에선 연주가 어렵기로 유명한 타르티니의 소나타 '악마의 트릴', 프로코피예프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등을 거뜬히 연주해 냈습니다.
1927년 오이스트라흐는 러시아 모스크바로 자리를 옮겨 바이올린 연주자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합니다. 전 세계 내로라하는 음악가가 한자리에 모여 경연을 벌이는 '국제 콩쿠르'가 막 생겨나던 참이에요. 오이스트라흐는 이런 초창기 국제 콩쿠르에서 놀라운 성과를 거뒀답니다. 1935년 제1회 비에니아프스키 콩쿠르에서 당시 16세였던 천재 소녀 지네트 느뵈에 이어 2위를 차지했고, 29세였던 1937년 제1회 이자이 콩쿠르(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의 전신)에서 우승해 세계 음악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죠. 안타깝게도 곧이어 일어난 2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연주 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참혹하기로 악명 높았던 전투인 1942년 러시아 도시 스탈린그라드 공방전 당시에도 그 도시를 찾아가 연주하는 등 음악에 대한 열정을 이어갔어요.
오이스트라흐는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소련 정부가 서방 세계(보통은 미국과 서유럽 국가를 아울러 부르는 표현이에요)에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인물이었습니다. 1949년 핀란드를 시작으로 1953년 프랑스, 1955년 미국 순회공연을 다녀오기도 했어요. 그러면서 점차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인정받기에 이릅니다. 소련의 다른 연주자들과 달리 자국 밖으로 나가 미국과 서유럽에서도 활동했던 덕분에 그의 연주와 녹음은 더욱 빨리 알려질 수 있었어요.
세계를 누비던 당시 오이스트라흐는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명연을 숱하게 남겼답니다. 지휘자 오토 클렘퍼러와 녹음한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유진 오르먼디의 지휘와 함께한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등이 유명해요. 또 제1회 쇼팽 콩쿠르 우승자였던 피아니스트 레프 오보린과 함께 녹음한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연주는 현재도 바이올리니스트들의 교과서로 불립니다. 특히 실내악 연주는 그의 주 활약 무대였습니다. 레프 오보린, 첼리스트 스비아토슬라프 크누세비츠키와 함께 호흡을 맞췄던 '오이스트라흐 트리오'는 1940년대부터 20년 넘게 소련의 실내악 공연에서 대표적인 피아노 삼중주 팀으로 자리매김했어요.
오이스트라흐는 중년에 접어든 1959년부터는 지휘자에도 도전했어요. 자신만의 개성을 갖춘 뛰어난 지휘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 거죠. 1974년 10월 그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브람스 교향곡 전곡 연주를 마친 직후 숨을 거둬요. 갑작스러운 심장마비였다고 합니다.
오이스트라흐의 바이올린 연주는 풍성하고 깊이 있는 음색, 매력적이고 설득력 강한 악상, 아무리 어려운 부분이라도 절대 흔들리지 않는 여유로운 기교 등이 특징이에요. 17세기 바로크 음악부터 20세기 당시 최신 음악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모두 높은 완성도로 소화해 냈어요.
오이스트라흐는 분주한 일정에도 틈틈이 시간을 내 제자들을 길러냈어요. 그는 1939년부터 모스크바 음악원 교수로 일했답니다. 그가 길러낸 제자들도 명성이 대단해요. 1958년 제1회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우승자였던 발레리 클리모프, 개성 있는 프로그램과 기획력으로 현재까지도 최고의 인기 연주자인 기돈 크레머, 43세라는 안타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날카로운 기교와 세련된 음악성을 지녔던 올레크 카간 등이 오이스트라흐의 제자들입니다.
가장 특별한 제자는 그의 아들 이고리 오이스트라흐예요. 이고리는 아버지의 바이올린이었던 '스트라디바리'를 물려받아 연주했고, 아버지의 중후한 음악성과 흡사하면서도 솔직담백한 해석을 들려주어 많은 호평을 받았습니다. 아들인 이고리는 2021년 세상을 떠났지만, 바이올린의 전통은 손자인 발레리 오이스트라흐가 또다시 이어받았어요. 1961년생인 손자 발레리는 주로 실내악 분야에서 활발한 연주를 하는 동시에 브뤼셀 왕립 음악원,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3대를 이어오는 바이올린 연주자의 명맥, 생전에 길러낸 수많은 제자, 녹음된 연주를 듣고 아직도 많은 감명을 받는 사람들…. 그 속에서 오이스트라흐의 전설은 오늘도 살아 있습니다. 떠난 지 반세기가 지나도 여전히 강한 생명력을 지닌 연주들을 감상하면서 그 위대한 유산을 경험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 오이스트라흐(오른쪽)가 대를 이어 바이올리니스트가 된 아들 이고리 오이스트라흐(왼쪽)와 함께 서서 미소를 짓고 있어요. 오이스트라흐 가문은 아들 이고리뿐만 아니라 손자 발레리까지 3대에 걸쳐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닷컴
▲ 오이스트라흐의 고향 도시 ‘오데사’.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예요. 2년 전부터 이어진 러시아의 침공으로 오데사 성당 등이 파괴되는 피해를 입고 있어요.
▲ 20세기 중반 소련을 대표하는 ‘피아노 3중주’ 팀을 이뤘던 ‘오이스트라흐 트리오’. 사진은 오른쪽부터 오이스트라흐(바이올린), 레프 오보린(피아노), 스비아토슬라프 크누세비츠키(첼로). /브릴리언트 클래식
김주영 피아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기획·구성=장근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