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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9.09
베르사유의 장미
▲ 한국 창작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 공연에서 주인공 오스칼 역할을 맡은 김지우 배우가 연기하는 모습. 이 뮤지컬은 1970년대 일본 만화 ‘베르사유의 장미’가 원작이에요. /EMK뮤지컬컴퍼니
일본 순정 만화계의 개척자라 불리는 이케다 리요코의 '베르사유의 장미'는 1970년대 일본을 넘어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 만화입니다. 이 만화가 창작 뮤지컬로 제작되어 현재 공연 중이에요.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10월 13일까지·충무아트센터 대극장)입니다.
오랫동안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아온 일본 만화는 작품성까지 인정받아 대표적인 콘텐츠 수출 상품으로 꼽힙니다. 일본 만화를 특별히 '망가(Manga)'라고 구분해서 부르지요. 망가 원작들은 TV 방송과 영화, 그리고 뮤지컬 제작 등 다방면에서 경제 가치를 창출하고 있어요.
일본 망가
만화 '베르사유의 장미'는 1972년부터 1973년까지 만화 잡지 '마가렛'에 연재된 작품이에요. 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지요.
여성을 주 독자층으로 하는 '순정 만화' 장르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한국은 물론 유럽에도 소개되어 큰 흥행을 일으켰는데요. '프랑스 혁명(1789~1794년)을 베르사유의 장미로 배웠다'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18세기 당시 혼란한 프랑스 사회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것으로 평가받고 있어요.
작가 이케다 리요코는 오스트리아의 전기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전기 '마리 앙투아네트'를 읽고 감동받아 이를 바탕으로 '베르사유의 장미'를 창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이케다 리요코는 프랑스 문화를 세계에 알린 공로를 인정받아 2009년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받았습니다.
만화 '베르사유의 장미'는 1755년 태어난 세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오스트리아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의 아홉째 딸이자 훗날 비운의 프랑스 왕비가 되는 마리 앙투아네트, 북유럽 왕국 스웨덴의 귀족 가문 장남 페르젠, 그리고 유서 깊은 군인 가문에서 태어난 오스칼이지요. 마리 앙투아네트와 페르젠은 실존 인물이에요. 두 사람은 연인 관계로 알려져 있어요.
가상 인물 오스칼은 대대로 프랑스 왕가의 두터운 신임 속에서 군대를 지휘하는 군인 가문의 막내딸로 태어납니다. 후계자를 원하는 아버지 바람대로 여성이지만 군인 제복을 입고 군사교육을 받으며 자라지요. 훗날 오스칼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호위 대장이 되어 베르사유 궁전에 입성해요. 그리고 왕비의 연인 페르젠의 등장으로 세 사람은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숙명적인 만남을 갖게 됩니다. 과거 순정 만화에서 볼 수 없었던 남성성을 내세운 여성 주인공 오스칼은 여성 팬들에게 큰 인기를 얻습니다.
미혼 여성 배우로만 구성된 다카라즈카
일본에서 이 만화의 뮤지컬 버전은 1974년 여성 가극단 '다카라즈카'가 초연합니다. 일본 전통 공연 예술인 '가부키'가 오로지 남성 배우들로만 이뤄졌다면, 반대로 다카라즈카 가극단은 여성 배우만 들어갈 수 있어요. 남성 역할은 여성이 남자 분장을 하고 맡게 되지요.
1910년대 초 창단해 100년 넘는 역사를 갖고 있는 다카라즈카 가극단은 소속 배우만 400명이 넘어요. 이들을 특별히 '다카라젠느'라고 불러요. 결혼을 하면 극단에서 나가야 하는 규정이 있어서 배우 모두 미혼 여성인 것도 특징이지요.
우리 전통 예술에도 이처럼 여성 배우로만 구성된 '여성국극'이 1950년대에 대단한 인기를 얻었어요. 임춘앵, 김소희 같은 배우들은 요즘 연예인 팬덤 이상의 관심을 받았어요. 1960년대 한국 영화의 성장과 함께 여성국극은 서서히 잊혔어요.
하지만 이와 반대로 다카라즈카는 도쿄와 효고현에 각각 2000석 넘는 전용 극장을 운영하며 지금도 연간 10여 편의 작품을 공연하고 있어요. 일본을 방문하는 공연 팬들에게 다카라즈카 공연 관람은 필수 코스랍니다.
2005년 다카라즈카가 내한해 '베르사유의 장미' 공연을 했어요. 공연은 방대한 원작을 각색해 두 이야기로 만들었어요. 하나는 마리 앙투아네트와 페르젠의 사랑 위주인 '앙투아네트 버전', 또 하나는 오스칼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내며 자라지만 신분 차이로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는 앙드레를 큰 축으로 삼은 '오스칼 버전'이지요.
장미가 붉게 피어올랐다가 지는 장면도
당시 내한 공연이 앙투아네트 버전이어서 오스칼 팬들이 섭섭해했는데, 이번 우리 창작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에선 오스칼이 주인공으로 전면에 등장하지요.
흐트러짐 없는 하얀 제복을 입고 긴 금발을 휘날리며 절도 있게 칼을 뽑는 오스칼의 매력은 뮤지컬 팬들에게 새로운 캐릭터를 관람하는 재미를 선사해 줍니다. 뮤지컬은 오스칼과 앙드레의 러브 스토리를 강조하는 대신 혁명 정부 일원이자 시민들 편에 서서 귀족들을 습격하는 흑기사 '샤틀레'라는 인물을 부각했습니다.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 무대는 제목 그대로 장미가 붉게 피어올랐다가 지는 아름다운 장면을 보여줍니다. 여기에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의 화려한 파티 장면과 프랑스 혁명군 노래가 울려 퍼지는 장면 등이 교차하면서 스펙터클한 대극장 뮤지컬의 감동이 펼쳐집니다.
특히 오스칼이 강인한 군인으로 성장하지만 앙드레를 향한 사랑을 깨닫는 '나 오스칼' 등 뮤지컬 노래도 인상적인데요. '여자로 태어나서 남자로 살아온 나, 누군가의 강요 앞에 굴복한 게 아니야'라는 오스칼의 강인한 외침은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고 있답니다.
▲ 한국 ‘베르사유의 장미’ 뮤지컬 공연의 무대 배경에 제목처럼 붉은 장미가 가득 피어올랐어요. /EMK뮤지컬컴퍼니
▲ 일본의 여성 가극단 ‘다카라즈카’가 2005년 내한해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를 공연하는 모습. 100년 넘는 역사를 갖고 있는 다카라즈카는 결혼을 하면 극단에서 나가야 해서 배우 모두 미혼 여성이래요. /이명원 기자
▲ 일본 만화 ‘베르사유의 장미’의 주인공 오스칼. /EMK뮤지컬컴퍼니
최여정 '이럴 때 연극' 저자 기획·구성=오주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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