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문화) 천년의 문화도시 경주에 은은한 묵향이 가득
입력 2024.06.13 07:19
경주 ‘플레이스 씨’에서 문봉선 작가의 ‘먹, 바람 무여 문봉선 경주 그림’ 전시회 9월8일까지 50여 작품 전시
천년의 역사문화도시 경주에 묵향이 은은하게 흐르고 있다.
경주의 복합문화공간 ‘플레이스 씨’에서 40년 먹으로 연과 소나무에 스쳐가는 바람을 그린 문봉선 작가의 ‘먹, 바람 무여 문봉선 경주 그림전’이 열리고 있다.
12일 ‘플레이스 씨’에서 경주는 물론 서울, 부산 등지에서 300여 명의 관객들이 모인 가운데 ‘먹 바람 무여 문봉선 경주 그림’ 전시회 개막행사가 열렸다.
복합문화공간 플레이스 씨를 직접 기획하고 지난해 문을 열어 네 번째 전시를 이어가고 있는 최상원 회장은 “수묵화의 거장 문봉선 화백의 작품에서 채움과 비움의 미학을 느껴보시길 바란다”고 인사했다.
문봉선 작가는 “35년 전 권영길 전 경주시의회 의장의 소개로 답사했던 경주의 풍경들은 말문을 닫게 했다. 천년의 화려함을 품은 황룡사지의 심초석 위로 펼쳐진 맹렬한 침묵의 빈터가 연꽃의 화심으로 피어나며 형용할 수 없는 감격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억제하기 힘들었다”고 경주를 그리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문 작가는 경주여행에서 황룡사지와 삼릉골 선각육존마애불 그리고 포석정을 가장 인상적인 곳으로 추천하고 싶다고 했다.
“옛 영화는 가뭇없이 사라졌는데 심초석과 주춧돌은 밤하늘의 별자리처럼 붙박여 있다”면서 “황룡사지는 허무와 여백의 심미적 간격을 오가게 하면서 유와 무를 떠올리게 만든다”고 황룡사지에 대한 느낌을 전했다.
또 “경주 남산을 오르면서 선각육존마애불을 만나 법당이 아닌 산속에서 불화를 조우한 듯했다”면서 “바위결을 살리면서 보살이 입은 얇은 비단옷의 선을 조금의 주저함이나 어색함이 없이 그려낸 묘수는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큰 울림을 준 감동이었다”고 고백했다.
이어 “신라인들이 자그마하게 꾸몄으나 멋들어지게 돌을 연잎 모양으로 다듬어 자연과 하나 되는 풍류에 웅숭깊은 멋스러움이 깃들어 있음을 체감하게 하는 포석정은 물도, 술향기도 말라버리고 없지만 천년 세월의 풍상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다”고 진한 감동의 여운을 전했다.
문 작가는 “삼릉과 오릉의 소나무는 왕릉을 호위하면서도 쓰러질 듯하거나 넘어질 듯한 S자 모양으로 뒤틀리거나 에두르면서도 기어코 하늘 높이 솟으려는 기상을 가져 유별난 매력을 가지고 있다”면서 “이러한 다채로운 영감의 원천이 경주를 그리게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경주의 소나무는 사람의 생과 같이 생존하기 위해 싸워온 듯 성한 나무가 없다. 그래서 역발상으로 위에서부터 거꾸로 내려오면서 송진냄새와 솔바람까지 그린다”고 그만의 필법을 풀어냈다.
대서사시처럼 길게 대작으로 그린 ‘연 춘하추동’은 “일곱시간에 걸쳐 수행하듯 그렸다”고 소개했다.
‘먹, 바람 무여 문봉선 경주 그림’전은 9월8일까지 이어진다. 이번 전시에는 순수 먹으로만 경주를 그린 ‘황룡사 노송’, ‘솔바람’, ‘송림’, ‘당간지주’, ‘연 춘하추동’ 등 경주를 그린 5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문봉선 작가는 1961년 제주도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동양화과를 나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중국 남경예술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자전거와 동리 등의 작품을 연작으로 그리면서 20대에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 중앙미술대전 대상, 동아미술제의 동아미술상을 타는 3관왕을 차지하며 화려하게 예술계의 별로 떠올랐다. 그 외에도 선미술상, 한국평론가협회 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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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플레이스 씨에서 12일 문봉선 작가가 관객들에게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12일 개회식에서 인사하는 문봉선 작가를 관객들이 축하 해주고 있다.
문봉선 작가가 먹으로 그린 작품 ‘노송과 감은사지탑’
작품 ‘송림’을 설명하는 문봉선 작가.